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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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쉬비타는 눈을 떴다. 두 눈은 시야가 제대로 보이는 것에 위화감을 느껴, 기억을 되짚어 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루치아의 도움으로 자신은 우리엘과 합일 했음을 떠올린다. 세포 하나하나가 찢어져 가는 고통을 느꼈음에, 또 다시 몸이 오싹해져 온다.
“ ···이것이 죽음이란 건가. ”
새까만 공간의 안에서, 그는 홀로 일어났다. 두 팔마저, 어째서인가 멀쩡한 것이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아, 쥐고 핌을 반복하는 손들의 사이로, 뭔가가 시야에 잡혀 온다.
자신이 이곳에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런 생각에 든 안심감마저도, 그것의 기이한 외형에 금새 공포심에 잡아먹힌다.
“ ···뱀, 이라고. ”
어린 루치아의 말을 떠올렸다. 사마엘, 즉슨 뱀이 우리엘에게 있었다고. 그래, 저 뱀이 나의 동생.
“ 엘프여. 그대가 나를 흡수하였군. ”
계몽의 천사. 최초의 인간들에게 선악을 알게 한 타락천사. 사마엘이다. 델쉬비타는 그 일부분인 뱀과 만난 것이다.
“ ···저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죠. ”
“ 이것은 과정이라네. 그대가 죽어가는 과정. 비루하게도, 수백 년을 고생만 하다가 가족의 얼굴 조차 다시 마주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과정. ”
“ ···그걸로 됐습니다. 이걸로···델리즈가 돌아온다면. ”
“ 정말 그걸로 된다고? 그대를 하염 없이 그리워 하며 살아갈 여동생을 남겨 두고, 이대로 떠나간다고? 가엾기도 하지.”
“ 네. 그걸로 된 겁니다···전부 다. ”
“ 글쎄. 혹시, 그대의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나? ”
“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이미 다 끝난 일을, 저한테 다시 되새겨서 무슨 소용이 있다고···! ”
“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대에게 기회를 주러 온 것이다. 살아남을 기회를. ”
“ 기회···라고요? ”
“ 나의 독은 본래, 그대와 같은 미물들에게 시련을 주어 완전하게 만드는 효과이지만. 그것에 실패하거나 거부하는 범부들은 그대로 썩어들어가기에, 독이라 불리지. ”
“ 완전해진다는 건···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습니까. ”
“ 맞을 테지. 비록 이것은 나의 일부분일 뿐이지만. 이 정도 만으로도, 나는 그대를 천사···나아가 반신으로까지 만들 수 있다. 그대가 이 시련을 견뎌낸다면 말이야. ”
“ ···하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다들 곤란해 할 거에요. ”
“ 하지만,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은. ”
“ ···그게 뭔들, 중요하겠습니까. ”
‘ —~...~--~...--, — ’
산뜻한, 라장조의 콧노래. 분명히도 여성의 발성이었다. 델쉬비타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200년대부터 전해져 오던 레시의 동요였다.
“ ···무슨 짓입니까. ”
“ 813년의 그날이 오기 전날 밤, 그대의 동생이 흥얼거리던 것이지. ”
“ 내 추억을 그만 끄집어 내라고!! 더이상···! 날 괴롭히지 말란 말이다···!! ”
“ 천사가 가능한 것은 무궁무진 하지. 그대가 그때로 온전히 돌아가는 것도. 그저, 평화롭게 아무런 굴곡 없이 그녀와 살아가는 것도. ”
델쉬비타는 그 노래가 델리즈의 것처럼 들려오기 시작한다. 호흡을 처리하는 특이한 악센트도, 시를 한 플랫 올려서 부르는 습관도.
서서히 레시에서의 풍경이 흐릿하게 펼쳐진다. 초목들이 우거져, 그 아래에서 다양한 종족의 이들이 평화롭게 담소를 나누며. 드문드문 약초를 캐는 아이들도 보인다.
“ ···그만, 해줘··· ”
“ 내가, 그대가. 그런 세상을 직접 만들면 될 일이지. ”
저 먼 발치에서, 굵은 나무의 가지를 현악기 삼아 연주하며 흥얼거리는 델리즈가 눈에 들어온다. 기다림, 불신. 심지어는 자그만 이기심에서 나오는 커다란 욕망.
생명의 본성이었다. 수많은 각오를 거쳤음에도, 델쉬비타는 아직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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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
루치아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신성성이라는 것은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끝 없는 마기만이 가득해야 했을 우리엘의 영체, 델쉬비타의 육체에서 그러한 것이 느껴진다는 것은.
“ ···설마. ”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새까만 거목에는 작은 불씨가 붙기 시작한다. 평화롭게 하늘을 떠돌던 구름들도 요동을 치고.
“ ? 무슨 일 생겼어? ”
“ 델쉬비타 이새끼가···! ”
“ 델쉬비타가 뭔가 한 거야? 뭔데, 뭐가 어떻게 ㄷ— ”
‘ —, —————! —————! ’
곧이어 열풍이 몰아친다. 잔디들이 춤추고 태양빛이 공기를 달구며.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바람에 대부분은 엎어진 채로 그 광경을 보았다.
거목에, 그보다 더욱 거대한 화마가 강림하는 것을. 모든 마기와 죄업을 연료 삼아 불타는 그 불은, 분명히도 델쉬비타가 묘사한 우리엘의 것과도 같이 보인다.
