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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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4.07.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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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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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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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DUMMY

“여기는 브라보, 도착. 임무를 시작하겠다.”

나는 작전 용 휴대폰을 통해 음성채팅방에 그렇게 말한 후,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내비에 있는 지금 위치와 기억 속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후에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리고, 시동을 껐다. 그리고 운전대를 양손으로 잡고 힘을 주어 길게 심호흡을 했다.

좋아, 연습했던 대로 나는 어제 본 영화의 형사를 연기한다.

형사가 된 나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창문으로 주변을 살핀 후에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더러운 휴지가 밟혔다. 나는 일부러 소리내어 욕설을 내뱉으며, 발길질을 하며 포장이 엉성한 도로에 신발창을 비볐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위성사진에서 본 대로 슬럼가 그 자체였다. 사방에는 누런 황토색과 잿빛을 섞은 끔찍한 색의 건물이 가득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외설적인 여성의 그림과 휴대폰 번호가 적힌 팜플렛을 쳐내며, 나는 골목길을 걸었다.

골목길은 대낮이었지만 귀신이라도 튀어나올것처럼 을씨년했다. 아니, 오히려 귀신이라도 나와줬으면 좋겠다. 그럼 적어도 이렇게 기분 나쁘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골목에 어슬렁거리는 부랑자를 만났을 때, 오래전에 헤어진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나는 힘없이 걸어가는 부랑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산발한 머리를 하고서,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골목을 거닐고 있었다.

그는 가죽재킷에 선글라스를 쓴 나를 보고, 잔뜩 겁을 먹었는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

“어이, 형 씨! 누가 당신 해코지한데? 나 그런 사람 아니야.”

나는 가죽재킷 안 쪽에서 경찰 공무원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뒤로 물러나던 부랑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걸 보더니,


갑자기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나는 반사적으로 그를 뒤쫓았다. 그는 조금 전까지 비틀거리던 사람답지 않게 날렵했다.

하지만 난 최근 한달넘게 지옥 같은 훈련을 받았다고.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를 덮쳐 잡을 수 있었다. 내게 붙잡혀 바닥을 뒹굴던 그가 일어나며 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나는 파견의 조언, ‘상대에게 항상 집중하며, 움직이기 시작할 때를 노려라.’는 조언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그가 뭔가를 꺼내마자 발차기로 손에 든 것을 쳐날렸다.

그리고 발차기를 맞은 손을 붙잡고 신음하는 부랑자에게 다가갔다.

“야, 아까 말했잖아. 너 잡으러 온거 아니라고. 근데 왜이리 귀찮게 해?”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부랑자는 주눅이 들었는지 움츠러들었다. 나는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후에 부랑자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어이, 시간 없으니 개짓거리하지 말고, 이리 와. 이리 안 와? 확 씨!”

내가 때릴 것처럼 팔을 들어올리자, 부랑자는 움찔하며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내 바짓가랭이를 잡으려하길래, 발로 걷어차버렸다.

어이쿠,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지는 부랑자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반사적으로 걷어차버렸네. 하지만 사실 올바른 대처였다. 저러는 척 넘어뜨리고 마운트를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쪼그려앉아, 바닥을 뒹굴고 있는 부랑자의 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들어올렸다. 부랑자는 코피를 흘리며 잔뜩 겁먹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야, 내가 방금전에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개, 개짓거리 하지 말라고 하셨지······.”

“그게 그거지! 자꾸 말대답 할래?”

“아이고,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아니, 잘못은 안했는데, 아무튼 살려만 주십시오!”

“잘못을 안하긴 개뿔이, 안한 놈이 도망을 왜 가? 아무튼, 뭐, 최근에 들은거 없어?”

내 말에 부랑자가 눈동자를 굴리는 것 같아서, 바로 윽박질렀다.

“짱구 굴리지마, 뒤진다, 진짜! 그냥 아는거 바로바로 말하라고!”

“뭐, 뭘 말씀이십니까?”

“최근에, 이 근처에서 못보던 사람이나, 이상한 소리 들은 거 없어?”

나는 들키자 않도록, 담벼락 너머 허름한 주공아파트를 힐끗 곁눈질했다. 저기 6층이 두목이 딸이 내게 알려준 주소였다.

부랑자가 말했다.

“왜,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야, 한번만 더 대답안하고 질문하면 가만 안둔다.”

“아, 그 있습니다. 있습죠!”

“뭔데? 말해봐.”

