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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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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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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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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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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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재판 (4)

DUMMY

"음모라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인데!"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악마가 킥킥거렸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히히 방귀나 뀌어야지." 토실토실한 제 궁둥이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소리 역시 아무도 듣지 못한 것이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판사는 장정들이 바실리쿠스를 진정시키는 와중에 코를 킁킁거렸다. '여기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방귀를 뀌었구나! 분명 저 얽혀있는 것들중에 한 놈일 거야. 저렇게 격렬하게 힘을 쓰다가는 본인이 방귀를 뀌었는지도 아닌지도 잘 모르는 법이니까. 이것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방귀나 뀌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소란을 만들어서 본인 방귀 냄새까지 맡게 만든 바실리쿠스가 괘씸해졌다. 판사는 바실리쿠스가 진정하고 다시 피고석에 서자마자 아주 거세게 을러대고 한번만 더 그런 소란을 피웠다가는 아예 너 없이 우리들끼리만 판결을 내려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바실리쿠스도 잠잠해졌다.



"자, 밤부크 사람 게랙탱! 자네는 지금 한 얘기들이 전부 사실이라는 거지?"


"제가 무슨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몇 번이든 말씀드리죠!" 게랙탱은 판사도 자기 편이 되는 듯 해서 의기양양해졌다.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저놈은 게으르고 나태한 악마숭배자에 마녀와 밀통하는 놈이고요. 걸핏하면 하느님이 계신 곳에 대고 두 주먹을 들어올리는가 하면 신성한 십자가에 침을 뱉었습니다. 교회에서 영성체를 받으면 그걸 삼켜서 먹지 않고 입안에서 죽이 될 때까지 씹었다가 구정물에 뱉고는 그 위에다 오줌을 갈기죠. 어디 그뿐입니까? 저놈은 숲의 마녀들과 붙어먹는 버릇이 있어서요. 보름달이 차오르는 밤이면 자기가 좋아하는 마녀들과 손잡고 숲으로 들어가 무슨 짓을 막 해대고 그럽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겠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악마 마녀들과 공터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곳에서 저주받을 주문을 외고 갓난아이의 시체를 제물로 바치며 교회 사람들을 저주합니다. 이것이 제가 바실리쿠스 비스콘티에 대하여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게, 게, 게랙탱, 게랙탱!" 이런 터무니없는 모함에 바실리쿠스는 먼지묻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말도 더듬었다. "위증을 넘어서 황당무계하구나. 이건 나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없는 말을 지어내 저주하는 짓이야. 그런 짓을 즐겨 하다가는 천국도 연옥도 아닌 지옥에 떨어지고 말 거라고. 왜 너는 그걸 깨닫지 못하지?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러는 것이야?"



게랙탱의 눈빛은 방금 전에 말했듯이 곧고 엄중했다. 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바실리쿠스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볼 생각이 들어서 한 번 그렇게 해보았다. 이는 바실리쿠스에게 기회이기도 했다. 어찌됐던 게랙탱의 눈빛에서 가책과 위증의 죄책감, 그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면 뒤늦게라도 양심에 호소하여 잘못된 것들을 다잡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랙탱은 이번에야말로 저 못되고 살찐 바실리쿠스 삽겹살을 아주 찍소리 못 하게 뭉개버린다는 마음에 도취되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바실리쿠스의 눈빛에서 공포마저 읽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시야에서 돼지치기는 작고 쭈그린 약자의 추레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강자가 된 것이다!



게랙탱은 그런 바실리쿠스를 동정하는 의미에서 본인의 행동에 일말의 거리낌도 없는, 숙적을 대하는 올곧은 시선을 취했다.



'바실리쿠스! 부디 우리 사이에 서로 원한을 질 만한 일이 없었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나는 이제부터 너를 크게 무찔러야 하는 적으로 생각하고 이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네가 나를 돼지보다 못한 놈으로 취급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고, 지금도 그렇단 말이지. 너도 그러한 처신이 모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거야. 지금껏 나의 은밀한 취향을 아무한테나 그렇게 터놓고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종종 경멸에 찬 시선이나 상욕을 얻어먹긴 하였지만 그렇게 냅다 두 주먹을 갈겨댄 건 너 하나뿐이었다.'


'아니 저 미친놈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바실리쿠스는 일전의 일 따위 금방 잊어버렸고 설령 아니라 한들 고작 그런 것 가지고 일을 이렇게까지 키울까 하여 저 게랙탱은 황당하기만 하다.



게랙탱의 말문은 또 한 번 탄력을 받았다.



"판사님 범인은 바실리쿠스가 분명합니다! 돼지가 불쌍한 아이의 팔을 뜯어먹은 이 사건 말이죠. 저에게는 그렇게 주장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요. 바실리쿠스는 마녀와 어울리고 금지된 음사(淫祀)에 앞장서는 놈이니 필시 돼지를 조종하는 방법에 능통하겠지요. 거기다 돼지치기이기도 하고요. 저놈은 돼지치기니까 온 마을 돼지들이랑 한 방에 붙어서 자겠고요. 그런 놈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돼지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이야말로 태만한 직무유기이며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아닙니까?"



판사는 판사석에서 가만히 개랙탱을 내려다보면서 그래도 마지막 말은 그럴싸한게 어쩌면 저것이야말로 이 고발의 핵심논리겠다고 생각했다.



"에이이잇!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이젠! 바실리쿠스 비스콘티가 돼지한테 명령을 내리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까지 있다고요."



