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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사기 사건(5)

DUMMY

“내가 돈 터는 재주는 있는데, 전재산을 빼앗진 못해.”

“예. 일단 한 10억만 털어 주십쇼. 지금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서요.”


“10억? 우습다 야. 나 일월보살이야.”

“그럼 얼마까지 가능하십니까?”


“글쎄··· 한 30억? 아하하하, 귀신 자네, 나한테 큰 빚 지는 거야.”

“귀신이 아니고 유령입니다.”


“그런 사소한 시시비비로 시간낭비 할 텐가? 돈 뜯어달란 부탁만 하러 온 것 같지는 않네만.”

“... 진짜 용하시긴 하군요. 또 드릴 부탁은 말입니다···.”



***


“예!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조 회장의 흔들림 없는 눈빛.


일월보살은 일이 좀 싱겁게 풀린다 싶었다.


“그럼, 자네 전 재산 내놓고 사죄할 수 있겠어?”

“아··· 그것은 좀···.”


그러면 그렇지.

‘무엇이든’이라는 말에 이것저것 조건이 붙으면 무슨 소용인가.

‘나는 아무거나 먹을게.’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정말 아무거나 먹는 사람 없는 것과도 같았다.


일월보살은 말 바꾸지 말라며 호통을 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하수.

고수는 돈 빨아먹기 쉽지 않다는 걸 아주 잘 알았다.


오히려 사기를 치는 술수가 교묘할수록, 공을 많이 들일수록 좋았다.

그래야 빠는 쪽도 성취감이 있고 빨리는 쪽도 만족하는 법이니까.


노파는 핵심을 콕 짚었다.

상대방이 제 입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핵심을.


“그러니까 돈도 지키고 목숨도 부지하고 싶다, 이 말인가?”

“...예.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욕심도 아주 지랄맞군. 하지만 문제가 있네. 일월성신님께서는 피묻은 돈을 아주 싫어하셔.”

“그럼 깨끗한 사업 쪽에서 번 돈을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되지?”

“15억··· 정도 됩니다.”


“한 번 굿값으로는 택도 없는 돈이구먼.”


딱 잘라 말하는 일월보살.


조 회장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제발요. 보살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 내가 정이 많아서 탈이군. 인연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하거늘···. 쯧쯧쯔···.”


“보살님. 그러지 마시고··· 주식 처분해서 2억 더 얹어 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조 회장은 일월보살을 조르기 시작했다.

털리는 놈이 돈 알아 갖다 바치는 꼴이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기란 이런 형태이기 마련이다.

최 부장은 이를 두고 ‘부드러운 강도질’이라고 칭했다.


사기 중 가장 고급 기술은 바로 ‘믿음’을 이용한 것이다.

당하는 쪽에서 기꺼이 돈을 내놓을 뿐 아니라 돈을 잃고도 마음 상하지 않는 기술.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최상위 기술이라 하였다.


일월보살은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척했다.


“상담료까지 해서 20억이라··· 여태 정성껏 일월성신님께 치성드린 자네의 열의를 봐서라도 내가 손해 좀 봄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20억을 내놓고도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그 돈을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것은 아깝고, 무당에게 바치는 돈은 아깝지 않은 녀석들.

남의 돈 가져다가 제 돈처럼 쓰는 녀석들이 있다.



···


엄청난 규모의 굿판이 벌어졌다.


대체 몇 명의 악사가 모인 것일까. 세기가 힘들었다.

꽹과리, 북, 장구와 징 소리가 숲을 넘어 도심까지 울려퍼졌다.

굿을 도우러 온 법사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중얼 기도하는 소리가 웅장하게 깔렸다.


세습무 역할을 하는 애동제자만 스무 명.

거기에 타지에서 온 강신무까지 더해 무당만 오십이다.

그뿐인가. 박수까지 합하면 족히 팔십은 되었다.

