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가 멸망하는 로마를 집어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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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맨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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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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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편. 누군가는 희망을 누군가는 절망을 그리다.

DUMMY

상인은 곧 해적이고, 해적이 곧 상인이라는 말은 누가 했을까?


정답을 말하자면 ‘그 말을 한 사람은 알 수 없다.’ 였다.


왜냐하면 이집트에 문명이 생기기 이전부터 그랬으니까.


한 마디로 상인과 해적은 선사 시대부터 구분하기 힘들었다.


나라의 통제를 받는 상인조차 통제에 벗어나는 영역에 들어서면 곧바로 칼을 들고, 약한 놈을 족쳐 상품을 빼앗았으니까.


아프리카, 인도양을 지나다니는 포르투갈 상선들이 바로 그 산증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피해 없이 이득을 산출할 수 있다는 각만 보이면 냅다 대포를 쏘아 상대방으로부터 상품을 창조해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이 지난 뒤에도 그러한데, 지금 시점에서 상인과 해적을 구별할 수 있을까?


지중해 서쪽 영역을 빨빨 돌아다니는 반달 해적도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피해 없이 이득 얻을 각이 보이면 그들은 해적으로 돌변하여 마치 야수처럼 목표물을 사냥한다.


반대로 누가 봐도 이익은커녕 손해를 보겠다 싶으면 그들은 밀수상으로 업종을 전환한다.


루키우스는 바로 이점을 주목했다.


“그러니까 반달 해적을 통해 파피루스를 팔아치우겠다. 이건가?”


퀸투스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루키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게 정상이긴 하다.


누가 해적을 통해 물건을 팔아치울 생각을 한단 말인가?


현대인보다 도덕적으로 훨씬 유연했던 고대인조차 이러한 발상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그 이유는 로마가 지중해를 제패한 이후로 해적이라는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중해에서 배를 댈 항구 모두가 로마의 영토인데, 해적들은 어디서 둥지를 튼다는 말인가?


그러니 로마인들 중 노인에 속하는 부류는 이 해적이라는 개념을 낯설어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중해는 로마의 바다라는 사실을 두뇌에 각인했으니까.


“아버지. 지금 우리가 가진 배는 한 척입니다. 그 배도 아직 숙련도 면에서 미숙하고요.”


“크흠흠. 그 배 이야기는 하지 말자.”


“옙.”


퀸투스의 말에 루키우스는 아차 하는 얼굴로 얌전히 대답했다.


이미 그 배는 퀸투스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존재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존재는 미숙한 선원들을 바다에 빠뜨리며 인생을 아주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이제 셋째까지 낳았는데, 계속 배 위에서 지낸다니.”


퀸투스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셋째는 남동생이었고, 이름을 ‘플라비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로 지었다.


원래라면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야 하지만 그 어머니가 배 위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기에 플라비우스는 어쩔 수 없이 유모에게 맡겨야 했다.


‘처음엔 동생을 배 위에서 낳겠다고 하기에 얼른 뜯어말렸지.’


루키우스가 몸을 바쳐 설득한 덕분에 겨우겨우 저택에서 동생을 낳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계속하지. 그래서 가이세리크에게 파피루스를 팔아 치운 이유가 반달 해적이 마레 노스트럼(지중해) 서쪽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더냐?”


“예. 그리고 해적은 곧 상인이기도 합니다. 가이세리크는 이제 막 히포 레기우스를 점령한 지라 수습할 돈이 모자란 상황입니다. 그의 손아귀에 아프리카의 곡물이 있다고 해도 그걸 금방 팔아넘기면···.”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하겠지.”


“예. 하지만 그는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죠. 그리고 우리는 경쟁자를 제칠 필요가 있고요.”


“아이귑토스 상인들을 말하는 거군.”


퀸투스의 말에 루키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이귑토스 상인들이 취급하는 물자는 파피루스만 있는 게 아니죠.”


“곡물을 말하는 건가?”


“밀 작물 하나당 낱알 스무 개 정도 나는 그야말로 억 소리가 절로 나오는 땅입니다. 그곳에서 산출되는 곡물을 무시할 순 없죠.”


“네가 손을 쓰는데도 아직까지 아이귑토스에 미치지 못한단 말인가?”


루키우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가 없죠.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 우리와 가이세리크에게 공통적으로 경쟁하는 상대가 있다. 그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가이세리크에게 아이귑토스 상인들을 습격하라고 부추긴 거냐?”


“그들이 로마의 파피루스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막 그 시장에 진입한 우리로선 그 거대한 궁둥이를 치워야 돈을 벌 수 있죠.”