“ 이게 뭐야···!! 정화가 끝나면 루치아 네가 우리엘을 받아들이겠다고···! ”
“ 델쉬비타가, 배신했다···! 설마 했더니, 사마엘이 저녀석을 눈독 들일 줄이야···! ”
“ 사마엘?! ”
“ 그, 녀석은···! 어떤 미물도 천사와 가깝게 만드는 권능을 부린다!! 심지어는 그게 성공한 거야···!! ”
“ 지금 그 말은, 델쉬비타가 천사가 됐다는 소리야?! ”
“ 우리엘의, 녀석의 일부 마저 받아들인 모양이다!! 지금 당장 저걸 분리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불안정한 천사에 깃든 우리엘이 완전히 붕괴될 거야!! ”
“ 그건 어떻게 해야되는데!! ”
“ 당연히, 무력이지!! 델쉬비타를 죽여야만 해!! ”
“ 씨이발···! 델쉬비타!!!!! ”
열풍이 서서히 멎어든다. 거목의 전체는 우리엘의 불에 먹혀, 그 뿌리가 이어진 땅의 잔디들 마저 새까맣게 불타는 것을.
맨발로 짓밟으며 어떤 이는 다가온다. 델쉬비타의 젊은 형상, 그것에서 백발이 매우 길게 자라나, 또 하얀 소복과 불타는 헤일로, 발화를 시작한 두 장의 붉은 독수리 날개.
“ 부르셨습니까. ”
모든 시련을 끝마친 델쉬비타는 그들에게 익숙치 않은 용모를 하고 있었다. 달려 있던 의수는 열기에 녹아내리듯 분리되고, 불타는 어떠한 에너지로 대체한 팔이 자리를 대신한다.
“ 대체, 무슨 짓거리야···!! ”
“ 미안하게 됐습니다. 시안 군. 아무래도 불안하더군요. ”
“ 약속했잖아!! 반드시 델리즈는 책임지고···! ”
“ 그것 뿐만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이기심을 부리고 싶었습니다. 델리즈와···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거든요. ”
“ ······ ”
그것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시안을 대신해, 네헬브는 앞으로 나선다.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다시금 부는 열풍에 떠밀려 가듯.
“ 그 늙은 몸으로 우리엘을 받아들여서, 도대체 뭘 할 생각이지?! ”
“ 말했잖습니까. 델리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더불어···그 아이에게 있을 모든 해악을 없애버릴 겁니다. 사마엘···그녀가 보여준 미래의 해악까지도. ”
“ 야이 미친새끼야!!! 천사의 권능을 함부로 부려서, 지금 세계가 이 모양이 됐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
“ 저는 그 버러지들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아요. 구심점을 잃고 미쳐버린 녀석들과는 달리, 저는 분명한 목표가 있으니까. 방향은 잃지 않을 테죠. ”
“ 그, 몸으로···! 대천사의 권능을 썼다가는, 윤회하지도 못하고 사라진다고!! 네 영혼 자체가, 무로 돌아가버려도 좋다는 거냐!! ”
루치아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델쉬비타는 열풍 속을 거닐며, 루치아의 것보다도 더욱 커다랗고 뜨거운 불의 대검을 들고, 그녀와 가까워지는 걸음을 한다.
“ 루치아 양의 몸을, 제 육체, 그리고 의식을 함께 섞는다면야. 당분간 부서질 걱정은 없지 않습니까? ”
“ 지금, 나에게 도전하겠다고···? ”
“ 단단히 미쳤군, 델쉬비타···! ”
“ 아, 시안 군도 말입니다. 또 어부 씨도, 제 대의를 위한 양분이 되어주십사 합니다. 당신들을 죽이지 않으면, 이 세계의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는 것 같으니. ”
“ ···들었냐, 어부. ”
‘ 하아···사마엘 그년이 일을 냈군. ’
델쉬비타는 불의 대검을 높이 치켜올린다. 불에 입혀진 날개 두 장은 힘차게 펄럭이고.
“ 받아들인 걸로 알겠습니다. 저를 위해, 모두 죽어주십쇼. ”
‘ 쒜엥—————————!!!!!!! ’
힘차게 휘둘러진 대검에서부터 엄청난 열기가 복사된다. 모든 것을 녹일 기세의 열풍이, 한 없이 평화로운 들판에 불씨를 지피고, 셋은 그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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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텔로즈 흑색 지대의 어딘가.
“ 메타트론 님, 성공적으로 진입했습니다. ”
보랏빛의 머리칼을 하고, 로브를 둘러 쓴 성인 여성의 검사.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이곳을 거닐며 연락을 취한다.
‘ 좋아, 릴리에. 상황은 어떻지? ’
세이켈 릴리에. 그녀가 이 세계에 다시금 강림했다. 로브를 벗고, 그녀는 요동치는 대지와 더불어 흔들리고 무너져 가는 검은 탑을 올려다 본다.
“ 시안은 우리엘과 접촉한 것 같습니다만, 루치아 또한 존재하네요. 아마도 델쉬비타 씨가··· ”
‘ 사마엘의 독을 이겨냈다라. 흥미롭네, 그 엘프. ’
“ 엘프의 쪽도 회수할까요? ”
‘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미카엘이 언제 눈치를 채고 쫓아올 지도 모르는 상황에, 짐을 늘렸다가는 발목을 잡지 않겠어? ’
“ ···하긴, 저도 미카엘과 싸우고 싶지는 않네요. 알겠습니다. ”
‘ 통신을 종료한다. 마계에서 만나지. ’
텔레파시가 끊어지고, 다시금 로브를 쓴 그녀는 조용히 속삭인다.
“ ···다시 만나서 반가워, 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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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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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고 푹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조회수가 펌핑됐네요?? 2장 다 끝나면 300은 찍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저 뭐 어디에서 고로시 당했나요? 이례적인 일이라 출처도 모르겠고…
아신다면 댓글 좀 부탁드립니다. 단순 호기심이긴 한데 이유를 그냥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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