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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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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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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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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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DUMMY

"모두에게 전해! 이 바실리쿠스 비스콘티의 악마숭배 건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판사로 참여할 것이고, 여기 이 프레뎅 남작님과 그 아드님 역시 참석할 것이니 모든 수사와 하인들은 자리를 알맞게 준비해놓으라고 말이야. 시각은 내일 14시 정각!" 이쯤에서 원장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위엄을 세우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수도원에서 이 악마와 마녀, 귀신이라는 것들의 존재는 단 한 마리도 용납할 수 없어! 이건 우리 하느님의 전사를 표방하는 에네릭토스 수도회 사람들과 악마 사이의 신성한 전투야! 그러니 내일 이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여하는 이들은 그날의 기도와 업무를 모두 면제해주겠다고 전해!"



한참 목소리를 냈더니 목이 말라진 원장은 다시 고상하게 폭식적인 식탁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남은 잔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도 좋아는 명령이 떨어지자 하인들은 식탁을 정리하고 보따리에 잔반들을 분류해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분을 적당한 냄비에 넣어서 감방지기에게 전해주었다. 이것이 오늘 수도원 독방에서 벌을 받는 젊은이들, 혹은 감방에 갇힌 사람들을 위한 점심식사가 되는 것이다.




지하 1층 감방으로 밥차를 끌고 나아가던 감방지기는 문득 그곳에서 남자와 여자가 정답게 입씨름을 벌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달려가서 벌컥 문을 열었지만 감방에 갇힌 돼지와 바닥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문제의 돼지치기가 있을 뿐이었다. 나른하고 권태로운 표정의 감방지기는 '분명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하는 표정으로 이쪽저쪽을 흘겨보다가 밥차를 끌고 들어왔다.



"여기 밥이야."



바실리쿠스의 식판에는 삶은 완두콩과 귀리죽과 절인 양배추와 삶은 고기가 조금씩 담겨져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먹다 남긴 잔반이 아니고 직접 식당에서 받아온 정식 식사인데, 식당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전해듣고 안쓰럽게 느껴진 나머지 감방지기가 손수 챙겨준 것들이다.



방금 전까지 적대적인 눈빛으로 뚱해있던 바실리쿠스는 그래도 고기 조각이 나왔다는 사실에 눈이 둥그래지고 있었다. 뒤에서 말레이카가가 그게 기분 좋냐는 듯이 눈을 흘겼다. 경비병은 한 번 더 나갔다 들어오더니 이번에는 말레이카의 감방문을 열고 들어가 거기에 있는 구유통에 온갖 잡스러운 잔반들을 쏟아붓고 나갔다. 바실리쿠스는 말레이카와 자신의 밥을 비교해보더니 저쪽이 비록 사람이 먹다남은 잔반이지만 더 먹음직스럽고 풍부한 고기와 생선들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셈이 나기 시작했다. 그 눈치를 읽은 말레이카가 쯧쯧 소리를 내면서 선수를 쳤다.



"지금 이 상황에 먹다남긴 잔반이 셈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



바실리쿠스는 급하게 뭐라 대꾸할 말을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입을 꾹 닫고 식판을 휘적거릴 뿐이었다. 말레이카는 구유통 속을 흘겨보더니 당치도 않다는듯이 콧방귀를 휙 뀌었다. 어느새 밥그릇을 다 비운 바실리쿠스가 물었다.



"집에서 먹던 꿀꿀이죽보다 나은 음식들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안 먹을 거면 나랑 바꿀래?"


"먹지도 않고 바꾸지도 않을 거예요."



그녀는 고상한 귀족부인이라도 되는 듯이 도도하게, 이 수도원에서 나는 것들이란 한 모금도 입안으로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려는 것처럼 진귀한 음식들이 들어있는 구유통을 외면할 뿐이었다. 바실리쿠스가 코 골며 자는 동안에는 배고파서 조금 먹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저놈들은 말이죠, 자기네들이 잡아내지 못한 돼지 대신으로 나를 잡아온 거예요."



그건 바실리쿠스도 예상하던 바였다.



"그 애기를 잡아먹은 돼지 말이죠. 그레코르 오빠가 잡으러 떠났다던 그 괴물같은 놈. 그 돼지를 지금 잡아올 수는 없으니까 본보기로 나를 재판에 회부하고 마침내는 처형시키고 말 거예요. 어쨌든 돼지가 아이를 잡아먹는 건 나쁜 짓이라는 걸 모두에게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녀는 창틈으로 들어오는 음식 냄새를 맡았다. 창문은 감방의 한쪽 천장 끄트머리에 조그맣게 철창과 함께 나있었다. 몹시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였으나, 녹슨 철창의 냄새가 베어있었다. "감장지기라도 회유해서 바깥에 소식을 알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허나 그녀도 바실리쿠스도 그것이 현실성없는 소망이라는 것은 잘 알고있었다. 일단 그곳에서 여기까지가 수 십리 씩이나 떨어져있는 데다 바실리쿠스와 돼지 한 마리가 그곳으로 잡혀갔다 한들 다들 뭔 일일까 싶기만 하지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이는 없으리란 것이 그녀의 예상이었다. 워낙에 저들 살기도 바쁜 세상이 아닌가? 유일하게 의지할만한 바실리쿠스도 근처에 떨어진 작은 돌들을 건너편 벽에 던져대기만 하니 그녀와 같은 절망에 빠져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처지가 더 비참하고 위험한 건 생각에도 없겠지. 오빠는 사람이지만 나는 돼지란 말이야.'



