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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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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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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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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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장례준비 (6)

DUMMY

그러나 잠시 후, 근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그의 앞에 한 사내의 무리가 나타났다. 사위가 어둑하고 사람의 얼굴들도 모두 그림자 속에 잠겼지만 억양을 보니 밤부크 사람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사제가 그를 부르고 있으니 서둘러 가봐야겠다며 다짜고짜 그 손을 잡고 어느 한구석으로 끌고갔다. 그로가네는 지쳐서 터덜거렸다. 골목을 돌고 광장을 지나 좁고 흐트러진 길을 걸어가면서 도대체 무슨 용건으로 자길 부르냐 물어도 그들은 말없이 비식거리는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자, 다 왔네. 다 됐어. 이제 손을 놓아주지. 그리고 이걸 좀 보라고! 이 사람아, 이래도 우리를 의심하겠나?"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성 밖의, 촛불이 켜져있고 아늑한 불과 음식이 준비되어있는 작은 헛간이었다. 그로가네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오면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쭉 둘러보았다. 배추랑 양파를 채운 피 순대가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었고, 조금 누린내가 기분좋게 풍기는 곱창 소시지와 돼지기름을 뿌려서 구운 생선꼬치가 불 가까이 놓여있었다. 양파와 야생 능금 그리고 빵이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당직에 지친 병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불가 옆에 놓인 술통이었다. 그 속에 맥주가 뜨뜻하게 데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시 술판이 벌어졌다. 그들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서로를 기쁘게 해주었고, 농담과 사담을 나누며 우정을 키워나갔다. 그로가네를 대접하는 밤부크 사람은 총 세 명이었다. 그로가네는 드디어 이 이방인들이 이 지방의 토종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이 들었나보다 싶어서 이를 명랑히 받아들였다.




물론 이 밤부크 사람들이 순전 순수한 의도로 이런 일을 벌인 건 아니었다. 따지고 보자면 그들에게는 면밀한 계획이 있었다. 그로가네는 좋은 음식과 술을 맛보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물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바실리쿠스를 해치는 일을 도와달라고 말하는 거야? 게랙탱, 너는 그애한테 원한이 있을수도 있으니 그건 이해해. 하지만 롤마르 자네는 왜 갑자기 그녀석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되었나? 잠깐만, 이거 완전히 작당공모하는 자식들이었구만 그래! 이 참에 나를 꼬드겨서 무슨 계략을 꾸미려고 하는 거지?" 그로가네는 마시려던 술을 한 데로 치워버렸다. "어서 그 속셈을 드러내. 이 녀석들 나를 불쾌하게 만들고 있구만. 의도를 숨긴 채 정직한 사람을 대접하는 것은 죄악이야. 술 취한 김에 무르지 못할 말을 하게 만들어서 나를 이용해먹을 셈이었던 거지, 아 밤부크 놈들아?"




"너 이 새끼, 이만한 대접을 받아놓고도 그따위 말을 하게 우리가 내버려둘 줄 알았나?"




그로가네는 그 말에 조금 주눅이 들었고 잔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말았다. 그 틈을 타고 롤마르가 그의 손등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이것 보아, 자네도 우리랑 통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가?"


"내가 자네들이랑 뭘 통하지?"


"생각해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라고. 무슨 공통점이 느껴지지 않나? 그래, 맞아. 우리는 모두 바실리쿠스 비스콘티와 척을 진 사람들이야. 자네도 얼마전에 바실리쿠스 그 미친놈이랑 한바탕 싸운 일이 있지 않나? 이래도 정말 벙어리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셈 칠 건가? 한 번 말해보라구. 그 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레 평소 잘 지내던 자네들이 그렇게 싸우게 되었나?"


"돼지치기 같은 놈들이 그렇지 뭐! 자기들만 아는 이유 하나로 언제든지 사람 뒤통수를 칠 각오가 되어있는 놈들이라니까."




게랙탱이 그렇게 말하자 롤마르가 지금은 닥치라고 눈치를 보냈다. 그로가네는 끙 소리를 냈다.




