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헌터가 성좌를 사칭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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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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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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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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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축복

DUMMY

‘···저 사람은 첫날에 육포를 구매한 덩치?’


시간을 돌려 탑에 끌려온 첫날.

직업을 처음으로 각성하고 호기롭게 육포와 콜라를 판매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폭망.

겨우 두 사람만이 육포와 콜라를 구매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필요 없다는 듯 구매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폰지사기···아니, 선진적인 금융기법으로 돈을 끌어 모아서 재정적으로 풍족해졌지만, 아직도 잠자다가 그 실패가 생각나면 이불을 차곤 했었다.


그런 만큼 육포와 콜라를 구매해 준 첫 고객 두 명은 내게 뜻깊은 사람이었고, 그 둘의 얼굴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중에 내가 잘 나가면 꼭 도와줘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지내던 와중, 어느 날 둘의 얼굴을 인터넷에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에서 5번째로 S급 직업을 각성한 [빛의 검사] 류아리,

국내 3대 길드, 피닉스의 부길드장 [수호의 방패] 이창식.


그 두 명이 바로 내가 첫날 육포를 판 사람들이었다.

내 도움 따위는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미 잘나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는 그냥 멀리서 응원만 해야지 하고 생겼었는데···.


‘나를 따로 부를 줄은 몰랐는데.’


지금 나를 불러서 허리를 숙이는 사람이 바로 피닉스 길드의 부길드장 이창식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나를 불렀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지만, 은인인 만큼 최대한 도와주고 싶었다.


“저. 피닉스 길드의 부길드장, 이창식이 잊힌 사당의 주인께 공물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 내게 바치려는 듯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 공물이라고 하니, 사당을 가져오는 게 낫겠지?’


뭐가 되었든 공물이라면, 공짜 아이템.

그냥 소환으로 가져오기에는 멋이 없으니 연출을 가미했다.


파앗!


이제 대한민국 헌터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잊힌 사당이 이창식의 대기실에 나타났다.


“오!! 정말로 나타나다니! 부름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좌님”


이창식은 내가 자신의 부름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깜짝 놀라며 자세가 흐트러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공손한 태도를 취하더니, 녹색의 거북이 등껍질을 석상의 포개진 손 위에 올려놓았다.


“제가 바치려는 공물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좌님.”

‘···이게 뭐지?’


처음 보는 아이템.

아마 피닉스 길드에서도 보안 등급이 높은 물건인지, 헌터 커뮤니티에서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물론 아시겠지만, 예를 갖추기 위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다행히도 이창식이 등껍질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것은 바로 사방신의 유산. 현무의 등껍질, [불침갑(不侵甲)]입니다.”


유산?

내가 의아하던 와중에도 이창식은 계속 말했다.


“비록 먼 옛날 하늘에서 떨어져 미약한 권능 밖에 담겨 있지만, 성좌님께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 위해 바칩니다.”

‘···아! 기억났다.’


나는 고작해야 현자의 만년필이나 수첩정도의 물건을 기대했었기 때문에, 유산이라는 단어를 듣고 바로 그 정체를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창식의 설명을 더 듣자, 그제서야 유산이 어떤 것인지 기억났다.


유산.

하늘에 있는 성좌가 격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지며 쪼개진 권능의 파편.


내가 여태껏 구한 가장 귀한 물건인 하급 체력 영약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이템.

하급보다 훨씬 보기 힘든 상급 영약도 유산의 발끝에 미치지 못했다.

결코 코인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귀한 아이템이었다.


‘정말 이것을 내게 바친다고?’


나는 이창식의 행동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무언가 다짐한 듯 담담한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이것은 저 혼자가 구한게 아닌, 저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헌터들이 어렵게 구한 유산입니다. 부디 저와 제 동료들의 앞날을 살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짜 아이템이라고 좋아했건만, 정작 정체를 듣고 보니 피가 식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독이 든 성배다.’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것을 먹는 순간 더 이상 성좌를 사칭할 수 없게 된다.


생각해보자.

과연 피닉스 길드가 단순히 성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유산을 바쳤을까? 

아무 대가 없이, 그 귀한 물건을?


아니.

오히려 대가, 성좌의 축복을 받기 위해 유산을 바친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피닉스 길드만의 성좌로 모시기 위해 미리 작업을 친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의 판단은 훌륭했다.

