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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4.07.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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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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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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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나는 그 여성이 두목의 딸임을 직감했다. 내 말에 표정에서 여유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얼굴에서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잠시 후, 여성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죠?”

“그걸 네 질문이라고 봐도 되나?”

“네. 솔직하고 자세하게, 전부 말해줘요.”

그렇게 말하는 여성의 눈은, 이전과 전혀 달랐다. 이전에는 날 계산하는 차갑고 냉정한 눈이었다면, 지금은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학생처럼 초롱초롱한 눈이었다.

그래서 나는 깨달았다.

이 여성은 내 대답에 트집을 잡귀 위해서가 아닌, 정말로 이유를 알고 싶어서 물어본 거구나하고 말이다.

나는 세 손가락을 펴들었다.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상황이 너무 부자연스럽더군. 조직에서 갑자기, 사전에 말도 없이 내게 도움을 주겠다며 여기로 데리고 온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이상하게 긴장한 김 철의 태도.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두목 직속 부하로 보이는 여성의 존재.


“너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더군. 그건 이해가 간다. 네가 정말, 설유진처럼 이 회사의 귀중한 ‘상품’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겠지. 하지만 정도가 심했어. 경고하는 것을 넘어서 과도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게 바로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 앞뒤가 맞지 않지, 하고 나는 여성에게 말했다.

“그렇게 귀중한 존재면, 아직 아군도 아닌, 조직에 있어서 아직 위험한 존재인 나를 직접 만나게 할 필요가 없지. 이렇게 단 둘이서는 더더욱.”

굳이 그렇게까지 한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상대가 원하는 경우.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맥주캔으로 여성을 가리켰다.

“조직 입장에서 상품에 불과한, 너희에게 조직에게 그런 리스크까지 감수하게 하면서 명령할 권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두목의 가족 정도 되면 모를까.”

거기서 어제 딸과의 약속이 있다고 한 두목의 말을 떠올린 것이다. 물론 이유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약지를 접었다.

“두 번째는 네 태도다.”

“제 태도요?”

김 철의 말과 달리, 내게 뭔가 정보를 준다고 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 정보를 얻어 내려고 하는 사람의 태도지.

아마 샤워하다가 타월만 두르고 나온 것도, 계산한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진실게임을 하자고 억지를 부리며 내게 대답할 것을 강요했다. 상대를 주도권을 잡고 찍어누르는 태도에서 생리적인 불쾌함이 들 정도다.

그리고 불쾌함은 아주 익숙했다.


왜냐하면, 바로 어제 두목과의 미팅에서 겪었으니까.


“동료를 도와달라고 정보를 주겠다고 한 사람이라면 그런 태도일 수가 없지.”

그리고 중지를 접고 남은 것은 단 하나.

“지금까지는 소거법에 따른 정황증거였지, 확신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이게 아니었다면 말이지.”

난 내 옆에 놓여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순수이성비판.’

그걸 보자마자, 여성의 눈이 더 빛나기 시작했다.

“이거 네 책이 아니지?”

“그럼 누구 거라고 생각하시죠?”

“설유진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오늘 서류보관소에서 김 철이 설유진이 직접 쓴 이력서를 보여줬다. 거기 쓰여진 필체가, 이 책에 메모된 필체랑 같더군.”


이력서에 쓰여진 자기소개서의 sexe.

그리고 책에 문구에 메모되어있던 secrète


그 두 단어에 포함되어있는 알파뱃 s와 e의 필기체의 필적이 똑같았다. 알파벳의 필기채를 쓰는 사람은 드물 뿐더러, 필체까지 똑 같은 건 누군가 일부러 흉내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 동일인이 쓴 것이 분명할 터.

“너는 네 책이 아닌 걸 내 책이라고 거짓말했다. 네가 나를 속이려고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게임은 이미 끝난 거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여성에게 말했다.

“이제 대답이 됐나?”

내 말에 여성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어디론가 향했다.

나를 지나쳐 거실을 지나고 안방으로 보이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문을 잠그는 소리까지 들리자, 나는 혹시나 도망친건가하고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날까 생각할 무렵에,

그 여셩이 다시 나타났다. 머리를 단정히 하고 두꺼운 안경을 쓴 채,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서.


그걸 본 순간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여성은, 아니 소녀는 다시 돌아와 내 맞은 편에 앉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아직 학생이었나?”

“내년에는 아니지만요. 아, 맥주는 먹는 척만 했으니 걱정 안하셔도 돼요.”

말투도 얌전하게 바꾼채, 소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맥주 캔을 옆으로 밀며, 뻔뻔하게 말했다.

······아니, 지금 그런걸 걱정하겠냐고.

나는 머리가 띵하다 못해 어지러웠다.


아니, 그럼 미성년자가 업소 여자인 척하고 내 앞에서 다벗은 채 그랬다는 거 아냐?

미쳤다. 미쳤어.

아니, 왜 내 주변에는 이런 미친 사람들만 있는 거야?


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하며, 눈 앞에 있는 뻔뻔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교복에 달려있는 명찰에는 ‘문소영’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두목의 딸이 맞았군.

자식농사 한 번 아주 제대로 하셨네. 보통이 아니야, 보통이.

소영이 말했다.

“그럼 다음 질문하세요.”

“질문?”

“진실게임, 마저 해야죠.”

계속하는 거냐고.

나는 속에서 밀려오는 한숨을 억누르며,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물었다.

“당신을 만나고 싶었으니까요.”

“날? 왜?”

“어제 저녁에, 평소처럼 아빠와 같이 식사를 했어요. 하지만 아빠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어요. 아빠가 무척 신나보이는 얼굴로 아주 재미있는 친구를 만났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말을 들으니 저도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이런 짓을 벌였다?”

