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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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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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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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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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DUMMY

"바실리쿠스." 잠시 후에 상황을 파악한 발라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놔줘요."




바실리쿠스는 수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다가 지금 본인의 행동이 남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깨닫고는 벌벌 떨면서 그녀를 놔주었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졌다. 허나 그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발작하듯 다시 달려들 기세였다. 발라리도 무서워졌다.




"당신은 정말 비겁한 사람이에요,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지금까지 제가 당신을 싫어했던 건 단지 천박한 몸가짐과 더러운 옷에 청승맞은 행동뿐이었죠.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런 당신의 모질한 행동들이 천성의 악함을 증명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발라리는 슬프게 고개를 외로 돌린 채 한손은 품 속에 다른 한 손은 바닥을 짚고있었다. 언젠간 이런 일이 일어날 것도 예상은 했다는 듯이 침착한 어조였다. "바실리쿠스라는 사람이 이렇게 비겁하고 비열한 사람이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당신을 잘못 봤었나 봅니다. 그렇게까지 몹쓸 짓을 하고 싶다면 당신의 의지대로 한 번 해보세요. 그렇다고 내가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고요. 지금 내 품 속에 들어있는 게 뭔지 알면 지금의 행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겁니다. 나한테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오면 그 즉시 눈알을 파먹어드리겠어요."








"거칠게 대한 건 미안합니다, 발라리 수녀님. 저한테도 사정이 있어서요."




바실리쿠스가 안달복달 나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마는 땀으로 번들거리고 목소리는 속으로 꺽꺽 들어갔다. 발라리 못지 않게 그 역시 오질나게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죄송하지만, 오늘 밤에 대한 일들은 부디 아무에게도 얘기하셔서는 안됩니다. 제가 여기까지 당신을 끌고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수녀님이 우려하는 그 비열한 짓이 뭐지 저도 예상은 가는데요, 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는데,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그런 눈초리로 저를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수녀님은 지금 저를 뭔 망나니나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보고 계신 듯 한데 그렇게 생각하셔서는 안된다니까요? 제가 지금 당신한테 뭔가 몹쓸짓을 하려는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애초에 이 밤에 여기서 이러고 있었겠습니까? 당신이 언제 여길 지나갈 줄 알고 제가 선생님을 미행이나 납치를 하려고 계획을 한단 말입니까? 제발 조금이라도 생각을 더 해주세요."


"...그렇다면 당신은 왜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죠? 저 야만적인 사람들은 뭐고요? 왜 저렇게 단체로 동물같은 소리를 내면서 씻는 건데요. 무슨 의식인가요?"


"저 사람들은 ...그냥 씻는 거죠. 예. 씻으면 안됩니까?" 바실리쿠스는 사람이 얼버부릴 때 내는 그런 소리를 냈다. "사람이 오랜만에 찬물 맞고 그러면 신나서 끽끽거리기도 하는 건데 뭘 그러세요? 그러다가 네 발로 걷기도 하고 그런 거죠. 아니, 사람들은 뭐 이 밤에 개울가 와서 멱 감으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답니까? 수녀님, 당신은 이 지방 사람이 아닌 데다 수녀원에 묶인 몸이니 잘 모르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까슥까슥한 밤에도 갑자기 온몸이 가렵고 따가워지는 바람에 단체로 옷 벗고 계곡이 있는 산으로 뛰쳐나가고 그런 겁니다. 우리 지방의 관습이고 타지에서 온 분들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제 말을 이해 하시겠어요?"




바실리쿠스는 한바탕 장광설을 늘어놓은 뒤에 알아달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죄다 깜깜한 마당에 눈초리고 뭐고 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들 남녀 사이에 찌륵거리는 밤과 어두운 산새소리 외에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겨땀이 식어서 줄줄 흐르는 시간동안 긴장과 고통으로 벌벌 떨리는 바실리쿠스의 호흡만이 고욤나무 사이 초승달을 배경으로 헐겁게 흐물거렸다. 마침내 발라리가 입을 열었다.




"....나쁜 마음을 먹고 내 몸을 잡은 게 아닌 거죠?"


"당연하죠! 그 점만은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정말! 당신이 조금이라도 소리를 지를까봐 내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지 아십니까? 저 사람들이 지금 당신이 여기 있는 걸 알면...."




바실리쿠스가 돌연 수상하게 말을 멈추었지만 그 행동은 발라리의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녀 역시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라.




"그럼 됐어요.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나도 부탁할테니. 나중에 누가 물어봐도 나를 여기서 봤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바실리쿠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라리는 여전히 덤불 사이에 비스듬히 누운 채 양팔로 온몸을 감싸안고 있었다.




"그러면... 내려가시죠... 수녀님. 제가 안내를 해드릴까요?"


"내 갈길은 알아서 갈 수 있어요. 먼저 가세요. 당신이 먼저 가면 나도 갈거에요."




바실리쿠스는 잠시 수풀 사이에 쓰러지듯 앉은 수녀를 가늠해보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앙금은 평생 고쳐먹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발라리 수녀는 애초부터 그를 지독하게도 싫어하던 사람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생각해볼 때 그닥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가 냉큼 뒤돌아 가려고 하자 발라리가 다시 불렀다.




"왜 그러시죠?"


"정말 나를 본 걸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죠?"


"그래야죠."


"누가 물어도 말하기 없기에요. 알았죠."


"그렇게 하자고 했잖아요?"




그렇게 대답하는 바실리쿠스의 시야에 이제서야 그녀가 수녀복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왜 이밤중에 수녀가 수녀원 밖에 나와있는지, 그리고 하필이면 이 산에서 그와 마주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 등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뒤돌고 선 바실리쿠스의 두 눈이 의심으로 가늘어졌다.




