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건 : 흑룡이라 불리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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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강(俊剛)
작품등록일 :
2024.07.1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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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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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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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마, 지랄도 풍년이가?

DUMMY

19화. 마, 지랄도 풍년이가?




마춘삼은 앞에 앉은 차건을 한참 동안 쳐다보기만 했다.

수걸의 말처럼 진짜 녀석에게서 돈 냄새를 맡았다.

은은하게 풍기는 것이 맡을수록 짙어졌다.

예전 아버지께 말로 들었던, 손길만 닿아도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귀인의 향기.

돈 향이었다.


‘이 녀석이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돈향은 짙어져만 갔다.

귀인이 틀림없었다.

아득히 기억 속에 묻혀 있던 마씨 가문의 규율이 떠올랐다.


-귀인이 찾아오면 성심껏 받들어 모셔라.

그것이 마씨 가문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리라.


즉 귀인이라고 판단되면, 받들어 모시기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결초보은, 그리고 사필귀정이라······.”


마춘삼은 의미심장하게 혼잣말을 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차건 뒤에 서 있는 덕배에게 물었다.


“거 서서 뭐하노? 니한테 볼일 없으니까 가라.”

“아이고, 사장님. 옆구리가 계속 결려서 꼼짝도 못 하겠습니다.”


덕배는 능청스럽게 차건에게 맞은 부위를 매만지며 구석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남규에게는 손을 내저었다.


“넌 가. 술 마시지 말고, 집에 가서 찜질이나 해. 전화하면 즉각 튀어나오고.”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남규는 불통하게 대답한 후 마춘삼에게도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윽.”


바닥에 패대기 처지면서 찍혔던 부위가 송곳으로 찌르듯이 쑤셨다.

그는 차건을 한 번 째려보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마춘삼은 남규가 차건을 쳐다보는 눈빛을 보고는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해. 하긴 일주일 동안 뺑이 치게 만들었으니 독이 바짝 올랐을 테니까.’


그는 대충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면서 차건에게 한 번 더 놀랐다.


‘덕배를 상대하고도 멀쩡하단 말이지.’


마춘삼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마수걸은 쟁반에 커피를 가지고 나타났다.


“햄, 왔어. 흐흐흐.”


그가 순박하게 웃으며 차건과 마춘삼 앞에 커피를 놓았다.

이어서 덕배에게도 가서 커피를 건넸다.


“삼촌 건 설탕 두 숟가락 더 넣었어요.”

“역시 날 챙겨주는 사람은 수걸이 너밖에 없다.”

“제가 삼촌 좋아하잖아요.”


마수걸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전당포 카운터로 가서 앉았다.


“마시라. 김 양이 타 놓고 간 기다.”

“잘 마시겠습니다.”


차건은 커피의 향을 한 번 맡고는 한 모금 마셨다.

저번에도 커피를 마실 때 향부터 맡더니 지금도 그러는 게, 왜 그러는지 궁금했다.


“커피 향은 왜 맡는 기고?”


마춘삼의 물음에 차건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향이 좋아서요.”


처음엔 몰랐다.

다방 커피 특유의 향을 맡게 되자 전생에서의 좋은 기억들이 잠깐 떠올랐다고만 생각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도 커피 향을 맡으니, 전생에서의 좋은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지며 추억과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또 한편으로, 그때의 기억이 이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마치 일종의 예언을 암시해 주는 매개체 같았다.


“오늘따라 커피가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글나? 김 양이 오늘은 신경 많이 써서 탔다고 하드만 진짜가 보네.”


마춘삼은 커피를 호르르 마신 후 잔을 내려놓았다.


“확인해 보니 니 말 맞더라. 어떻게 안 기고?”


차건은 예상한 질문이 나오자, 준비했던 대로 대답했다.


“얼마 전에 HB 그룹이 부도 처리됐습니다.”

“그래서?”

“제계 14위 그룹이 무너질 때까지 정부에선 몰랐겠습니까?”

“모르긴,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손을 썼겠지. 근데 HB 그룹은 내부적으로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져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기다.”

“회장의 비자금 사건과 형제의 난도 굵직하게 터졌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다른 것을 덮기 위한 방책이었다면?”

“뭔 소리고? 굳이 가족사를 들먹여가며 숨길 게 뭐가 있다고······!”


순간 마춘삼의 머리에 놀랄 만 한 추측이 떠올랐다.

만약 이 모든 시나리오가 정부를 위한 것이라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재계 14위 그룹을 포기해 버릴 정도로 정부의 재정에 구멍이 뚫린 것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건 말고는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녀석이 이 모든 것을 추측해서 신로의 부도를 예언했다는 건가?’


