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작가 천재 작가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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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no1
작품등록일 :
2024.06.13 21:51
최근연재일 :
2024.09.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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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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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DUMMY

정현의 등장에 기수는 얼굴이 하얘졌다. 그는 딱할 정도로 더듬거렸다.


“서, 선생님...... 다른 배, 배우분들과 모, 모임이 있던 것 아니었습니까?”


정현은 나무라는 시선으로 기수를 쳐다보았다.


“누구 허락을 받고 내가 거절한 연기를 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분명히 말했지? 나는 이런 식으로 뒤통수치는 인간을 싫어한다고? 짐 싸고 싶어? 너 아니면 매니저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선생님, 제발 한 번만 봐주시면......”

“다시 이런 더러운 경험을 하라고? 어디서 어쭙잖은 연기를 하면서......”


정현의 얼굴을 보고 지한은 큰일났다 싶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반발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배우님, 기수 씨가 한 배우님의 연기를 따라 한 것에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수 씨 연기가 어쭙잖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정현은 시선을 돌려 사나운 얼굴로 지한을 쳐다보았다.


“이 녀석의 연기가 어쭙잖다는 내 말은 동의할 수 없다?”


정현은 콧웃음을 쳤다.


“어디서 싸구려 글만 쓰는 작가가 연기를 논하는 거지?”

“죄송하지만 그건 한 배우님의 편견입니다. 저는 배우가 하는 연기의 기본이 되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입니다. 시나리오가 없으면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 할 수 있습니까? 배우의 연기에 따라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꼴을 갖추니 시나리오 작가는 배우의 연기를 많이 참고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연구까지 하죠. 그렇기에 한 배우님의 무대를 본 것이고요.”

“그렇게 배우들 연기를 보고 연구까지 하는 사람이 내 연기가 아쉽다며 깎아내려?”


정현의 말을 듣고 이쯤에서 사과해야겠다고 지한은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불현듯 정현을 설득할만한 구실을 만들 만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솔직히 배우님의 연기는 꽤 아쉬웠습니다.”

“뭐?”

“확실히 한 배우님의 연기는 훌륭했습니다. 잔잔하게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 선 사람의 내면 표현을 잘 하시더군요. 매끄럽고 여운이 남는 연기였지만 뭔가 임팩트가 약했습니다.”

“임팩트가 약하다?”

“예. 그래서 한 배우님은 잔잔한 연기는 가히 천재적으로 연기하실지 몰라도 좀 더 자극적인 연기는 못하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액션이나 서스펜스 극에서 한 배우님이 어쩌면 주요 배역을 맡지 못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요. 어쩌면 그래서 기수 씨가 한 그런 연기를 한 배우님이 거절했는지도요.”


정현은 지한의 말을 듣고 잠시 말이 없었다. 지한의 말대로 기수가 했던 그런 연기를 못해서 역을 거절했던 것이다. 그러나 곧 정현은 악귀 같은 표정으로 지한을 노려보았다.


“액션이나 서스펜스의 주요 배역을 맡지 못한다?”

“예.”

“내가 연기한 영화라도 본 모양이지?”

“봤습니다. 작년에 단편 예술 영화에 나오셨더군요.”

“거기에도 나름 액션이 들어간 걸로 아는데?”

“하지만 정통 액션극은 아니었죠.”


지한의 말을 듣고 정현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의 말대로 정현은 액션극이나 서스펜스 극에서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용기를 내어 서스펜스 영화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주인공 역으로. 아쉽게도 영화는 제작비도 건지지 못했다. 그때까지 그의 연기를 칭찬했던 평론가들이 혹평에 가까운 평가를 내렸다. 더 처참한 것은 관객들의 평이었다. 관객들은 정현 때문에 영화가 망했다는 악담을 퍼부었다. 그 뒤 정현은 액션이나 서스펜스 극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지한의 지적은 뼈아프지만 모두 맞는 말이었다. 기수가 보인 그런 임팩트 있는 연기를 정현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상 정현은 쉽게 인정하고 쉽지 않았다.


“나와 달리 기수의 연기는 임팩트가 있었다?”

“예.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기수 씨의 연기는 임팩트가 있습니다.”

“혹시 집중하지 못해서 내 연기에서 임팩트를 못 느낀 걸 수도 있지.”


정현은 고집 센 아이 같은 표정으로 지한의 말을 이죽거렸다. 지한은 정현이 얄미웠지만 속으로 꾹 눌러 참았다.


“한 배우님도 이런 임팩트 있는 연기를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정현은 여전히 도도한 얼굴로 되물었다.


“임팩트 있는 연기?”

“예. 기수 씨보다 더 자연스럽고 임팩트 있는 연기를 하시면 기꺼이 제 무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정현은 지한의 제안을 생각하느라 잠시 침묵을 지켰다. 시간이 지나 그는 약간이나마 흥미가 생긴 표정으로 지한에게 시선을 던졌다. 정현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어진 것을 보고 지한은 용기를 얻었다.


“이러면 어떻습니까? 제가 2인극 시나리오를 써드리겠습니다. 무대는 한 배우님 자택이고 출연 배우는 한 배우님과 기수 씨입니다. 여기서 비일상적인 상황을 넣으려고 합니다. 한 배우님이 형사 역이고 기수 씨는 연쇄 살인마 역을 맡는 겁니다. 기수 씨는 한 배우님이 1년 전 놓친 살인마죠. 여행지에 왔다가 우연히 살인마의 자택에 묵은 형사 한 배우님과 기수 씨. 그리고 결국 한 배우님은 중요한 증거를 찾아냅니다. 살인마와 대결을 해야 하는 형사. 어떻습니까, 이런 2인극?”


