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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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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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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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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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장례준비 (1)

DUMMY

노랗고 청명한 술같이. 아아, 하늘을 기어가는 가마욱스의 요망한 기러기는 요 햇볕이 아침에 멀건 국처럼 눈을 비비뜨면, 그럴 때 떼로 와서는 요부터 저까지 고개 꼴딱하면 쐑 하고 지나간다.


고개는 터덜터덜 돌부리 튀어가는 나그네 머릿고개요 또 보릿고개요 숨이 껄떡하는 왕관덕이 꾸릉지에 덩잇고갠데, 그런 이름들은 다른 고장 사람이 들으면 그게 뭔 소린가 하겠으나 여기 가마욱스 사람한텐 언덕이 왕관처럼 보여서 왕관덕이고, 그중에 가장 큰 고개는 덩이처럼 크다 하여 덩잇고개고, 요 언덕들 사이사이에 더러운 늪이 있다 하여 꾸릉내 나는 꾸릉지다 하니, 이 동네 산천 이름은 다 이레 생겨먹었다.




바실리쿠스 비스콘티의 이름이 비슷한 이유로 이리 져먹힌 건 아니다. 밤부크 사람 게랙탱은 자기 고향에서 저런 식의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볼 때마다 생각한다. 허나 외려 이런 것이야말로 가마욱스 지방에서는 꽤나 흔한 이름이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마욱스는 청승맞은 땅이었다. 양옆의 커다란 두 나라 사이에 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바보같은 고장이라 예부터 불에도 많이 타고 흙에는 재가 섞였다. 그런 고장에서는 사람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전혀 다른 두 겨래의 성질이 난데없이 교잡하여 세상에 없는 이상한 걸 낳곤 하였다. 엎치락 뒷치락 하는 사이에 그러한 것들은 온전히 섞이질 못하고 서로간에 선을 딱 그어버렸다.




이름의 뉘앙스를 보아 '최명순'과 '타카하시'가 다르듯이 '패트릭' 과 '막시미우스'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가레랑은 르랑슈에 던져놔도 잘 살 것 같지만 호만트에 던져놓으면 아무래도 걱정이 든다. 반대로 바실리쿠스를 호만트에 놓으면 좋겠지만 르랑슈는 안 될 것이다. 마치 서로 다른 두 나라에서 각각 온 듯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끼워맞춰진 것이다.




그러니 '바실리쿠스' 와 '가레랑' 사이, 그리고 '불루무스' 와 '테레사' 사이의 거리는 전혀 다른 세상 것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가레랑은 쿠미누스를 퀴민이라 바꿔 부르고 바실리쿠스는 가레랑을 갈란으로 바꿔 부르는 등 저들 편한대로 해대는 훨씬 타당해보이지 않겠는가.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서 보았듯이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각자 본연의 발음대로 발음하여, 이를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다. 왜냐면 예로부터 이 땅에는 비극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레랑이 다스리는 뮈쉬나의 농꾼들이 밭 갈 때 부르는 여름 노래는 호반트의 말 탄 전사들과 르랑슈의 말 탄 기사들이 한 구절에 같이 나오며 길게 뽑아내는 곡조와 함께 먼 지평으로 보리밭 말을 달린다. 어느 순간 그들의 시선이 뙤양볕이 내리쬐는 꾸릉지 위에 가서 멈췄다. 왠 사람이 그 위를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저건 아무리봐도 바실리쿠스인데. 쟤가 왜 이 한낮에 저런 델 갔을까."




이와 같이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하며 섞여살고 그 말의 뜻을 관습대로 이해하고 소통하며 싸워대는 가마욱스가 언제부터 르랑슈와 호만트 사이의 잡종지방이 되었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거기다 아까 그 요상한 사투리 하며 또 늑대가 많고 잡 짐승이 돌덩이 들판에 목을 쭉 빼고 도는 곳이라 외지에서 온 사람은 여기가 도무지 사람 사는 곳 같지가 않다. 좀 전만 하여도 어느 소속인지 모를 놈들이 떼거지로 와서는 높은 데 올라 탁 트인 고장을 슥 한 번 보고갔다. 정찰이었다.


