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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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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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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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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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DUMMY

"나는 있죠, 영감님이 불쌍해 죽겠어요."




민토네가 또 한 번 눈물을 찍었다.




"나이로 보면 천수를 다 누리고 살았다 하겠지만 이리 가족들한테 쓸쓸히 잊혀지는 채로 죽을 줄 알았으면 평소에 더 잘 대해주는 건데."


"사람 팔자는 다 하늘이 정해주시는 건데 우리가 가타부타 뭐라 할 게 있겠나."


"도르헤는 열심히 살았어!" 모로헤그가 꿍얼댔다. "열심히 살았지! 어디 이 사람이 했던 고생 대신 해볼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별들이 멀어지는구나."




크수스람포르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모두들 말을 멈추고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늙은 여인의 손은 허공을 쥔 채 벌벌 떨었고 칭얼대는 바람은 사제 적삼을 건드렸다. 조수가 딱딱하고 차가운 얼굴로 똑같이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뭔가를 아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예 다 떠나기 전에 어서 일을 치릅시다."




마을 장로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언가 의심스럽고 두려운 자연의 일들이 지금 이곳에 모여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운 눈을 치떴으나 어쨌든 눈앞의 사제가 시키는대로 했다.


변신술사들의 장례는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미리 죽은 사람의 뼈를 한 데 모아 깨끗한 물에 잘 씻고 여분의 남은 살과 피부를 떼어내 말려놓았다. 공터 이곳저곳에 깨끗한 보자기를 깔고 중앙에 뼈를 놓은 다음 사제가 자리를 축복하자 다들 약속한 듯이 자리에 앉고 절을 했다. 그런 다음 다같이 가져온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주로 친한 사람들끼리 앉았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조용히 먹었다. 사제는 음식에는 입을 대지 않고 다들 맛있게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지금은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 옛말의 언어를 읊어 이런저런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누군가는 옮겨붙지 않도록 불을 잘 피워서 낮에 잡은 산새를 구워먹는다. 껍질에 묻은 기름이 불 아래로 자글자글 떨어지고 아직 핏기가 가시지도 않은 뼛쪽에 진한 고기의 맛이 달라붙는 냄새는 지금 구워지고 있는 새 본인이 맡아보아도 향긋할 지경이다. 아예 자리를 잡고 번철에 과도를 가져와 요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대에 영생이 풀들이 많았다.




그 달콤한 냄새를 맡고 근처에 살던 늑대들이 소근소근 다가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오로지 한 명 뿐이었다. 늑대 소녀는 말레이카와 바실리쿠스 사이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사람으로 변한 클리셰가 빗질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작년 겨울에 만든 매콤한 소시지를 허겁지겁 먹다가 퍼뜩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보다가 팔뚝에 흐르는 곱창기름을 핥으며 일어났다.




"너 어디가니."


"오줌싸고 올게요."




말레이카가 빵껍질을 고깃국물에 찍어먹다 말고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했을 뿐 별 의심 없이 아이를 숲으로 보냈다.




오줌을 싸고 온다는 건 정말이었다. 아이는 마려운 걸 모두 내보내고 난 뒤에 기지개를 한 번 피고 달이 어디쯤에 떠있는지 확인했다. 완연한 여름의 보름이었다. 최근들어 비가 많이 오긴 왔었다만 그동안의 머금은 습기를 모두 허연 물기로 달빛에 다 내어놓는 숲은 송내가 허옇고 솔솔 뿌얬다. 밤의 미진한 음기는 닿는 것마다 흠씬 핥았다. 아이는 왔던 길에서 아예 반대로 걸어 숲을 벗어났다. 땅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는 지지리 궁상, 왠만한 돌부리도 흙이라 아이 맨발은 범벅이다.