바실리쿠스는 그게 도대체 누구인가 싶었는데 곧장 대기석에서 사내 하나가 또 튀어나왔다. 바실리쿠스는 그 남자가 자신을 한 번 쳐다보더니 증인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넌 누구냐?"


'일전 너한테 술을 사주었던 롤마르 (게랙탱을 포함한 세 명의 밤부크인 중 한 사람. 일전에 게랙탱과 함께 사냥꾼들과 함께 있는 바실리쿠스를 집단으로 구타하러 같이 갔었다. ) 다 이놈아!' 롤마르는 별안간 찾아온 분노에 눈꺼풀을 벌벌 떨었다. '그런 은혜마저 까맣게 잊고서는 되려 누구냐고 뻔뻔하게 묻다니,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는 악마와 붙어먹는 자식이 분명해!'



죄책감이 사라진 롤마르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만약 예수님이 '누구든지 죄 지은 자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하셨던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이 바실리쿠스였다면 롤마르는 거침없이 주변에서 짱돌을 줍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판사의 앞에 서서 이제부터 하는 모든 말들에 진실하게 임하겠다고 선서한 뒤에 곧바로 바실리쿠스에 대한 거짓증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증언은 너무나도 터무니없고 진실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에 지금 여기서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 그 악의와 증오는 서슬퍼런 것이었다.



이제서야 바실리쿠스는 자신이 어떤 거대한 음모쟁이들의 수작에 단단히 말려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겁을 희번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게랙탱과 롤마르, 그리고 판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누구 하나 그에게 호의며 동정심을 가진 사람은 없는 듯했다.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이곳에 그를 지켜줄만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선 눈알에 눈물이 고였다



'난 이렇게 저놈들이 펼쳐둔 음모에 당해서 속절없이 사라지고 마는 걸까?'



판사는 모든 의견들을 종합한 뒤에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책상에 몸을 기댔다. 남들의 눈에 그는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권위와 근엄함을 몸짓에 담는 듯 보였으나 정작 본인은 어서빨리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시작이구만.'



판사는 피고와 원고, 그리고 증인이면서 원고이기도 한 게랙탱을 차례대로 쳐다본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이렇게 교회나 수도원부터 찾아와서 마녀라고 밀고하는 건 요즘 시대에 어디서건 비일비재한 일이다. 저게 어떻게 악마와 붙어먹는 자의 행색인가. 악마라는 게 그렇게 할짓없는 놈들인가? 그렇다면 교황과 주교, 하다못해 교구의 사제라던가 내로라하는 수도원의 원장이라던가 하는 사람들한테는 안 가고 왜 이런 시골의 보잘것없는 돼지치기한테 오겠는가. 진짜 악마라고 한들 그런 한심한 놈한테 수도원의 정력을 쓸 수는 없다. 판사는 이런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쯤에서 돌려보내는 것도 문제다. 굳이 이렇게 먼 수도원까지 와서 말썽을 피우는 인간들은 돌아갈 때면 밀고와 거짓 맹세자라는 꼬리표가 붙는 게 싫어서 어떻게든 매듭을 지으려고 성화를 부려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진짜 판사도 아니었다. 규정대로라면 수도원의 법적인 대소사는 그보다 학식이 높고 수염도 지긋한 오트리우스 형제께서 맡으셔야 하는데 멀리서 온 고관대작을 모셔야 한다면서 원장과 함께 온갖 잡무들을 짬때리고 가버렸다.



'사람을 둘씩이나 설득하기에 오늘은 너무 피곤해.' 판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내일 다시 오라는 말로 일단 그들을 내보냈던 것이다.



밖으로 나온 게랙탱과 롤마르는 어이없다는 듯이 서로 얘기했다. "내일 다시 오라니? 그럼 그 먼 거리를 갔다가 다시 걸어오라는 말이야? 그럴수는 없어!"


"여기 수도원 사람들한테 얘기해보자. 우리같은 사람들이 잘 자리가 두 군데 정돈 있겠지."



그들이 바깥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경비병은 바실리쿠스를 붙들고 철창이 있는 방으로 끌고갔다. 바실리쿠스는 나가자마자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면서 가증스러운 밀고자들을 찾아내고 싶었지만 그것이 좌절되면서 너무 속상하고 화가나 가슴을 쿵쿵 내리쳤다.



"내가 지금 죄인이라고 결정난 것도 아닌데 이런 철장에다 가두는 건 또 뭡니까."


"시끄럽다 이놈아! 그럼 아직 고발 상태인 너를 자유롭게 풀어달라는 말이냐? 너는 오늘 밤은 이곳에서 잤다가 내일 점심이든 저녁이든 판사님께서 다시 부르면 그 때 나가는 거다. 알겠니?"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횅하니 가버렸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바로 옆방에 말레이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 말고 이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었기에 남매는 한동안 서로를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말레이카는 바실리쿠스에게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화가 나서 감방 이곳저곳을 펄펄 뛰어다녔다.



"그런 새끼는 악마나 잡아가라고 하세요. 주제를 몰라도 유분수지! 이건 분명히 오빠한테 얻어맞고 원한을 가진 게랙탱 그 새끼의 음모가 분명해! 아니, 오빠는 그걸 알면서도 거기 서서 바보처럼 어, 어, 이러고 있었단 말이에요?"


"나라고 입을 꾹 닫고 있었겠니? 도통 하여도 들어먹질 않고 그 판사라는 녀석은 한번이라도 입을 뻥끗했다가는 나를 씹어먹을 기세던데, 이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게랙탱 그놈의 편인 것을 내가 어떻게 반론이며 대거리를 할 수가 있었겠어? 너는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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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5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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