망한 작가 천재 작가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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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6.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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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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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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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DUMMY

광장시장 안으로 들어간 지한은 옷가게를 찾아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그는 옷 가게뿐만 아니라 그곳 상인들의 옷차림을 관찰했다. 머릿속으로 최남수의 옷을 떠올렸지만 그래도 현실 속 상인들의 차림새도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 상인들은 주로 짙은 색 바지를 입었다. 상의도 튀지 않은 색과 무늬의 옷이었다. 당연하게도 구두보다는 운동화 등 발이 편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지한은 옷 가게에 들어가서 갈색 골덴 바지를 골랐다. 움직이기 편하고 보온도 되는 옷이었다. 상의로 기모가 들어간 남색 맨투맨을 골랐다가 잠시 고민하고는 도로 행거에 걸었다.


‘이것보다는 좀 더 따뜻해 보이는 옷이 좋겠어. 무대에서도 잘 보이게.’


지한은 목폴라 티에 회색 스웨터를 골랐다. 그러고는 카운터로 가서 자신의 카드로 계산했다. 가게를 나온 지한은 다시 사람들을 피해 가며 지팡이를 파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손수레에서 털모자를 하나 샀다. 정현이 요청하지 않았지만, 발목까지 오는 신발도 하나 샀다.

안은 털로 푹신하고 겉은 고무로 된 신발이었다.

지팡이마저 구매하고 가게를 나오자 시간은 1시 20분이었다. 점심으로 간단하게 풀빵으로 때운 뒤 지한은 다시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대학로에 있는 ‘연리지’ 극장 앞에 도착해서 지한은 택시에서 내린 뒤 다시 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수 씨. 지금 ‘연리지’ 앞입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제가 밖으로 나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전화를 끊고 십 분도 되지 않아 기수가 ‘연리지’에서 나왔다. 그는 지한이 들고 온 쇼핑백들을 잠시 쳐다보았다.


“광장시장에서 사 오셨다고요?”

“예.”

“저도 거기까진 생각했는데......”


기수는 지한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했는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배우 대기실까지 안내할게요. 한 배우님이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예.”


기수는 지한에게서 몸을 돌렸지만 지한은 그의 눈빛이 흔들리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연극 시작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정현은 이미 노인 분장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의상은 지한과 헤어질 때 입고 있던 옷 그대로였다. 의자에 기대어 대본을 보고 있던 정현은 배우 대기실로 들어오는 지한을 쳐다보았다.


“도망쳤을 줄 알았는데 용케 왔군.”


정현은 대놓고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분장사의 솜씨가 좋은 덕분인지 정현은 70대 후반처럼 보였다.


“여깄습니다.”


지한은 정현에게 쇼핑백에서 옷과 모자와 지팡이를 꺼내 건넸다. 무표정하게 옷들과 지팡이와 모자를 보던 정현은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캐릭터 분석을 열심히 한 것 같군. 대본을 읽을 시간이 없었을 테니 관계자에게 물었을 테고......”


정현은 턱짓으로 기수를 가리켰다.


“적어도 저 녀석보다는 낫군. 저 녀석은 마치 교장 선생이 입을 법한 옷으로 구해왔거든. 배우 지망생이라는 녀석이 기본적인 캐릭터 분석도 안 한다니 기가 막히는 노릇이야.”


그 말에 기수는 얼굴을 붉혔는데 얼굴이 희어서 금방 표가 났다.


“조금만 나무라도 얼굴에 다 표가 난다니까. 저렇게 예민해서 기센 배우들 사이에서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군.”


정현은 혀마저 차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지한은 은근히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민하면 감정표현 연기를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정현은 재밌다는 눈빛으로 지한을 쳐다보았다.


“날 설득하려고 아부만 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 내 말에 태클을 거는 것을 보니.”


지한은 정현의 말에 더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처럼 아부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다툼이라도 하는 날에는 시도조차 못 하고 바로 회사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었다.