“그치만 궁금하잖아요? 이 도시에서 모두가 아빠만 보면 벌벌떨고 무서워하는데, 그런 아빠가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이면 궁금하지 않을수 있을까요? 저한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일 지도 모른는데요.”

나는 소영의 말에 깔린 불편한 진실을 읽었다.

이 소녀는 자신의 아빠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철이 아저씨를 통해서 만나고 싶다고 떼를 썼어요. 아저씨는 처음에 엄청 반대했지만, 결국 들어줬어요. 바로 다음날 만나기로 했다고 하셔서, 제가 이렇게 하자고 계획을 세워서 말씀드렸죠. 당신과 단 둘이 대화하고 싶었거든요.”

나는 더 못견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소영이 말했다.

“도망가는 건 반칙이에요. 이제 제가 물어볼 차례라고요.”

“애들 놀이에 더 어울려 줄 생각 없어.”

애들 장난에 놀아나기만 했군. 시간 낭비도 이런 시간 낭비가 없다.

나는 혀를 차며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내 뒤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이 언니를 찾으시는거 아니었나요?”

“그래, 그리고 니가 방해했고.”

“정체를 속인 건 사실이지만, 거짓말 한 것은 아니에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소영은 그 자리에 가만히, 마치 수업을 듣는 모범생처럼 정자세로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이 언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건 진짜라고요.”

소영은 그렇게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 설이 언니가 있을 만한 장소를 알아요.”


나는 소영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입을 열었다.

“거짓말 하지마. 그러면 왜 네 아버지한테 알려주지 않은거지?”

“아빠한테 말해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아빠는 이미 내껀데 더 잘해줄 필요가 없잖아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뒤틀린 소녀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이 소녀는 다른 사람을, 특히 어른을 자기 멋대로 조종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설유진의 정보를 통해 조종하려고 하는 구나.

“진실게임이 싫으시면 거래는 어때요? 제가 설이 언니에 대해 알려주는 대신, 당신에 대해 알려줘요.”

어쩔수 없군.

나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원래 내가 있던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그런 나를 보고 소영이 말했다.

“거래하실 생각이 드셨군요.”

마치 소풍을 떠나기 직전의 아이처럼 눈을 빛내는 소영을 향해, 나는 말했다,

“닥쳐.”

“······네?”

“나는 너랑 거래하러 온게 아니야. 머리에 피도 안마른 애송이에게 설교하러 온거지.”

사장의 조언을 따르는 건 내키지 않지만 이번에도 ‘기선제압’을 할 수밖에 없겠군.

나는 머릿속으로 최대한 친절하고 정중하게 말을 골라서 내 컨셉에 맞는 훈계를 시작했다.

“네 아버지가 이 도시를 주름잡는, 폭력조직이자 기업의 회장이라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될거라 제멋대로 하는가 본데, 네 주제를 알아라.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지금 네가 똑똑하고 능력 있어서, 어른들을 입맛대로 조종한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건 네 뒤에 있는 아버지의 권위에 기대서 명령한 거 뿐이야. 그건 철없는 코흘리개도 할 수 있는 한심한 짓이지.”

“그리고 난 그런게 전혀 통하지 않는단다. 나한테는 넌 그냥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계집애일 뿐이야. 뭐? 거래를 하자고?”

“네가 갈취 말고 진짜 ‘거래’를 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나 본대,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슨 물건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야. 상대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 가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네 거짓말을 간파한 순간, 넌 끝이야. 너는 내게서 신뢰를 잃었어. 그런 것도 모르고 거들먹거리며 자기 치부를 다 까발렸지. 철없는 척하며 어른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다녔다는 사실 말이야. 그러면서 뭐? 내가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거래하자고? 무너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 무릎 꿇고 빌면서 정보를 줘도 모자를 마당에?”

나는 남아있는 맥주캔을 단숨에 다 마셔버린 후에, 새빨갛게 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영을 향해 조소했다.

“아직 술도 못마시는 애송이 주제에 어른을 가지고 놀지 마라. 그럴 시간있으면 책이나 읽어.”

나는 내 옆에 놓인 책을 소영에게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현관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자 소영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게 책을 내밀었다.

“뭐야?”

“그, 이, 이거, 드릴게요.”

“필요 없어.”

소영은 책을 펴더니, 교복 앞주머니에 꽂혀있는 만년필로 안쪽 목차에 뭔가를 적었다.

그건 주소였다.

소영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 저, 전에 언니랑 만난적이 있거든요.”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 말하는 것도 제대로 못해?”

내가 윽박지르자, 소영은 교복 소매로 눈을 훔치고 세 번 정도 심호흡을 한 뒤에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 씩씩한 어조로 말했다.

“전 언니에게 만약 여기서 도망치면 여기가서 숨으라고 제 비밀 아지트 주소를 알려주고 집 열쇠를 줬어요.”

“왜 그런 짓을 했지?”

“언니가 저한테 이 책을 줬으니까요.”

내 말에 소영은 시선을 피하며 말을 흐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유가 그것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언니가 거기 있을 거에요.”

“설유진은 괴한에 납치됐어. 그런데 네가 알려준 집에 있을 거라고?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언니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나를 바라보는 소영의 표정은, 오늘 봤던 어떤 때보다 진지했다.

나는 소영을 노려보다가, 책을 받아들었다.

“참고만 하지.”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나가려는데, 뒤에서 다시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빚은······ 꼭 갚을 거에요.”

그 말에 내가 해줄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은혜겠지, 국어도 모르는 멍청한 년 같으니.”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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