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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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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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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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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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재판 (2)

DUMMY

"아니요. 마님이 아니라 다른 분이었죠."



쿠미누스의 눈이 의심으로 굳어졌다. 마리 의외에 영주의 대리 노릇을 할 만한 사람이 또 있다고? 골똘히 생각하던 쿠미누스의 뇌리가 한 사람의 얼굴이 번뜩 스쳐갔다.



"개랙프리드 경 말이신가?"


"그게 누구였는지는 저희가 밝힐 수 없군요."



개랙프리드는 가레랑의 동생으로 유명한 망나니에 주색잡기 좋아하는 호색한이다. 한 모금에 남들보다 두 배는 되는 맥주를 집어삼키고 벽에다 오줌을 싸면서 누구 오줌발이 더 세고 주변으로 잘 튀어가나 내기를 하는 거한으로 형인 가래랑보다 머리가 하나는 더 큰 데다 덩치도 산만하고 가문의 위세까지 더해 감히 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아첨하기 좋아하는 사람과 음란하게 눈을 치뜨면서 콩고물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려 드는 사춘기 소년들이 항상 무리를 이루었고 밤부터 아침까지 술을 먹거나 도박질을 하면서 수틀리면 사람을 하나 잡아다가 단체로 패대기를 치면서 관군이 오면 도망을 쳐버리니 그 질이 구정물보다 나쁘다.



'부정하지 않는군.'



쿠미누스는 그놈이 다시 이 고장에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왔다. 더 심각한 건 가레랑이 동생을 그리 나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제간의 우애는 깊었고, 가레랑은 동생이 관련되었다 하면 덮어놓고 사소하게만 보았다.



"그 애 성격이 불 같은 데가 있긴 하지만, 그 나이때 애들이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언젠간 그애도 정신 차리고 건실하게 살 텐데 우리가 지금 애를 잡아다가 기를 죽이고 뜻을 못 펴게 할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 애도 결혼 하고 아내가 있는 몸입니다. 애를 못 낳아서 아직 철이 없는 거죠. 제 생각엔 아무래도 그 여자 불임이 아닐까 의심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쪽은 제 동생이잖아요. 그 나이 먹도록 자식이 없는 제 동생의 마음도 헤아려주셔야죠. 사제님, 사제님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십니까? 사내라면 거창하게 놀고 풀 때가 다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쿠미누스는 개랙프리드의 문제로 가레랑과 상의하는 일은 오래전에 포기해버렸다. 허나 어쩌면 이번 기회로 놈의 큰 코를 납작 눌러줄 수 있겠다는 묘책이 떠올랐다. 그 남편과 다르게 베베라스의 마리는 개랙프리드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영주는 이번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가레랑이 자리를 비운 뒤로 마리가 영지의 일들을 관리하는 여주인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개랙프리드가 돼지치기에 대한 재판권을 수도원 놈들에게 넘겨버렸으니 그 불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사건의 피해자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지요. 주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심부름꾼들은 하늘에 대고 공손히 손짓 한 번을 한 뒤 다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머리를 숙였다. 이번에는 사제와 바실리쿠스도 똑같이 했다. "이 슬픈 사건이 이렇게 흐지부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명백하게 모두가 이 죄를 죄로서 알도록 강력한 처벌이 행해져야 할 것입니다. 대신 재판을 받을 돼지도 준비되었습니다. 범인인 돼지는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비슷한 돼지를 잡았죠."



쿠미누스는 바실리쿠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거 사태가 어쩔 수 없게 되었다. 너도 상황을 파악했겠지?" 바실리쿠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없이 들었다. "쟤들은 너를 범인으로 모는 게 아니라 그냥 돼지에 돼지치기 사이니까 데려가려고 하는 것 같다. 아마 우리 장원 내 돼지들 관리실태에 대한 너의 증언을 필요로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놈들이 너의 관리실책으로 사건을 엮어보려 할 수 있을텐데 그건 내가 어떻게든 막아주겠다. 내가 눈과 귀를 열고 이곳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씩씩하게 다녀오너라."



