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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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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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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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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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탓합니까

DUMMY

바실리쿠스는 쿠미누스의 말을 따라 그로가네를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지금 그 사람은 명령에 따라 근처 산림을 수색하고 있었으니까.




적당히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하는 수 없이 돼지우리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늑대소녀가 홀로 돼지우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늑대는 적응이 빠른 편이었다. 처음 올 때만 해도 꼬질꼬질하고 두 눈은 시퍼렇게 뜨던 게 이제는 어엿한 한 명의 돼지치기로 가끔식 돼지들을 몰고 숲으로 가기도 한다. 다른 식구들은 어디들 갔냐고 물으니 모르겠다는 말만 했다. 바실리쿠스는 의자에 걸터앉아 양말을 벗고 새것으로 갈아신었다. 그러면서 보니까 아이는 그에게서 등을 돌린 채 뭔가를 숨기는 눈치였다. 바실리쿠스가 고개를 쭉 빼면서 물었다.




"근데 너 지금 뭐 하니?"




아이는 여전히 두 손을 뒤로 쭉 빼고 있었다. 약간 실랑이를 벌인 후에 그것이 뭔지 뺏어서 볼 수 있었다. 짐승의 커다란 발톱이었다.




"이게 뭐야. 너 왜 이런 걸 들고 다니냐"


"근처에 떨어져있던 걸 주워온 거예요. 어디 근처에 사는 늑대가 며느리 발톱이라도 떨어뜨렸나 보죠 뭐."


"너 같은 꼬마애가 이런 뾰족하고 위험한 물건을 들고 다니게 내가 놔둘 것 같으냐?"




그런 말이 무색하게 바실리쿠스는 아이에게서 발톱을 도로 빼앗겼다. 아이는 버릇없게 우리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바실리쿠스는 작게 욕지기를 내뱉고는 밖으로 나와 평소처럼 돼지들을 몰고 다니다가 다시 돌아와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밖에 나갔던 식구들도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말레이카와 민토네는 바실리쿠스를 조금 겸연쩍게 대했다. 바실리쿠스는 그 태도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구석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불가에 양말을 말리는 척을 했다.




크수스 람포르가 얘기한 시간이 되자 하늘은 삽시간에 으슥해졌다. 오늘은 별자리가 흉한 편이지만 죽은 망자를 떠나 보내기에는 길일인 편이다. 가레랑의 영지에서 울타리를 빠져나와 조용히 산과 들, 계곡과 언덕을 넘어 울창하고 까막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가 까맣고 작은 점처럼 보였다. 가까이 있어도 굳이 소리를 내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말레이카는 뒤늦게 도착한 편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어느 순간 사제가 당부했던 말을 떠올리고 어둠 속에서 핫! 하며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을씨년하고 식구들은 모두 나간 뒤였다. 오로지 말을 할 줄 모르고 사람으로 변할 줄도 모르는 가축 그 자체인 돼지들만이 그녀와 부대껴서 한 방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밖으로 달려나가 문을 닫고 구름 뒤에 숨은 달을 쳐다보았다. 아직 그렇게까지 늦은 시간은 아니다. 그녀는 볼에 묻은 침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아무래도 요즘 일이 많아서 피곤했던 모양이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다들 나를 흔들어 깨우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갈 수가 있어?'




사실 식구들은 그녀가 돼지들 사이에 끼어있어서 보이지 않기에 먼저 간 줄 알고 나온 것이다.




그녀가 이제 막 발을 서두르려던 차에 돼지치기 숙사에서 숨소리가 소근소근 들려왔다. 늑대아이가 깨끗한 옷을 입은 채 돼지치기의 침대에서 팔다리 사방으로 쭉 뻗은 채 한잠을 자는 중이었다. 이 녀석은 고약하게도 빈부미의 그 말하기 상스러운 부위를 모질게 물어서 다치게 해놓았다. 그땐 그저 엄살피지 말라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긴 하였으나 이리 대짜로 배를 까놓고 있는 보니 얄미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요 녀석은 왜 데려가지 않았을까?'




사실 이 아이도 뒤에 남은 식구들은 먼저 간 말레이카가 같이 데려간 줄 알고 굳이 찾지 않은 것이다.


말레이카는 문간에 서서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얘, 너는 왜 여기서 혼자 자고 있니? 오늘 밤에 다들 모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어?"




