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펑크의 혈마술사는 복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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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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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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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20화

DUMMY

1211년 8월 21일. 엘리크 공화국.



‘ 쪼로로록— ’



핏물 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수건이, 엘리크 식으로 정수된 미지근한 물을 머금고 뱉는다. 앤의 고사리 같은 손이 열심히 그것을 쥐어 짜낸 뒤.



“ ······ ”



걱정스러운 얼굴로 수건을 옮긴 것은, 루치아의 나무로 아슬아슬하게 뼈대를 유지하는. 하반신과 복부, 양 팔이 뜯어진 송장같은 것이었다.



앤은 너덜너덜해진 얼굴이었을 부위에 끊임 없이 피어오르는 핏조각들을 닦아낸다. 이 과정을 한 지도 곧 한 달이다. 못 쓰게 되어 버린 물수건만 산더미처럼 쌓여, 마력 폐기물로 매몰된 바 있다.



“ ···선생님. ”



그녀가 선생이라 부를 사람은 하나 뿐이지 않은가. 어둠의 마왕 토벌이 끝난 직후, 시안은 그것의 심부에서 우여곡절 끝에 떨어져 나왔으나.



마왕의 마기의 영향, 제이드의 권능을 부족한 뇌로 멋대로 사용한 영향. 더불어 지금껏 누적되어 온 육체적 피로까지 합쳐진 꼴이 이 모양이다.



앤은 갖가지 부목과 생명 유지 마도구를 줄줄이 달고 나타난 그를 보자마자 펑펑 울어댔지만. 씩씩한 이 아이는 지금껏 지극정성으로 그의 옆을 지키고 있다.



“ ···슬슬 일어나셔야죠. 벌써 여름이 끝나가는데. ”



그녀가 엘리크 공화당의 구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면, 항상 하는 루틴이다. 만지기만 해도 조금 짜릿한 느낌이 드는, 루치아가 남기고 간 각성제 효과의 나뭇가지를.



‘ 푸욱– ’



천에 감싸 심장에 찌르는 일이었다. 루치아가 이른 대로 지금껏 수십 번을 반복했지만, 시안이 깨어나는 일은 여전히 멀어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말이다.



“ ···커헉···!! ”



촉촉하지 못한 입이 벌어지고, 기이한 소리를 뱉으며 마침내 눈을 뜨고 만 시안은.



“ 선생님!! ”



“ ㅁ, 앤? 아니, ”



“ 드디어 깨어나셨네요···선생님···! ”



앤은 본능적으로 반가움에 그를 끌어 안아보려 했으나,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처참한 모습에 역시 본능이 몸을 물러나게 하고 만다.



“ ···내 몸, 왜 고정이 되어 있는 거야. 불편하게. ”



“ 루치아 언니가 해주고 가셨어요! 이대로 두면 몸이 붕괴할 거라고 하셔서···아, 일주일 전에 편지도 한 통 보내오셨어요! ”



“ ···그래, 그 전에 그···물 한 잔만 입에 부어줄래? 입 안이 까끌까끌한데, 몸이 이 모양 이 꼴이니··· ”



그녀는 물이라는 말을 듣고 대야에 담긴 물을 먼저 보았으나, 아무리 깨끗한 수건이라도 빤 물이지 않은가. 하여, 하멜에게도 알릴 겸 별실의 밖으로 총총걸음한다.



“ ···어디, ”



‘ 촤즈즉—. ’



시안이 재생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제이드가 손수 세계의 운행을 멈추고 그의 육체를 통으로 공허로 끄집어 내어 해주던 것을. 지금에서야 제대로 따라해본 것이다.



지금까지는 단단히 굳힌 혈액 덩어리에 신경 역할을 하는 망을 약간 짜넣어, 의수와 의족처럼 움직이는 역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 날 때마다 의식이 빠져나가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을 터.



우선 재생한 것은 양팔이었다. 사이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밀랍으로 봉한 고풍스러운 편지를 집어뜯기 위해서 였지만.



“ ···썅. ”



그러기엔 몸이 고정되어 있고, 그러기엔 키가 작아 팔도 짧았다. 재생 두 부위에도 많은 체력을 소모한 그는 더욱 팔을 늘릴 여력도 없었다.



