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상옥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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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상
작품등록일 :
2024.07.26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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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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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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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담판(談判)(3)

DUMMY

채부인을 향한 외침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힉”


채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피신처의 채가 사람들 모두 입술을 강하게 질끈 깨물었다.


“이미 아버지께서는 저를 후계자로 공표하셨습니다.”


“그럴 일 없다. 그이가 유종이 아니고 너를 후계자로 낙점했다니, 그런 거짓말을 나보고 믿으란 말이냐?”


“그건 직접 확인하시면 됩니다.”


채부인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내가 이리 당당하게 나오는 것은 실제로 유표가 유기를 후계자로 지목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숙적(宿敵)은 죽이는 게 정석이죠. 오늘 저는 여러분들을 모두 죽일 겁니다.”


“서성은 들으라.”


“네, 주군!”


“지금부터 나를 막는 모든 것은 모래 한 톨 남기지 말고 쓸어버려라.”


“충!! 신 서성!! 주군의 명 받들겠습니다.”


“반장은 들어라.”


“네, 주군.”


“지금부터 저기에 모든 생명체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말고 죽여라!”


“하!! 명 받들겠나이다.”


항상 온화하게 웃으며 살갑게 굴던 나였다. 하지만 잔인한 명령과 사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기백에 나를 알고 있던 서성과 반장조차도 놀랐고 따르는 병사들과 채가의 구성원들 역시 놀랐다.


서성과 반장이 공격을 시작하자 채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생존 욕구가 자존심을 완전히 눌러버린 것이다.


채부인은 일단 거짓 항복으로 이 자리를 모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자사의 부인으로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갑자기 유종의 손목을 잡더니 성벽에서 내려와 성문 밖으로 나오며 항복을 선언했다.


“유기야, 다른 이들은 다 죽여도 좋으니 나와 유종은 살려줘. 어찌 됐든 너의 어미와 동생 아니더냐!”


채부인의 말에 채가의 사람들은 그녀와 유종을 벌레 보듯이 쳐다봤다.


“살고 싶습니까?”


지금까지 묵묵히 나를 보좌했던 서성이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죽여야 합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저 둘은 살려주면 분명 주군께 해가 될 것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성의 말에 동의했다.


채부인은 서성을 향해 표독스럽게 외쳤다.


“어디서 주인들이 얘기하는데 무식한 놈이 끼어드느냐. 썩 꺼져라. 유기야 다른 이들 말은 듣지 말고, 가족만 생각하렴. 우리는 가족 아니더냐?”


그때 나는 다시 채부인과 유종을 향해 외치듯 말했다.


“살고 싶습니까?”


채부인은 바로 소리쳤다.


“당연히 너무나도 살고 싶다. 우리 모자를 살려만 준다면 우리는 변방에서 조용히 살겠다. 우리를 살려다오!”


“살고 싶으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크게 따라 하십시오.”


채부인은 격한 숨을 몇 차례 내뱉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분노와 살기를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결국 그녀의 몸이 내려갔고 이내 무릎을 꿇었다.


나는 크게 외쳤다.


“나는 유기의 양모이나 유기의 어린 시절부터 독살과 암살을 수도 없이 시도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채부인은 나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유기의 양모이나 유기의 어린 시절부터 독살과 암살을 수도 없이 시도한 사실이 있다!”


나는 또다시 외쳤다.


“나는 내 목숨과 유종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채가의 어린아이 수십 명을 죽으려 한 사실이 있다.”


그녀의 손이 꽉 쥐어져 주먹이 되었다. 살심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나를 천 번은 찢어 죽였으리라.


채부인은 또 내 말을 따라 했다.


“나는 내 목숨과 유종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채가의 어린아이 수십 명을 죽으려 한 사실이 있다.”


나는 유종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종, 너도 따라 해라.”


“나는 내 목숨을 위해 보살펴야 할 가족인 동생들을 허허벌판에 버리고 온 사실이 있다.”


유종은 채부인 옆에서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내 말을 따라 했다.


“나는 내 목숨을... 위해... 보살펴...야 할 가족인.... 동생들을... 허허벌판에... 버리고.. 온 사실이.... 있다.”


채부인은 자신의 처지가 수치스러워서 다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유기야, 이제 됐니?”


그때 채씨 일족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유기님! 저 사갈 같은 년은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그 외침을 시작으로 채부인을 죽여야 한다는 군중의 함성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채부인는 자신을 노려보는 일족들의 광기 어린 시선이 두려웠다. 마치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나는 저들의 자백으로 이번 유혈 사태의 원인이 채부인과 유종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을 수백 명 앞에서 명명백백(明若觀火) 밝히고 있는 것이다.


“채씨는 들어라!”


이제 호칭이 바뀌었다. 채부인은 정신이 없어 내가 채씨라고 칭하는 것도 몰랐다.


“잘못을 말했으니 이제 사과를 하시오.”


“유기야, 내가 잘못했다! 일가 여러분! 제가 여러분께 큰 잘못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채부인이 사과하는 중에 나는 반장에게 아까 도망쳐온 아이들을 풀어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그 아이들은 자신들을 향해 화살을 퍼부으라고 명령했던 채부인을 향해 돌부리와 나뭇가지를 들고 뛰어가더니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살려줘. 제발······.”


얼굴이 으깨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은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절박하게 간청했다.


“유기야, 나는 아파서 죽을 것 같아. 피도 많이 흘렸어. 빨리 치료받지 않으면 나는 죽을 것이야. 제발 살려다오.”