아이는 대꾸없이 일어나 짜증스럽게 눈만 부볐다. 말레이카는 아이의 손을 앙 물고 일어나라며 잡아당겼다.




"이러는 거 좋지 않아. 잠 좋아하는 게으름뱅이로 밉보여서 왕따 당할 일 있니?


"어디 가는데요."


"오늘이 영감님 장례식 있는 날이라고 말하는 동안 네 귀는 뭘 하고 있었어?"


"내가 거길 왜 가요? 그 죽은 돼지는 우리 할아버지도 아닌데."




말레이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요 당돌한 꼬마가 하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지금 거기 모이는 사람들은 자기 할아버지라서 가는 줄 아니? 식구들이라고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 하나 빠지는 데 없이 다 가는데 너 하나 빠져서 안 가면 뒤에서 어떤 말을 들으려고 그래."


"난 여기 원래 있었던 식구도 아닌데 왜 자꾸 이리저리 끌고 데려다니려고 하는데요. 날 좀 내버려 둬!"


"이왕이면 다같이 오손도손 가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씨를 몰라줄 생각이니?"


"그러니까 내가 거길 왜 간답니까. 아주머니, 제가 정말 부탁하는데 지금은 저를 잠이나 자도록 내버려두고 혼자 가세요. 정 혼자 가는게 싫으면 저 돼지들 아무나 붙잡고 가시던가요, 거 참."


"요 쪼만한 게, 아까부터!"




아이가 짜증을 내자 말레이카가 되려 빽 소리를 지르니 그 바람에 본인도 어느덧 사람으로 돌아와 있는 줄도 모르고 바짝바짝 성을 냈다.




"쥐방울만한 게 자꾸 말대꾸를 해. 너 자꾸 뭐 이리 말이 많은 것이냐! 뭐, 뭐, 내가 뭐, 어디 끌고가서 너를 잡아먹으려는 것도 아니고 식구들의 행사니까 너도 잘 보일 겸 따라오라고 같이 데려가 주는 것인데.... 착각하지마, 니가 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널 데려가 주는 거야! 됐어! 오지마! 평생 건드리지 않고 혼자 살게 해줄 테니까 지지리 늙어서도 따돌림받던 말던 알아서 잘 먹고 잘 살아라."




말레이카가 문을 박차고 나와 씩씩거리며 길을 내려가는데, 여름은 밤바람이 차고 찼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니 저 멀리 쥐방울만한 게 멋쩍게 따라오는 게 보인다.




"흥. 올거면 오든가."




그녀는 중얼거리면서 숲을 향해 막 가버린다. 좁아지고 멀어지고 하던 것이 도착할 즈음엔 어느새 옆에 딱 붙어서 밤눈에 길을 살피며 같이 왔다. 이 숲은 역시 반딧불이가 많다. 말레이카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은 바실리쿠스를 발견하고 아는 채를 할까 고민하다가 뒤에서 따라오던 늑대아이와 부딪히고는 놀라서 소리를 냈다. 그 바람에 바실리쿠스가 돌아보았다. 그 옆에서는 아직 이 모든 일들의 진상을 잘 알지 못하는 빈부미가 동생을 즐겁게 해주려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면서 혼자 푸짐하게 웃고 있었다. 역시 이 양반은 지금 우리가 뭘 하려는지도 모르는 채 오라고 하니까 그저 따라온 게 분명하다.


말레이카는 우물쭈물 다가가서 웃으며 한 마디를 건냈다.




"오빠들은 왜 여기 있어요."




바실리쿠스는 그냥이라고 우물거렸지만 빈부미는 할 말이 많았다. 그는 먹고 쌀 때가 아니면 거의 잠을 잤고, 그마저도 잠결에 비몽사몽해서 말을 걸어도 눈 끔뻑 하며 돌아볼 뿐이었다. 깨어있는 동안은 자면서 못 한 말들을 다 하려는지 저렇게 말이 많다.