잠시 뒤, 앤이 식수를 한 컵 들고 오자 컴플렉스에서 비롯된 자기 혐오가 담긴 기어가는 목소리로 편지를 달라고 부탁했다. 너덜거리는 위장에 차가운 물 한 모금을 붓고, 빼곡하게 적힌 글자들을 머리에 넣을 준비를 한다.



‘ 친애하는 매부에게.



네가 잠을 너무 푹 자고 있길래, 나는 기다리다 지쳐 먼저 델리즈와 함께 레시에 가 있겠다. 피의 마왕이 말한 심장의 회수가 끝나면, 대륙에서 만나지.



그리고 앤에게 외우게 하기에는 꽤나 많은 후폭풍이 벌어진 탓에, 이 아래에 적어 두려고 한다. 먼저 텔로즈의 건.



텔로즈 지대의 외곽 쪽에 살던 원주민들은 내 이름을 팔아 엘리크로의 이주를 약속 받았어. 엘리크의 의원 녀석들에게 내 권능을 조금 보여주니 환장을 하더군. 네가 그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아쉽네.



그 대신, 텔로즈에 자치구를 만들어 쿼로파니므즈로 인한 엘리크 북방 피난민들을 수용하는 조건을 거래했지. 한동안은 그들이 한데 섞여 혼란할 것 같지만, 이번 년도가 지나기 전에 협약이 체결되고 내가 잘 해볼 거니까. 걱정은 마라.



그리고 루스넬크의 건. 사트라브의 괴멸로 인해 녀석들이 북진하고 있다만, 이것도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또···네 활약이 전세계에 보도됐다. 네가 텔로즈에 있을 동안 언론은 네가 델쉬비타에게 암살 당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 기사를 쓰던 녀석들은 깜짝 놀랐겠네.



아무튼 전쟁 영웅이 된 걸 축하한다, 매부. 하루만에 끝났지만, 네 이름이 꽤 팔렸겠군. 너도 잘 써먹어 보길 바라마.



아, 척후병들 중에 전사자가 조금 있었다만. 네가 잠든 기간 동안 토벌에 파병한 각국에서 국장이 치뤄졌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전선에 나선 용맹한 자들이었지.



네가 죽게 만들었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마라. 이미 쏟아진 물은 담기 힘들고, 하나하나 담으려면 끝도 없어. 다만, 이 희생을 기억하면 될 일이다. 다음부터는 염두에 두면 될 일이니.



나머지는 차차 알게 될 테니, 여기에서 줄여둘게. 앤은 널 기다리는 중이니까 한동안 외롭지는 않을 거야. 그럼 이만. ’




잠시 뒤 등장한 하멜은 그 한 달 사이에, 가뜩이나 노안인데 폭삭 늙어버린 얼굴이다. 시안이 오랜만에 그를 대면한 순간 누구인지 앤에게 물으려 했을 정도니.



“ ···거, 오랜만이군. ”



“ 오냐. 자네가 푹 쉬는 동안, 나는 플라브에 다섯 번이나 출장을 가느라 진땀을 뺐네. ”



“ 플라브···? ”



“ 세계 전쟁 평화 의회. 까먹었나? 정보도 없는 마왕을 깨웠다고 나를 추궁하길래, 지금 텔로즈 대가리로 앉힌 루치아를 팔고 왔지. ”



역사책에서나 가끔 이름을 듣던 그 기관이 움직이는 건 처음 보는 시안이었다.



강철의 마왕의 강림 이후, 대충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세계적인 문제에 대항하자! 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구로, 그 건물이 일단은 플라브 제국의 넓디 넓은 땅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의 두 섬나라가 없어진 사태를 위해 만들어진 그 기구는, 그 이후에는 기금을 모아 마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일부 국가에 지원을 주는 명분 뿐인 곳이라고 알고 있었을 한 젊은이는. 마냥 신기할 뿐이다.



“ ···뭐, 의회랍시고 기능하긴 하나 보네. ”



“ 젊은 자네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어쨌거나, 루치아가 떠나기 전 사정 설명은 전부 들었어. 하하, 천사니 악마니. 복잡한 소리를 하길래 전부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말일세. ”



대강 핵심은 아는 듯한 당당한 어투였다. 콧수염이 덥수룩한 하멜의 입에서는 연거푸 헛기침이 나오는 것에,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뜻이었을 터.



