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명문! 사립 낙원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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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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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사건(2)

DUMMY

“정의철 씨. 정신이 드십니까?”


낙원에서 왔다는 인상 흐릿한 남자.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유령일 거라고 정의철은 짐작했다.


“아까는 무슨 소립니까. 책임지고 복귀시켜 주겠다니.”


방금 기절했다 깨어난 사람치고 정신이 또렷했다.

정의철 또한 보통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말 그대롭니다.”

“어떻게요?”


“당신은 전세 사기 피해를 입은 1000 여 청년 가구를 구원할 영웅이 될 겁니다. 범죄 수익금을 회수해 피해자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게 되죠. 어쩌면 다시 차기 대권 주자로 발돋움할 수도 있을 테고요.”

“...내가요?”


“당신은 말이죠. 사기꾼을 속일 사기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유영이 정의철을 기용하기로 생각한 건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사기꾼 중 최고봉은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정의철은 대가 없는 보상을 믿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낙원이 얻는 건 뭡니까?”

“빌라왕의 은닉 재산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잖아요. 신병만 확보하려면야 당장도 가능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정의철은 유령을 믿지 않았다.

어디서 홍길동인 척 하고 있어. 범죄자 새끼 주제에.


“허. 나더러 낙원의 개가 되라는 말입니까?”

“아뇨. 오히려 계속 적대하는 관계로 남으면 좋지 싶은데요.”


“... 그것 역시 낙원의 개가 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부적으로는 유착 관계를 맺자는 얘긴데.”


유령이 제안한 것은 아주 기본적인 정치 전략이었다.

정의철이 모를 리가 없었다.


겉으로는 서로 물어뜯고 비난하다가도 술자리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정치인들이 한둘인가.

싸움이 표심을 부르는 법이다. 그래서 일부러 적대 관계를 연기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오해입니다. 당신을 찾아오기로 한 건 어디까지나 제 의지니까요.”

“이수정 소장의 의지가 아니고요?”


“네. 그리고 이번 임무가 끝나면 우리는 남남입니다.”

“지나친 호의를 덥석 물 만큼 내가 바보로 보입니까? 독이 든 사료는 먹지 않겠습니다.”


“우린 신뢰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요. 읽어 보세요.”


유령은 두툼한 파일을 툭 던졌다.


파일을 살펴보던 정의철이 눈이 점점 커졌다.


“이런··· 이런 씨발···!”


놀랍게도 ‘정의철 동영상’을 퍼뜨린 곳은 낙원이 아니었다.

상대 정당도 아니었다.

같은 당 소속 의원이었다.


그것도 정의철이 가장 아끼고 신뢰하던 대학 후배.


“아닙니다. ··· 아니야! 아냐! 아니라고!”


정의철은 후배에게 항상 강조했다.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주되,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하! 흐··· 흐하하하하하!”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 같잖은 충고가.

등 뒤에 칼을 꽂으며 얼마나 비웃었을까.


사자왕을 죽이는 건 코끼리가 아니다.

같은 무리의 2인자인, 같은 사자이지.


“하··· 하하하··· 나는 진짜 퇴물이 맞긴 하구만. 이딴 기본적인 전략에 당하기나 하고··· 하하하하하하!”

“작정하고 속이기로 한다면 누군들 안 당하겠습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 이런 얘기 하면 믿을까 모르겠지만 넋두리 삼아 할게요. 나는 그 날의 기억이 없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소박하게 한 잔 했었습니다.

친한 후배와 옛 추억을 되새기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1차로 마무리를 하자 했죠.

하지만 후배는 너무 아쉽다며 자기가 아는 좋은 가게로 가자고 했어요.


접대부가 나오는 곳은 조금 불편하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후배는 접대부를 다 물리고 조용히 양주나 한 잔 하자더군요.


그 뒤로는 기억이 없었다고요.

그 이후로는 유흥주점에 간 일도 없었고.


-그럼 그렇게 항변하시지 그랬나요?


어쨌든 영상에 나온 사람은 내가 분명했으니까요.

부끄러운 일 한 건 사실 아닙니까.

단호하게 거절 못 한 것도 사실이고.


-흠··· 제 생각은 다른데요. 그건 명백히 셋업 범죄입니다.


그럼 내가 후배를 믿은 게 잘못인가···.

아니, 내가 왜 의심조차 하지 않았지? 이렇게나 이해 관계가 명백한데···.


-이번 임무가 끝나면 우리 쪽에 정식 의뢰해 보세요. 억울한 사연이 있는 피해자는 모두가 낙원의 고객이니까. 아니면 뭐, 경찰에 신고하셔도 좋고요. 다만 우리 쪽에는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자가 있긴 합니다.


하. 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 으허허··· 흐흐흑···.



***


“어이. 빌라왕. 아는 대로 다 얘기해. 그러면 낙원이 털 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도록 해 주지.”


정의철의 눈빛은 인사청문회 때처럼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아니라 검사의 취조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


“예··· 예. 약속하신 겁니다.”

“내 국회의원 배지를 걸고 맹세하지. 대신 진짜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기억나는 대로 모두 얘기해.”


빌라왕은 병신이었다.

범죄 조직에게 이용당해 범죄를 도왔으니.

하지만 빌라왕이 정의철에게 사기당하고 있는 건 병신이라서가 아니다.


작정하고 덤벼드는 사기꾼은 누가 와도 막을 수 없다.

피해자는 바보라서 당한 게 아니다.

온갖 술수에 능한 국회의원조차, 가장 신뢰하던 사람에게 당하는 게 바로 사기다.


당하는 그 순간에는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

나중에 되짚어보면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속이는 사람이 나쁜 건가, 속는 사람이 멍청한 건가.


