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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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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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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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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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땅 아래에서는 (2)

DUMMY

그녀가 눈물 닦고 훌쩍거리며 걸어가는 오솔길은 그늘이 곰팡이처럼 자란 곳이다. 여기서 또 오 리를 걸어갔다. 아랫마을 주민들은 길가에 핀 잡초며 들꽃을 볼 일이 잘 없었다. 풀들은 한 번 자랄 때 허리까지 자랐다가 어느 순간 싹 사라지는데 누가 거둬가는지 이곳에서는 모르는 것이다. 누구는 걸어다니는 버섯을 보았다고도 한다. 을씨년한 번화의 흔적은 해묵은 기와, 썩은 나무 들보 사이로 거미줄에 감싸였고,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는 입구와 출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소리없이 지나갔다. 먼 곳에서 지지배배 울어대는 벌레 또한 어찌 생겼는가 아는 사람이 이곳에는 전혀 없다.




에릴돈나는 매음굴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갔다. 무료하게 앉은 여자들 몇몇이 고개를 들었다가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늘어졌다. 매춘부는 서로 흉을 보는 법이다. 으레 흉 보는 사람끼리 또 흉을 보는 꼴이 우습다. 에릴돈나는 문을 열기 전 바닥에 침을 탁 뱉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것들이 사람 꼬나보는 얼굴은 다 뭐야. 그녀는 순간 움츠려서 불안하게 뒤쪽을 홱 보았다.




집안은 어디든 횅했다. 장례식을 크게 하는 동안에는 부정 탄다며 방석집은 쳐다도 안 본다. 아가씨들은 간만에 쉬다가 일이 없으니 무료했다. 막상 손이 없으니 곤란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거실에서 죽 한 그릇을 떠왔다. 옷을 벗고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반참삼아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손님을 한 분 받았다. 밑에서 "에릴돈나, 손님이야!" 소리가 들리자마자 에릴돈나는 헝겊으로 입안을 닦고 향기나는 물로 입안을 행궜다. 행색이 추레한 사내가 조약한 털모자를 쥐고 양손은 앞으로 모은 채 검연쩍은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 저년 부럽네. 이곳 사내들은 털 많은 여자만 좋아해. 아저씨, 어여 가봐요. 저 애 요즘 성질이 드러워서 언제 마음이 바뀔 지 몰라." 남자는 불쾌하다는 듯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에릴돈나는 열심히 이를 닦으면서 문틈으로 그 소리들을 모두 들었다.




"저것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에릴돈나는 옷을 입고 향주머니를 차고(에잇! 이 향주머니에 든 것들도 조만간 다 떨어지겠네. 이번에는 누구한테 부탁해서 시장엘 가서 좀 사달라고 하지? 왜 내 주변에는 품앗이 값을 후려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이렇게도 없는 걸까!) 뽀송뽀송한 침대맡에 살포시 앉아 거죽이 두텁고 울퉁불퉁한 손을 양손으로 맞잡았다. 이건 저거야 저건 이거야 맞장구를 쳐준다. 남자는 뒤늦게 흙을 씻고 입은 헤벌쭉하게 왔다. 그러면서 물 탄 술이 조금 들어가자 본인들이 하는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어댔다. 해 안 드는 아랫마을에도 농부들은 있는 법이다. 비도 없는 땅에 소출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말하자면 아랫마을의 농부들은 발명가다. 그러니 이번 주에 자기들이 무슨 대단한 방법으로 양파며 마늘을 땄다는 이야기도 그저 우스웠다.




"에릴돈나, 당신은 정말 이해하지 못할 걸? 우리가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 아랫마을에서 농사를 시작할 것인지 말이야. 만약에 그런 날이 오면 이제 우리는 위에서 가끔씩 가져오는 푸성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거야. 매일매일 원하는대로 당근이며 마늘에 양파, 순무랑 누에콩을 먹게 될 거야. 내가 당신에게 그런 것들을 얼마든지 가져다 줄 수 있어."




