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오타 방어전 (2)
궁수를 준비해 방어막이 사라지는 즉시 바로 화살을 날리려고 했지만, 저 약삭빠른 놈이 눈치를 챘는지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난다.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났을 뿐 여전히 열받게 침공군 앞에서 혼자 알짱거리고 있다. 거기에 다짜고짜 항복하라니. 사령관의 머리가 복잡해진다.
테레브리타의 사령관은 이미 수십 차례 이상 전투를 치러 낸 테네브리타 최고 베테랑이다. 그런 사령관에게 일전의 세레스타에서의 전투는 전투라고도 부를 수도 없는 악랄한 속임수 그 자체였다.
아레나 우주에서 전투의 기본은 라인 배틀이다. 고렙 행성 쪽으로 가면 그나마 쓸만한 병기나 광역 공격용 무기들이 등장해 전투의 양상이 많이 달라지지만, 저렙 행성들끼리의 전투는 라인을 형성해 서로 마주 본 다음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전투다.
이길만한 상대에만 싸움을 거는 행성의 정책 덕에 사령관은 거의 패배라는 것을 몰랐다. 무조건 무식하게 맞부딪히기보다는 까다로운 상대들을 만나면 나름 병력을 운용하고 작전도 걸기도 했다.
지난번 세레스타에 영문도 모르고 패배하기 전까지는 행성 내에서는 나름 명장 소리를 듣고 있는 사령관이지만 저 열 받는 놈의 생각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지금도 절대 방어막이 유지되는 시간에 일부러 침공군에게 다가와 도발을 하고 사라진다. 말로만 신나게 떠들고 갔기에 피해는 없지만 병사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방어막이 사라집니다.”
부관이 짧게 알렸다. 사령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일단 처음에 계획한 대로 매복 전술에 대비한 진형 배치를 지시했다. 하지만 방어막이 사라지는 순간 사령관은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에 자기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이건 뭐지?’
그렇게 심하지 않은 단순한 연기일 뿐이지만 테네브리타 침공군은 그들과 퓨리오타를 가로막은 방어막이 걷히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에 일제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침공에 참전했던 몇몇 병사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아레나 사탕을 까서 입에 넣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동요하지 마라. 단순한 연기다.”
사령관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장교들이 심하게 동요하는 병사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간신히 진정된 것처럼 보인다. 시작부터 놈의 술책에 말려드는 기분이다.
“각하. 아무래도 저 세레스타의 관리자라는 놈이 이번에도 뭔가 술수를 획책한 것 같은데, 우선 시간을 두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옆에 있던 참모 하나가 사령관에게 조언한다. 사령관도 내심 그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지만 동조할 수는 없다.
“적은 기껏 500명입니다. 그리고 우리 병력은 1,500명. 레벨 차이까지 감안하면 거의 4배나 5배의 병력인데 이렇게 많은 병력 차를 가지고 저놈 하나에 쫄아서 조심스럽게 움직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저번에는 징집병의 비율이 높았지만, 이번에는 가급적 상비군으로 병력을 채웠기 때문에 전혀 망설이실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또 다른 참모가 사령관을 보며 강력하게 주장한다. 사령관은 주변의 참모를 둘러보았다. 대부분 지난 침공 때 숨이 막혀 죽을 뻔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다들 긴장하고 있는 티가 역력하다.
“하지만 저번처럼 광역 공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세레스타의 망할 놈이 혼자 얼쩡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우리를 유인하려는 술책일 수도 있습니다.”
참모 하나가 용기를 내서 사령관에게 건의한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사령관도 생각한다. 하지만 저 유인하려고 하는 술책 자체가 술책이라면?
“저것조차 술책일 수 있습니다. 사령관님의 말씀대로 오히려 술책을 부리지 못하도록 힘으로 누르는 것이 최선일 수 있습니다.”
마치 사령관의 생각을 읽은 듯한 한 참모가 반대 의견을 피력한다. 사령관은 부관에게 휴대한 간이 스크린에 퓨리오타의 지도를 띄우라고 지시했다.
“현재 퓨리오타 군의 위치는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장 곳곳에 피워진 연기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서 위치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령관은 다시 지도를 확인했다. 퓨리오타의 관리탑으로 향하는 길은 크게 세 개다. 나머지 소로들은 대병력이 이동하기에는 힘들다.
가장 큰 대로는 테네브리타의 병력들 모두가 충분히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길이라기 보다는 관리탑까지 이어지는 들판이다. 남은 두 길은 퓨리오타의 관리탑을 감싸고 있는 산에서 뻗어 내려온 숲에 난 길이다. 좁지는 않지만, 한 번에 많은 병력이 지나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분명 퓨리오타 방어군의 주력은 대로나 관리 탑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곧바로 관리탑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군이 레벨이 높아 쉽게 상대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저 말이 정답이다. 500 정도의 방어군 병력으로는 진군하는 길목을 차단하는 방식이 최선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좁은 길목을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참모가 말한 대로 테네브리타의 병사 레벨이 더 높기 때문에 퓨리오타 군이 최소 2배에서 3배 이상의 병력으로 공격해 오지 않은 이상 매복으로 기습을 당하더라도 금방 반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저 능구렁이 같은 세레스타 놈이 있지 않습니까? 단순하게 생각해서 저번처럼 또 이상한 술수에 당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다른 참모 하나가 반대 의견을 낸다.
“그럼, 힘으로 누르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있어서 하는 이야긴가? 한번 말해보게. 어떤 방법이 있는지?”
“일단 정찰대를 보내서 적의 주력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적이 어디 있는지도 확실히 모르고 대로나 관리탑 주변 길목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진군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 주력이 고작 500명인데. 그리고 퓨리오타 군의 실력이라면 우리가 더 잘 알지 않나. 그 평균 레벨 6짜리 두더지 새끼들이 과연 평균 레벨 20의 우리 군을 보고 칼이라도 휘둘러볼 수나 있겠나? 쫄아서 도망가는 것이 고작일 테지.”
