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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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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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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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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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디오스의 악마 (3)

DUMMY

울고있었던 헨나프리데가 모포와 배게로 덮힌 틈바구니에서 뛰쳐나왔다.



"이 못된 년들아! 에레디오스를 모욕하지 마! 이 착하고 명예로운 아이를 왜 욕해? 그 위험들을 뚫고 탑을 올라와준 것만으로도 이 아이의 신의는 증명된 셈인데, 그걸 보지 못하는 너희들이야말로 장님에 벙어리라도 된다는 거야 지금?"



헨나프리데는 옛날에 자주 그렇게 놀았던 것처럼 에레디오스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



"에레디오스야. 너도 많이 슬프겠지. 내 그걸 먼저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거든. 시간이 없어. 오프레드가 너를 이리로 보낸 거지? 그 한심한 녀석은 맨날 이런 일에 동생을 시키고 말이야! 그 애가 뭐래? 뭐랬어? 무슨 말이라도 한 거 없어? 약속이라던지.... 계획이라던지.... 이별의 징표라던지!" 헨나프리데는 에레디오스가 한참이나 말이 없자 두 팔로 잡고 흔들었다. "이 녀석아 말좀 해주라 제발!"


"형님께서 말하셨습니다." 에레디오스는 팔에 잡힌 부분을 놓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서 말했다.. "내일 아침에 해 뜨는 대로 항상 만나던 그 정원의 구석에서 만나자고요. 자기가 먼저 그곳에서 정원사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겠다고요."



헨나프리데는 에레디오스의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 "고맙다! 난 언제나 너를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친절하게 나를 도와주었어. 이 은혜 잊지 않을거야."



헨나프리데는 즉시 옷장으로 달려가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자."


에레디오스는 놀라 반문했다. "가자고요?"


헨나프리데는 창문 곁까지 갔다가 에레디오스가 얼른 따라오지 않자 홱 돌아보았다. "그럼 오늘 같은 날을 훌쩍 넘기란 말이니? 그게 맞는거야? 네가 여기까지 날 찾아왔으니 책임지고 그 애한테 데려다주는 게 맞지."



위험하다고 대꾸할 겨를도 없었다. 헨나프리데와 가까운 곳에서 함께 벽을 내려오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튀어올라 그를 잽싸게 낚아채고는 창문 아래로 던져버린 것이다. 그들이 적당한 밧줄로(숙녀들의 방에 밧줄은 왜 있는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몸을 연결하자 여자들이 기쁨에 찬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헨나프리데가 들킬까봐 그런 건지 부끄러워 그런건지 주먹을 내지르며 그만하라고 윽박질렀으나 숨죽인 놀림소리가 끊임없이 아우성을 내질렀다.



또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에레디오스는 어느새 탑을 다 내려와있었다. 헨나프리데가 옷에 묶어놓은 외투를 풀어 입는동안 아까 그 경비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껏 한 명이 올라갔다가 잠시 후 두 명이 내려오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자기들이 책임을 져야 할 사태가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지만 우선 음탕한 눈빛으로 말없이 응원부터 했다.



"에레디오스 나리, 여기 이 소시지를 가져가쇼!" 경비 중 한 명이 한 손에 들고 씹어먹던 소시지 반절을 흔들며 외쳤다. "혹시 여분이 필요할 줄 누가 알아요?"



에레디오스는 격분해서 성큼성큼 달려가 헨나프리데는 형님의 여인이지 그 상대는 내가 아니며 나는 잠시 데리러 왔을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런 숙녀를 그런 식으로 놀리다간 성의 동서남북을 한번에 경비서도록 각 떠지리라고 을러댔다. "알겠어? 알아들었냐구!"


"그냥... 그냥 농담한 건데 왜 그러세요...." 경비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헨나프리데가 그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에레디오스는 아까 그 아름다운 달을 보았던 오솔길을 달리면서 자꾸만 뒤쳐지고 있었다. 말했듯이 여름밤 차가운 고장이었다. 앞에서 헨나프리데의 입김이 날아와 자신의 것과 섞여서 어둠 속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는 게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알 길이 없었다.



되레 그녀가 길을 잘 알아서 에레디오스를 안내하는 꼴이었다.



숙소는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고요해져 있었다. 다들 자는 것 같았다. 에레디오스는 헨나프리데를 이곳에서 기다리게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의 숙소는 2층에 있었던 것이다. 헨나프리데가 숙사 건물 앞에 어쩔 줄 모르고 서있다가 뒤따라온 에레디오스를 채근해서 안으로 보냈다.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 형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형은 아까와 똑같이 그 자리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리없이 문이 열리자 오프레드는 조금 놀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레디오스는 다른 놈들이 깨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나오라고 손짓했다. 이런 개같은 놈들에게 밀회를 들켜 놀림거리로 삼아질 바에야 혀를 깨물고 죽는 것이 나았다. 아마 형도 같은 생각이리라고 에레디오스는 생각했다.



이 때 오프레드가 침대 뒤켠으로 돌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그곳에 못 박힌 채 서있더니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다 큰 사내가 2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쯤 별 일 아니지만 에레디오스는 무슨 이유에선지 깜짝 놀랐다. 그는 형을 뒤쫒아 창문으로 달려갔다.