나는 그녀 한발 한발 다가가면서 외쳤다.


“채씨 너는 그동안의 악행으로 이미 살길이 없다. 다만 한때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유종만은 살려주도록 하마.


나는 너를 사형(死刑)에 처한다. 그리고 즉참(卽斬) 한다.”


나는 한 발자국을 더 내디디며 그녀를 단칼에 베어버렸고 채부인의 목에서 피 분수가 쏟아졌다.


***


채부인이 죽었다.


채부인은 어찌 됐든 자사의 부인이며 나의 계모이자 채가에서 영향력이 높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녀를 내가 단칼에 배어버린 것이다.


물론 명분은 나에게 있다. 채부인이 모은 사람 앞에서 주기적으로 나를 암살을 시도했다는 자백했고 채가의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그런다고 하더라도 내가 채부인을 죽여버릴 거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유종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침을 질질 흘렸고 채가의 구성원들도 막상 채부인이 죽자 놀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쏠려 있을 때, 갑자기 채염이 나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채염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녀도 흉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유표의 제안을 승낙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면 평생 아이 버린 어미의 낙인을 안고 살아야 할 운명도 예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흉노를 벗어나 원래 살아가던 중원으로 너무나도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헤어지고서라도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아무 의욕도 없었고 희망도 없었다. 그냥 이곳에서 평생 화초만 가꾸며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기가 딸을 데려와 주겠다고 약속을 하니 정말 나의 자식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마음 한구석에 싹텄다.


저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홀로 형주의 최고 권력자인 채모를 무너트린 인물이다.


그런 자가 호언장담하는 말이니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분명 그럴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말이다.’


채염은 다시 딸의 얼굴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것이라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채옹의 유산!


채염의 아버지인 채옹이 저술했다던 약 사천권들은 난리 통에 모두 소실되었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채옹의 지식이 사라진 것에 대해 전국 모든 유학자가 원통해하기를 마지않았다.


채염은 그 사천권을 전부 암기하진 못했지만, 다행히도 그 중 약 사백 편을 암송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하북을 평정한 조조가 채염을 흉노에서 데려온 후 채옹의 저서에 관해서 묻자, 채염은 약 사백 편 정도를 암송할 수 있다고 했다. 조조는 채염에게 십여 명의 관인을 보내 채옹의 저술을 복원토록 했지만,


채염은 남녀유별을 들어 관인들을 거절하고 종이와 붓만 받아 혼자서 채옹의 저술을 복원해 조조에게 보냈고 그 중 오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채염이 이곳 형주에서 채옹의 저서를 복원한다면 채옹의 정신이 형주에 뿌리 내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국 유학자들이 환호하면서 형주로 모일 것이다.


그것은 유기의 앞으로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유학자들이란 이 한(漢)나라를 깊은 뿌리에서 떠받치고 있는 정신과도 같다. 그런 그들이 모이는 곳이 한나라의 중심이며 그건 큰 명분이 되는 것이다.


명분(名分)이 쌓이고 쌓이면 그건 필연(必然)이고 되고 필연이 쌓이고 쌓이면 그건 ‘운명(運命)’이 되는 것이다.


‘왕이 될 운명(運命)’


채염은 큰절을 올리며 생각했다. ‘내가 그를 왕으로 만들어 주리라.’


“채염님, 일어나시오! 아이들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면 추후 아이들이 도착했을 때 해도 늦지 않소.”


“제가 공자님께 감사한 점은 바로 ‘희망’입니다.”


채염은 고개를 들며 나를 꼿꼿이 바라봤다.


“큰절 따위는 저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 포기하고 썩어 문드러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던 제 마음속에 작은 희망을 싹트게 해주신 그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채염은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내 눈을 뜨겁게 바라보았다.


“공자님, 저에게 희망을 주신 것으로 죽어있던 저를 한번 살려주셨습니다. 만약 아이까지 무사히 저에게 데려와 주신다면 저는 한(漢)나라의 정신(精神)을 공자님께 드리겠나이다.”


채염은 그 말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나는 채염의 행동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나는 명을 내렸다.


“지금 바로 채가의 모든 구성원은 피신처에서 떠나 본가로 복귀하여라. 혹시 이 피신처에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즉결 처분하도록 하겠다.”


“반장은 채가의 구성원들이 이동하는 일의 전반을 책임지고 통솔하도록 하라.”


“하!! 주군”


반장은 큰소리로 복창하며 채가의 피신처 안으로 병사들을 대동하고 들어갔다.


“서성은 채부인의 시신을 수습하고 유종을 형주자사부로 연행하거라!”


“충!! 주군 명 받들겠습니다.”


나는 명을 내리고 채가와 호족 연합들이 싸우는 전장으로 급히 이동했다. 후계자 문제는 확실히 정리되었으니 이제 채모를 끝장내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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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전격(電擊)(2) +2 24.08.20 226 7 12쪽
19 전격(電擊)(1) +2 24.08.19 234 8 12쪽
18 만왕(蠻王) +2 24.08.16 223 8 10쪽
17 이질(痢疾) 24.08.15 225 6 10쪽
16 무릉(武陵)(7) 24.08.14 231 7 12쪽
15 무릉(武陵)(6) 24.08.13 225 7 12쪽
14 무릉(武陵)(5) 24.08.12 244 7 11쪽
13 무릉(武陵)(4) 24.08.09 260 8 12쪽
12 무릉(武陵)(3) 24.08.08 265 8 12쪽
11 무릉(武陵)(2) 24.08.07 283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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