지금까지 파피루스 시장을 한껏 독점하던 아이귑토스 상인들이 타라코의 종이 공방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백이면 백 그 종이 공방을 인수하거나 아니면 불태울 거다.


그래야 자신들의 밥줄이 끊기지 않으니까.


고대 사회의 시장이란 다 이렇게 돌아가는 법.


루키우스는 그러한 사실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퀸투스를 포함한 고대인들은 이미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루키우스의 계획은 아이귑토스 상인들의 수작을 차단함과 동시에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파이를 가져올 수 있었다.


“이거 참 세쿤두스 아저씨가 떼돈을 벌겠군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푸블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왜 배 아프냐?”


“배 아프긴요. 그저 어릴 때부터 절 돌봐줬던 아저씨가 잘 되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걸로 타라코 시민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한 가지 사실?”


푸블리우스는 씩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폼페이우스에게 충성하면 세쿤두스 아저씨처럼 보답 받는다는 사실 말이죠. 요즘 제가 세금을 거두러 갈 때마다 그 분위기를 느낍니다.”


현재 푸블리우스는 가문이 대대적으로 맡았던 사업을 계승 받고 있었다.


바로 징세청부업이다.


“예전에는 우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떨떠름하게 여기던 시민들이 지금은 오히려 저희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해 안달입니다.”


“그건 그렇지.”


퀸투스는 푸블리우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동의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건 가이세리크가 이 파피루스 공방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루키우스. 네 형의 말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부분은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파피루스 공방을 홀로 독식할 수 없다고 말이죠.”


“그러니까 수익을 나누자는 소리인가?”


“암만 우리 파피루스 공방의 생산력이 아이귑토스 상인들의 생산력보다 월등해도 생산 규모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지만 그들은 수천 년 전부터 규모를 키워왔으니까요.”


“으음. 그래서 가이세리크에게 아예 파피루스 공방을 차리게 하자는 소리인가?”


“우리의 파피루스 공방으론 로마 전역에서 필요로 하는 파피루스를 생산할 순 없으니까요.”


한 마디로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딸린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루키우스로선 이 공급을 늘려 줄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수익을 나누게 됨으로써 가이세리크는 저흴 보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이세리크에게 우리는 황금 알을 낳는 암탉이 되니까.”


퀸투스는 루키우스가 말하는 바를 깨달았는지 씩 웃었다.


“하지만 아버지 가이세리크가 만약 우리의 파피루스 공방을 제치고, 자기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형.”


“뭐?”


“혹시 ‘파르테스’라고 알고 있어?”


“파르테스···? 그게 뭐지?”


푸블리우스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루키우스를 바라봤고, 루키우스는 그런 형의 모습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공화정 시기에 잘만 사용하던 것들이 이 시점에서 끊긴 게 많다니까.’


루키우스가 말하는 파르테스는 로마 공화정 말기에서 사용됐던 주식을 의미했다.


이 당시 로마의 공공 시설 건설은 ‘푸블리카니’라는 민간 회사가 로마 정부로부터 계약을 따내 각종 필요한 시설들을 짓는 형태로 이뤄졌다.


당연히 개인의 자금으론 신전과 수로교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엔 모자라기에 푸블리카니는 사람들에게 ‘파르테스’를 판매해 건설 자금을 당겼다.


여기서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현대인들이 코인을 두고, 제발 오르라고 고사를 지내듯.


이 당시 고대인들도 파르테스를 두고, 제발 오르라고 신에게 빌었다.


이 열기가 얼마나 심했는지 키케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부실한 푸블리카니의 파르테스를 사는 것은 도박과 같으니 보수적인 사람이면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파르테스는 제국이 건국된 이후 슬슬 사장세에 들어갔는데.


그 이유는 로마 제국이 이 푸블리카니를 인수하여 부려먹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파르테스’는 잊혀졌다.


그러니 푸블리우스처럼 파르테스를 모르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루키우스는 이 파르테스에 대한 개념을 푸블리우스에게 설명해줬고, 푸블리우스는 이제야 깨달았는지 박수를 짝 쳤다.


“그러니까 세쿤두스 아저씨가 운영하는 파피루스 공방에서 나오는 이익을 파르테스의 보유량에 따라 나눈다는 거지?”


“그래. 맞아. 하여튼 이걸로 형의 우려는 사라졌지?”


“그래. 아주 고오맙다. 이 녀석아.”


두 형제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지켜본 퀸투스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그래. 그렇게 나아가는 거다.’


퀸투스는 루키우스를 응시하며 한 가지를 물었다.


“그럼 가이세리크에게 언제 파르테스를 팔 생각이지?”


“그거야 그가 슬슬 우릴 제칠 생각을 할 때, 팔아치워야죠.”


“그 때를 가늠하기가 어렵지 않느냐?”