"그건 우리끼리 개인적인 일이고 지금은 완전히 해결된 일이야. 그걸 자네들한테 알려줄 이유는 없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자네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레 그 불쌍한 녀석 하나를 여럿이서 괴롭히려고 계획을 세우는 건가? 그건 전혀 자비롭지 못해. 자네들 한 명 한 명에게 원한이 있다면, 그 원한을 푸는 방식도 당연히..."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해." 롤마르는 조금 위협적이 되었다. "설교는 주마다 사제한테 듣는 걸로도 충분하다고."


"그러고보니 사제님은..."


"사제는 여기 안 와.... 이런 젠장! 그냥 까놓고 말하지. 자네는 예 아니오로 대답만 해, 그로가네, 우리와 함께할 텐가? 우리와 힘을 합쳐 저 바실리쿠스 악랄한 소악마놈을 같이 해치울 텐가? 내 예전부터 보아하니 저놈은 주변에 악영향만 끼치고 성가시게 사고만 내는 본성이야. 서둘러 뿌리를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한테도 더 큰 피해를 주고야 말 거라고. 뿌리가 썩기 전에 곪은 데를 도려내야 하지 않겠나? 계속 이대로 두고만 볼 텐가?"


"그건 너희끼리 알아서 해야지."


"뭐라고?"


"니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난 바실리쿠스에게 별 감정 없어. 싸웠으면 화해하면 될 일이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로가네는 눈치를 보면서 기름이 줄줄 흐르는 소시지를 입안 가득 베어물었다. 후추와 세이지, 마늘의 가득한 향이 입가에 줄줄 흘러내렸다. 게렉탱은 흥분해서 외쳤다.




"그렇다면 자네는 사내가 아니로군!"




롤마르도 기가 차서 말했다.




"무릇 사내라면 자신에게 처한 불명예를 깨끗하게 씻어낼 줄 알아야 해. 이러다가 사람들은 자네가 돼지치기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낭설을 쑥덕거리고 다닐 거라고. 그걸 듣고도 사내답게 무찌를 생각이 들지 않는 건가?"




그로가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식탁 위로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사실 생각에 잠겨있기보다는 어서 이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에 더 가까웠다. 바실리쿠스에 관한 건 제쳐두더라도 일단은 뒤에 속셈을 숨기고 사제가 부른다는 말로 자기를 여기로 끌고 온 그 심보가 무엇보다도 괘씸했다. 3대 1이라는 수적 불리함 때문에 대놓고 싫은 소리도 할 수 없으니 죽닥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이놈들이 하는 말들은 그 어떤 것도 귀를 통해 마음에 담지 않겠노라 결심한 상태였다.






밤부크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계획이 틀어진 데에서 오는 당혹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이 사내는 바실리쿠스와 코에서 피가 나도록 주먹다짐을 했다고 들었어. 그것도 고작 지저분한 돼지 한 마리를 위해서 말이야. 즉 바실리쿠스는 이 남자와의 우정과 체면보다 다 늙은 돼지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긴 셈이지. 이 남자도 그걸 모르지 않아. 필시 정직한 남자라면 크나큰 체면의 모욕으로 여겨야 할 일이라고. 그런데 어째서 이 자는 지금 이렇게 침착할 수 있는 거지?'




롤마르가 눈짓으로 이렇게 묻자 게랙탱의 눈짓도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군. 이 남자는 우리와 힙을 합칠 생각이 없어.' 게랙탱은 탁자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다면, 자네 설마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남들한테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겠지? 설마 그렇게 명예롭지 못한 떠벌이짓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로가네는 있는 힘껏 당당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수적 열세에서 오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괜히 입을 놀려 이 일이 밖으로 세나가게 했다간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를 일이다.




"너희들이 사람 뒷담화를 까던말던 그건 너희들 맘이지. 난 상관 안 한다." 그로가네는 혼자만 맥주를 더 들이켰다. "그러니 너희들도 나를 내버려 둬. 그러면 더 이상 문제는 없어."




밤부크 사람들의 눈빛이 순간 싸늘해졌다.




"그럼 그렇게 해드려야지."