"그러게 말이야, 요 바실리쿠스 녀석이 오늘따라 기분이 꿀꿀한 모양이야. 그리고 나는 꿀꿀거리는 돼지지! 평소처럼 식구들하고 말을 하면서 웃고 떠들지 않고 이렇게 외로운 숲속에 죽 치고 앉아있다니,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지. 보나마나 쿠미누스 사제, 그 땡중녀석과 관련된 일이 분명해. 내 예전부터 누누히 말하지 않았느냐, 사제라는 것들은 결국에 너를 돼지치기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니까? 바실리쿠스, 이 형님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여기서 쭉 혼자 외롭게 앉아 있었겠지? 너는 정말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아닌 게 아니라 바실리쿠스는 정말로 빈부미가 뭐라 말할 때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매는 왜 이리 늦게 오시는가. 평소답게 똑 부러지지 않고 늦잠이나 자버리다니, 그래 놓구선 평소 나한테 그리 잠만 퍼질러 자댄다고 잔소리를 해댔단 말이야?"




말레이카는 대꾸하지 않고 쓰게 웃으면서 넓은 공터 쪽으로 갔다. 반쯤 동물인 것들은 반딧불이 빛에만 의지해도 밤의 가까운 부분 정도는 훤히 볼 수 있다. 말레이카는 그곳에서 숲속의 다른 식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잠시 혼자 있었다. 이 때 안나 (25화에서 가레랑을 옹호하는 클리셰한테 면박을 줬던 그 사람. 지금 이 졸린 밤에 숲속에서 모여야 하는 것에 상당히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어디 누구한테 한바탕 풀어놔야 직성이 풀리겠다고 소심하게 생각하던 와중에 말레이카를 발견했다) 가 걸어왔다. 말레이카는 또 피곤해지겠다고 생각하며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말레이카 언니, 조금 늦었네. 언니를 찾아다녔는데, 이게 뭐야. 아예 자리에 없는 줄 알았으면 다리 아프게 돌아다닐 일도 없었을 텐데."


"그게 어디 내 잘못이라고 애먼 사람을 허물하는 거니?"


"언니도 참 내 마음 알면서 허물이라니 말을 심하게 해." 안나를 땅바닥을 부리로 쑤시면서 도리질을 쳤다. "아무래도 졸려서 마음이 예민해져 있었나 봐."




이 늦은 밤에 장례식 할 일이 없었으면 나도 굳이 그런 말을 했겠느냐는 미묘한 짜증이 깔린 말이었지만, 말레이카는 꾹 참기로 했다.




"졸리면 잠시 쪽잠이라도 자지 그러니."


"언니 난 몸집이 작잖아. 나같은 애들은 없어져도 사람들이 눈치도 잘 못 채요. 어디가서 한잠 자다가 늦으면 무슨 욕을 먹겠어."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실리쿠스 아저씨는 어디있어?"


"저기 있더라. 왜?"




안나는 얼버부렸지만 설마 그 사람이 뻔뻔스럽게 이런 자리까지 왔으려나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 더 말을 해보려다 더 이상 바실리쿠스 얘기로 대화를 끌었다간 본인도 말실수를 하게 될 것 같아서 대충 작별인사를 하고 멀어졌다.




같은 시각, 숲의 더 깊은 곳에서는 황매화와 철쭉 봉우리들 사이로 잔잔한 바람이 불어나부끼고 있었다. 숲은 깊을수록 반딧불이가 더 많았고 이 근방은 아예 흐린 낮처럼 환하다. 그곳에 영지의 터줏대감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중앙에 죽은 돼지의 사체를 두고 둘러앉아 이리 보고 저리 쓰다듬고 하면서 한창 울음소리를 냈다.




"가레랑은 대가를 치러야 해!"




늙은 염소 모로헤그가 말했다.




"사람을 이리 처참하게 만들어놓고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수는 없어."


"우리 모두 언젠간 일어날 줄 알고 있었던 일이잖아요. 누굴 탓합니까."




민토네가 젖은 눈으로 대꾸하자 땅바닥에 힘없이 모로 누워있던 늙은 개가 잠시 고개를 들었다.




"도르헤 영감은 지금까지 남아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어. 그분이 젊고 건장하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근방의 식구들이 훨씬 많았고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가축들과 교류하며 살았다고 하지. 지금 생각해보니 영감은 머리가 제정신일 때는 항상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곤 했었어. 얼마나 풍족하고 재미가 있었는지, 돼지의 몸으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도 길 잃은 돼지를 잡으려고 드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이야. 그 양반 노망이 들어서 마을을 헤집고 다니던 것도 무리는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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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5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5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6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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