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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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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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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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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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디오스의 악마 (1)

DUMMY

"제가 게랙탱입니다."



게랙탱이 마지못해 실토하자 원장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니가 게랙탱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맞습니다." 게랙탱은 가능한 한 눈을 착하게 뜨고 두 손은 앞으로 모아서 공손하게 했다. 원장에게서 수도원을 관장하는 으뜸자인 것 외에 감히 눈을 마주치고 볼 수 없는 대귀족의 위엄 또한 볼 수 있었기에 이는 자연히 그들의 기를 죽여놓았다. 원장은 방문객이 왔어도 얼굴 하나 내비치지 않고 프레뎅 남작이 오기 전까지는 자기 집무실에만 앉아있었다. 그런 사람이 이곳은 왜 왔을까? 게랙탱은 떠듬거리며 이 말을 반복하기만 했다. "저, 맞습니다. 저,맞습니다."


"네가 맞다는 건 한 번만 하면 돼!" 원장이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다. "너, 오늘 돼지치기 한 명을 고발했다지?"


게랙탱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렇습니다."


"사실이야? 지금 그거 확실해? 술에 취했다거나 증오에 휩싸였다거나 해서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이 아닌 거지? 넌 아까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어. 만약 그게 거짓임이 판명나면 넌 우리한테 사지를 백번 짖이겨져도 할 말이 없는 거야. 여기서 확실히 하고 다시는 물어보지 않을 거니까 이게 너한테는 마지막 기회야. 마지막으로 묻는다. 네가 법정에 대고 말했던 그 모든 것들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임이 분명해?"



게랙탱은 생각보다 사건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 들어서 자신을 훑어보는 수많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이 지점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갔다간 정말 사태가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국면까지 뛰쳐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친구를 굳게 믿고 있었던 롤마르도 "말해. 게랙탱, 말해!" 속삭이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온몸에서 지독하게 땀이 흘러나왔고 숨까지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야, 임마! 맞아 아니야!" 원장이 못 참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가 이렇게까지 이 사건에 집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그 또한 젊은 시절에 악마를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사태를 제대로 다루기에 앞서, 먼저 그 당시의 일을 이야기해두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래야만 지금 이 에레디오스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꽤나 길고,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서는 쓸데없는데다 부차적인 내용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시작과 끝 부분을 절취선으로 표시해 놓을 테니 그런 이야기를 보기 싫은 사람은 아예 이 단락만 통째로 넘겨도 상관없다. 그렇게 해도 서사를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에레디오스는 가마욱스 근방에서 아주 권세있고 유망한 가문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날 때부터 욕심많고 야심찬 인물이었다. 이러한 천성은 갓난아기일 적부터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에레디오스의 어머니는 당시 귀족으로서는 드물게 아이들한테 직접 젖을 먹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젖을 먹이는데 그때까지 5개월 짜리밖에 안되던 짜리몽땅 에레디오스가 먹다말고 심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해보았지만 아이가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1살터울인 형이 어머니의 젖을 다 먹고 내려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의 울음이 뚝 그친 것이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다가 차츰 그러는 일이 많아지고 되려 어머니에게 이상한 순서를 요구하는 짓까지 벌이니 여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순서란 이런 것이다. 일단 에레디오스는 형이 자신보다 먼저 어머니의 품 속에 안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의 어머니는 반드시 에레디오스를 먼저 안아준 뒤에 형이 올라와야 울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항상 어머니의 심장이 더 가까운 왼쪽에 자리해야 했다. 또 자기를 빼놓고 형에게만 젖을 주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태생적인 직감인지 이런 때만 발동하는 영감이 있는 것인지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울어버리고, 배가 가득 찼으면서도 볼 옆으로 빤 젖을 흘리면서까지 기계적으로 본인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또 한 살 터울인 셋째가 태어나면서 심해졌다가 그 아이가 원인모를 병으로 죽자 한동안 수그러들었다.



어머니는 불안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지만 셋째가 죽고 나서 남아있는 아이들을 보니 그런 버릇도 귀엽고 예쁘게만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에레디오스가 제법 자라난 젖니로 어머니의 가슴을 확 물어버린 것이다. 어찌나 세게 물었던지 그 자리에 피가 흐를 정도였다. 아버지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추궁하자 어머니는 모든 일을 실토할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버지는 어머니가 젖 주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했고, 모든 사실들을 확인하고 나서 그때까지 열심히 젖을 빨고 있었던 아이를 보고 말했다.



"이놈은 짐승같은 놈이야. 언젠가 제 형뿐 아니라 애미 애비까지 잡아먹을 놈이라고."



그날 이후 아버지의 결심 하에 에레디오스는 아주 엄격한 교육과 감시 아래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형인 오프레드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동안 에레디오스에게는 유모의 젖을 먹이도록 했다. 그런데 아이가 유모의 가슴을 깨물자 아예 젖을 끊어버렸다. 그때가 태어난 지 1년 반쯤 되어가는 시기라 다른 아이들보다 늦긴 했지만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처음에 아이는 집이 떠나가라 울어댔지만 그럴 때마다 아예 관심을 딱 끊어버리니 며칠 후에는 더 이상 젖 문제로 울지 않았다.