정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지한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것을 감추지 못했다.


“.....2인극? 임팩트 있는 연기?”


정현은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현은 꽤 흥미가 당긴 듯한 눈초리로 지한을 쳐다보았다.


“......괜찮은 것 같긴 한데......”


지한은 기수를 돌아보았다.


“기수 씨는 어떤가요?”


지한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렸다가 지한과 눈이 마주치자 기수는 민망함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저, 저도 유 작가님의 제안이...... 괜찮습니다......”


지한은 정현과 기수의 대답에 만족해서 싱긋 웃었다.


“그럼, 2인극 시나리오를 준비하겠습니다.”


*


이번에 정현은 정말로 배우 모임에 갔고 지한이 ‘연리지’ 극장 로비에서 그를 기다렸다. 지한이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고 있을 때 기수가 다가왔다.


“유 작가님, 고맙습니다.”


지한은 다짜고짜 고맙다고 하는 기수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예? 뭐가요?”

“덕분에 선생님 연기를 흉내 냈던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되었거든요.”


지한은 말없이 잠시 기수를 쳐다보았다. 여느 때처럼 기수는 자신 없는 표정을 한 채 공손한 태도로 서 있었다.


“기수 씨는 자신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모르는 것 같네요.”

“아, 제가 연기를 잘하나요? 연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한 배우님의 잔잔한 연기보다 기수 씨의 임팩트 있는 연기가 저는 더 좋던데요?”

“......죄송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연기가 제 연기보다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


기수는 정현의 좋은 면만 보고 있었다. 지한은 굳이 기수의 의견에 반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저도 한 배우님의 연기에 임팩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한의 말에 기수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말씀을......”


기수는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


“솔직히 기수 씨가 너무 자신 없어 해서 조금 기운을 북돋아 줄까 그런 말을 했기도 했고요. 한 배우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콧대 좀 꺾어줄까 하는 의도였어요.”


기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싱글거리는 지한을 쳐다보았다.


“서, 선생님의 콧대를 꺾으려고 그랬다고요?”

“아예 거짓말이 아니기도 하고요.”


기수는 이제 벙찐 얼굴로 지한 옆에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의 대화를 다시 이을 감당이 되지 않아 그는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유 작가님이 선생님의 미션을 잘 수행해서 놀랐어요. 저는 <늘근 그대> 시나리오를 읽고 의상과 소품을 구하러 갔거든요. 그때 저는 남색 양복바지와 회색의 스웨터와 셔츠를 샀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옷들을 제 얼굴에 던지며 소리치셨어요. 오랫동안 어시장에서 일한 최남수가 선생님 같은 옷을 입었겠냐고요. 저는 최남수가 지난 삶을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찾는 모습에서 마치 철학자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와 달리 유 작가님은 단번에 선생님의 마음에 들게 의상과 소품을 구해오셨어요.”

“단번에 한 배우님의 마음에 들게 구한 것 같지 않은데요? 한 배우님은 털고무신과 모자만 가져갔잖아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선생님은 옷을 유 작가님에게 던졌을 거예요.”


지한은 기수를 보다가 문득 한 가지 궁금해졌다.


“기수 씨는 한 배우님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억울하지 않나요? 한 배우님은 그야말로 못되게 기수 씨를 대하던데?”

“......제가 부족해서 그러신걸요. 저는 선생님 옆에서 선생님의 연기를 보는 걸로 충분해요.”


지한은 문득 기수가 답답해졌다. 요즘 세상에 기수처럼 착하기만 해서는 호구 취급을 당하기 쉬웠다. 막 대해도 되니 정현은 더욱 기수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간 기수가 오히려 위축될 수 있었다. 지한이 보기에 기수는 자신감 먼저 회복해야 할 것 같았다. 지한은 2인 시나리오에서 형사 역을 좀 더 세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수 씨, 한 배우님과 2인극 할 때 형사 역 잘 부탁드립니다.”

“아, 사실 유 작가님에게 그 일도 고맙다고 할 생각이었어요.”

“한 배우님과 2인극을 할 수 있어서요?”

“예. 선생님 앞에서 제가 얼마만큼 연기할 수 있는지 긴장되면서도 기대돼요.”


기수는 정말 좋은지 약간 경직되었던 얼굴을 풀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보고 지한은 다시 한번 느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기수는 지한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듯이 두 번 세 번 인사를 한 뒤 배우 대기실로 향했다. 아마 정현이 뒀던 물건을 챙기려는 것 같았다. 지한은 기수의 뒷모습을 보다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한이 로비에서 기다린 지 한 시간이 훨씬 넘어서 정현이 극장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같이 연극무대에 오른 배우들에 둘러싸이다시피 했다.


“한정현 배우님, 오늘도 연기가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현보다 대여섯 살은 많아 보이는 남자가 정현에게로 살짝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정말 그래요. 한 배우님과 연기는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몰라요.”


지한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정현에게 살랑거렸다. 그러자 정현은 아니라는 손짓을 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 연기는 그런 칭찬을 들을 수준이 못 됩니다. 무대를 보고 제 연기에 임팩트가 없다고 말한 사람도 있는걸요.”


정현에게 찬사를 날렸던 남자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배우님 연기에 임팩트가 없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연기를 볼 줄 몰라서 그런 소리나 하는 겁니다.”


이미 로비에 내려선 정현은 지한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다.


“그런가요?”


잠시 정현을 바라보다 지한 역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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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꼼수 24.06.16 48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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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꼼수 24.06.16 4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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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연기 대결 24.06.15 6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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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설득 24.06.15 55 1 13쪽
18 설득 24.06.15 59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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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해킹으로 정의실현 24.06.14 7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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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모두의 학교 24.06.14 7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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