그들은 테이블을 한쪽으로 치우고 불을 비벼껐다. 그리고 그로가네를 떠밀면서 밖으로 내쫒아아버렸다. 밖으로 쫒겨난 그로가네는 땅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정신나간 놈들, 지들이 데려와놓고 지들 좋을대로 말만 하다가 또 지들 좋을대로 내쫒아버리는구만. 이로써 한가지는 분명해졌어. 밤부크에서 온 인간들은 아예 상종도 못할 놈들이라는 것!'




무엇보다 바실리쿠스가 걱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급한 건 한 숨의 잠이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동녘에 여명이 비춰들고 있었다. 그로가네는 양팔을 감싸고 비비며 입 밖으로 나온 한숨이 하얗게 지져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편, 사제가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장례준비로 영지는 여간 떠들썩한 게 아니었다. 물론 동물이 아닌 사람들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오직 단 한 명, 이러한 움직임을 사전에 알아채고 깜짝 놀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발라리 (아이 먹일 죽 한 그릇을 받으러 온 바실리쿠스에게 한바탕 욕을 날려먹인 그 사람) 수녀다. 그녀는 지긋지긋한 수녀원을 몰래 빠져나와 첩첩한 산림을 넘어 밖으로 도망을 가고 있었다. 수녀복도 벗어던지고 머리는 풀어서 묶은 채였다. 발에는 수녀원장이 아끼는 가죽장화를 신고있었다. 이 신발은 아주 튼튼하고 달리기도 편했다.




깜깜한 시각이었다. 그녀는 새벽미사를 끝내고 다시 숙면하러 들어가려던 와중, 돌연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만 남게 되자 마음을 먹고 수녀원 담장을 넘어서 오는 길이다. 그리고 쉼없이 달려서 산의 중턱에 도달해 잠시 쉬었다. 숨을 헐떡이며 위에서부터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을 두 손에 담아 입안에 넣었는데, 그 맛이 아주 더럽고 역겨워서 켁 뱉고 말았다.




'이게 계곡물이야 똥물이야.'




그녀는 화가 나서 계곡의 위쪽을 쏘아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았던 아주 희미한 소리가 그 방향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애처럼 깔깔대며 물장구를 치는 소리였다.




'이 야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각에 왠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있는 거지?'




기이하게 생각되어서 그곳으로 올라가보니 놀랍게도,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이 남녀노소 상관없이 온몸을 헐벗은 채 깊은 물에서 몸을 씻으면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아주 깊고 넓은 물이었다. 하도 깜깜해서 사람의 얼굴도 분간할 수 없었지만 찬물에 젖은 몸의 희미한 빛깔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발라리 본인은 밝았다 하더라도 이 사람들을 알아보진 못했겟지만, 반대로 이 사람들은 영략없이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온몸이 얼어붙었을도 모른다. 그녀가 교회 옆 수녀원에 살면서 하루하루 붙어지내는 동안 수없이 서로의 얼굴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바로 사람으로 변한 가레랑의 가축들이며 장례식을 하기 전 몸을 정갈하게 씻어내는 중이었다. 그들은 사제가 오기 전에 입을 옷과 제삿상 주전부리를 준비해두었고, 변신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길게 자란 터럭을 깎아냈다. 팔다리가 어색한 사람들은 네 발로 걷다가 두 발로 걷다가 하였고, 누구는 말하는 것을 연습하느라 중간중간 혀가 꼬여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모든 것이 발라리 수녀에게는 미친 사람들의 향연처럼 보였다. 놀란 가슴에 뻣뻣해지는 사지를 버둥거리며 겨우 뒤를 돌아보았을 때, 누군가 그녀를 덮쳤다. 쉽사리 저항할 수 없는 억센 힘이었다. 그 자는 그렇게 손바닥으로 수녀의 입을 틀어막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조용하고 으슥한 덤불로 기어들어가 한쪽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




"성인들의 이름을 걸고 부탁하는데 제발 아무 소리 내지 말아요!"




그것은 바실리쿠스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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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5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6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7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5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6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6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6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6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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