어귀에 이르자 뜨문한 나무 사이로 들푸른 언덕이 훤했다. 아이는 종종 달려 숲의 마지막 나무 둥치 곁에 서서 보았다. 이쪽을 바라보는 짐승의 눈 다섯 쌍이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이것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검고 누렇거나 시퍼런 대가 있었다. 늑대는 헐레벌떡 숲에서 놓여났다. 그들은 달이 한쪽으로 이울 때까지 한바탕 언덕을 핥고 뛰면서 놀았다. 보아하니 늑대와 달과 숲은 때어놓을 수 없는 듯하다.




아이가 빠져나온 숲의 어귀에서 좀처럼 오지 않자 걱정되어서 나와본 네 사람이 그늘을 벗삼아 구경하고 있었다. 바실리쿠스, 말레이카, 로드렉, 클리셰 네 사람이다. 로드렉은 늑대들이 뛰어노는 걸 좋이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조금 겁을 냈다. 바실리쿠스는 조용히 있었다. 말레이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니 얼마나 기쁘고 반갑겠어. 우리는 맨 치고박고 하지만 그래도 서로 얼굴은 보면서 사니까 나은 편이지."


"난 저 애가 우리랑 같이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정말 놀랬어요."




클리셰가 나직히 말했다.




"뭐 저 애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그건 내가 알 게 아니지만 여태껏 우리 영지에 늑대가 들어와서 같이 살았던 적이 없었잖아요. 문제없이 잘 있을 수 있을까요?"


"사람이 같이 사는데 어찌 문제가 없을 수 있겠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살아야지. 그래도 저 애가 요즘에는 우리 식구들을 봐도 침을 질질 흘리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난 좋아. 노력하는 게 보이잖아."


"난 그래도 어째 불안해."


"괜찮아. 저 쪼만한 게 무슨 사고를 치려는 기색이 보이걸랑 우리 바실리쿠스 오빠가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 오빠, 그쵸? ...응?"




바실리쿠스는 모두가 본인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서야 뒤늦게 "그럼, 그럼" 대꾸했다. 사실 지금 그의 정신은 다른 데 가 있었다. 이따금 아무 일 없어도 화들짝 놀라거나 도리질을 치곤 한다. 로드렉은 그런 바실리쿠스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릴 때 늑대가 한 마리 영내에 살았었던 거 같은데. 혹시 다들 기억나?"




그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거 같은데. 나중에 스승님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다."


"혹시 성 안쪽 우리에 갇혀있던 그 아저씨 말이에요?"


"어어, 맞아. 너 기억 나니?"


"기억이 나는 것도 같고..." 클리셰는 돼지뼈를 깎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 아저씨가 눈 한쪽이 없었나? 그랬던 거 같은데."


"그래, 맞아, 그 아저씨! 옛날에 우리가 다같이 말도 걸고 그랬잖아. 기억 나지?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도 종종 물어봤었는데 아무도 기억을 못 하더라니까. 그래도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라 다행이네."


"아무도 기억을 못 하는 걸 보면 얼마 안 있다가 떠났는가 본데요. 죽었거나 가죽이 됐거나...."


"야, 무섭게."


"으레 그러니깐요." 클리셰는 멀거니 늑대들이 뛰노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자알 논다."


"도르헤 영감님도 적적하게 가시진 않으니 다행이구만. 저렇게 늑대들도 뛰어놀고 말이야. 장례식 날은 조금이라도 떠들썩해야지. 녀석들이 고마운 역할을 다 해주고 그러네." 로드렉이 말했다.


"난 왠지 저 아이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고 자기 친구들이랑 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요."


"그건 왜?"




여름에 알맞게 훈훈한 바람이 불고 분다. 사람의 가슴은 쿵쿵 뛰곤 한다. 늑대의 발이 풀꽃을 막 짖이겼다.




"저런 아이들은 이 기회에 가족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말없이 작별 인사를 보내는 법이거든." 자, 봐봐요. 갑자기 노는 걸 멈췄잖아. 저 애들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가고 있을까?"




대장 늑대는 놀다말고 얼굴에 망초 꽃잎이 막 묻은 채 막내의 얼굴을 딱 붙잡았다.




