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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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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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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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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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DUMMY

아이는 달롱거리는 마차 안에서 세상 모르게 잠든 수녀들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움켜잡았다. 안에서 지키는 수녀가 셋이나 되는 건 정말 의외였다. 그들은 정말 적절한 때를 고른 것이다. 원하는 한 사람만 깨어있고 나머지 셋은 모두 잠들어있을 아주 기막힌 타이밍을 골라 문 닫힌 마차로 걸어갔던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아가씨, 지금 이 마차는 어느 수녀원으로 향하고 있는 거죠? 프레뎅 나리께서 무엇보다 그것을 필요로 하십니다." 아이가 말했다. "그걸 알지 못한다면, 나리는 정말로 온 가마욱스 땅의 모든 수녀원들을 샅샅히 뒤질 생각이세요. 당연히 시동도 따라가야 하고요. 그 시동은 저고요. 제발 그런 정신나간 계획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말아주세요. 저 같은 어린애는 켁 죽는 겁니다."


"아쉽게도 나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아버지가 나에게 점지해주신 신랑의 이름 말고는 말이야. 그 사람의 얼굴도 키도 심지어 어느 지방에 사는지도 몰라. 그 이름도 지금은 잊어버렸으니 나를 태운 이 마차가 말들이 지친 탓에 천천히 부드럽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 밖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게 없구나."




아이는 거의 절망에 빠진 얼굴로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올해로 14살 먹은 이 아이는 본인이 모시는 양반에게 이 소식을 들고가야 한다. 가늘롱 경의 반응이 벌써부터 훤히 보이는 듯했다.




"흥,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적어도 발라리는 살아있고, 수녀원에 들어가는 데다 가마욱스 땅에 머무를 것까지도 알고 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야. 당초의 계획에서 달라질 게 없으니 되려 좋은 소식이군 그래."




아이는 곰곰히 생각해보아 자신 역시 그 여정에 군말없이 따라가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발라리는 얼굴에 훤히 드러나는 아이의 걱정을 읽어냈다. 그녀는 아이에게 사탕을 건내주면서 저기있는 저 사람에게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밖에 여러 말들을 해주었다. 아이가 얼굴에 의문을 품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게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우리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뭐 어떡하겠냐? 다들 이렇게 사는 걸. 너도 더 이상 발아프게 날 따라오지 말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거라. 들킨다면 너 역시 무사하지는 못할 거다. 자 어서! 돌아가!"




아이는 혹시 자기가 괜한 말을 한 탓에 그녀가 미안함을 느끼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싶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아가라니까!"




그런 아이의 어깨를 밀다시피 하다가 돌연 가까이 끌어당기더니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아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서 그 사람에게 전해줘."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히고, 희미한 울음소리와 함께 마차는 더욱 멀어져갔다. 아이는 잠시 그러고 섰다가 발길을 돌려 터덜터덜 호두나무 그늘 아래로 갔다. 가늘롱 경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울음자국으로 팅팅 불어있었지만 뻔뻔하게 아무 일 없다는 태도로 서있었다.




"그래, 뭐라더냐?"




아이는 마차를 따라가면서 들었던 말을 모두 전해주었다. 가늘롱은 멀어져가는 마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시동에게 못볼 꼴을 보일수는 없어서 나무둥치 뒤에 숨어 계속 울었는데, 그런다고 보일 게 안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아이를 말등에 태우고 마차의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리!" 아이는 얼굴에 조금 화색이 돌아서 물었다. "집으로 돌아가시려고요?"


"응? 당연하지."




가늘롱이 말했다.




"가서 필요한 수속을 모두 끝낸 뒤에 힘을 보충하고 다시 돌아와야 하지 않겠냐. 이대로 헐레벌떡 따라갔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줄 알고. 저 애 아버님도 우리 사이를 눈치채진 못하셨겠지만 뭔가 수상쩍은 게 있다 싶어서 저렇게 외딴 수녀원으로 잠시 보내버리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프레뎅 남작의 아들 가늘롱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소식이라도 나 봐라. 몹시 수상하지 않겠어? 발라리는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질 테고, 그 땐 그 어떤 정보도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겠지. 세상은 미궁속으로 빠져버리는 거야."




아이는 새된 웃음표정을 지었다. "나리는 그런 미궁속에서도 기어이 발라리 아가씨를 찾으려고 하시겠죠?"


"당연하지." 가늘롱이 말했다. "그리고 그 옆엔 항상 네가 있겠지."




"그렇다면..." 아이는 다시 얼굴에 꼰티가 만발하였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모시는 사람이 이렇게 낭만없는 사람은 아니다 싶어서 기쁜 게 우물쭈물한 표정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이 길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군요."


"그래, 아주 기쁘지? 너는 예전부터 저 바깥 세상의 모험이며 이야기 같은 것들을 좋아했잖아. 너는 나를 붙잡고 이렇게 말하곤 했지. "나리, 언제쯤이면 우리도 저 밖의 훌륭한 기사들처럼 멋진 모험과 성전을 향해 말을 타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면 숲속의 요정과 마법사들을 만나고 보물과 왕국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요? (아이: 그렇게까진 안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너한테 그런 이야기들은 죄다 허울좋은 허구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걸 그랬네. 아무튼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네 말대로 이런 이야기에선 으레 사람이 부자가 되는 법이라구."


"수녀원에서 아가씨 찾아내는 일에 무슨 그런 껀덕지가 있겠냐 싶은데요."