어차피 잊힌 사당은 길드를 가리지 않고 헌터들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즉, 잊힌 사당의 주인에게 잘 보이는 방법은 단 하나, 최대한 빨리 귀한 물건을 바친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성좌가 없는 길드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길드는 피닉스 길드.

유산이 있는지도 모르는 다른 중소길드는 시도할 수 없겠지만, 유산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피닉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투자할만했었다.


‘···젠장.’


허나 문제가 있다면···.

잊힌 사당이 사실은 성좌의 흔적이 아닌, 내 스킬이란 점.

그리고 그것의 주인인 나는 성좌가 아닌, 성좌 사칭범이란 것이다.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저들에게 축복을 줄 수 있을까?

또는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성좌 사칭범일 뿐. 결코 성좌가 아니다.

지금껏 폰지사기를 통해 돈이 있는 척을 할 뿐, 결코 저들이 만족할 수 있는 축복을 줄 수 없다.


‘···외통수네.’


하지만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왜냐? 

나는 성좌니까.


누가 봐도 귀한 유산을 성좌가 받지 않는다?

과연 사람들이 나를 검소한 성좌라고 생각할까?


아니.

오히려 의심할 것이다.


이 npc의 주인이 정말 성좌일까?

혹시 히든 직업이 헌터들에게 장난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이세계인들이 몰래 함정을 판 것이 아닐까?

내가 저금한 코인은 정말 받을 수 있을까?

어쩌면 크게 한탕 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성좌를 코스프레하며 돈을 뜯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신뢰인데, 지금 이 유산을 받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된다.

그것도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길드에게!

그 여파는 가볍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현실의 신상도 노출될 수 있었다.


‘···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린 와중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렸다.

진정한 성좌의 권능과는 비견할 수 없지만, 잠시 눈속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보였다.


‘···일단 이거면 잠깐동안은 속일 수 있겠지.’


나는 쿵쾅이는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메시지를 입력했다.


* * *


‘···현무의 유산에 관심이 없으시나?’


성좌들 간에서도 사이가 좋은 자들이 있고, 나쁜 자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무와 같은 사방신을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성좌일 수도 있었다.


‘제발 받아들여야 할 텐데.’


이창식은 고개를 숙이며 메시지창을 기다렸다.


‘형님···! 왜 그랬습니까?’


그저께 있었던 회의에서도 유산을 바치자는 의견은 많은 반대가 있었다.

대부분의 A급 헌터들이 반대를 했으며, 이창식조차도 너무 큰 공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의견을 묵살하고, 길드장인 이만식의 자신의 의견을 관철했다.

불만이 많았지만, 그동안 이만식이 쌓은 인망 덕분에 어찌저찌 안건이 통과되었다.


‘···실패하게 되면, 과연 피닉스 길드는 유지될 수 있을까.’


지금껏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피닉스 길드.

여태까지는 길드장의 능력과 인망을 믿고 남은 자들이 많았지만, 이번 건으로 신뢰를 많이 잃은 상황.

이대로 유산을 잃고 아무것도 받지 못하게 되면 피닉스 길드는 큰 위기에 빠질 것이다.


‘부디 괜찮은 축복이 나오기를.’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리자, 맑고 청아한 알림 소리가 들렸다. 


띠링!


[잊힌 사당이 공물을 받아들였습니다.]


스르륵.


목이 없는 석상의 손에 올려져 있던 유산이 사라졌다.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


그와 동시에 메시지 창이 눈앞에 계속 떠올랐다.


[성좌 [???]가 흐릿한 의지를 보냅니다.]

[미약한 축복이 그대에게 깃듭니다.]


‘오!! 드디어 축복이구나!’


다행히도 축복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겨우 시작일 뿐.

성좌의 축복이 유산보다 훨씬 더 값져야지 피닉스로 당당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투두둑.


석상 앞에 작은 별 무더기가 떨어졌다.

그중 하나가 튕기며 이창식의 발 위로 올라갔다.


“뭐지···?”


작은 별을 손으로 잡어 보자,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뱃지?”


금속으로 이뤄진 노란색 별 모양의 뱃지였다.

마감처리가 깔끔하게 되어있었고, 내부에는 소량의 마력이 담겨 있었다.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 궁금하던 와중, 메시지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파앗!


[작은 별]

[등급 : 영웅]

[성좌 [???]의 기운이 담긴 아이템입니다.]


