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헌터가 성좌를 사칭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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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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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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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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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헌터 코스프레

DUMMY

“S급 직업. 감정사.”

‘하···. 또 사기꾼이네.’


최아람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빌런들 때문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A급 이상 직업을 각성하면 무조건 헌터 등록소 본부에 등록한 만큼, 이곳으로 몰려오는 빌런의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9명이나 있었다.

손가락에 고작 라이터 크기의 불을 피워내면서, 자기가 삼매진화(三昧眞火)를 깨우친 무림인으로 각성했다는 노인.

자기가 죽은 자의 힘을 다룰 수 있다면서, 그림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중학생.

자기가 사상 최강의 양육자라면서, 다짜고짜 크로노스 길드장을 호출하는 30대 여성.

자기가 척준경의 환생이라면서, 골동품 갑옷을 입고 진검으로 위협하는 20대 남성.

미래를 보고 왔다는 자칭 회귀자 3명에, 사실 이곳은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자칭 빙의자 2명.


‘뭐, 그래도 감정사 정도는 참신하네. 패션 센스는 이상하지만.’


벌써 헌터 감정소에서 일한 지 어언 2년.

무수히 많은 사람을 봐왔지만, 눈앞의 남자는 처음 보는 케이스였다.


‘대체 왜 손가락에 반지를 여덟개나 착용한 거지? 이게 멋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직업 전용 아이템인가? 게다가 왜 옷깃에 작은 별 뱃지를 단거지? 어울리지도 않게?’


궁금한 게 많았지만, 굳이 질문해서 득이 되지는 않을 터.

그저 매뉴얼대로 남자를 응대했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찬희입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우선 마력측정을 해야 하는데, 혹시 앞에 있는 수정구에 손을 올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수정구.

크로노스 길드에서 제작한 아티팩트로, 사용자가 어느 정도의 마나를 가졌는지 측정하는 아이템이었다.

각성한 직업의 등급에 따라 헌터가 보유한 마나의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정구의 불빛 색만으로 등급을 구분할 수 있었다.


‘···자기는 몸 쓰는 직업이 아니라고 핑계 대면서, 수정구에 손을 안 올리는 거 아니야?’


당연히 사기꾼들은 자기 거짓말이 들키지 않기 위해 별의별 이유를 대가며 수정구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


자기는 내공을 쓰기 때문에, 저런 사특한 양이의 물건은 자신의 심후한 경지를 판별할 수 없다던 노인.

이 정도면 나름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한 편이었다.


마나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 단순히 떼쓰는, 30대 여성.

수정구를 진검으로 막무가내로 부순, 20대 남성

그딴 쓸모없는 규정보다 세계의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겠냐고 되묻는 자칭 회귀자와 빙의자들.

이들 모두 마력 측정을 거부했다.


사기꾼이 많은 만큼, 해결 방법도 간단했다.


바로 보안요원 호출 버튼을 누르면 끝.

크로노스에서 파견한 헌터가 와서 쫓아내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기꾼은 이 단계에서 탈락하게 된다.


“뭐, 좋죠.”


이찬희는 수정구에 손을 올리기 전 수정구를 빤히 쳐다봤다.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자, 최아람이 천천히 호출 버튼에 손을 올리던 와중, 그가 입을 열었다.


“아이템 등급은 일반이네요. ”

“···네?”

“음···. 크로노스 소속 공방에서 제작되었고요. 중급 마석을 가공해서 수정구 형태로 만든 다음, 마법사들이 내부에 회로를 새겨서 마나의 양에 따라 빛을 뿜는 구조군요.”


그는 수정구가 어떤 물건인지 줄줄 설명하고 있었다.


‘···분명 교안에 저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최아람이 처음 입사할 때 달달 외웠던 수정구 제원과 얼추 비슷한 정보를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찬희를 흘겨보자, 그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었다.


“아,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바로 측정할게요.”


파앗!


그가 수정구에 손을 올리자 황금빛이 퍼져나갔다.


C급은 흰색, B급은 파란색, A급은 적색이지만,

S급에 준한 마력을 가진 자가 수정구에 손을 올리면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황금빛에, 주변에서 수정구에 손을 올리던 헌터들과 의자에서 대기하던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 황금색!!”

“황금색이면 S급 아니야?”

“6번째로 S급 직업을 두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누군가는 호들갑을 떨었고,


“말도 안 돼!!”

“대체 왜 저 녀석이 S급이야? 나는 고작 C급 직업인데!!”


누군가는 분노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헌터들이 입을 열었다.


