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펑크의 혈마술사는 복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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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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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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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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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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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막간 1화

DUMMY

안개꽃밭의 너머에 잠든 이야기 한 송이. 그 안에서도 가장 소중히 묻혀 있던 한 송이.



그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담긴, 그 시절의 이야기다.



1203년 3월 3일. 늦은 저녁,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안의 집은 더이상 다른 이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가벼운 옷가지를 단단히 엮어 만든 올가미 하나가 가벼이 나부낀다. 그 용도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의 목을 달기 위한 끈.



향정신성 약물 한 통과 컵에 따른 물 한 잔을 옆 테이블에 올려두고, 시안은 빛 하나 없는 방 안에서, 어머니가 애용하던 흔들의자에 앉아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 ··· ”



약을 한움큼 쏟아내어 망설임 없이 목구멍 안에 털어넣은 그는,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올가미 밑 의자에 기어올라갔다. 한 손으로 올가미를 잡고 목을 집어넣으려던 때.



“ 시안. ”



침착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현관이 열리며 들려온다. 램프의 빛이 발광하며 보인 얼굴은, 다름 아닌 레나였다.



“ ···나··· ”



철푸덕 하며 바닥에 몸을 던진 시안은 잠시 고통에 신음한다. 거실의 등을 켠 레나는 살포시 그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힌다. 비몽사몽한 그의 손을 맞잡고,



“ 당신께 청하오니, 불타는 사랑의 상처를 우리 마음에 내시고, 영원히 보존하게 하소서. ”



기도를 통한 기적을 행한다. 이는 성직자들이 행하는 술법의 일종으로, 마술과는 반대 되는 법칙을 이용한다고 전해져 있다. 이윽고 시안의 흐려져 가던 눈동자가 다시금 돌아와, 본래의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 어떻게 여길··· ”



“ 잠시 장을 보고 오던 길이었는데. 들르길 잘했네요. ”



“ ···이제 돌아가도 돼요. ”



“ 제가 돌아가면, 뭘 하시려고요? ”



“ ······ ”



“ 죽음은 도피가 아니에요. 과정일 뿐. 아직 식사 안하셨죠? ”



“ ···네. ”



“ 제가 간단히 만들게요. 어디보자··· ”



“ ······ ”



묵언은 동의에 가까웠다. 레나는 바리바리 싸들고 온 식재료를 조금 나누어 두고, 주방을 샅샅이 뒤져 조리 도구들을 꺼내 들었다.



쓰고 특유의 향이 나는 비르하스트와, 조리하면 단맛이 배어 나오는 채소들. 그곳에 꿀 한 술과 조미료를 넣고 올리브 오일에 볶고, 다른 한쪽 팬에는 올리브 오일 위에 소고기와 토마토, 양파를 메인으로 남은 자투리 채소들에 소금과 후추, 말린 오레가노를 가미한 요리였다.



그것과, 해 질 녘에 구워 따뜻한 밀빵을 그릇에 나누어 올렸다. 내륙인인 켈브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전형적인 식단.



“ ······ ”



테이블 앞에 멍하니 앉은 시안은 그 익숙한 냄새에 가슴이 저려왔다. 편찮으셨던 어머니가 해준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식기 전에 드세요. ”



“ ···기도는, ”



“ 아리아도 아닌데, 그런 절차는 생략해도 괜찮아요. ”



“ ······ ”



“ 후후, 아리아는 섬나라라서 육고기가 많이 귀하단 말이죠? 이렇게 연수를 왔을 때 먹어두지 않으면 손해라구요. ”



“ ···왜, ”



“ 네? ”



“ 왜···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



“ 식사를 대접해 드리는 게 이상한 일일까요? ”



“ 그게 아니라···! 난, 그냥 흔해빠진 애새끼일 뿐인데···뭐 때문에 이렇게 까지··· ”



“ 시안. ”



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며시 그에게 다가갔다. 시안은 거부할 새도 없이 그녀의 따스한 품 안에 녹아들 듯이 안긴다.