설득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마춘삼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신로랑 뭔 상관이고.”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솔직히 전생에서 일어났던 일을 알고 있을 뿐이지, 관계자가 아닌 이상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신로와 HB를 그럴듯하게 엮어버릴 생각이었다.

HB 그룹을 언급한 게 그 이유에서다.


“HB 그룹의 차남의 배우자가 신로 그룹의 막내딸인 거 아십니까?”

“그 아가 장가를 갔다고?”

“그 망나니가 사고 치는 바람에 조촐하게 가족끼리 식을 올렸다죠.”

“······.”

“신로의 막내딸이 시댁을 살려보겠다는 생각에 절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답니다.”

“뭘 어떻게······!”


마춘삼은 뭔가 생각난 듯 눈빛을 번쩍였다.


“설마 지 아버지 돈에 손댄 거가?”


차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딸이 아주 유능하죠? 신로의 일개 사원으로 시작해서 비서실까지 올라갔을 정도였으니까. 그 덕에 쥐도 새도 모르게 신로의 돈을 빼돌려서 HB 그룹의 부도를 막는데 사용될 수 있었죠. 이 사실은 회장과 최측근 몇몇만 아는 사실입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기가?”

“그건 사장님이 결정할 문제이고, 전 이만하면 충분한 설명이 됐다고 봅니다.”


차건은 잔을 들어 향을 맡으며 커피를 마셨다.

마춘삼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녀석이 그러한 정보를 어떻게 아는지 의문이었지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솔직히 녀석이 돈 향을 풍기며 나타나는 순간부터 모든 게 의미가 없어졌다.

마씨 가문의 귀인.

가문의 규율대로 따르면 된다.

그래도 신중을 기하는 것이 옳았기에 확인하려는 거였다.

마춘삼은 차갑고 냉정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뭘 거래할 건지 말해봐라.”

“그 전에, 신로에 대한 값부터 치르는 게 순서라 봅니다.”

“뭐라고?”


마춘삼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차건은 잔을 내려놓고 그와 눈을 맞췄다.


“제가 드린 정보로 사장님께서 이득을 취하셨고, 앞으로도 이득을 내실 거기에 그에 대한 값을 내서야겠죠.”

“이 자슥 봐라. 처음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가 이제 와서 돈 내놔라고?”

“알 만한 분이 왜 이러십니까? 공과 사는 확실하게 계산하셔야죠.”

“뭐가 어째?”


마춘삼의 얼굴이 울긋불긋해졌다.

차건은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제 정보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약간의 정보를 드린 건 사고, 그 정보로 인해 이익을 취하신 건 공인 겁니다. 그러니 그 대가를 내셔야죠.”

“하하, 뭐 이런 개 다 있노.”


마춘삼은 헛웃음을 뱉으며 어이없어했다.

구석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덕배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아냈다.

방금 차건이 마춘삼에게 한 말은, 얼마 전 마춘삼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천하의 돈귀에게 누가 그런 말을 뱉을 수 있을까?

마춘삼이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니 속이 후련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차건 이놈, 확실히 물건이야.’


오가는 얘기를 들어보니 녀석이 신로의 부도를 예언한 것 같았다.

마춘삼이 그것을 확인해서 사실로 받아드렸고.

그래서 뭔가 거래를 맺으려고 하는데, 녀석이 정보 값을 내놓으라고 하는 거다.

상대는 돈귀다.

피 같은 돈을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다.

그런데 공과 사를 언급해가며 밀어붙이니 돈귀가 꼼짝도 못 했다.


‘무식하게 주먹만 센 줄 알았더니 머리 굴리는 것도 기가 막히네.’


덕배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마춘삼은 뜬금없는 요구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녀석에게서 풍기는 돈 향을 맡으니 화도 나다가 말았다.


“에이, 사악한 놈. 얼마를 원하노?”


차건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건은 서비스 차원으로 수수료는 받지 않겠습니다.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돈돈 그라던 게, 와 갑자기 마음을 바깠노?”

“첫 거래인데, 상대 마음을 상하게 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좋은 게 좋다고 저도 한 발짝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그냐?”


마춘삼은 기분이 풀린 듯 치켜 올라갔던 눈썹이 원래 자리로 내려왔다.


“부탁이 뭐고?”

“아주 간단합니다. 홍상수의 자금줄을 막아주시면 됩니다.”

“······!”


마춘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덕배도 뜬금없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홍상수를 왜? 저 새끼, 보면 볼수록 흥미롭네.’


반면 마춘삼은 처음으로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홍상수는 자신의 수입원 중 하나였다.

녀석의 자금줄을 묶어버리면 덩달아 자신의 수입도 줄어들 터.