그녀는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냐 좋겠냐며 (비)웃었다. 그게 어떤 방식이냐고 묻자 비밀이라면서 실실거리는 건 조금 짜증이 났지만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정말 무엇인가 숨기는 듯한 사람 특유의 진실성을 엿볼 수가 있었다. 에릴돈나는 이런 사람들은 으레 원래 키우던 버섯이나 잘 키우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남자의 손톱은 거뭇하고 침대에는 흙이 떨어졌다. 에릴돈나는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으면서 손바닥으로 흙을 쓸어냈다. 당장에 돈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남자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단순한 대화와 한 차림의 술상 뿐이었다. 그녀는 흙때가 낀 손가락이 구불구불 거리면서 자꾸만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걸 주인이 그러지 못하게 연신 막아내고 있는 모습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다. 남자는 술에 얼마간 취하자 마침내 그녀의 양 손을 붙잡고 마룻바닥을 밟아대며 어색하게 춤을 추었다. 육체적인 정열의 욕망을 이런 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우둔한 농부가 겨우 생각해낸 일종의 꾀라고 볼 수 있었다.




"헤에이! 헤에히!" 남자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이 공간을 신나고 유쾌한 구석으로 바꾸려 했다. 그녀가 생각만큼 호응해주지 않자 그의 팔다리는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남자는 숨도 몰아쉬지 않고 마치 이 한 순간의 짧은 춤사위가 본래의 목적이었다는 듯이 굴면서 후련하다는 얼굴을 띈 채로 현관을 나섰다. 그러자 얼굴은 급시에 어두워졌다. 어두운 허공에 곰팡이가 피어 떠다닐 것 같은 이 저주받은 공간에서 태어나 그늘 속에서 자라난 음식과 공기만 먹으면서 자란 사람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안색이었다. 나중에 또 오라는 에릴돈나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혼자 욕지기를 중얼거리며(아마 에릴돈나의 소극적인 태도를 두고) 칙칙하고 눅눅한 어둠 속으로 걸어가 사라졌다. 그런 뒤에도 얼마간은 뭔가를 중얼거리는 소리가 땅속을 매아리치며 저들끼리 이상한 주문을 뇌까리는 것이다. 에릴돈나는 창문의 커튼 사이로 사내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농부는 이 마을보다 더 오래된 칙칙하고 음침한 어둠 속으로 천천히 먹혀들어가 완전히 사라졌다. 머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저 어둠속에서 빠져나와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이 지역에서 촛불이 가장 많은 매춘소를 찾아올 것이다. 사내들은 허공에 곰팡이가 피는 듯한 어둠에 담금질되면서 저 심연 너머에서만 통용되는 지식이며 상식들을 무던히 가져오곤 하였다. 침대에 곰팡내를 털썩 남기면서 내뱉는 말들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없고 이따금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를 듣는 것이다.




아랫마을 남자들이란 다 저런 것들이다. 상황이 이런데 살아도 성에 차지 않고 자꾸만 바깥 세상을 흘끔거리는 것이 어디 그녀의 잘못인가?




에릴돈나는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이따금 며칠 전에 있었던 끔찍한 사고의 기억이 눈앞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당장은 피곤했기에 잘 잤다. 내일은 또 어떻게 들키지 않고 먹을 것을 가져다가 여자아이의 방에 놓아다 주어야 하나. 이런저런 눈치를 보게 될 생각에서 벌써부터 화가 치밀었다.




"망할 년!" 그녀는 이렇게 뇌까리면서 천천히 눈을 깊게 감았다. "그냥 거기서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불쌍하게 보는 것도 처음 뿐이었다. 달래도 보고 위협도 해 보지만 한결같이 살려달라 내보내달라는 말만 해대는데 어찌 짜증이 나지 않겠는가? 그러자 본인도 화가 났는지 한 번은 선심써서 따뜻한 죽 그릇을 가져다 준 사람에게 도로 그 그릇을 던져버린 것이다. 그날이 에릴돈나의 인내심도 바닥난 날이었다. 에릴돈나는 지금껏 그때만큼 사람을 모질게 때려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후련하기도 했다. 위에 사는 놈들은 여기 아래에 처박힌 사람들이 어찌 살아가는지 알 생각이 없고 아예 존재 자체를 모른다. 에릴돈나는 우울한 버릇대로 본인의 꼬리털을 살살 만져보았다. 조금 푸석해진 느낌이 들었다. 손을 가슴께로 옮겨 배와 옆구리와 허벅다리와 목께와 이곳저곳의 푸석거리는 털들을 만져보았다. 그러고보니 그날 아이를 패다가 주머니에 넣어뒀던 돼지빗이 부러졌었다.