부랑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린 다음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했다.

“제가 직접 본 건 아니고, 그 좀 문제가 있긴 한데······.”

“문제?”

부랑자는 말을 잠깐 주저하려다, 내가 주먹을 들자 순순히 말했다.

“그 말한 놈이 약쟁이거든요. 근데 그놈이 이 근처에서 엄청난 미인을 본적이 있다고······.”

“그래서? 그게 다야?”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턱을 내밀었다, 물론 언동과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그, 같이 약하는 다른 약쟁이 놈도 있는데, 저, 건물에 유령이 산다고 하더라구요.”

부랑자는 옆의 주공아파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긴 더 사는 사람도 없을텐데, 막 밤마다 신음 소리가 들린다고······.”

“뭐, 글러먹은 애새끼들이 사람 없는데서 떡이나 치겠지.”

내 말에 부랑자는 두 손을 내저었다.

“저기 사는 사람들을 제가 아는데, 그럴 사람이 없어요! 최근에는 한동안 안오긴 했는데, 저기는 순 깡패새끼들만 가끔 와서 머물다 가는 곳이라서 함부로 누가 들어가다 걸리면 병신만들어서 아무도 안가요!”

아무래도 건물 전체가 블루문 조직 것인가 보군.

“그럼 깡패새끼들이 여자를 데리고 왔겠지.”

“누가 여자를 데리고 이런 끔찍한 데에 옵니까! 호텔이나 모텔 같은델 가지. 그리고 그런 신음소리가 아니라, 누가 죽어가는 것 같은 끔찍한 소리가 난답니다.”

끔찍한 신음이라······.

나는 그 정보를 기억 속에 집어넣으며, 부랑자를 다그쳤다.

“뭔 아는 사람이 씨발 약쟁이들 밖에 없어? 너도 약하는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요. 전 멀쩡합니다! 뛰는거 보셨잖아요!”

“그래서 그게 다야?”

“예, 예에······.”

“진짜? 내가 여기 조사해서 뭐 나오면 너 뒤진다?”

“진짭니다! 여기 뭐 없어요! 그 깡패새끼들도 최근에 안온 뒤로 사람새끼 하나 없는 곳입니다!”

나는 한동안 그 부랑자를 노려보다가, 꺼지라고 손짓했다. 그러자 부랑자는 나를 향해 90도로 인사를 서너번 한 뒤에 헐레벌떡 도망가버렸다.

나는 그런 부랑자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그가 까마득한 곳까지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서, 휴대폰을 꺼내 다시 음성채팅방에 참여해 말했다.

“여기는 브라보. 탱고가 왔었다는 정보 확보. 수색을 계속하겠다.”

탱고TANGO는 T, 타겟을 뜻하는 음어다. 파견에게 왜 굳이 음어를 쓰냐고 묻자, 만약 교신 내용이 적에게 노출되었을때를 위함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메시지가 아닌 휴대폰 음성채팅방에서 음성으로 말하는 이유도 정보 노출 때문이었다.

기록이 남아있으면 서로에 대한 정보가 노출될 수 있기에 작전요원들과 전산이 포함된 음성채팅방에서 가능하면 되도록 음성으로 교신하고, 그 내용을 전산이 기록하고 녹음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그러면 작전요원의 휴대폰에는 교신 내용이 전혀 남지 않으니 휴대폰이 적에게 넘어가도 타격이 적다는 것이다.

이런걸 생각해낸 파견의 과거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곧이어, 그 아이디어의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파. 진입 완료.”

“브라보, 알겠다.”

나는 그렇게 확인하고 음성채팅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품에 넣고, 담 너머로 보이는 주공아파트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잠입할 시간이다.


***


블루문 조직의 빌딩이라고 해서 입구부터 경비를 서는 조직원들이 시비를 걸어 올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경비는 커녕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 드문드문 늘어선, 누런 먼지가 가득한 버려진 차량들을 하나하나 확인한 후, 나는 목적의 주소로 걸음을 옮겼다.

부랑자의 말이 맞는지 정말 사람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그 여자가 여기 있는게 맞나? 대체 이런 곳의 방을 그 두목의 딸은 왜 가지고 있는 거지?“

나는 입구의 유리문이 깨진 조각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밟았다. 바스락하고 낡은 유리가 조각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우편함을 확인했다.

각 호실의 우편함에는 더 이상 들어갈수 없을 정도로 우편이 가득 꽂혀 있었다. 거기에도 삶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신발에 유리조각이 붙어있는지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몰래 잠입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 만큼 멍청한 행동은 없다.