바실리쿠스는 그 말을 듣자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맙고 감격스러워 사제의 양 손을 잡고 거듭 감사를 드리며 얌전하게 수도원으로 이송되었다. 한 가지 걸리는 일은 있었다. 대신 재판받을 돼지를 준비해놓았다고 하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수도원에 도착한 바실리쿠스는 그곳에서 우리 안에 갇혀있는 말레이카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게 이런 뜻이었구나!' 말레이카도 바실리쿠스를 발견하고 불안한 듯이 바닥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말레이카는 범인 돼지놈의 죗값을 대신 받아야 하는 건가?'



법정은 조금 있다가 열릴 테니 이곳에서 쉬고 있으라는 말을 듣고 바실리쿠스는 티 나지 않게 우리를 향해 다가갔다.



"이게 그 돼지인가요?"



심부름꾼은 돼지가 바실리쿠스의 손 냄새를 맡는 걸 보고 물었다.



"그래. 친해보이는구나. 아는 돼지냐?"


"그럼요. 제가 사는 돼지우리에서 같이 키우는 돼지인걸요. 오늘따라 보이지 않아서 이상했는데 이런 데 와있었군요."


"그렇다. 아침일찍 나절에 근처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먼저 데려왔다. 그러고나서 널 찾았는데 돼지들 먹이를 주러 나갔다고 해서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지."


"그럼 이 돼지는 재판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당연히....."



그때 누군가 그 사람을 데리러 왔기 때문에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바실리쿠스는 고개를 숙여 말레이카의 턱주가리를 긁어주었다.



"이 바보야!" 그러다 말레이카의 늘어진 턱살을 힘있게 잡아흔들었다. "이 멍청한 바보야! 끌고간다고 그저 네 하고 끌려왔단 말이냐? 저항도 해보지 않고 이런 꼴이 되어서는 어쩌자는 말이야."


"왜 오빠는 내가 그런 천치 바보인 것처럼 말하는 거예요?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줄 알아요?" 말레이카가 승질을 내며 잡힌 턱살을 팍 흔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걸 나더러 어쩌라고요. 그럼 내가 거기서 미쳤다고 난리 치면서 칼 든 사람들한테 얻어 맞아야 했단 말이에요?"



바실리쿠스는 할 말이 없어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러면서 말레이카를 쳐다보니 그녀는 기죽지 않고 고개를 빠딱 들고 있었다.



"난 괜찮아요. 설마 죽이기라도 하겠어. 누가 감히 영주의 재산을 해치려 들겠냐고요. 난 괜찮으니까 오빠는 가서 말이나 잘 해요. 아무래도 이번 재판에서 우리의 운명은 오빠가 저 치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얼마나 말을 조리있게 잘 하느냐에 달린 거 같으니까."


"내가 그걸 잘 할 수 있을까."


"오빠만큼 달달하게 세 치 혀를 타고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래요."


"내가 지금까지 몇 마디 말이나 좀 해볼 수 있었던 건 모두 사람의 비위를 맞출 때나 그러했지,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내가 언제 재판장에 올 일이나 있었겠니? 가서 뭐라 말할까? '아이고, 판사님 오늘따라 얼굴에 혈색도 돌고 수염도 기품이 있어 잘 기르고 관리를 하셨구만요. 판사 노릇을 하려면 능력도 능력이지만 역시 잘 생겨야 하나 봅니다.' 뭐 이렇게라도 말할까?"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어쨌든 가서 뭐든지 좀 해봐요. 믿고 있을 테니까."