에레디오스가 열 살이 될 무렵, 아이들은 그럭저럭 우애좋은 형제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날, 이 둘째가 어렸을 적에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는 사실도 거의 잊어버린 아버지는 잠시 아이들을 친척이 있는 이웃 영지로 보내 몇년 간 무예와 예절을 기르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친척은 명망높은 장군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있어서 제격인 사람이고, 이미 그를 존경하는 다른 몇몇 영주들 역시 아이들을 보내오는 바람에 그의 궁정 비슷한 성은 거의 아이들로 가득 찬 군사학교처럼 되어버렸다.



그 장군이 아주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그랬던 건 아니고, 이런 식으로 다른 영주들과 친분을 쌓고 미래의 대귀족이 될 아이들에게도 위엄을 세워놓는 편이 장차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장군은 더 적극적으로 가까운 영주들, 그리고 아주 멀리 있는 영주들에게도 편지를 써서 자신이 훌륭한 교육자인 데다가 가능한 한 많은 아이들끼리 모여사는 경험의 장점을 널리 알렸다. 심지어 장군은 후에 남자 아이들뿐 아니라 여아 아이들까지 적극적으로 성에 불러들였는데, 나중에는 그 수가 자그마치 서른 여섯 명에 이르렀다. 바로 이 아이들중에 헨나프리데가 있었던 것이다.



오프레드는 란다우 성에 도착한 첫날에 바로 열 두 살 먹은 헨나프리데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에레디오스가 헨나프리데를 좋아하게 된 건 좀 더 나중의 일이다. 어쨌든 두 형제 모두 그녀를 사랑했던 건 사실이다. 그로부터 몇달 뒤, 장군은 아이들의 남녀를 구분하고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도록 하고 있었지만, 그 먼 거리를 넘고 높은 담장을 올라 서로의 문간에 침입하여 노는 것이 유행이 되어있었다. 그 때 오프레드가 헨나프리데를 자주 찾아갔었는데, 그것을 본 에레디오스의 심장에 불꽃이 일어난 것이다. 에레디오스는 한 주에도 몇 번씩이나 자신의 용맹을 증명하겠다며 여자아이들이 있는 성탑 벽을 올라가 그곳에서 헨나프리데를 꺼내오곤 했었다. 그녀는 나와서 얼마 동안은 에레디오스와 노는가 싶었지만 잠시 눈을 떼고 보면 어느새 오프레드와 함께 뛰어다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에레디오스는 헐레벌떡 그곳으로 뛰어가고는 했다.



그녀의 행동이 에레디오스의 마음에 질투와 욕망의 화염을 들끓게 하였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본인이 사랑하는 여인을 비난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늘같은 형님(아버지의 교육 탓으로)한테 들이받을 수도 없다.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릴 수도 없었다. 어느새부턴가, 에레디오스는 헨나프리데야말로 본인의 인생을 걸고 사랑해야 할 여인이며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더럽고 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결혼할 바에야 암자로 들어가 평생 독신으로 사는 게 낫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쬐그만한 14살 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선천적으로 에레디오스의 이러한 마음은 어디에다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고 대체제를 찾아 해소할 수도 없이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도록 지독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계속되는 좌절과 절망의 경험들은 그 속에 검은 앙금으로 남아 층층의 벽돌이 되어서는 악마가 실실 웃으며 기어나오는 지옥을 착실히 쌓아나갔다.




오프레드와 헨나프리데가 15살이 되었을 때, 그리고 에레디오스가 14살이 되었을 때, 형제들의 아버지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에는 이제 나이도 찼으니 슬슬 집에 돌아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문제는 그 편지에 적힌 기한이었다. 원래라면 그 편지는 형제들이 떠나기 약 이 주일 전에 맞추어 도착했어야 맞다. 하지만 편지를 가지고 달려오던 전령이 중간에 도적을 만나 길을 잃고 겨우겨우 찾아오는 바람에 기한이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모레면 아버지가 보내온 사람들이 그들을 고향으로 데려가도록 되어있었다.



전령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곳까지 오면서 맞딱뜨린 위험과 모험에 관한 이야기들을 신이 나서 늘어놓고 있을 때 그들 형제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기회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벌벌 떨고 있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그마저도 어영부영하는 사이 취침시간이 되어 이젠 시간이 정말 하루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날 밤 에레디오스가 눈물로 베개맡을 적시고 있을 때 침대 아래층에 있던 오프레드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레디오스! 야! 너 지금 자냐?"


에레디오스는 잠시 눈물을 닦고 대답했다. "아니요, 형님. 왜요?"



대답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에레디오스는 달빛에 우는 얼굴을 들킬까봐 침대맡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고 고개만 조금 돌렸다. 축축하게 젖은 베개창이 볼에 달라붙으면서 찝찔하고 불쾌한 맛이 났다. 어릴 적부터 에레디오스가 자주 맡아본 맛이었다. 마침내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내려와 봐."



에레디오스는 그때에도 이미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서 2층침대를 내려오는 것이 조금 불편했지만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내려와보니 오프레드가 배게쪽에 반듯이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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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5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2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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