“야, 저거 조작하기 쉬워. 마력 측정이 10층을 클리어한 헌터의 마나를 기준으로 하거든? 그래서 실제로 20층까지 올라간 헌터가 저기에 손 올리면 황금빛이 나와.”

“···그럼 저 사람이 사기꾼일 수도 있다는 거야?”

“그치. 당장 오전만 해도 이상한 중학생이 황금빛을 뽐내다가, 21층까지 간 거 들켜서 보안팀장에게 잡혀 서울에 추방당했잖아.”

“뭐야, 저 사람도 속인 건가?”

“당연하지. 2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S급 헌터가 5명 밖에 안 나왔고, 그 한 도 2달 전에 나왔는데, 상식적으로 벌써 나왔겠냐?”


그러자 호들갑 떨던 헌터들도 차분해지더니, 오히려 이찬희를 향해 강한 적대심을 내뿜었다.

오전에 중학생이 사기 친 것을 본 사람들은 질린 눈빛으로 이찬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문신을 한 양아치가 껄렁거리며 소리쳤다.


“이 사기꾼 새끼야. 니는 나한테 잘 걸렸다. ”


뚜둑.


그는 주먹을 풀면서 이찬희를 향해 다가갔다.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최아람은 보안요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사내가 말이야! 정직할 줄 알아야지! 이 형님이 제대로 참교육해 주마.”


그는 방금 B급 직업을 판정받은 헌터.

여기에 있는 헌터들이 모두 10층을 돌파한 사람들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는 이곳에서 강한 축에 속했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하. 이 양아치 새끼가 까부네.’


양아치는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지를 자세를 취하고,

이찬희는 조용히 인벤토리에서 바람의 칼날을 꺼내려고 한 순간.


털썩.


“형제님. 헌터 등록소에서는 모든 폭력이 일절 금지입니다.”


순백의 갑옷을 입은 청년이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그대로 양아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앙? 형씨가 뭔데 참견-”


양아치는 고개를 돌려서 신경질을 내려 했으나, 청년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사색이 되더니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했습니다. 앞으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의 배려 덕분에 세상이 한층 더 따듯해졌습니다.”

“성기사님 말이 다 맞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양아치는 우사인 볼트처럼 전속력을 다해 뛰어서 건물을 나갔다.


“잘했습니다. 형제님. 덕분에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보안팀장님!”


청년이 최아람을 칭찬하자, 그녀는 긴장이 풀린 듯 의자에 늘어졌다.


청년은 몸을 돌려, 큰 목소리로 건물 안에 있는 모든 헌터와 직원들에게 말했다.


“모두 개인 용무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형제님은 이제 제가 맡겠습니다.”

“···넵!”


그러자 방금 일어난 일이 없었다는 듯, 다들 각자 할 일을 시작했다.


“역시 다들 따듯한 분들입니다.”


청년은 모든 일이 끝나자, 눈을 감고 십자가를 쥔 채 성경을 암송했다.

그의 주위에 순백의 마나가 떠올랐는데, 빛에 반사가 되며 한 폭의 성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청년은 암송을 끝마친 다음, 이찬희를 향해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헌터님. 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헌터 등록소 본부의 보안 팀장, 그리고 크로노스 소속 A급 헌터 성기사 김요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잘난 척할걸 그랬나.’


마주치자마자 보이는 모든 물건에 대해 정보를 읊으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살짝 신비로운 컨셉을 잡으며 정석대로 헌터 등록을 하려 했다.

처음에는 좋게 흘러가는 줄 알았건만,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얻어터질 뻔했다.


‘뭐, 기본 스펙이 내가 더 좋아서 그 양아치 정도는 쉽게 잡았겠지만.’


어쩌다 보니 양아치는 사라지고, A급 헌터가 나를 상대하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S급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A급 헌터는 마주할 거라고 마음의 준비는 마쳤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았다.


“제가 듣기로는 형제님께서 S급 감정사라고 하시던데 맞습니까?”

“넵. 저는 감정사 직업을 얻었고, 직업스킬로 ‘감정’이 있습니다.”


김요한은 인상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다.


“좋습니다. A급 헌터의 경우에는 절차대로 검증하겠지만, 형제님은 S급. 제가 직접 테스트해도 되겠습니까?”

“넵. 혹시 어떤 것을 하면 되나요?”


김요한은 품속에서 세 개의 십자가를 꺼냈다.

모두 나무로 만든 십자가였는데, 세 개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은 모양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의 결마저 똑같았다.