“ 누군가를 구하는 데에, 이유란 건 없어요. ”



“ 레나··· ”



“ 모든 것에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죠. 그저, 당신이 지금까지 봐온 사람들 중에서···가장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



“ 레나···나, 난··· ”



시안은 메마른 것 같았던 푸른 눈에서부터 습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운 나머지 쓰라릴 정도였던 눈꺼풀에 이슬이 맺히고,



“ 너무 괴로웠어···흑, 난, 엄마 아빠가 그냥···흐윽,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았는데···!


염병할 병 때문에, 걷기도 편찮으신데, 흑, 집안일은 도맡아 하시고···흑, 하나 뿐인 아들이라고, 본인들이 먹어도 모자랄 판에···흐윽, 약초든 보양식이든 매일 챙겨주고···


아들 고생한다고, 얼마 남지도 않은 쌈짓돈 쥐어주고, 흐윽···그냥,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



“ 많이 노력했네요. 어머님 아버님도, 분명 시안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행복해 하셨을 거에요. ”



“ 신흥 귀족의 애새끼들이···공장에나 다니는 못배운 놈이라고 놀리고 때릴 때도, 흑, 슬퍼하실 아빠를 위해서 참았어···애비가 영주랍시고 설치고 다니는 양아치가, 엄마를 창년이라 욕할 때도, 흑 씨이발 참을 수 밖에 없었어···!! ”



“ 괴로웠겠네요. 지켜야 할 상대가 있었기에, 자기자신의 감정마저 죽여야만 했던 나날은. ”



“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건데···흑, 레나, 제발 대답해줘···내가, 뭐 때문에 이딴 좆같은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거야!! ”



레나는 그저, 시안을 더욱 끌어안았다. 촉촉하게 맺히는 눈물이 곧, 레나의 수녀복을 적셔간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열다섯의 나이에 새치가 자란 그의 정수리에 오른손을 올려 가벼이 쓰다듬으며 말한다.



“ 이유는 없어요. 이유가 없으니 도망칠 곳도, 되돌릴 수도 없죠. ”



“ 그게 뭐야, 대체···! ”



“ 부조리는 이유를 따지지 않아요. 그저 그럴 뿐인 결과만이, 우리의 상처를 후벼파는 거니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 뿐이니까. ”



“ 그럼 난···어떻게 해야··· ”



“ 살아갈 이유를, 만들면 되는 거에요. 그건 시안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겪을 것들에서 비롯 될 거고, 시안이 직접 그것들에 의미를 붙여나가면 되잖아요?


부모님께서 불의의 사고로 떠나가셨다지만, 어머님과 아버님은···시안이 영원히 슬픔에 잠겨 지내기 보다도, 씩씩하게 살아가길 바라셨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



“ ······ ”



시안은 잠시, 그들과 대화를 하는 상상을 했다. 죽음을 맞기 전, 조금이라도 서로의 생각을 나눌 시간이 있었다면, 어머니 아버지는 어떤 말을 해줬을까.



아, 분명히 그들이 전할 법한 말이구나. 애초에, 자신의 부모님은 그걸 바라고 계셨던 거구나. 그것과 유사했던, 고이 모셔둔 꽃밫 한 켠의 어릴 적의 대화.



‘ 공장? 또 다녀온 거니? ’



‘ ···네. ’



‘ 괜찮아, 시안. 널 꾸짖으려는 게 아니란다. 시무룩해 하지 않아도 돼. 아버지는 그저, 네가 왜 그곳에 가는 건지 알고 싶단다. 저번엔 방에 틀어박혀서 대답해 주지 않았잖니. ’



‘ ···발명가가, 되고 싶어서요. ’



‘ 발명가? ’



‘ 엄마가 아프니까···내가 고쳐주고 싶어서··· ’



‘ ···기특하네, 우리 아들. 어머니가 들으면 참 기뻐할 거야.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하시겠지. 자신을 위해서 어린 아들에게 일을 시키려고 하는 부모는, 세상에 없을 거란다. ’