그리고 이 한 무리의 염탐꾼들 역시 구릉지 위를 두리번거리는 바실리쿠스 비스콘티를 발견하고 그리로 달려갔다. 그는 땀을 비처럼 쏟고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 이쪽으로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수들은 뒤뚱거리는 엉덩이를 열심히 쫒아갔다.




"서라."




가까이 다가갔을 때 염탐꾼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서라."




바실리쿠스는 이미 체력이 다해서 뛰어도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뛰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들도 말들을 쉬게 하려고 같이 걷고 있었다.




"이건 도망을 위로 가고 앉았어."




이 때 그들 중 한 명이 고삐를 잡고 뛰쳐나와 앞을 막아섰다. 바실리쿠스도 결국 포기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나리님들!"




언덕배기에 빨간색 파란색 꽃풀들이 많았다. 아래쪽은 밭뙈기에 갉아먹혀 있었다.


염탐꾼 대장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물 마실래?"




바실리쿠스는 냉큼 받아마셨다. 찬 물이 볼에서 목 뒤까지 떨어졌다. 어디서 떠왔는지 아주 시원했다.




"아이고, 나리!" 바실리쿠스는 숨을 헐떡이면서 주머니를 돌려주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도망쳐서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줍쇼!"


"야 넌 도망쳤다고 사람을 죽이냐?"


"우린 정직한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가 말했다. "이유없이 사람 안 때린다."


'이유가 있으면 때린다는 건가.'




바실리쿠스는 자신을 둘러싼 남자들의 갑옷과 허리에 찬 칼들을 보고 숨울 죽였다.




"저를 해칠 게 아니면 왜 여럿이서 저를 쫒아오신 건가요."


"뭐 좀 물어보려고 했지."




그 말에 바실리쿠스는 눈을 홉떴다.




"제가 잘 몰라서 이러는데 선생님들 억양이 여기 사람 같지가 않군요. 혹, 먼 데서 오셨습니까."


"그래, 이 친구야." 대장은 말에서 내려왔다. 좀 전과 달리 의외로 대장의 키는 작았다. 바실리쿠스가 내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우린 황제 폐하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왔단다. 너희 나라에는 없는 거지."


'그렇다면 호만트... 그러니까 동쪽에서 왔다는 거네.' 바실리쿠스가 생각했다. "그런 귀한 분들이 저 같은 돼지치기한테는 왜...."


"돼지치기가 왜 대낮에 등산을 해." 대장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그건.. 잃어버린 돼지를 찾으러 온 겁니다."


"그래? 그렇구나.... 돼지는 찾았어?"


"아뇨 못 찾았죠."


"그래.... 그렇구나."




대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적당한 언덕동굴을 발견했다. 그 동굴은 언덕의 줄기 두 개가 만나는 질곡 사이에 빈 틈으로 나있었다. 수분이 흘러내리는지 돌들은 젖었고 커다란 나무의 뿌리가 그 위를 덮고 있었다.


그들은 바실리쿠스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같이 걸터앉아 먹을 걸 좀 나눠주면서 시시콜콜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여기 영주 이름이 가레랑맞지? 듣자하니 얼마 전에 딸을 잃었다던데 그게 진짠가?"




바실리쿠스는 말린 과일을 씹어먹다 말고 한숨을 팍 쉬었다.




"네, 잘 아시네요. 여러분들까지 이 이야기를 아는 걸 보면 이 슬픈 이야기가 온 동네방네 다 퍼졌군요. 영주님은 지금 이틀째 집에 안 돌아오세요. 부하들을 데리고 온 가마욱스 땅을 다 뒤져보려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는지. 그놈들은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은가 봅니다."


"'그놈들'이라니, 그렇다면 가레랑의 딸이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했다 이 말이야?"


"그렇죠?"