나는 소리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그냥 계단을 오를때 보다 두배 이상 힘든 일이었지만 지독한 훈련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마침내 6층에 도착하고 나서 벽에 붙어있는 화살표와 호실 수가 적힌 표지를 따라 목표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가던 중에 혹시나 싶어서 다른 방의 문에 귀를 기대어도 보고,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봤지만 전혀 사람이 사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굳게 잠겨있을 뿐이다.


한 군데 빼고.


나는 목적지 바로 옆 호실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열려있다기 보다, 문고리가 통째로 부서져 있었다. 나는 뻥 비어있는 철문의 문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안을 통해 거실이 바로 들어다 보였는데, 인기척은 커녕 쓰레기만 가득했다.

나는 고민하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파트의 구조가 같은 호수면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목표한 호실로 들어가기 전에 방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안에 들어갔다가 최악의 경우 갑자기 전투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 지형을 파악해두는 것이 옳은 판단이겠지.

현관에 널부러져있는 떼가 가득탄 운동화를 건너뛰어 거실로 향했다. 쓰레기 때문인지, 호실 안에는 쿰쿰한 악취가 진동했다.

나는 먼저 현관에 바로 옆에 있는 부엌을 보았다.

다행히도 음식물 쓰레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먼지가 자욱하다 보다 누렇게 눌러앉은, 사기로 된 식기가 싱크대 근처에 가지런히 놓여있을 뿐이다.

나는 싱크대 아래 서랍을 열었다. 서랍분 안쪽에는 보일러장치외에 별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싱크대 서랍 문 안쪽에 달린 칼꽂이에 부엌칼이 몇자루 꽂혀 있었다.

무기 삼아 챙길까 하다 다루기에 너무 커서 그대로 놓아두었다.

서랍을 닫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밖에서 본 것처럼 쓰레기가 가득했다. 다행히 여기도 음식물 쓰레기는 없고, 어떤 상품의 박스나 택배상자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상자에 붙어있는 송장을 확인했다. 주소란에 적혀있는 주소가 눈에 익었다. 거기에는 두목의 딸이 알려준 주소가 적혀 있었다.

나는 바로 수취인의 이름을 확인했다.


강 건.


이게 플레이어의 이름일까? 배송일자를 보니 가장 최근 것은 일주일 이내 것도 있었다. 나는 박스에서 송장을 조심스럽게 떼네어, 곱게 접어 품에 넣었다.

한쪽 벽에는 3인 정도 앉을 수 있는 소파가 놓여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거실 한쪽기 가득 찰만큼 거실은 좁았다. 소파는 뜯어져 안쪽을 채우고 있는 노란 스펀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 있는 텔레비전은 액정이 나가있었다.

나는 거실을 지나쳐, 안쪽 방으로 향했다. 안방으로 향하는 길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물이 썩은 내가 가득했다. 아마 변기에 고인 물이 썩었으리라. 물을 내릴까하다, 들킬 것 같아 그만두었다.

화장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사람 셋이 들어가서 움직여도 충분할 정도였다. 입구 근처에 세면대, 좌변기가 있었고 가장 안쪽에 샤워커튼이 있었다. 들어가서 문을 열어보니 잘하면 사람 둘이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욕조가 있었다.

부랑자는 여자를 데리고 올거면 모텔을 간다고 했지만, 건물 구조는 아무래도 그런 용도로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안방을 열어보고 안방이 거실과 베란다로 연결되어있다는 것까지 파악한 뒤에, 방의 구조를 통째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좋아, 구조는 전부 파악했다. 아마 안에 들어갔다가 플레이어가 오면, 베란다를 통해 따돌려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군.

그럼 이제 남은 건······.

나는 안방에서 옆방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신음소리가 들린다는 부랑자의 말을 떠올렸다.

바로 옆방인데도 불구하고 신음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런 구조면 방음도 잘 안될텐데? 잘못된 정보일까? 아니면 특정 시간대에만 신음소리가 들리는 걸까?

나는 옆방에 귀를 붙였다. 하지만 그래도 신음소리는 커녕,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허탕인가 싶어서 귀를 뗄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이 쪽으로 다가오는 거친 발자국 소리와,


“아, 씨, 사사건건 존나게 귀찮게 구네. NPC 새끼들이.”


잊을 수 없는 그놈의 목소리가.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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