마씨 가문의 귀인임을 떠나서, 자신의 목줄을 움켜쥐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홍상수는 왜 건드리는 거냐?”

“악랄한 놈이죠. 특히 돈 앞에선.”

“돈놀이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 착한 놈이 어디 있노?”

“압니다.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놈들이라는 거.”

“아는 놈이 와? 혹시 홍상수가 원한 살 만한 짓을 했드냐?”

“인과응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못 미더우시면 직접 알아보셔도 됩니다.”

“으음······.”


마춘삼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돈줄을 내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이 준 정보 덕에 신로에 투자금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었다.

만약 그대로 내버려 뒀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었을 터.

그 돈은 홍상수가 자신에게 벌어다 줄 금액, 10년 치와 맞먹었다.

받은 빚이 있다면 갚는 게 도리였고, 이참에 고인 물이 썩기 전에 갈아치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라자. 네 부탁 들어주는 걸로 신로 건은 깨끗이 정리된 기다. 두 번 다시는 말 꺼내지 마라.”

“그러죠.”

“아이다. 세상에 믿을 놈은 없다이가.”


마춘삼은 수걸에게 말했다.


“계약서 가져 온나.”


잠시 후.

마춘삼은 신로와 관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좀 편안해졌네. 자, 이제 새로운 거래를 시작해 볼까?”

“그건 제가 홍상수를 정리한 후에 하겠습니다.”

“머 한다고. 니는 니 일 해라. 나는 내 일 하면 되니까.”

“아닙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니,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시죠.”

“그냐? 근데 어린놈의 새끼가, 자꾸 날 가르치려 드네?”


마춘삼이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봤다.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씩 웃으며 일어선 차건은 뒤돌아서서 덕배를 쳐다보았다.


“저 삼촌 어떻습니까? 믿을 만합니까?”

“와, 사람 필요하나?”

“아무래도 사람 손이 필요하겠죠.”

“저놈 말고, 내가 다른 녀석 붙여 줄 테니까 기다려 봐라.”


마춘삼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할 때였다.


“사장님! 왜 이러십니까? 제 사정 뻔히 알면서.”


덕배는 벌떡 일어나서 차건에게 다가왔다.


“그런 걸 왜 마 사장님한테 물어봐? 당사자인 나한테 물어야지.”

“그런가요? 마 사장님 지시 받고 움직이시길래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죠.”

“야,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덕배는 마춘삼을 힐끔 쳐다보며 차건만 들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 사장이 품기엔 내가 좀 커. 사이즈가 안 맞아.”

“그런가요?”

“마, 어른이 말하면 그런 줄 알고 그냥 넘어가.”


덕배는 옷에 손바닥을 닦은 후 앞으로 내밀었다.


“조덕배다. 이 바닥에선 미친개라고 불리지. 근데 아무나 물지는 않아.”


지금까지 모든 얘기를 들어보니 차건 앞에선 마춘삼도 한 수 접어주는 분위기였다.

그런 녀석 옆에 딱 붙어 있으면 돈길이 열릴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마춘삼이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화를 꾹꾹 누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돈이 아니더라도 그 모습을 볼 수만 있어도 감지덕지했다.


“우리 잘 해보자.”


차건은 덕배의 얼굴에 기대와 흥미가 교차하는 게 보였다.

대충 어떤 마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목적으로 접근하는 거라면 상관없었다.

자신을 도와주면 그에 대한 계산은 해 줄 생각이니까.


“그러죠, 조 사장님.”

“사장은 무슨. 그냥 편안하게 형님이라 불러.”

“아, 그건 좀······.”


차건은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짓자. 덕배는 일이 틀어질까 얼른 말을 바꿨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내가 형님으로 부르겠다고. 나이를 떠나서 엄연히 돈이 오고 가면 주종관계 성립인데. 안 그래?”

“아, 그런 뜻이었군.”


차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덕배가 내민 손을 잡았다.

덕배는 상황을 매듭짓기 위해 나머지 한 손도 차건의 손에 얹으며 허리를 숙였다.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춘삼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어이구, 저 미친놈이 쓸개까지 다 빼주네.”

“엇! 삼촌이 형님이라 부르면 나도 이제부터 행님이라고 할게. 행님아!”


마수걸도 싱글벙글 웃으며 차건에게 다가가자, 마춘삼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어이구, 쌍으로 잘도 논다.”


이에 차건이 씩 웃으며 마춘삼에게 물었다.


“사장님도 형님 소리 듣길 원하세요? 해 드릴 수 있는데.”

“마, 지랄도 풍년이가?”


마춘삼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덧붙였다.


“병원에 확 집어처넣어뿔라.”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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