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인펑크의 혈마술사는 복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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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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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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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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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13화

DUMMY

빛 한 점 반사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다각기둥의 탑. 네헬브는 어째서인가, 으스스하기만 했던 풍경이 익숙한 공기에 조금은 상쾌하게 느껴진다.



또한 새까만 기운에 둘러싸여 탑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마물들. 공격성은 없어 보였지만, 방해를 하는 순간 사납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일행은 그 야행의 방향을 따라, 본래 마을이었던 곳의 포장이 죄다 부서진 길을 걸어간다. 빛이라고는 하나 없는 칙칙한 길을 나아가기 위해, 우리엘의 불은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다.



“ ···이게 나무인지 뭔지. ”



호기심 삼아 만진 색 바랜 이파리는, 본래의 성질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흐물거리다가 순식간에 증발하듯 부숴진다. 정말 덧없이도.



“ 신의 독이란 그러한 것이리라. 사물의 모든 것을 마력으로 바꾸고, 전부 배출되면 껍데기만이 남지. ”



“ 우리도 오래 있으면 저렇게 된다는 거야···? ”



“ 그러할 수도 있겠지. ”



“ 켁··· ”



“ 하, 너희들, 마력이 다하지 않는 한, 저렇게 변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래 걸리거든. 호들갑 좀 떨지 마. ”



“ ···쿠흡, 쿠흑··· ”



델쉬비타의 의수에 각혈한 새까만 피가 흩뿌려진다. 모든 빛이 바랬음에도, 델쉬비타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 엘프여, 수명이 다해가는 모양새구나. ”



“ 저, 엘프. 레시에서 추방된 엘프니까.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



“ 그렇군. 생명의 나무에 접촉하지 못한 엘프는, 은총을 거듭할 수 없으니 말이지. 정정한 나이일 터인데, 안타까운 일이구나. ”



“ ···이걸로 됐습니다. 이걸로, 델리즈가 돌아온다면야··· ”



“ 그래도 얼굴 한 번은 보고 죽어야지··· ”



“ 하하, 그러게요.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아요. 시안 군이 델리즈를 책임지기로 약속했으니까. ”



“ 그···꽤 오해 받을 소리를 하네. 나 임자 있다? ”



“ ···시안 군도 아시겠지만, 엘프는 수명에 비해 매우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부모가 구태여 돌보지 않습니다. 자연이 우리를 돌보죠.


허나, 자연이 고독까지도 보살피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유일한 혈족인 델리즈만이···기나긴 생의 고독을 채워줬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나가지 못한다면···이번엔 시안 군이, 부디 델리즈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그런 부탁입니다. ”



“ ···약속하는데, 웬만하면 살아서 나가자. 녀석을 슬프게 만들지는 말자고. ”



“ ···노력해보겠습니다. ”




언덕을 넘고 넘어, 이들은 한때 마을이었을 만한 평지에서 잠시 휴식하기로 했다. 여전히 새까맣고 흐물거리는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고.



기댈 곳 하나 없는 광장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가타와 델쉬비타는 명상을 취하며. 다른 이들은···



“ 아, 담배, 새까매서 필 맛이 안 나네. ”



“ 또 담배야. 너 근데, 천사가 담배 같은거 피워도 되냐? ”



“ 딱히, 뭐. 금지한다던가 그런 건 없었어. 천계에 있을 적엔, 필 때마다 레나가 호통 치곤 했지만. ”



“ 레나가 화를 냈다고···? ”



“ 어, 볼 빵빵 부풀리고. 아주 귀여웠는데. ”



“ ···상상만 해도···아. ”



“ 왜, 그래? ”



“ 뭔가 정말···오랜만에 배고프다는 느낌이 들었어. 레나가 만든 요리 먹고 싶다··· ”



“ ···어떻게 이어지는 맥락이냐, 도대체. ”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피우던 네헬브가 궐련을 즈려밟으며 다가온다. 맥락이 아예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현재는 7월 26일, 지난 이틀간 시안이 먹은 것은, 혈액을 제외하면 빵 한 조각 뿐이었다. 그마저도 앤이 뭐라도 먹으라며 자신의 것을 쥐어준 거고.