"너, 임무를 잊지 않았겠지?"


"그럼요, 대장님."




막내는 웃으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니 입으로 읊어봐라."


"인간들 사이에 숨어 살면서 맛있는 고기나 닭 같은 걸 훔쳐가지고 우리 식구들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 제 임무잖아요."


"아이고 똘똘해라."




늑대 다섯 마리가 일제히 아이를 덮쳐 혓바닥으로 매섭게 핥아댔다. 아이는 배를 까고 그만 좀 핥으라고 앞니를 드러냈다. 요녀석이 감히 이빨을 뺐다며 더 강하게 핥고 앙물었다. 아이는 침이 범벅으로 놓여났다.




"그런대요, 대장, 아무래도 이 작정이라는 게 영 시원치 않은데요."


"이녀석, 감히 또 내 계획에 강짜를 놓는 게냐? 한 번 말해봐라. 시원치 않으면 네녀석 엉덩이를 꽉 물어버리겠어."


"저처럼 어리고 작은 꼬마애가 훔쳐오는 몇 안 되는 고기들로 과연 우리 식구들이 배불리 먹을 수는 있겠냐는 거지요."




확실히 타당한 지적이라 대장 늑대도 엉덩이를 깨물지는 않았다. 그 부분은 어물쩡 넘어갔다. 늑대들은 마지막으로 막내늑대를 이리저리 해놓은 다음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던 차에 부대장 늑대의 코에 저기 언덕 위 숲의 어귀에서 이쪽을 염탐하는 인간 네 마리의 냄새가 적발되었다. '역시 인간은 음흉해!'




"대장, 저기 인간놈들이 있는데요. 우리 훔쳐보고 있어요. 어쩔까요."


"응? 그냥 무시해. 어차피 이 녀석을 지켜보려고 온 놈들이겠지. 신경쓸 것 없다."




부대장 늑대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대장,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영 꺼림칙하네요. 저도 옛날부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보고 들어왔으니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저희 중에서도 인간들 사이에서 못 버티고 늑대로 변해 같이 사는 것들이 몇명 있잖아요? 그런데 저 위에 있는 저들은 도대체 뭐하는 것들이랍니까? 적어도 우리는 정당하게 일을 하면서 먹고 삽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가 먹을 것들을 사냥으로 번다고요. 벌지 못하면 굶을 줄도 압니다. 그런데 저놈들은 사람이 먹이를 주는대로 먹고 자고 싸는 것밖에 하지 않아도 그냥저냥 살고 앉았으니 아주 팔자가 다 폈는가 봅니다."


"그래도 저런 애들이 있으니까 우리 막내도 굶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거 아니냐?"




부대장 늑대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대장을 쳐다보았다. 이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늑대아이는 자기 식구들을 떠나보내고 언덕 위를 올라왔다. 클리셰가 중얼거렸다.




"다시 돌아오잖아."


"이럴 줄 알았어. 얘가 예전부터 예언이랍시고 해대는 말들은 도무지 한 가지도 들어맞는 게 없단 말이지." 말레이카가 말했다.


"예언이라니요. 이건 세상의 이치라구요. 세상이 이치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어디 내 잘못인가."


"뭔 소리야 그게."




아이가 언덕을 다 올라오자 바실리쿠스는 녀석에게 잘린 돼지뼈를 한 개 건내주었다.




"자, 이건 네 거다."




아이는 뼈를 들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불가에 잘 말렸는지 따끈따끈하고 속의 골수는 모두 파여있었다.




"이게 뭔데요?"


"돌아가신 도르헤 영감님의 다리뼈쯤 될 거다."


'오오, 이게....'




아이는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살짝 혀끝을 대보았다. 바로 바실리쿠스가 꿀밤을 먹였다.




"먹으라고 준 게 아냐."




아이는 억울하게 양손으로 머리를 비볐다.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먹지 말라고 때리는 건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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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7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5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6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8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9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8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7 0 11쪽
»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8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7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2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7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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