유독 사기 사건에서만 대두되는 유명한 질문이다.

토론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주제일 듯 하지만 의외로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주제.


이는 범죄 유형을 바꿔 대입해 보면 너무나도 쉽게 풀리는 문제다.


때리는 사람이 나쁜가, 맞은 사람이 약한 건가.

빼앗는 사람이 나쁜가, 빼앗긴 사람이 허술한 건가.



대한민국은 사기죄에 관한 처벌이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의견이 많다.

피해에 비해 처벌이 상대적으로 약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 문제는 법률만 개정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닉 재산이라는 게 도깨비 방망이 뚝딱! 하면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

이 문제는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


며칠에 걸쳐 정의철은 묻고 또 물었다.

태도의 변화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교묘하고 완만했다.

대놓고 취조를 하고 있는데도 빌라왕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정의철은 수차례의 교차 대조를 거친 ‘일관된 진술’을 얻어냈다.


“고생했다. 빌라왕.”

“예. 의원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약속했던 대로 여기. 네 새로운 여권이다. 약속한 시간에 준비된 차량에 탑승해.”

“예. 내일 오전 4시 정각, 건너편 편의점 쪽 골목, 43로 2563 회색 수나타. 맞죠?”


“정확해. 인천 공항에서부터는 어떻게 한다고?”

“물품 보관함 142번, 비밀번호는 9154. 가방에 든 분홍색 옷으로 환복 후 5번 출구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됩니다.”


“베트남 가서는 착하게 살아.”

“예! 의원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빌라왕이 건물을 떠나자마자 유령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의철은 온화했던 표정을 싹 지웠다.


“지금 당장 잡아넣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희망. 그리고 절망.”


“악취미군.”

“취미는 아닌데요.”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나?”

“네. 전혀요. 오히려 역겹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사람들 인생 망치는 데 일조해 놓고 자기만 쏙 빠져 나간다고 좋아하는 꼴 좀 보라죠.”


“푸. 푸흐흐흐··· 나는 생각만 해도 즐겁던데. 흐하하하하! 다음에도 불러 주면 안 되겠나?”


정의철은 이상한 곳에 재미를 붙이고 말았다.


“당신 역할은 여기까지에요. 이제부터는 진짜 전문가들이 나서야죠.”


정의철은 일단 제 역할을 다했다.

당초 목표였던 범죄 수익금 환수에는 실패했지만 실마리를 얻었으니까.

빌라왕이 얼굴 마담에 불과했으니, 배후 조직에 대한 정보를 캐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 참. 생각해 보니까 아직 완전히 역할이 끝난 건 아니네요. 나중에 피해자들 돈 돌려줄 때 얼굴 마담 역할을 해 주셔야 하니까.”

“그런데 아직도 궁금해. 그런다고 유령 자네가 얻는 이득이 대체 뭔데?”


“낙원은 억울한 사람을 돕는다는 소장님의 철학을 실천할 뿐입니다.”


‘씨벌··· 광신도 새끼가 따로 없네.’


정의철은 진심으로 이수정을 부러워했다.


‘나는 그렇게 오래 정치생활을 해 놓고도 내 편 하나 만들지 못했는데···.’



***


“유령 님. 고민이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오토 형.”


“제가 요즘 좀··· 밥값을 못 하는 게 아닌가···.”

“운전수가 신속 정확하게 운전하면 밥값은 다 하는 것 아닌가요? 빌라왕 납치 때도 얼마나 공이 컸는데요.”


“그렇기는 한데··· 렉스 형님은 공성망치처럼 화려하게 다 때리고 부수잖아요. 코치인가 뭔가 하는 그 놈도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오토는 불안했다.

경쟁 사회에 내던져진 채 오래 산 탓이었을 거다.

혹은 그의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오토를 너무 자주 비교해서 그럴지도.


오토는 차마 말하지 못할 부끄러운 속마음마저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코치가 병상에 드러누워서 다행이다, 라고까지.


“뭔가 형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에요. 경험의 다양성으로 따지자면 우리 중 제일이고. 아! 그리고 금연하셨잖아요. 그게 진짜 대단한 것 아닐까요?”


유영은 진심이었지만 오토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내 최대 업적은 금연인가···.’



···


“이번 임무 브리핑 하겠습니다.”


유영은 소장의 명령을 거절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했다는 게 맞겠지만.


사냥꾼 일로 시작해서 처단 임무, 최근에는 설계까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외부에서 보면···.

유영은 마치 소장의 후계자 교육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우선 임무는 크게 두 가지 목표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대규모 전세 사기와 관련된 범죄 조직 소탕. 둘째는 건설사 회장이 은닉해 둔 재산 탈취.”

“첫 번째는 자신 있는데 두 번째는··· 어떻게 합니까, 형님?”


“제 생각에는 오토 형이 적임자일 것 같네요.”

“예? 제가요? 어떻게요?”


뛰어난 리더는 구성원 본인도 모르는 능력을 쥐어짜내 밥값을 하도록 강제한다.

소장이 유영의 능력을 발견해 가제투 만능팔마냥 써먹는 것처럼.


“오토 형은 이미 모든 가능성을 보여 줬습니다. 저는 그걸 기반으로 이번 임무를 설계했고요.”


오토는 상당히 곤란하다.


‘아니···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내 능력을 어떻게 알고 써먹겠다는 거야.’


오토는 전혀 모르고 있다.

유영이 얼마나 단순무식한 녀석인지.


오죽하면 정의철조차 처음에는 유령의 전략을 의심했을까.

‘예? 내가요? 어떻게요?’는 정의철도 했던 말이다.

하지만 정의철은 결국 제 역할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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