“ 피를 마시지 않은 건 아닌데···왜 지금에서야 배가 고픈 거지? ”



“ 특수한 환경에 있으니까, 심장이 이상해진 거 아니겠어? ”



“ 아···어쨌든, 뭔가 챙겨둔 거 없나 델쉬비타? ”



“ ···늙어서 식욕이 돋지를 않으니, 따로 챙겨둔 건 없군요. 더구나 엘프는 나무 껍질만 씹어도 일주일은 버티니까요. ”



“ 진짜 미친 종족이네··· ”



“ ···여에게 좋은 생각이 있노라. ”



‘ 뚜득—. ’



“ ? ”


“ ?? ”


“ ? ”


“ ···ㅈ, 설마, 너, ”



아가타는 가부좌에서 일어나, 곧바로 자신의 왼손 검지를 꺾어버리고. 영문 모를 행동에 단체로 또 다시 맥락을 찾기 시작한다. 루치아만이 그 맥락을 이해한 듯 하다.



“ 예수님의 성체와는 비할 수 없지만, 여의 육체 역시도 하늘과 가까운 것. 예수님은 기적이 담긴 한 줌의 빵으로 5천 되는 이들을 먹여서 살렸으니. ”



‘ 쯔즉—. ’



“ 아니, 지금 나보고 네 손가락을 먹으라고? ”



“ 그러하다. 이것으로 한동안 배 곯을 일은 없을 터. ”



“ 아니, 예? 싫은데. ”



“ 어째서인가? ”



“ 내가 흡혈···은 본능으로 한다지만, 식인은 한 적 없거든요? 아니, 애초에 만약 했다고 해도 자기 손가락을 뜯을 것 까진 없지 않나?? ”



“ 입맛 한 번 까다로운 마귀로구나. ”



“ 마귀는 저어기 시뻘건 머리에, 못 참고 또 담배 꺼낸 저 녀석이고. ”



“ 싸우자는 거냐? 노예 낙인이 있어도 때려눕히는 방법이 있거든? ”



“ 애초에 분신인데 왜 담배를 피우는 거야?? 가뜩이나 이쪽 물가 비싸 뒤지는데, 돈이 그렇게 남으면 나한테 주지. ”



“ 감각은 공유되니, 각성 효과를 동시간에 2배로 느낄 수 있으니까다. 그리고 남는 걸 왜 너한테 줘야되냐? ”



“ 못, 봐주겠네. 싹 다 진정제 맞기 싫으면 알아서 진정해라. ”



“ 천사···님··· ”



“ ···음. ”



기댈 곳 하나 없는 허허로운 광장에서, 일행은 한 남자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가타는 지긋이 그를 지켜보나.



“ ···저, 도···배···고파요··· ”



“ ···죽지도 못한 불상놈이로군. ”



그것은, 머리 한 올부터 발 끝까지 흑화되어 껍데기만 남은 어린 육신. 걸음을 걸을 때마다, 흐물거리는 조각이 묻어 나오는 송장과도 같은.



“ ···뭔데 저게. ”



“ ···어둠의 마왕의 마력은, 개성을 앗아간다고 했었잖아. 저 아이는 애매하게 남은 것 같지만···


도리어 완전히 빼앗긴 다른 이들이 뭉쳐서,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모양이네. 마계에서도 본 적 있는 현상이야. ”



“ 그 마왕의 마기에 잠식된 영들이, 사마엘의 독에 의해 깨어난 듯 하구나. 품은 마기 탓에 기적으로 말소되지도 못한 것들. 즉슨 산송장이지. ”



“ ···아마도, 813년에 죽어, 지금까지 남아 있던 거겠죠. 부서져가는 맨 정신으로. ”



“ ······저건, 어떻게 방법이 없는 거야? ”



“ 내가, 알기로는. 심지어 사마엘의 독까지 먹었다면, 여지는 아예 없지. ”



“ 그게···뭐야···!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



“ ···소생, 그만 두어라. ”



“ 너네들은 대천사라며···!! 뭔가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단 말이야···?! ”



아이를 감싸보려던 시안의 손은, 그것과 같이 더욱 새까만 색으로 물들어간다. 일말의, 무언가를 겹쳐 본 연민의 손은, 정말 덧없이도.