"그래, 알았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돼지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바실리쿠스는 재빨리 휴게실 창가로 뛰어가서 보았다. 오늘은 수도원에 고명한 손님이 찾아오신 날이었다. 그에 맞춰서 기름진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돼지를 잡고 있었다. 돼지를 잡으려면 보통 잘 붙잡아놓고 도낏날 뒤쪽의 뭉툭한 부분으로 이마를 두 번 대리쳐서 소리없이 죽여버리는데 오늘따라 사람들이 몸이 편찮았나 평소 하던 사람들이 아닌 건가 어쨌든 이마가 아닌 턱주가리를 내리쳐버려서 돼지가 기절하지 않고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박살난 턱을 주억거리며 사정없이 지르는 소리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돼지를 잡는 대만 장정 세 명이 달려들어서 마침내 급소에 칼을 꽂고 거꾸로 매달아 항아리에 피를 받았고 그렇게 되어서도 돼지는 한동안 목 속에 피가 끓는 소리를 냈다. 멀리서 수사들이 보고 탐탁치 않았는지 쯧쯧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바실리쿠스는 그제야 말레이카가 생각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속의 돼지가 다리 사이로 오줌을 찍 지리면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고 사방을 들이받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살려줘. 나 죽기 싫어, 살려줘!"


"진정해, 사매! 진정해! 그냥 돼지가 죽었을 뿐이야. 먹으려고 잡았을 뿐이라고!"


"그게 더 무서워!"



말레이카는 연신 엄마를 찾으면서 온몸을 심하게 떨어댔다. 바실리쿠스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며 재판장에서 부를 때까지 이런저런 말들로 누이를 달래주었다. 마침내 재판장에서 온 사람이 바실리쿠스를 데리고 갔다. 그때까지도 말레이카는 진정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은 바실리쿠스를 어느 칙칙한 공간으로 데려갔는데 그곳이 재판장인 듯 보였다. 다른 곳보다 높에 만든 바닥에 하얀 식탁보를 씌운 긴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곳에 사람 한 명이 앉아있었다. 의외로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은 바실리쿠스와 재판장을 제외하면 두 명 밖에 없었는데 옆에서 기록하는 서기와 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다였다. 바실리쿠스는 잠시 얼떨떨하여 서있다가 차라리 잘됐다며 의기양양해졌다.



"왔소?" 앞의 판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방금 전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던 종이에 다시 시선을 두었다. 바실리쿠스가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있었던 다른 재판의 판결문이었다. 판사는 종이에 서명을 마치고 원장의 인장을 찍은 후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디보자, 돼지치기라고? 그로송스 장원의? 가레랑이 영주고. 그곳에서 영주와 다른 사람들의 돼지들을 관리하지?" 정말이지 사무적인 태도였다. 그는 말하면서 옆자리에 쌓인 문서들 중 하나를 집어들어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그것을 탁자에 내려놓고 옆에서 깨끗한 새 종이를 꺼내 깃펜에 잉크를 묻혔다. "자네는 왜 본인이 이곳에 왔는지 알고 있는가?"


바실리쿠스는 가능한 한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희 장원 내에 돼지가 문제를 일으켰으니 저를 불러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으셨던 것도 이해는 갑니다, 판사님."


"그만." 판사가 그의 말을 끊었다. "비록 내가 원장님 대리로 이곳에 있는 거지만 시키지 않은 말은 하지 말도록 해라. 알았느냐?"


"알겠습니다."


"어디까지 알고 왔는가? 자네를 데려온 사람들이 충분히 설명을 해주었던가?"


"아니요. 자세히 설명은 듣지 못했는데요."


"설명 못 들었다고? 아무것도?"



수사는 눈을 크게 뜨고 바실리쿠스를 바라보았다. 그건 마치 사물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자 의아하게 바라보는 과학자의 시선과 비슷했다.



"네, 그렇습니다."



수사는 황당하다는 듯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분명 제대로 안내를 하라고 일러 두었는데."


"까먹으셨나 보죠, 다들."



잠시 후 수사는 다시 고개를 내리고 종이에 시선을 두었다.



"자네는 고발당해서 여기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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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5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6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5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6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6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6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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