정현은 지한이 들고 있는 쇼핑백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그건 뭐지?”

“요청하신 것은 아니지만 최남수가 신을 만한 신발을 가져와 봤습니다.”

“그럼, 꺼내 봐.”


아랫사람 부리듯 명령내리는 정현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한은 쇼핑백에서 털신을 꺼내 내밀었다. 정현은 털신을 받은 뒤 이리저리 살폈다.


“추운 날 종일 밖에서 일하는 장사하는 사람이 신을 만한 신이군. 고무 재질이어서 방수가 되니 어시장에서 신을 수도 있고.”


정현은 지한을 보며 빙글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어. 이 신발하고 털모자만 가져가겠어. 나머지는 있으니까.”


지한은 ‘그렇다면 왜 의상까지 사오라고 했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일단 참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연극 하는 동안?”

“최남수를 어떻게 연기하는지 지켜봐도 될까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배우들 연기도 보나 봐?”

“예. 같은 시나리오도 배우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관객에게 전달되는 게 달라지니까요.”

“아주 핫바리는 아닌 것 같네.”


정현이 입가를 끌어올리며 씨익 웃었다. 도전적인 미소에도 지한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연극을 보기 전에 극본을 좀 읽어도 될까요? 아무래도 글쓰는 사람이다보니 극본에 관심이 많아서요.”

“좋아. 제대로 일하려면 그 정도 자세는 되어 있어야지.”


정현은 직접 대기실 탁자에서 극본을 집어 지한에게 내밀었다.


“대본은 다른 곳에서 읽었으면 해. 연극 시작 전에 집중이 깨질 수 있거든.”

“알겠습니다.”

“연극이 끝나고 당신의 감상이 어떨지 물어볼까 해.”

“예.”


지한이 대본을 받자 정현은 나가보라는 듯 턱으로 밖을 가리켰다. 지한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말없이 배우 대기실을 벗어났다.


지한은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 대본을 읽었다. 준수가 말했듯이 <늘근 그대>는 70대 후반이 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다가오는 인생의 마지막을 쓸쓸히 준비하는 이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었다. 등장인물은 민수의 과거에 주로 나오며 현재 그의 희노애락의 이유를 보여주었다.


연극이 시작되자 지한은 기수와 함께 객석에 앉아 정현이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확실히 그는 연기를 잘했다. 그러나 지한은 그 연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정현이 공중파 미니 시리즈에 나오도록 설득할 방법을 떠올리느라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한은 정현의 일행이기 때문에 제 1열에 앉을 수 있었고 그 옆에는 ‘연리지’ 극장 관계자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연극이 중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지한은 자신 옆에 앉은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한정현 배우는 정말 이런 연기를 잘해.”

“그렇죠.”


남자의 말에 여자가 맞장구쳤다.


“문제는 이런 연기만 잘한다는 거지.”


남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시니컬하게 들렸다. 이번에도 여자는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한 배우는 이런 종류의 연기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이 있어요. 인생의 끝자락에 선 사람이나 사회 밑바닥의 사람을 잔잔하게 연기하죠. 뭐, 로맨스 연기도 되는 것 같지만 솔직히 그 이상은 없죠. 한 배우가 스크린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말도 있어요.”

“그렇지. 아무리 연기파 배우로 유명해도 연기할 수 있는 범위가 저리 좁아서야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가 없지.”

“한 배우, 나이도 그리 작지 않잖아요? 재능은 아깝지만 그리 미래가 밝아보이지 않네요.”


지한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다. 그동안 한정현에게 관심이 없어 몰랐지만 한정현의 입지가 그리 넓어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형이 세계적인 감독이어도 가능한 연기의 범위가 좁다는 것은 상당한 핸디캡이었다.


연극이 끝난 뒤 지한은 ‘연리지’ 극장 로비의 자판기로 가서 음료수를 구입했다. 음료로 목을 축이며 걷다 지한은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었다.


