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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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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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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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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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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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장례준비 (2)

DUMMY

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말없이 입을 커다랗게 떡 벌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바실리쿠스는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커다란 뱀의 입속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보게 될 줄이야. 저건 마치.... 뭐랄까, 저걸 뭐라고 해야 하지? 그래, 난초. 마치 난초를 연상하게 생겨먹은 뱀의 아가리는 바실리쿠스 같은 건 한 입에 삼켜버릴 만큼 거대한데, 어쩐지 저게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저게 나를 잡아먹으려 드는 건 아니겠지.'




그러던 차에 그의 시선에 뭐가 딱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는 피부에 검버섯 핀 노인이 온몸에 점액을 뒤집어 쓴 채 떨어져나오고 있었다. 뱀은 노인을 바닥에 내려놓고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버렸다. 바실리쿠스는 근처에 있던 나뭇가지를 들고 노인을 쿡쿡 찔러보았다. 보아하니 숨은 쉬는 것 같았다.




그 때 노인의 손이 나뭇가지 끝을 홱 붙잡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고, 마침내 온 가마욱스 땅에서 그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제가 흐리멍덩한 눈을 홉뜬 채 그를 쳐다보았다. 그 눈은 개구리나 도마뱀처럼 옆으로 닫히는 투명한 눈꺼풀이 속에 하나 더 들어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징그러웠다.




"넌 누구냐?"




사제가 말했다.




"넌 누군데 대낮에 사람을 불러놓고 나뭇가지로 콱콱 찌르고 있냐?"


"안녕하세요, 사제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사제는 나뭇가지를 뺏어서 그걸로 땅을 짚고 뒤뚱뒤뚱 일어났다.




"노친네한테 건강 물어보는 게 제정신 박힌 놈은 아니구만."




중간에 나뭇가지가 부러질 뻔했다. 바실리쿠스는 뻘쭘히 서있다가 그녀를 받쳐주면서 자기가 누구인지 밝혔다. 그러자 사제가 눈빛을 조금 밝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네가 바실리쿠스냐?"


"네. 기억하시죠? 사제님이 이십 몇 년 전에 제 세례명을 지어주셨잖아요."


"그래, 그랬었지. 기억이 난다, 그래." 크수스람포르는 기억의 어둠속을 호미로 살살 파해치는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녀는 길게 내려오는 회색 양모거적과 머리에 쓴 삼배모자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발도 맨발이었다. 그녀의 모자는 원래 얇따막한 상아색이었으나 본인이 세례를 내려준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머리에 털실매듭을 한 땀씩 지었기 때문에 거의 수북한 털모자가 되어있었다. 원래 색실이었던 것은 염색이 바래고 바래서 서로 구분이 안 되는 칙칙한 색들로 변했으나 군데군데 아직 선명한 실들이 남아있는 걸 보면 최근에도 그녀의 마음을 비통하게 만든 일들이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날은 하늘에 돼지자리가 선명하고 그 속의 사르가스 별이 우뚝 선 날이라 신화 속 돼지 영웅의 이름을 따서 네 이름을 바실리쿠스로 지었단다. 또 너는 부모가 없었으니 그 때 네 목숨을 살려주고 대신 죽었던 남자의 이름을 따서 성을 비스콘티로 지었었지. 그게 벌써 20년 전이란 말이냐?"




크수스람포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다가와 양 손을 맞잡았다. 그녀의 쭈굴쭈굴한 주름 속에는 아직 뱀의 침 같은 액체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쪼끄만 애가 이리 돼지가 다 됐다, 야. 애들은 잘 있나?"


"예, 그럼요. 다들 잘 있죠. 전에도 몇 번 왔었잖아요. 올 때마다 그런 얘길 하시네요."