조선 팔도의 박수, 무당들이 다 모였나 싶을 정도였으니.


그 중 단연 빛나는 존재는 일월보살이었다.

한 손에는 방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작두 계단을 타는 일월보살.

스치기만 해도 종이가 잘리는 예리한 작두를 탔다.

그 작두를 평범한 계단 오르내리듯 방방 뛰며 눈을 까뒤집고 굿을 했다.


조 회장은 연신 절하며 정성껏 기도했다.


“일월성신님. 일월보살님. 제발 구해주소서. 구해주소서···.”


어째 빌어야 되는 대상을 잘못 잡은 것 같긴 한데, 조 회장은 진심이었다.

20억을 태우면서도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굿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조되었다.

노쇠한 무당이 어찌 저리 팔팔 뛰며 신들린 듯 춤을 추는지.

그야말로 신기가 있지 않다면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법사도 악사도 세습무도 강신무도 도우러 온 박수들도 땀을 뻘뻘 흘렸다.

구경꾼은 물론 조회장의 뺨도 땀으로 번들거려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해와 달과 별을 아우르는 일월성신니이이이이임! 응답해 주시옵소서어어어어어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듯, 꺼지기 직전의 양초가 화악 타오르듯.

노파가 내지르는 마지막 한 마디가 시끄러웃 굿판을 뚫고 하늘에 닿을 듯 꽂혔다.


픽. 노파는 그대로 게거품을 물고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역병보다 지독하고 흉년보다 메마른 악귀가 붙었구나.”


노파는 일어서서 흰자를 내보이며 굵고 쇳소리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놈 조갑철! 네 죄를 네가 알면서도 목숨 부지하고 싶은 게냐!”

“아이고, 아이고··· 일월성신님. 저는 회개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습니다!”


“죽으란 법은 없는 것이니... 귀인이 올 것이다.”

“예? 귀인이요?”


“악귀에게 참패한 패배자. 그리고 무리에 속하지 못한 배신자. 마지막으로 너의 충실한 부하가 너를 구하러 올 터이니···.”

“패배자, 배신자, 부하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일월성신님!”


그러나 일월보살은 조 회장의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도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


“보살님. 정신이 드십니까?”


내리 열 두시간을 신들린 듯 춤을 춘 노파의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일월보살은 폐병 환자처럼 깊은 기침을 해댔다.


“귀인이 온다···라.”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모든 일을 일월성신님께만 맡길 수는 없네. 나도 알아 봐야지.”

“감사합니다. 일월보살님. 일이 잘 풀리면 꼭 성의를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일월보살은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였다.


조 회장은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착수금에 10억··· 말씀이십니까?”

“일월신님의 예지를 듣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어.”


“정당하게 번 돈은 이미 다 드렸습니다.”

“그건 일월성신님께 바친 거고. 10억은 이른 바 판공비로서, 내가 받는 돈일세.”


대놓고 현금을 갈취하겠단 소리.


그러나 ‘매몰 비용의 오류’를 저지르는 조 회장.

여태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끝을 봐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확실한 인맥을 소개시켜 주십시오.”

“내가 여지껏 허방을 한 번이라도 밟았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나?”


사기꾼들은 이런 매몰 비용의 오류를 적극 이용한다.

잃어버린 300만원을 받으려면 100만원을 더 내놔라, 그 다음에는 더, 더, 더···.

한 방에 큰 돈을 뜯어내려는 욕심은 하수들이나 부리는 것이었다.


조 회장에겐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예. 제발 부탁드립니다. 일월보살님. 너무 간절해서 그래요.”

“자네가 간절한 걸 아니까 10억만 받는 걸세. 두고 보게. 10억 따위는 적다고 느껴질만한 거물을 소개해줄 테니까.”


일월보살은 미래에 대한 감이 좋은 편이었으나 엄청난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럴싸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적당한 사람을 소개해줄 뿐.


하지만 보살을 숭배하는 정치인들 또한 바보가 아니었다.