퓨리오타 군의 레벨은 낮다. 얼마 전까지 종속되어 있던 상태의 퓨리오타 군을 지휘해 본 사령관도 그 점은 잘 안다. 숙련도도 높지 못하고 장비도 좋지 않다. 참모들의 논쟁을 조용히 지켜보던 사령관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우선 강행 정찰을 하도록 하지. 레벨이 높은 자로 200명씩 3개의 정찰대를 꾸려라. 정찰 목표는 관리 탑으로 진입하는 골짜기 입구까지. 중간에 매복이나 기습에 조심하고 장애물이 있으면 제거하도록 지시해라.”
몇몇 참모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표정이지만 사령관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는 이내 포기한다.
“지시 이행하겠습니다.”
멈춰져 있던 전역의 시계가 다시 돌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적이 움직입니다.”
퓨리오타의 관리 단말로부터 연락이 왔다. 적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움직이는 병력이 200명씩 3개로 쪼개져 오는 것을 보면 본대가 움직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찰대인가요. 하지만 정찰대치고는 병력이 많군요.”
카리나도 같은 보고를 받고 있는지라 옆에 있는 서준에게 확인하듯 말을 건다.
“아마 정찰 겸 강행 침투가 아닐까 합니다. 관리 탑으로 향하는 세 개의 길 모두에 강행 정찰을 실시해 여차하면 진입로까지 확보하려는 속셈 같군요.”
서준도 무심하게 차를 홀짝이며 카리나에게 답한다.
행성 간 전쟁에 있어 방어 측이 유리한 점은 딱히 없다. 관리탑 자체가 방어적인 기능이 없어 탑 안에 틀어박혀 농성도 할 수 없는 데다가 방어 측에 한해 부활 기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전투가 다 끝나고 비용을 지불해야 부활이 되는지라 불사의 군대 같은 작전도 쓰지를 못한다.
굳이 유리한 점이라고 한다면 관리 단말로부터 정보가 빠르게 온다는 것과 지금처럼 전장에서 차 한잔을 할 수 있다는 점일까나.
서준과 카리나는 지금 전장 한 가운데서 다과회를 열고 있었다. 카리나의 사병들이 탁자와 테이블 그리고 간이 천막까지 준비해 놨다.
퓨리오타는 차 문화가 없어 차를 얻어 마시지는 못했지만, 카리나의 모성에는 꽤 차 문화가 번성했다고 한다.
“저희 모성에는 이런 말이 전해지죠. 사랑도 전쟁도 차 한잔하고 난 이후에. 어떠세요. 저희 별이 자랑했던 최고 명차의 맛은 입맛에 맞으신지요? 관리자님.”
상당히 미묘한 맛이다. 맛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마시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미묘하다. 그것밖에 할 말이 없는 서준이었다.
“훌륭하네요.”
살면서 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것을 처세술이라고 부른다. 소멸한 모성의 최고 명차를 미묘하다고 폄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돌아가신 저희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담그신 김치라고 하는데 면전에 대고 맛없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공감 능력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역시 관리자님은 재미있으신 분이시네요. 그것보다 테네브리타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대응은 안 하시나요?”
카리나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다.
“일단 다행히도 저의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라 특별히 제가 나설 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 몸이 열 개도 아니고 개별 상황은 현장 지휘관들을 믿고 맡겨야죠.”
고양이 혀라 평소에도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서준은 필요 이상으로 뜨거운 나름 카리나 모성의 최고 명차를 후후 불어가며 호로록 마신다. 그렇게 얼마나 호로록거렸을까.
“테네브리타 제1진 서쪽 방면 진입부대 저희 쪽 1차 방어선과 접촉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뜨겁게 끊였는지 차가 아직 다 식지도 않았는데 관리 단말로부터 접촉 보고가 날아온다.
펑
접촉 보고와 동시에 서쪽 방향에서 작은 폭발음이 하나 들렸다. 시작됐군. 서준은 여전히 뜨거운 차에서 입을 떼지 못한 채 서쪽을 바라보았다.
펑, 펑, 펑
작은 폭발음이 하나둘 연이어지더니 갑자기 연쇄적으로 폭발음이 퍼퍼퍼펑하고 일어나기 시작한다.
“관리 단말님. 서쪽 현장 상황에 대한 보고가 있나요?”
서준의 질문에 잠시 답이 없던 관리 단말로부터 재차 보고가 날아온다.
“적 다수 전투 불능 확인. 적이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방금 동쪽 방면도 1차 방어진과 접촉했습니다.”
펑펑펑펑
동쪽 방향에서도 서쪽에서 들리던 작은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잘 걸린 것 같다.
“동쪽 현장 상황도 확인 부탁합니다.”
“동쪽도 적 다수 전투 불능 확인되었습니다만 적은 계속 전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음. 이러면 나가린데.
“제 병사들을 지원으로 보낼까요?”
카리나가 서준의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먼저 제안을 한다. 서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몰라 이중으로 방어선을 쳐뒀으니 아마 괜찮을 거 같습니다.”
“동쪽 방면 적. 1차 방어선 2진과 접촉 개시했습니다.”
아마 아까는 영문도 몰랐겠지만, 이번에는 좀 무서울 거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다시 관리 단말로부터 보고가 날아들어 온다.
“동쪽 방면 적 다수 전투 불능 확인. 적 물러가기 시작합니다.”
어찌 됐든 한고비는 넘긴 것 같다. 다음 준비된 여흥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서준은 조금 안심이 되는 듯 손에 있는 차를 후루룩 들이켰다.
앗, 뜨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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