“그러니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아야죠. 그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루키우스의 정론에 퀸투스와 푸블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


누군가는 밝은 미래를 위해서 머리를 짜내 계획을 만들어내고, 그 계획대로 나아갈 동안.


누군가는 앞으로 찾아올 파멸적인 미래를 막기 위해 로마 제국의 권력자를 찾았다.


“마기스테르시여. 수에비 족속들이 루시타니아(현재 포르투갈 지역, 대항해시대에서 흔히 등장하는 리스본이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쪽으로 남하하고 있습니다.”


아쿠아 플라비아(현재 포르투갈 샤베스 시)의 주교 히다티우스는 아에티우스를 향해 절박한 표정으로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설명하고 있었다.


“수에비 족들은 황충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로마인이다 싶으면 닥치는 대로 잡아가 노예로 부립니다. 그들이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모든 것들이 파괴됩니다. 집이 불타고, 마을이 불타며 부모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서 엉엉 울다가 굶어 죽습니다.”


“······.”


허나 아에티우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히다티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에비 족이 루시타니아에 도달하면 로마가 루시타니아에 수백 년 간 쌓아온 모든 것들이 그놈들의 손에 잿더미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군대를 내어달라 그런 소리인가?”


떨떠름을 넘어서 짜증 아니 명백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아에티우스의 어조.


예상치 못한 아에티우스의 대답에 히다티우스는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히스파니아는 마기스테르 당신의 관할이지 않습니까?!”


“그래. 내 관할이지. 명목 상.”


“그래서 히스파니아에 군대를 보내지 않으신다는 소리입니까?!”


히다티우스는 자신의 달마티카를 부여잡으며 울부짖었다.


분루가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히다티우스는 명백한 분노의 눈길을 담아 아에티우스를 노려봤다.


로마 제국에서 버림받은 자들의 한과 분노.


어찌 보면 히다티우스는 그런 로마인들을 대변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에티우스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히스파니아에 군대를 보내달라? 하하···. 좋아. 젊은 주교여. 내 현실을 알려주지. 지금 내가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의 숫자는 얼마인지 아는가?”


“모릅니다.”


“시발. 겨우 8000명이야. 겨우 8000명이라고! 명색이 마기스테르인데, 이게 말이 돼?! 나는 이 정도 병력으로 라에티아(현재 독일 남부 뮌헨 일대)와 노리쿰(현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유퉁기 족과 노리 족을 진압해야 돼! 자네가 말하는 수에비 족의 난동? 하. 나도 봤어. 나도 봤다고! 뼈저리게! 또 처절하게!”


아에티우스는 분을 참기 어려웠는지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소리쳤다.


“작년에 빌어먹을 고트 놈들이 유퉁기 놈들의 뒤를 봐주며 아를란테를 공격했어. 나는 그걸 겨우 막았지. 이번엔 라에티아와 노리쿰에서 빌어먹을 놈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군대? 군대를 달라고?!”


“히스파니아야말로 당신의 관할이지 않습니까!?”


“시발! 닥쳐! 관할이고 나발이고!”


분노를 참지 못한 아에티우스는 눈앞의 파피루스 서류를 집어 들더니 바닥으로 내던지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땅에서 병사 하나를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냐?! 아냐고?! 그 병사에게 줄 무기와 갑옷은 어디 하느님이 내려줘?! 오. 그 병사가 앞으로 먹을 식량은 어디서 구하지? 좋아. 자네 말대로 히스파니아에 내 군대를 보낸다고 치자고. 그럼 그 군대의 보급은 자네가 할 텐가?”


“······.”


“거봐. 아무 말 못하지? 기껏 병사를 무장시킬 무기와 방패를 줘도 또 그놈들이 먹을 식량을 줘도 그걸로 끝일 거 같아? 전장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훈련까지 마쳐야 돼.”


아에티우스는 히다티우스를 노려보며 자신의 입장을 내뱉었다.


“원래 이런 걸 해줘야 할 황제와 섭정은 지금도 내 등을 푹푹 찌르려고 하지. 지원은 어림없고, 날 몰아내기 위해 보나파치우스를 포섭하려 들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 힘들게 정말 힘들게 만들어낸 병력이야. 그런 소중한 존재를 히스파니아를 지키기 위해 내어달라?”


“마기스테르시여. 당신은 히스파니아를 책임지는···.”


“하. 히스파니아···. 명목 상 내 관할에 속해있는 그 땅. 지금 그 땅을 주름잡은 놈들이 누군지는 자네가 더 잘 알텐데?”


아에티우스의 말에 히다티우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정녕 히스파니아를 구하고 싶다면 고트 놈들을 찾아보게. 그놈들이라면 제 땅을 지키기 위해서 병력을 내어 줄 테니까.”