바실리쿠스는 근처에서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한 여자가 젖은 머리카락을 미역처럼 축 늘어놓은 채 물 속에서 기어나오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저 여자가 아까의 그 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알몸이었는데, 몸의 물기를 대충 훑더니 돼지 방광으로 만든 주머니 속에서 옷을 꺼내 입은 다음 이쪽을 흘끗 보고는 머리의 물기를 꼭꼭 짜냈다. 바실리쿠스와 사제가 마을 식구들에 대한 안부를 나누고 있을 때 여자는 터래를 둔기처럼 잡고 휘둘러서 여분의 물기마저 전부 날려보냈다. 그런 다음 사제의 옆에 다가와 양손을 앞에 모으고 섰다. 여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사제가 하는 말마다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주변을 살피는 것 외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바실리쿠스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설명하자 한동안 그들은 바람 부는 늪지대에 서서 침통해했고, 함께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사제는 남들 몰래 장례식을 치르려면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실리쿠스는 그들이 사는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다. 그 집은 깊은 늪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크수스람포르가 오늘은 집에서 묵으라는 말을 하자 그 옆에 있던 여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옷을 다 훌렁 벗고는 그 옷들을 아까의 그 주머니 속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 울창한 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잠시 후, 그 속에서 커다란 뱀이 한 마리 튀어나와 그들을 입 속에 삼켜넣고 다시 늪 속으로 들어갔다. 바실리쿠스는 온몸에 점액을 뒤집어쓴 채로 차가운 돌바닥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거대한 뱀은 허름한 집 옆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그 눈치를 보다가 집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안쪽에서는 저녁식사가 차려지고 있었다.






저녁쯤 시간이 되어오자 숲은 응달이 영글었다. 쿠미누스는 집에 오게 된 건 좋지만 아마 늦은 밤이 다 되어야 도착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좀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예상보다 빠른 도착이었고, 때문에 아마 하인들이 방에 불을 잘 때놓지 않았을 것이다. 식사는 차갑게 식어있고 아마 촛불도 다른 곳에서 빌려와야 하리라. 그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속에 난 길은 벌렁거리고, 이제 막 나무들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 지평선은 복숭아처럼 예쁜 분홍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쿠미누스 사제는 마지막으로 복숭아를 먹어본 게 언제였던지 생각해보았다. 6년 전 추기경의 부름으로 교황청 안덴치아에 잠깐 갔을 때 그곳 정원에 제철로 달린 복숭아를 밤에 몰래 서리해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복숭아가 가장 맛있었고, 같이 서리하러 갔던 다른 촌구석 사제들도 그 말에 동의했다. 마침 어깨가 서늘한 여름밤이었다. 복숭아 같은 걸 만들 줄 아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


그나저나 집에 가봤더니 윌코지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그저 잠만 자고 있다면 그건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는데.




'전능하신 하나님, 이렇게 또 저의 마음에 삿된 기운을 집어넣는 악마가 근처에 도사리고 있는가 봅니다. 숲이란 녀석은 아주 먼 고대의 옛날부터 못된 것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쿠미누스는 당신을 믿고 이 길을 걷겠습니다. 또한 윌코지 그 녀석이 자기 마음대로 놀고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제가 돌아오는 이 밤날에도 마음놓고 잠을 자고 있다면, 이 또한 주시는 시련인 줄 알고 차라리 녀석에게 따뜻한 포도주를 한 잔 허락하겠습니다.'




쿠미누스는 발걸음을 제촉했다. 허나 자꾸만 그저께 있었던 일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이, 쿠미누스 사제, 교구 관리가 어려워?"




아무리 생각해도 주교가 그리 말한 건 너무한 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고명한 동료들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었으니 말이다. 요 조막만한 마을에 오세니파 이단이 한 달에 세 건이나 발생한 게 왜 그의 잘못이란 말인가? 그것도 자세히 알아보니 놈들이 으레 포교용으로 하는 달콤한 말들을 듣고 그저 좋은 말이다 하여 사제한테 쑥덕거린 게 전부였다.