“···아이템 창?!”


게임에서만 보던 아이템창이 나타났다.

지금껏 탑에서 나온 아이템의 등급, 기원, 성능, 설명을 일기 위해서는 50층 위에서만 나오는 귀한 감정석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바로 아이템창이 떠올랐다.


“미친! 정말 존재한 이야기였다고?!”


아이템창을 보자마자 이창식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가 아이템창을 처음 봐서 당황한 게 아니었다.

그도 어엿한 A급 헌터.

자신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무기도 감정석을 사용한 만큼, 아이템 창은 그에게도 익숙했었다.


즉, 이창식은 다른 것에 놀랐었다.


“유산이 아니었다니···. 감정의 권능을 가진 성좌가 아직 존재했었구나···!”


50층에 떠도는 한 가지 전설이 있었다.

먼 옛날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을 알 수 있는 위대한 성좌가 있었다고.

비록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격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졌지만, 하늘 어딘가에 그의 권능 담긴 유산이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권능이 담긴 유산을 얻게 될 경우, 그 단체는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껏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이창식은 헛소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설마 그 성좌는 아직 영락하지 않았나?”


지상으로 떨어졌지만 권능이 쪼개지지 않고 미약하게 생존만 하고 있는 성좌.

그것이 바로 잊힌 사당의 주인이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이창식이 아이템 창을 보고 놀라던 와중, 새로운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축복 : 전송]

[잊힌 사당을 통해 자격을 갖춘 자에게 코인을 전송할 수 있습니다.]

[조건 : ‘작은 별’을 패용한 자.]

[※축복 ‘전송’은 일부 봉인되어 있습니다.※]


“···코인 전송!!”


지금껏 탑에 있는 헌터들은 서로 간에 만날 수 있지만,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소지품과 코인은 교류할 수 없었다.


가능한 방법은 단 두가지.

유효품을 얻어서, 현실에서 교환하는 방법.

그리고 50층까지 탑을 올라서, 그곳에서 교류하는 방법.


피닉스 길드는 규모가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크지만, 50층 대에서는 언제나 코인이 부족했다.

아니,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길드들이 코인이 넉넉하지 않았었다.


이미 50층대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이세계인들이 꽉 특어 잡고 있었고, 따라서 대량으로 코인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아예 없었다.


고로 지구인들이 코인을 벌기 위해서는 50층 미만의 층을 반복 클리어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략한 층은 일주일에 한 번씩만 가능했었기 때문에 코인을 많이 벌 수는 없었으며, 50층까지 올라간 헌터들의 경우에는 다들 바빴으므로 코인을 벌기 위해 아래층에서 보낼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길드에서는 B급 헌터들이 최대한 코인을 아낀 다음 50층으로 올라가서 코인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코인을 충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이세게인들과 거래하는 데 있어서 코인은 항상 부족했었다.


“이제··· 길드의 자금난은 사라지겠구나.”


하지만 이번에 얻은 ‘전송’의 축복만 있다면, 더는 걱정할 필요 없었다.

무수히 많은 피닉스의 길드원들이 매주 갱신되는 층을 반복해서 클리어한 다음 50층으로 코인을 보내기만 한다면, 코인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양이 쏟아질 것이다.


즉, 피닉스의 화려한 부활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성좌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당은 어느새 사라졌지만, 이창식은 그곳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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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유산 각성?! 24.08.08 285 12 13쪽
16 내 영약재료...! 24.08.07 303 11 14쪽
15 웨어울프 +1 24.08.06 293 12 12쪽
14 유산 : [불침갑(不侵甲)] 24.08.05 309 13 12쪽
» 가짜 축복 24.08.04 305 18 13쪽
12 첫 번째 공물 24.08.03 296 13 14쪽
11 ...너무 쉬운데? 24.08.02 296 13 14쪽
10 1층 도전! +1 24.08.01 314 13 14쪽
9 이딴게... 체력영약?! +1 24.07.31 326 12 12쪽
8 영약 획득 +3 24.07.30 338 1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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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뭐?? 돈이 복사가 된다고? 24.07.27 393 22 14쪽
4 이 코인은 이제 제 겁니다. 24.07.26 422 20 12쪽
3 성좌 코스프레 24.07.25 472 25 13쪽
2 방구석 상인 +1 24.07.25 499 23 14쪽
1 각성 +5 24.07.25 612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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