“그러면 히스파니아는 영영 고트의 땅이 될 것입니다.”


“이미 고트의 땅이야. 간판만 로마인으로 썼을 뿐.”


아에티우스의 대답에 히다티우스는 허망한 표정을 짓는다.


낙원을 찾아 헤맸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그곳도 지옥 한복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의 얼굴.


아에티우스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 얼굴을 바라봤다.


‘이것으로 수백 아니 수천 번 봤군.’


이런 얼굴을 보는 건 익숙하다.


아프리카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로마인들도 자신 앞에서 꼭 저런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병력을 주지 못하네. 하지만 이곳에 달려온 자네를 생각해서 내 선물을 주도록 하지.”


아에티우스는 곧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종이와 깃털 펜.


그 둘을 책상 위에 올린 아에티우스는 종이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이게 그 타라코의 파피루스인가?’


가이세리크가 아프리카 속주를 장악한 뒤부턴 아이귑토스에서 물건을 수입할 수 없게 됐다.


반달 해적들이 지중해에서 난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이 있듯 아이귑토스에서 파피루스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니, 사람들은 타라코에서 생산되는 파피루스를 쓰기 시작했다.


아에티우스는 이 파피루스를 바라보며 타라코에서 죽치고 있는 일족을 떠올렸다.


‘폼페이우스 일족.’


아에티우스의 시선은 허리춤에 달린 검집을 향했다.


저 검집 안에는 작년에 폼페이우스 일족이 선물한 검이 있었다.


‘지금까지 썼는데도 멀쩡한 검이었지.’


어느새 그들의 영향력이 자신에게 닿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에티우스는 곧바로 깃털 펜을 들어 편지를 두 장 쓰기 시작했다.


하나는 서고트 왕국의 대왕 테오도리크에게.


나머지 하나는 타라코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티치아노 주교에게.


그렇게 편지를 쓴 아에티우스는 부관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오늘 당직은 아비투스인가? 마침 잘 됐군.”


아에티우스는 테오도리크에게 보낼 편지를 아비투스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 편지를 그 늑대에게 전달해주게.”


“예.”


아비투스는 즉각 아에티우스의 명을 받들었다.


아비투스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아에티우스는 이번엔 히다티우스에게 나머지 편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타라코의 주교에 대해 아는가?”


“티치아노 주교 말씀입니까?”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이걸 그에게 전달해주게.”


“으음···.”


“지난 해에 반달 해적이 타라코를 기습했지. 하지만 티치아노 주교는 자경단으로 그 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어.”


“자경단으로 수에비 놈들을 막아낼 순 없습니다.”


히다티우스는 단호하게 대답했으나 아에티우스는 콧웃음을 쳤다.


“병사 하나 하나가 귀중한 시점이야. 그의 도움을 받기 싫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수에비 놈들을 몰아내던가?”


“크윽···.”


히다티우스가 입술을 깨물며 아에티우스를 바라봤으나 아에티우스는 콧웃음을 치며 곧 한 사람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마기스테르시여.”


“켄소리우스. 자네가 히스파니아로 가줘야겠어.”


그 말에 켄소리우스의 두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마기스테르시여···. 히스파니아는 이미···.”


“저 친구가 하도 애원하니까 어쩔 수 없어. 돈을 내어주지. 그걸로 일단 병사들을 모집해봐.”


“암만 돈이 많아도 돈으론 병사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자네를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 그 돈으로 한번 군대를 만들고, 히스파니아를 지켜봐.”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글쎄. 자네말고 다른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 걸? 거절하고 싶으면 말하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거절한다면 처절한 보복이 들어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켄소리우스였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예···. 그 명령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네.”


아에티우스는 기쁜 얼굴로 켄소리우스에게 그렇게 말한 뒤 히다티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마기스테르시여···.”


히다티우스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그것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아에티우스가 라에티아, 노리쿰에서 일어난 난리를 진압할 때 쓰이던 병력이 위키에서 찾아보니까 5000~10000명 정도라고 하더군요.


절충해서 8000명 정도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리고 아에티우스가 히다티우스의 요청을 들어준 건 작중 시기에서 1년이 지난 서기 432년 경입니다.


그때, 비로소 라에티아와 노리쿰의 반란을 진압해 병력을 보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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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7편. 희망의 등불. +32 24.08.28 4,040 200 18쪽
36 36편. 로마 인빅타. (무너지지 않는 로마) +38 24.08.27 4,200 221 18쪽
35 35편. 루키우스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38 24.08.26 4,018 209 18쪽
34 34편. 싸울 마음을 품게 하는 방법. +32 24.08.25 3,958 18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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