그녀는 돌연 결심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에릴돈나는 아이가 깁요슨의 손에 붙들려 초소에 잡혀들어왔을 때, 성긴 화톳불에 비쳤던 그 노란색 터럭들을 떠올렸다. 매일 빗질을 해주고 치렁치렁 호두기름을 발라주었다던 그 예쁜 노랑이들을 품속에 꼭 껴안아도 봄직하다. '그 못된 년의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버리자. 본인의 처지가 지금 어떤건지 확실히 깨닫게 해주는 거야. 그렇게 되고 나면 좀 고분고분하겠지.'




그녀는 고통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초 같은 것들도 생각하다가 본인이 화들짝 놀라고 이불속에 머리를 묻어 억지잠에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서운 생각이다. 애초에 그런 짓을 할 배짱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바보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저것을 어찌한다?




에릴돈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고 차차 생각을 정리했다. 집을 쌓은 돌과 흙 냄새가 났다. 벽에 곰팡이가 슬고 버섯이 슬그머니 위쪽으로 머리를 내미는 습기가 풍겨온다. 지금 위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땅에 물기가 고이면 그것이 한곳으로 모여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돌로 된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난다. 천장의 질곡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도 하였다. 위에서 비가 내리면 이 땅속 아래에도 비가 푼수처럼 온다.




에릴돈나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지금까지는 본인의 처지를 낮선 영역으로 끌고 가 패대기칠지도 모른다고만 단순하게 생각해왔던 이 사건이 어쩌면 꽤나 수지맞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발상에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졌고, 이제부터 저 여자애를 상냥하게 대해줄 명분까지 생긴 듯하다.




'저 애가 이 '일'을 도울 수 있을 거야. 나도 언젠가 늙어서 온몸의 털이 푸석해지고 관절도 삐걱거리는 날이 올 거란 말이지. 지금까지는 그 때가 되면 또 어느 언덕에 비비면서 이 비루한 몸뚱이를 이끌고 살아야 하나 걱정만 했었는데, 이제 살았네! 미모는 빼어나고 말도 잘 하고 눈빛도 똘망똘망해. 따로 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지. 저 애가 이제부터 천천히 내 뒤를 이어주면 난 앉아서 돈만 세는 거야. 귀족가문 아가씨의 첫경험은 얼마에 팔아야 할까?"




단어와 문장 구조는 추악하나 발상의 의도 자체는 순수하게 생업과 장래에 직결되니 궁지에 몰린 사람은 참 무서운 법이다. 에릴돈나는 꽤나 오랜만에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 제 혼자 알콩달콩하다가 잠에 들었다.




잠시 후 누군가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가 일어나지 않자 더 거세게 흔들었다. 잠결에 물든 에릴돈나는 또 손님이 왔나보다 생각하고 욕지기를 내면서 눈을 뜨다가,




'아까 분명히 문을 잠궜는데.'




하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에릴돈나의 비명은 테시데리우스의 억센 손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녀의 머리가 도로 솜배개 속으로 처박히면서 남녀가 침대 위를 구르는 소리가 났다.




"에릴돈나! 아가씨!" 테시데리우스가 속삭였다. 에릴돈나는 그의 눈빛에서 펄떡 뛰는 심장같은 초조함과 공포만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남자는 누구야. 아까 그 남자는 누구지? 둘이 같이 무슨 짓을 했어!" 어둠 속에서 테시데리우스는 얼마 전 거리낌없이 사람의 숨통을 끊어버렸던 그때처럼 아주 무서운 눈빛으로 침실에서 헐벗은 에릴돈나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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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5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5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6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9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8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7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8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7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2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7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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