“형제님의 능력이 ‘감정’이라면 50층대에서 나온 감정석과 유사한 기능을 가질 것으로 추정됩니다. 맞습니까?”

“뭐, 제가 감정석을 써본 적이 없긴 하지만, 웬만한 아이템은 다 알 수 있죠?”


김요한은 세 개의 십자가를 허공에 띄운 다음,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후훗. 쉽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꺼낸 이 십자가들은 50층대 세계, 대수림의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똑같은 모습이지만 다 다른 신성술이 깃들어져 있습니다.”


그는 중앙에 있는 십자가를 내 손에 쥐여준 다음 말했다.


“이 세 개 중에 하나라도 아이템의 등급, 성능, 기원을 설명할 수 있으시다면 1차 합격으로 매기겠습니다.”

“하하. 1차 합격밖에 안 되나요?”

“S급 헌터로 완전히 결정되는 순간은 3대 길드가 전부 모여야지 가능한 일입니다. S급도 아닌 A급 저로서는 어중이떠중이를 거르는 것밖에 되지 않죠.”

“뭐, 좋습니다. 까짓것 해보죠.”


김요한은 손목시계로 타이머를 설정하고 입을 열었다.


“형제님, 우선 1시간 시간제한을 드리겠습니다. 혹여나 감정 스킬의 쿨타임이 길 경우, 추가시간을 요청하면-”

“다 감정했습니다.”


나는 왼손에 끼여진 반지를 매만지며, 김요한에게 말했다.


“세 개 모두 감정 완료했습니다.”

“···형제님 거짓말은 나쁩니다. 이 물건들은 하나같이 얻기 귀한 것. 조금만 더 천천히 살펴보시는 게-”

“겸손, 인내, 근면.”


김요한의 눈이 번쩍 띄어졌다.


“세 십자가 모두 성목(聖木)의 나뭇가지로 만들었군요. 등급은 모두 영웅.

왼쪽의 겸손은 적의 버프를 해제 또는 약화하고, 중앙의 인내는 아군의 방어력과 회복력을 올리며, 우측의 근면은 아군의 스킬 쿨타임을 줄여주는 거군요.”


내 설명이 그렇게 충격적이었을까.

눈앞의 성기사가 저렇게 얼빵한 표정을 지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묘한 즐거움을 느끼며 계속 설명했다.


“음···. 제작자는 [여명을 밝히는 불꽃]의 사제, 이리스탄이군요. 서로의 신앙을 축복하기 위해 만든 맞춤 제작이군요.”

“···맞습니다. 40층 이상부터 구할 수 있는 영웅 등급의 아이템을 감정하실 수 있을 줄이야···. 대단하십니다.”


김요한이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자, 나는 조금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별거 아닌 말투로 김요한에게 질문했다.


“그보다 다섯 개 더 있지 않나요? 남은 칠주선을 상징하는 십자가와 그것들의 동력원이 되는 고유 등급의 앙크.”

“······!”

“음~ 이게 이름이 뭐였더라? 왠지 알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분명 그거는 나이트길드도 모르는 정보일 텐데?!”


순백 같던 성기사가 경악에 빠진 표정을 짓자, 나는 실실 웃으면서 어깨를 두드려줬다.


“당연히 제가 S급 헌터니까 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저 S등급 인정해주는 거죠?”

“···우선 저희 부길드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이른다면 이번 주 내에 3대 길드가 모여서 마지막 검증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발표될 것입니다.”

“넵. 그동안 감사-”


깜빡.


‘어라?’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헌터 등록소를 가득 채우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현대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고대 양식으로 지은 신전으로 바뀌었다.


“여기는 대체 어디-”

“우리 요한이가 곤란에 빠진 것 같아서 불렀는 데 혹시 불만 있니? 아가?”


고혹적인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지팡이를 타고 허공을 노니는 하늘빛 머리카락의 여성이 있었다.

매우 익숙한 얼굴. 나는 바로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인사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빨리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부길드장님.”


크로노스 길드의 부길드장.

S급 헌터, 마도사 정하늘이 나를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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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유산 각성?! 24.08.08 286 12 13쪽
16 내 영약재료...! 24.08.07 303 11 14쪽
15 웨어울프 +1 24.08.06 294 12 12쪽
14 유산 : [불침갑(不侵甲)] 24.08.05 310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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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약 획득 +3 24.07.30 339 1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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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뭐?? 돈이 복사가 된다고? 24.07.27 394 22 14쪽
4 이 코인은 이제 제 겁니다. 24.07.26 422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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