'흙 만지는 사람들이 뭘 안다고 교리를 부정하겠습니까?'




분명 쿠미누스는 주교에게 그렇게 항의했고, 마침 가져온 조사 보고서를 들이밀었다. 빈크리드는 그 순간만큼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대도 그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이 모인 그곳에서 대놓고 창피를 줬다.


대주교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빈크리드는 사정을 이해해도 자기가 관리하는 주교구에서 자꾸만 사건이 발행하는 분위기가 향후 본인의 출세길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한 게 틀림없다. 그래서 쿠미누스를 본보기로 삼은 것이다. 그래, 그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리가 없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이 근처가 평소에는 바빠서 잘 돌보지 못하는 지역임을 깨닫고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어차피 늦을 거면 새벽이든 밤이든 다를 게 없고, 차라리 노숙을 해도 상관이 없다. 그렇게 쿠미누스가 탄 구렁말이 숲을 벗어나 한가로히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풍경이 드러났고, 폭신폭신하게 내려가는 자그마한 언덕길과 그 아래 조막만한 집들이 보였다. 햇살은 느릿느릿 기어가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쿠미누스는 지금 자기들이 원래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곧장 시종에게 눈치를 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스바로치? 왜 우리가 원래의 행로에서 벗어나야 했던 거지? 정말 믿을수가 없군. 네가 네 길을 제대로 알고 나를 위하여 성심성의껏 안내하였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반론이 있느냐, 스바로치, 이 게으르고 나태한 자야?"




해가 서산으로 저물고 있었다. 쿠미누스는 스바로치가 뭔가 변명을 하거나 버릇없는 소리를 할 것에 대비하여 입속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바로치는 냅다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회당 앞에서 기도하듯이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쿠미누스 사제님. 저는 사제님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요. 그러니 이리 부탁을 드립니다. 저희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상에 누워 끙끙 앓고 계신데 뭔 약을 드려도 차도가 없습니다. 지금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고 계셔요. 학식이 있는 분이라 들었으니 제발 한 번만 저희 집에 들러주셔서 어머니를 봐주세요. 오늘밤 사제님의 밥과 묵을 자리는 제가 책임지고 봐드리겠습니다."


"그게 지금 어디냐!"




쿠미누스가 외쳤다.




"지금 당장 가보자!"




쿠미누스는 스바로치의 안내를 받아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도중에 멈춰서 스바로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라."


"네?"


"잡아."




스바로치는 그 손을 흘겨보았다. 크고 단단한 강골이었다. 손톱은 굵었고, 뼈마디가 울퉁불퉁한 데다 굳은살이 박혀있었다. 못 알아듣고 가만히 서있으니 사제가 쓰읍! 소리를 냈다.




"잡으라고, 인마!"




스바로치는 어쩔 수 없이 게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다시는 네 이득을 위해 나한테 거짓말을 하지 마라. 내 말 알아들었냐?"




스바로치는 알겠다는 말을 세 번이나 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들은 다시 언덕길을 내려갔다. 저녁 하늘에 별이 떠오름과 동시에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새까만 산 위로 야생 기러기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기러기들은 뻐꾹, 뻐꾹, 하고 아주 슬프게 울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사제님. 집이 누추하지만 그럭저럭 하룻밤 지낼 정도는 될 거예요."




집은 외딴 곳에 있었다.




그 허름한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쿠미누스가 깨달은 건 병상에 누운 어머니 따위는 거짓말이었으며 이곳은 집도 아니고 집의 꼴만 하고 있는 버려진 창고라는 사실이었다.




쇠칼을 꺼내든 스바로치가 뒤에서 외쳤다.




"이 사제 놈아, 너는 우리 마을을 잘 보살펴주지도 않은 주제에 이단심문관을 불러서 우리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살코기는 맛있었느냐?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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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6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7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5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6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8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9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8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7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7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8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7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2 1 11쪽
»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8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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