“......이 새끼, 이렇게 도망치면 내 니 못 찾을 줄 알았나?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 않긋나?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기로 하지 않았나?”


억양이 센 경상도 사투리로 누군가를 협박하는 목소리였다. 가까운 곳에 빌린 돈을 받으러 다니는 깡패가 있는 듯 싶었다. 상황이 심각해 지한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가 지금 선 곳이 극장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쩌면 실제 상황이 아닐 수 있었다. 지한은 호기심을 느끼고 목소리를 따라갔다. 소리는 휴게실에서 들렸다. 지한은 열린 휴게실 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기수가 마치 무대에 선 것처럼 동작을 하며 대사를 읊고 있었다.


“뭐? 이 새끼가 말이면 단 줄 알아?”


기수는 눈앞에 상대가 있기라도 하듯 화를 버럭 냈다.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고 있고 위협적인 태도와 목소리 때문에 평소의 순한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기수는 지한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은 듯 연기를 계속했다. 이번에 손바닥을 펴서 귀에 가져다대었다.


“어, 용환아. 몸은 좀 어떴노? 저번에 봤을 때 영 얼굴색이 안 좋대. 밥은 잘 챙겨 묵고?”


조금 전과 달리 봄바람이 살랑이는 것처럼 따뜻한 목소리였다.


“이번에 학자금이 올랐다고? 인마, 뭘 그런 걸로 걱정하노? 공부만 잘하면 될 것을...... 아이다. 그깟 공부 좀 못해도 된다. 몸만 건강하면 되니께.”


기수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지한은 기수가 서로 다른 감정을 짧은 시간에 정확히 표현한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의 연기는 어색한 곳 하나 없이 자연스럽고 깔끔했다. 거친 연기 덕분에 감성적인 연기가 더 살아나는 것 같았다.


기수는 고개를 돌리다 지한과 눈이 마주치자 여지없이 얼굴을 붉혔다.


“어,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얼마 안 되었어요. 한 5, 6분쯤?”


지한은 자연스레 나오려는 우호적인 미소를 참으며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수가 혹여 미소를 잘못 해석해서 자신의 연기에 대한 비웃음이라 생각할까 싶었다. 그러나 지한은 칭찬만큼은 참지 않았다. 휴게실 안으로 들어서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런데 연기 정말 잘하시던데요?”


기수는 지한의 칭찬에도 웃지 않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유 작가님, 선생님께는 말하지 말아 줄래요? 이런 연기를 했다는 것을 알면 저 정말 혼나요.”

“이런 연기라니요?”

“선생님이 거절했던 역이거든요.”

“아, 그래요? 저 입 무거우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유 작가님만 믿을게요.”


말은 그렇게 해도 기수의 표정은 아직 편해지지 않았다. 그를 유심히 살피다 지한은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기수 씨는 배우 지망생이어서 한 배우님 매니저를 하고 계신 거죠?”

“예. 매니저를 하면 선생님의 연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까요.”


지한은 그제야 의문을 풀었다. 연기 때문에 기수는 매번 마음을 다치면서도 정현의 곁에 있는 것이다. 지한은 기수가 대답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안타까웠다.


“이제 하산을 해도 되겠는데요? 한 배우님보다 훨씬 연기를 잘하시니까. 뭐, 한 배우님이 기수 씨에게 연기지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한의 말에 정말로 놀랐는지 기수는 질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작가님, 그건 오해예요. 저 같은 거보다 선생님은 훨씬 연기를 잘하세요.”

“그런가요? 한 배우님은 원래 노년을 맞이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거든요. 그렇지만 오늘 무대에서 한 배우님은 박력이 지나쳐 섬세한 감정표현을 못 하시던데요? 뭐, 스크린과 달리 관객과 멀리 떨어져 있기에 좀 과장해서 연기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연기였어요.”


지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느닷없이 다른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아쉬운 연기라는 거지?”


휴게실의 열린 문 사이로 얼굴 가득 노기가 서린 정현의 모습이 보였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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