‘ ···맞아요. 하지만··· ’



‘ 말 끊어서 미안하구나, 시안.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병을 이겨내고 계신단다. 아버지도 의사인 만큼, 엄마를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지.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넌 한창 친구들과 놀 나이인데, 이런 일로 부담을 지우고 싶진 않구나. ’



‘ ···죄송해요. 제가 멋대로 해버려서··· ’



‘ 그런 게 아니란다. 네가 죄송할 필요는 없어. 공장에서 발명과 일을 배우는 건, 재밌니? ’



‘ ···조금, 재밌어요. 공장장 아저씨가 이것저것 알려주시고···그래서··· ’



‘ 그럼 된 거야.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네가 재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공장을 다녀오는 게, 아버지도 어머니도 기쁠 거다. ’



‘ 날, 위해서··· ’



‘ 어머니한테는 아버지가 말해 두마. 공장에도 아버지가 연락을 해둘게. 혹시라도, 일하다가 힘든 게 있으면 꼭 아버지한테 말하렴. 알았지? ’



‘ 네, 아버지···감사합니다. ’



그런, 파편으로 되어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그 순간에 하나로 맞춰졌다. 시안은 잊고 있었다. 자신의 아비 마저 의문에 병에 걸려 수척해져 갈 즈음, 그는 잊어버렸다.



자신이 발명을 배운 이유를. 아버지와 한 약속을. 그 시절의 즐거움을. 방향을 잃은 것이 아닌, 정반대로 휘어져 끝없이 맹목하기 시작한 자신만이 남아 있었다.



그 나침반이 부숴진 순간, 자신도 부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시안은, 이윽고 울음을 그쳤다.



“ ···좀 진정됐나요? ”



아,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처녀의 가슴에 파묻혀 우는 남자라니, 부끄럽기보다도 너무나 꼴사납지 않은가.



황급히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다가 테이블이 흔들린다, 철렁한 심장과도 같이.



“ 그, 그···미안해요.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 ”



“ 후후, 시안, 지금 표정 꽤 귀엽다구요? ”



“ 노, 놀리지 마!! 그, 식사나 하죠?! ”



레나는 눈물에 범벅된 가슴을 손수건으로 꼼꼼히 닦았다. 여유가 가득해진 것 같은, 그 오만한 미소가 짙어진 그녀는 말을 건낸다.



“ 앞으로도 마음이 괴로우시면, 제가 있는 성당을 찾아와도 괜찮아요. 속으로 계속 앓는 것 보다도,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 편이 더 좋을 테니까요. ”



“ ···가끔, 그럴게요. ”



“ 후후, 좋은 일이 있을 때 오셔도 돼요.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된다고, 제 친구가 그랬거든요? ”



“ 그, 네. 아무튼 아까 그건···좀 잊어주십쇼. ”



“ 평생 안 잊을 거에요! ”



“ 윽··· ”



글쎄. 아무튼. 내가 읽기에 눈꼴 시렵지만서도. 전에 읽었 듯이 시안은 레나에게 의지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함께하는 시간은 계속 쌓여만 가니. 그것은 두텁게 내려 앉을 수 밖에 없었겠지.



시안은 그저 그 추억을 상기했다. 흐트러져, 망가져 가는 몸과 마음 속에, 유일하게 바로이 남아 있는 그 날의 추억을.



“ ···나도, 평생 잊지 않을거야, 레나. ”



1213년, 2년의 여정 끝에 다다른 12월. 켈브에 돌아 온 그가 그러했다.



작가의말

1장에서 덜 푼 이야기를 풀고 가는 막간입니다. 총 3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막간 이후에는 잠시 1장 전체의 수정이 있을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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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장 막간 2화 24.07.28 11 0 12쪽
» 1장 막간 1화 24.07.23 12 0 11쪽
12 1장 11화 24.07.21 9 0 11쪽
11 1장 10화 24.07.17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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