굿값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일월보살이 이어준 인맥은 항상 확실했으니까.



***


조 회장의 집무실에 세 사람이 찾아왔다.

반가운 얼굴로 귀인들을 맞는 조 회장.


이 귀인들은 유령의 ‘부탁’으로 일월보살이 소개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조 회장은 꿈에도 모를 사실이었다.


와중에 유명인도 섞여 있어서 조 회장은 일월보살의 인맥이 더욱 신뢰가 갔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정의철 의원님 아니십니까!”

“으하하. 이제는 의원도 아닌데요, 뭘.”


정의철이라면 낙원에게 발치당한 호랑이나 마찬가지.

허나 조 회장은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정의철은 일월성신이 말한 ‘악귀에게 참패한 패배자’의 조건에 부합했으니까.


그러니 정의철은 조 회장에게는 아주 든든한 동아줄이었다.

나름 조 회장은 정의철에게 입발린 소리를 해 보겠다고 했는데,


“아휴, 의원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낙원 그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조 회장의 말에 정의철은 불쾌한 듯 눈썹을 씰룩일 뿐이었다.



분위기가 조금 불편해지자 조 회장은 금월 부장에게 말을 건넸다.


“하하. 최 부장. 살아있어서 다행이네.”

“예. 회장님. 저는 회장님이 허락하시기 전에는 죽지 않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회장님의 실질적인 오른팔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지! ‘나의 충실한 부하’. 하하하하!”

“금월은 망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데리고 있던 식구들을 모아 놨습니다. 거사를 치르려면 주먹이 있어야 하니까요. 모두 빵에 갈 각오가 만반이며, 준 군대급으로 완전무장 시켜 놨습니다.”


조 회장은 촉촉한 눈빛으로 최 부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네만 믿네. 이번 일 끝나면 정말 섭섭지 않게 대우하지.”

“저도 회장님을 믿겠습니다.”



“저··· 그런데 이 분은 누구···?”


조 회장이 낯선 사람에 대해 물었다.


부장은 어깨를 으쓱했고, 정의철이 답변했다.


“이 사람이 낙원을 무너뜨릴 열쇠입니다. 제가 사퇴하자마자 낙원에 입사시켜 놓은 첩자죠.”


조 회장은 의문의 인물을 물끄러미 보았다.


하얗고 잘 다려진 셔츠와 비싸 보이는 깔끔한 정장.

말끔하게 빗어넘긴 검은 머리에, 지적으로 보이는 금테 안경.


좋게 말하면 능력 있는 회사원.

달리 보면 전형적인 금융 사기꾼같은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도현입니다.”


조 회장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짝짝짝 쳤다.

세 사람 모두 일월성신님께서 말씀하신 조건에 완벽히 부합하지 않는가!


악귀에게 참패한 패배자, 충직한 부하, 무리에 속하지 않은 배신자.


‘햐. 이래서 일월보살님께는 돈이 아깝지 않다니까.’


제 3자가 보기에는 조 회장이 그냥 바보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사기란 건 본래 당하는 쪽이 몰라야 사기인 법.


그러나 이렇게까지 준비가 완벽해 보이더라도, 일은 언제나 어그러지기 마련이다.


“의원님도 믿고, 우리 최 부장도 믿는데 이 사람은 잘 모르겠네요. 뭔가 증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낙원 사람 죽이고 오면 믿을게요. 그 테레비에 나온 유령인가 뭔가는 어때요? 제깟 게 잘나봤자 총알 한 방 먹이면 껙 죽겠지. 상대편 전력도 줄이고 경고도 하고 보험도 들 겸. 좋지 않겠습니까?”


조 회장은 조폭 출신답게 ‘조폭식 증명’을 오토에게 요구했다.

무당에게 껌뻑 속았다 해서 조 회장이 머저리인 것은 아니니까.


난데없이 권총을 받아든 오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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