"수녀님 설마 지금..."


"왜요?"


"...아닙니다."


"그래요. 그거면 됐어요. 잘 가요 바실리쿠스. 그동안 내가 못되게 굴었다면 미안해요. 그리고 아까 그렇게 모욕적인 말들을 했던 것도요. 이거 참 부끄럽네요."






발라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때면 늘 그랬듯이 나이답지 않게 엄숙하고 고귀한 티를 내면서 무릎의 흙을 털었다. 바실리쿠스는 여기에서 뭔가 더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좀 전에 했듯이 냉큼 뒤돌아 자기 갈길로 돌아갔다. 그리고 전보다 더 삼엄하게 파수를 서면서 그래도 지금 자기한테 걸렸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냐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돼지치기가 사라지자 발라리는 일어나 다시 첩첩산턱을 오르기 시작했다. 뒤쪽에서는 아직까지도 물장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서로 약속을 한 게 있으니 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 소리들이 어쩐지 섬뜩하게 들리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산마루에 오르자 적당한 근처 바위에 걸터앉고 잠시 쉬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본 뒤 품속에서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비밀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글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수십번도 더 읽어보았기에 단지 읽는 시늉만 했을 뿐임에도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발라리는 이전에도 수어번 그랬듯이 소리내어 다시 읽었다.




"발라리, 나도 너를 따라갈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너를 찾아서 가마욱스 땅으로 갈 거야. 그곳의 모든 수녀원에서 너를 찾을게. 그때까지 안녕히."




편지의 내용은 대단히 짧았다. 굉장히 급작스럽게, 서둘러 전달된 편지였다. 그날은 4월 25일, 봄꽃이 햇살에 머리를 빗질하고 있었다. 돈이 쪼들리는 영주가 차마 수리하지 못한 도로는 포석이 덜렁거리고 뜨문뜨문 풀이나 가끔 뽑아줄 뿐이었다. 그래서 마차는 덜컹거렸다. 순례자들은 이따금 상인들의 마차나 수레가 다가오면 비켜서며 가도를 걷고 있었다. 발라리가 탄 마차도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때 마차 밖에서 왠 아이가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문을 두드리자 발라리는 반대쪽 문을 열었다. 그 방향에서는 레선버리에서부터 그녀를 마중나와 함께 가마욱스로 데려가던 라랑튀아 (5화에서 바실리쿠스가 아이 먹을 죽을 구걸하자 거절했던 그 사람) 가 긴 피로에 못 이겨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반대쪽으로 기어이 다가오자 그때까지 울고있던 발라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고향에서 200리는 떨어져 나온 곳이었다.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너 왜 여기까지 왔어?" 그녀는 기쁨과 당혹이 반반 섞인 얼굴로 물었다. "가늘롱이 보냈구나!"


"아가씨, 아가씨! 이거!" 시동 꼬마는 눈높이까지 자란 개망초 덤불이 머리를 공격해오는 걸 참아내며 마차를 따라왔다. 완전히 행인들 사이에 섞여들기 위한 흐줄근한 차림이었다. "프레뎅 나리께서 보낸 편지에요!"


"그 사람이 글도 썼어?"




발라리는 놀라며 아이가 건낸 편지를 받아 그 자리에서 읽어보았다. 말은 지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글자를 모두 읽어낸 발라리의 두 눈이 빛났다. 그건 이미 흐를대로 흐른 눈물 위로 왈칵 솟아오른 눈물에 의한 것이었다.




"이 사람이 제 손으로 글도 썼단 말이야? 언제 그런 걸 배웠대?"




아이는 거대한 망초 사이를 누렇게 해쳐가며 대답했다.




"그분 말씀이, 남한테 대신 써달라 하면 정보가 새나간다고 자기가 직접 써야 안심이 된다고 하지 뭐에요. 그래서 적어도 글처럼 보이게 쓰는 거라도 배우느라 최근 한 달은 아가씨를 만나러 오지 못했어요. 그것땜에 속상해 할까봐 걱정하셨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셨어요. 어차피 아가씨가 떠날 수 밖에 없다면, 지금 당장에 몇 번 만나는 것보다 더 오래 남을 약속을 남기는 게 우선이라고."


"이 멍청이!" 발라리는 연인을 멍청이라고 부르게 되는 본인들의 현실이 하느님께서 세상에 내리신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 멍청이..." 갑자기 그 웃음이 노여움으로 바뀌었다. "그럼 너 고작 이걸 전하려고 이 먼 길을 뛰어온 게야? 걔가 그러라고 시켰어? 이 정신나간 새끼네 이거!"


"나리도 근처에 계십니다!" 아이는 발라리 너머에 앉은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서둘러 변호했다. 그들은 지금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 멀리 계세요. 보이시나요?" 그녀가 가늘롱의 모습을 포착하자 아이는 개구쟁이 미소를 지었다. "말을 타고 따라오고 계시잖아요. 저희는 말을 타고 왔다구요. 나리께서 몸집이 작은 저에게 전해달라고 시키셨어요. 자기가 오면 십중팔구 들킬 테니까."


"그래, 그러면 다행이야. 완전 소견머리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그래, 그러면 다행이야."




또 한 번 가만히 편지를 바라보던 발라리는 다시 한 번 저 멀리 윤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았다. 길게 자란 풀과 밭, 너른 들판과 함께 머리카락조차 갈색인지 검은색인지 분간하기 힘들어 사람이 개미처럼 보일만큼 멀었다.




'저 사람한테도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이것이 서로에게 마지막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참기 힘들어져서 편지지에 얼굴을 묻고 또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느라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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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5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6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7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5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6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6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6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6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9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7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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