“ 하나, 있지. ”



“ 아···! 뭔ㄷ, ”



‘ —카앙!! ’



루치아의 불에 휘감아진 대검이 내려박힌 아이는, 반으로 동강 나 흐물거리는 마기를 쏟아낸다. 이윽고 남은 죄업을 휘발시키며 타들어가는 사체는 점차 형체를 잃고 사그라들며.



“ 뭐하는 거야!! ”



“ 너야말로, 뭐하는 거지? 마기로 손까지 더럽혀가면서. 네가 죽어야 했을 아이 하나를 구하려고, 이곳까지 온 건가? ”



“ 그건 아니지만, 방금 방법이 있다고···! ”



“ 적어도, 나의 불에 태워져. 남은 죄 없이 윤회하게 하는 것이, 마지막 방법이야. 다른 방법은 없어. ”



“ 애초에, 네가 마왕을 잘 토벌했으면, 이 아이가 이런 고통을 겪을 일은 없었던 거잖아!! 애초에···! ”



“ 애초? 그걸, 따지자면. 먼저 선을 넘어 어둠을 여기로 보낸 마계의 가브리엘이 문제고, 애초에 그걸 도운 저년의 잘못이지.


원인을 따지자면 끝도 없어. 잘잘못에 집착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래서 뭐가 변하지? ”



“ ···리타가 저런 고통을 겪었다면, 네가 그딴 식으로 끝을 냈다면···난 용서 안했을 거야. ”



“ 말귀를, 못 알아 듣네. 이딴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두기 시작하면 끝이 없단 걸 모르나? 죽어야 했을 것들에게 마땅히 죽음을 주었는데, 대체 넌 뭐가 불만이냐는 소리야. ”



“ 적어도 넌···! 뭔가를 바꿀 수 있는 녀석이 말이야!! 저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감정 조차 없는 거냐?! 어떻게 표정 한 번 안 바꾸고 검부터 뽑는 거냐고···!! ”



“ 어. 하나도. 들지 않네. 정말 어쩌란 건지 모르겠어. ”



“ ······ ”



“ 여태껏, 잘만, 사람을 찢어댄 녀석이. 이제 와서 감성을 찾는 것도 웃기네. 이 이야기는 그만 하지. 의미도 없는 다툼이야. ”



어쩌면, 시안은 본세계에서의 마왕의 발언을 떠올린다. 세계를 후리고 다니는 미친년들, 그 말은 힘을 멋대로 다루는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힘의 방향은, 목적은. 담긴 의미 따위는 없고, 있다고 한들 그것이 자신들에게 옳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그들을 관조한 것이 아닌가, 하고.



···목적 없는 힘은 공포와 같을 테지. 시안은 친숙한 모습에 가려진 그 감각을, 오랜만에 떠올렸을 것이다.



“ ···감정을 쏟을 시간은 없다, 시안. 우리는 우리의 목표만으로도 벅차니까. ”



공포에 질린 눈을 한 시안의 등을 두드린 건 네헬브였다. 물론, 정론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정론을 가장 싫어한다. 그에게 있어 정론은 감정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을 뿐.



온갖 정론으로 점칠된 세상에는 적응하지 못한 사람일 터이다. 그럼에도 걸음은 움직여야만 했다. 채 판단을 세우지 못한 다리로.



미로같이 뻗어난 새까만 길을 지나, 우뚝 솟아난 지옥의 입구에 당도하기 위해서.





작가의말

후기에서 제대로 풀겠지만, 유년기를 채 벗어나지 못한 어른이 된 시안을 이해시키고 싶었습니다.


필력이 부족한 게 한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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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장 막간 2화 24.07.28 10 0 12쪽
13 1장 막간 1화 24.07.23 11 0 11쪽
12 1장 11화 24.07.21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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