염탐꾼 대장도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에, 정말이지 슬프고 비참한 일이군."


"자식을 잃은 부모처럼 안타까운 사람도 없죠." 염탐꾼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런데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랍니까?"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저는 제 일 때문에 요즘도 정신이 없거든요." 바실리쿠스가 말했다. "듣자하니, 테레사가 납치당했다는 그날, 일이 벌어진 건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어요. 성벽 위에서 경비를 서던 위병 하나가 달려와 온 마을 사람들을 깨워댔죠. 그 녀석은 외지에서 온 사람인데, 크래드켄스라는 놈입니다. 저랑 그리 친하진 않지만 오다가다 인사는 했었죠. 아무튼 그 녀석이 말하는대로 사람들이 성벽 위 초소로 가봤더니 영주님이 아끼는 깁요슨이라는 병사가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더군요. 영주님은 상황을 파악하고 말에 안장을 올려 온 동네를 다 뒤졌고요, 하지만 테레사는 찾지 못했는가 봅니다. 그 말고도 밤중에 사라진 병사가 한 놈 더 있는데, 다들 그놈이 테레사를 데려갔다고 추측하는 중이고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크레드켄스는 그날 이후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라도 그럴걸요. 안그럼 영주가 녀석의 피부가죽을 전부 벗겨버릴 테니까요. 하녀 애들만 안타깝게 됐죠."


"하녀들은 왜?"


"그 애들이 영주님 따님을 꼬셔서 밤중에 데려가 같이 놀고 술도 마시고 했었으니까요. 따지고 보면 그애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 할 수 있죠. 지금쯤 마님한테 다리몽둥이가 다들 아작이 나고 있을 겁니다."


"그렇구만.... 그렇구만..."




염탐군 대장은 대강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말했다.




"그럼 지금 여기에 영주가 없다는 거지?"




바실리쿠스는 아몬드를 씹어먹다 말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염탐꾼 대장은 무릎을 밀며 일어났다. 그들은 바실리쿠스를 내버려두고 말을 탄 채 어딘가로 가버렸다. 바실리쿠스는 감히 따라갈 생각도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나왔다. 놈들은 자기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 원 이상한 놈들이네. 아무래도 성에 도착하자마자 마님께 알려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다시 언덕배기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왕관덕의 기단부는 완만하지만 높은 곳은 거의 산이었다.




'그 전에 내가 할 일을 우선 해야겠지.'




언덕 너머에는 또 다른 언덕들이 있었다. 이 언덕들은 왕관 모양으로 한 자리에 모여있었고, 그 중심에는 깊고 깊은 늪이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비가 온 탓인지 늪은 물을 많이 먹고 호수처럼 변해있었다. 평소라면 물 위로 대가리를 내밀고 칙칙한 분위기를 풍겨대는 잡풀들이 모두 물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물의 수위가 높아져서 벌써부터 발밑이 질퍽거렸다.




바실리쿠스는 이쯤이면 되겠다 싶은 곳에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언덕의 오목한 부분까지 들어와 나무와 관목이 조금 흔들거리고 있었다. 햇빛은 노랗게 변했다. 바실리쿠스는 바람이 소리를 거둬가면 어쩌나 생각하며 이상하게 생긴 뿔나팔을 꺼내 불었다. 그 속에서 이상한 물소 소리 같은 게 튀어나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놓쳐서 떨어뜨릴 뻔했다.




십분 정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바실리쿠스는 다시, 전보다 더 길고 크게 나팔을 불었다.




이쯤하고 그냥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가까운 늪에서 물소리가 났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백년묵은 구렁이 하나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녀석이 물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근처에 있던 개구리나 방아깨비 하는 것들이 물바닥으로 밀려나 등을 까집고 팔딱거렸다. 그 크기는 보아하니 한 번에 사람 한둘 정도는 꿀떡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실리쿠스는 입을 떡 벌린 채 있다말고 얼른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못 보던 분이군요. 사제님은 댁에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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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5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6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7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5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6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6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6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6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9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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