“ 의뢰 보수의 관한 건은··· ”



“ ···아, 그런 게 있었지 참. 내가 해결해 놓고 까먹고 있었네. ”



“ 뭐 과정이 어떻든, 흑색 지대의 근원을 없애달라는 의뢰는 해결한 셈이니. 원래는 120억 르벤을 셋이서 분배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



“ ···하나는 죽었지. ”



“ 유감인 일이군. 그는 서부 해협에 경치 좋은 곳에 묻어 줬으니, 시간 나면 들르고 가게. ”



“ ···응. 그래서, 루치아는 이미 받아갔나? ”



“ 그렇게나 필요가 없다고 손사래를 치길래, 델쉬비타의 동생···델리즈였나? 그 아이에게 몰래 쥐어줬지. 10억 르벤 수표로. ”



“ ···110억이나 남았나. 나도 그렇게나 많이 필··· ”



···요하긴 할 터이다. 말은 잘 해야지.



“ ···국토 반환이나, 재건 비용을 생각하면. 또 턱 없이 부족하네. ”



“ 그렇겠지. 뭐, 자네가 그 사이 세계 언론을 여름의 석양보다 더 뜨겁게 달궈뒀으니. 재건 사업을 한다고 하면, 투자자들이 따라 붙지 않겠나? ”



“ 엘리크는 뭐 좀 없어? 아직은 내 구상 속에 있지만, 켈브를 아주 야무지게 만들어 둘 거거든. ”



“ 헹. 자네가 켈브 왕국 시절에 발행한 채권을 보상해줄 게 아니면, 그런 소리 말게. ”



“ 아···그때 발행한 국채가 20조··· ”



“ 까마득하군 그래. 어지간한 손해도 아니었지 아주. 의회에서 20% 상환을 해준 게 아니었으면, 세계 경제가 난리가 났을 텐데. ”



“ ···켈브인이 미안하다. ”



“ 아무튼 간에, 100억 수표와 10억 수표를 하나씩 발행해서 켈브로 부쳐두지. 주소는··· ”



“ ···우체국이 사라져서 말이야. ”



“ 에휴, 그럼 직접 들고 가게. 이틀 정도면 발행 되니까, 엘리크에서 요양이나 더 하고 가지 그래. ”



“ ...그래야겠네. 앤에게 안내라도 받아야겠어. ”



구석에 앉아 졸고 있던 앤이 눈을 껌뻑거린다. 냉각기가 돌아가는 방 안이 추울까, 하멜은 마지못해 담요 하나를 걸쳐서 침대에 누우라 하는 게. 머리 색깔이 비슷한 탓에, 조카를 돌보는 삼촌 같다고 시안은 생각했다.



“ ···자네에 대한 건은, 플라브에서 어떻게든 둘러댔으니 한동안 불릴 일은 없겠지만··· ”



“ 언젠가는 가야만 하는 건가. 관심 좀 꺼줬으면 좋겠는데. ”



“ 아, 자네. 메이그로 간다고 했던가? 마침 이틀 뒤 새벽에 메이그로 가는 비행선을 탈 예정인데. 괜찮다면 자네 자리도 내줄 의향이 있어. ”



“ 아. 그래주면 고맙고···근데··· ”



“ 왜, 무슨 문제라도 생각 났나? ”



“ 아니, 내 하반신에 자리 잡은 이 나무들···어떻게 푸는 거지? ”



“ 루치아가 열쇠랍시고 뭔가를 두고 가긴 했는데. 아, 이거였나? ”



“ 아, 그거였구나···? 맞나? ”



각성제랄까, 온 신경을 자극시켜 깨우는 부류의 고문용 극약에 가까운 그 가지를 집은 하멜은, 분풀이라도 하는 건지 말릴 새도 없이 그것을 찔러 넣었고.



“ 아아아아아악—!!!!!!! ”



결국 시안이 움직인 건 이튿날의 오후였다.



작가의말

연참이 아닙니다 19화를 자정까지 쓰다가 올린 겁니다


이제 3장이나 구상해 봐야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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