그녀는 눈물이 핑 돌면서 진정 이 세상에 의지할만한 사람이란 얼마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때 밤의 파수와 경비들의 눈을 피해 수도원의 깊은 안속까지 숨어들어온 늑대아이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이 되어주었는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포기하기로 하고 감방 벽을 사이에 두고 붙어서 일단 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쪽 저편에 어딘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그들을 깨웠다.



"지금 여기서들 뭐하고 있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지상으로 난 끄트머리 창문의 철창 사이에서 반가운 짐승의 눈동자가 어스름을 만나 번뜩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창문은 원래 죄인을 감시하러 지하까지도 내려가기 싫었던 어느 게으른 수사가 남들 몰래 뚫었던 것인데, 일단 만들고 나니 꽤 멋들어지고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것이 오늘밤 그들을 구원한 것이다!



"늑대야!"



바실리쿠스가 철창 사이에 얼굴을 빼놓고 외쳤다.



"네가 왔구나!"



말레이카의 통통한 돼지코 역시 철창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잠결에 마른 콧구멍은 환희와 기쁨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네 냄새가 난다, 네 냄새가 나!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민토네 아주머니가 여기로 한 번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왔더니 익숙한 냄새가 나길레 따라와봤죠. 그랬더니 다들 여기 있었네요. 뭔가 일이 생긴 거 같은데."



바실리쿠스와 말레이카는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아이에게 털어놓았다. 아이는 말보다는 듣는 것을 더 잘 하는 습성이 있었다. 이는 자연에서 사냥감들을 쫒고 몰아낼 때 갖곤 하는 포식자들 특유의 본능에서 비롯된 침묵이지만 어쨌든 그러하다. 아이는 곰곰히 들으면서 이야기를 종합해본 뒤에 입을 열려다가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경비 수사에게 들켜서 달아나고 말았다.



"늑대다! 늑대다! 경비대! 파수대! 일어나 이 게으른놈들아! 나태한 자야! 네놈들이 눈깔을 빼고 노는 사이 늑대가 들어왔단 말이다!"



아이를 발견한 수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수도원 종루까지 올라갔다. 이내 세상의 시간을 양분하는 둔중한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일대의 마을과 교차로 시장거리,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잠결에 그 소리 듣고 아침인 줄 알았다가 욕지기를 하면서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때마침 원내 수사들은 새벽미사를 마치고 예배당에 한 데 모여서 경건하게 시편 암송을 바치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 났구나 싶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에 너무 먹어서 그런지 속이 더부룩한 원장도 그곳에서 시편 암송을 집전하고 있었다. 원장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단속하고 밖으로 나가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고 난 후에 종을 더 크게 울리라 하고 사람들을 안전한 곳에 모았다. 수도원 불목하니, 일꾼, 문객, 순례자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한 곳자리 모인 것이다.



'어쩌자고 늑대가 여까지 들어왔는지 몰라.' 원장은 무기고에서 석궁을 꺼내 먼지를 닦고 윈치로 장전하면서 생각했다. '그 겁 많은 놈들이 말이야.' "늑대가 한 놈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저희가 수도원 벽면을 한 번 수색해봤는데, 젖은 늑대 발자국이 벽을 타고 올라왔던 흔적이 남아있었어요. 한 마리 흔적이었죠. 숲길을 지나오면서 계곡이나 진흙탕에 한바탕 뒹굴었던 것 같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어?"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없습니다."


"내 생각엔 그냥 떠돌다가 들어온 놈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적당히 쫒아내자구. 다친 사람이 없으면 이쪽에서도 죽이면 안 돼." 원장은 창문 너머 먼산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다가 장전된 석궁에 화살을 올려놓았다. 속세를 떠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새벽미사는 아직도 힘이 든다. "한 마리가 확실하지? 그래놓고 보니 두 마리, 세 마리면 안 돼? 난 니 말을 듣고 한 마리로 알고 있는거야 알았지?"



보고하던 사람은 조금 주저했지만 한 마리가 확실하다고 대답했다. 늑대는 무리지어 다니는 놈들인데 만약에 여럿이면 한놈만 발이 젖을리가 없다.



"그럼 됐어. 가자!"



순례자 숙사에서 혼자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프레뎅 남작도 이 소란에 밖으로 나와 산보하다가 원장을 만났다. 원장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프레뎅 남작은 발 아래 들풀과 별바람꽃을 밟으면서 난데없는 여름밤, 이 초야에 가슴이 복작거렸다. 주변에는 아카시아나무와 떨기나무의 허연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야말로 즐거운 사냥이 아닌가?'



그 즉시 남작도 원내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자신도 이 사냥에 참석하겠노라 선언했다. 그는 본인이 데려온 수행원들에게 달려가 말에 안장을 얹으라고 하고 아들을 찾아오라 명했다. 잠시 후 달려온 아들 가늘롱은 어둑거리는 횃불빛 너머로도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쉴세없이 얼굴을 닦고 있었지만 오히려 닦을수록 눈가가 아플 정도로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프레뎅 남작은 자꾸만 피하려는 아들의 얼굴에 등불을 갖다대면서 추궁했다.



"너 왜 그러냐? 야. 너 왜 그래? 어어? 차렷. 가늘롱, 차렷! 얘, 드로송, 이 한심한 놈이 왜 이러는 거냐?"



가늘롱을 데려온 시종꼬마는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그건 우리 나리님께서 늑대 때문에 겁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조용하게만 있었던 가늘롱이 마침내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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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5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7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5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6 0 11쪽
»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8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9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8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7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8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7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2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7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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