"그래서, 싫다고? 요녀석, 오늘따라 왜이리 말대꾸가 많은 거냐!"




아이는 멋쩍게 웃었다.




"싫다고는 안 했지요." 아이가 말했다. "이거 어머니한테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골머리좀 썩겠는데요."


"그건 나도 걱정이다. 뭐 어쩌겠냐.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아 참, 너 그건 전했니?"


"뭘요?"


"매달 19일마다 가마욱스 지방의 가장 넓은 포도밭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 거 말이야. 그 애가 수녀원에서 도망쳐나왔을 때를 대비해 우리가 만날 장소를 정해뒀잖아."


"당연히 전했죠."


"그랬더니 뭐래?"


"어이없어 하던데요."


"흥! 내가 얼마나 그 약속을 잘 지키는지 알면 놀랄걸!"


"그런데 왜 하필 포도밭이에요?


"그럼 뭐 밀밭, 보리밭이라고 하랴? 세상에 포도밭 없는 땅도 있다더냐?"


"그건 그렇죠."




가늘롱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너머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언덕과 들판, 가끔식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서 도적행세를 하는 기사 같은 게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으슥한 구석 같은 데를 슬슬 흘겨보았다.




(미리 말하자면 그들의 이 계획은 이미 초장부터 어긋나있었다. 가마욱스에는 정말로 포도밭이 없었기 때문이다. 있다 해도 부유한 영주들의 취미용 텃밭 수준에 그쳐 지도에 표기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이 얼마나 가늘롱을 절망하게 했는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럼 일단 돌아가서..."




가늘롱이 말을 받았다.




"요즘 시장에서 성전에 관한 말들이 나돌더구나. 우리도 거기 낀다고 말해놓고 방향을 가마욱스로 틀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나리는 성전보다 사랑을 택하신 거로군요!"


"뭐 그러면 안 되냐?"


"그런데 저는 사랑보다는 성전이 더 멋져 보이는데요."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구나, 드로송아." 가늘롱이 받아쳤다. "정 네 마음이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시동이 되었어야지. 네가 내 갑옷을 닦게 된 건 너의 운명이었어. 하느님이 정해주신 운명을 거스를 생각이니?"


"그건 아닌데요."


"그럼 됐다. 그 얘긴 그만하자."


"네."


"내가 지금 단단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가늘롱은 문득 진지해져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늘이 정해주신 친구 아닙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넌 내 시동이지. 하지만, 그래, 이런 상황이 되고 나니까 우리 사이의 우정이 정말 끈끈하게 느껴지는구나. 내 친구랍시고 근처에 있던 녀석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간 아마 날 방해했을지도 몰라. 그때 말은 안했다만, 네가 내 부탁을 대번에 수락해주었을 때, 난 정말 마음깊이 감동했단다."


"그러면 월급좀 올려주시죠."




가늘롱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드러났다. 가늘롱은 가능한 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앞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고보니 아까 발라리가 네 이마에 입술을 맞추던데."


"보셨어요?"


"그래, 봤다! 보면 안 되냐? 그 입맞춤은 도대체 무슨 의미였지? 바른대로 말하는 게 좋아, 이 꼬마야. 허튼 말을 했다간 너를 이 들판에 내려놓고 가버리겠어."


"별 거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전하는 입맞춤이랍시고 전해달라고 하시는 거였죠."


"이런 놈을 봤나!" 가늘롱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너는 악마가 보낸 사람이구나, 왜 그 사실을 이제야 말하는 거냐!"




그는 말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고 아이를 쏘아보았다.




"당장 돌려줘!"


"지금 이마에 맞은 입맞춤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시는 겁니까? 전부터 생각한 건데 나리는 발라리 아가씨만 엮이면 사람이...."




가늘롱은 이마에 서린 여인의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아이의 머리를 붙잡고 왼쪽 얼굴에 비벼댔다. 그러면서 자기 혼자 감동했는지 우는 것 같았다.




"오, 발라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너의 입맞춤을 이 아이의 이마를 통해서 받아야만 했었냐?"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까슬까슬한 수염이 거슬렸다. 지난 며칠간 면도도 못 하고 노숙하면서 쌓인 한과 피로만큼 그의 수염은 따갑게 이마를 긁어댔다.




"이 못된 악마 같으니! 너는 그걸 가지고 있을 자격이 없어. 그 여자의 입맞춤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명, 나란 말이다! 누누히 말하지 않았더냐? 하마터면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을 뻔했군. 너같이 못된 꼬맹이는 이렇게, 이렇게 해버리는 거다!"


"알겠습니다."




가늘롱은 비빌대로 비비고 나서 아이의 이마에 묻은 입술을 정성껏 닦아내 완전히 지워냈다.




"자, 됐다. 모든 게 제자리에 왔구만. 이제 집에 가자."


"네."




아이는 말을 달리면서 길가의 망초덤불이 손살같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것들은 다음에 다시 올 때 어떤 색깔이 되어있을까?




"너를 대신 보내길 잘한 것 같아. 만약 그 때 내가 발라리의 울고 있는 얼굴을 보았다면 지금쯤 이 말에는 사람 세 명이 타고 있었겠지."






...




"그 멍청이!" 아직 점자가 발명된 시기도 아니건만 발라리는 어둠 속에서 편지지를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이 멍청한 놈아, 그런 말을 해줄 거면 이 지방에 포도밭이 있는지 없는지라도 미리 조사해보고 했어야 할 거 아니냐. 너는 평생 나한테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 살 운명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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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5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7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7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2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7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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