아래에서는 이미 바닥에 착지한 오프레드가 헨나프리데와 가까이 붙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에레디오스는 자기도 뛰어내리려다 그만 힘이 풀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침대로 기어들어가 양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가 무엇을 어쩔 수 있겠는가? 그저 저 아래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축제라도 벌어지는 듯한 망상에 빠진 채 미동없이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따금 막은 귀를 풀고 무슨 소리가 들려오나 살며시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때마다 솜창에서 놓여나온 귀가 바람에 땀을 식히면서 기분좋은 소리를 냈다.



저 밑에서 무언가, 나이에 맞지 않은 추잡한 짓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면 에레디오스도 그 나름대로 절망에빠져서 저 남녀를 저주하거나 속으로 헐씹어보기라도 했을 것 같았다.



허나 사랑이란 그저 애들처럼 수줍게 이어져왔다는 사실이 그를 꼼짝 못하게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에레디오스가 쌀쌀한 뜰 아래로 두렵게 내려오자 그들의 사랑도 막을 내렸다. 그는 간단한 파란색 저고리에 상아색 외투와 밤색 허리띠를 차고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과 장화는 선명한 검은색이었다. 오프레드가 위험하게 헨나프리데를 탑에서 내려오게 했다고 미친놈이라고 욕을 해댔다. 그러자 헨나프리데가 왜 저 애를 욕하냐고 맞짱구를 놓았다.



"너야말로 오늘 같은 날이면 스스로의 힘으로 내게 올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게 더 이상해. 내가 깜빡 잊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이 났어.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라면 말이야. 조금 슬프더라도 뭔가 낭만적이라던가, 따스한 추억이라던가, 그런 거라고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하는 거잖아." 헨나프리데는 오프레드의 가슴을 주먹을 때려댔다. "그런데 뭐? 흙 묻은 정원사 차림을 하고 오겠다고? 제정신이니?"


"정원사가 뭐 어때서 그래." 오프레드가 대꾸했다. "다들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흙일 한다고 얕보면 안 되는 거야. 그 사람들도 본인들의 훌륭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정원은 또 뭐 어때서. 너도 그곳을 좋아한다고 늘 말하지 않았어?"



오프레드는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두면서 비 오는 날 정원같이 울창한 수풀 속에서 함께 비를 피하면서 놀았거나 종아리에 묻은 물흙을 물길에 씻어주었거나 하였던 그런 추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오프레드가 뒤를 돌아보고 에레디오스에게 이 논쟁의 의견을 물었지만 에레디오스는 수줍게 조금 웃을 뿐이었다. 헨나프리데는 눈앞의 사내를 빤하게 쳐다보다가 넌 인물이 좋아서 정원사를 해도 잘 어울릴거라고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웃었다.



그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동안 동생은 조금 떨어져서 호위무사처럼 주변을 살펴주었다. 그들은 수많은 약속과 단념과 눈물을 나누다가 마침내 성탑 앞까지 왔다. 그 사이에 경비들은 다음 근무자들로 바뀌어있었다. 그들 역시 놀랍다는 투였지만 굳이 멋없게 뭔가를 물으려고 하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들고 있던 창을 조금 위로 올려보였다.



오프레드는 아까처럼 에레디오스와 헨나프리데의 몸을 밧줄로 연결해서 위로 올려보냈다. 그런데 올라가던 도중 헨나프리데가 지쳐선지 울면서 몸을 훌쩍이느라 그랬는지 혼자 손을 헛디디고 떨어질뻔했다. 에레디오스가 급히 잡아서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남녀가 흔히 밀회를 즐기곤 한다던(에레디오스도 중간에 쉬려고 들어갔다가 그런 현장을 목격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으슥한 창고였다. 들어가자마자 에레디오스는 여자의 몸으로 너무 무모한 짓을 했다며 헨나프리데를 비난하고 그 손을 부여잡았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손톱이 깨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손바닥 안쪽도 살갗이 좀 쓸려버렸다. 이곳에서 손을 치료하고 잠시 쉬기로 했다. 방안이 폐쇄되어 있어서 구석진 곳에 있으면 금방 땀과 피냄새로 가득찼다. 에레디오스는 일부러 바람이 부는 창가로 갔다. 하지만 공기는 차가운데 바람은 모두 끊겨있었다.



그들은 치료가 끝나자마자 조금 떨어져서 앉았다. "이제부터 계단으로 가야 해요." 말없이 있는 게 멋쩍었던지 에레디오스가 말했다. "충분히 올라왔으니 들키지 않기만 바래야죠."



숙사 내 사감들이 순찰을 도는 시간은 헨나프리데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은 다른 방에서 자면 되니까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도 되겠다고 말했다.



"너도 이만 가보렴. 괜히 나 때문에 여기 더 있을 필요는 없지."


"좀 더 있겠습니다." 에레디오스는 자신의 옆모습만을 허락한다는 듯한 자세로 대답했다. "저도 지쳤거든요."


"너는 누군가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되겠어? 괜히 우리 때문에 시간만 잡아먹은 건 아닌지 걱정된다."


에레디오스는 갑자기 자존심을 자극받고 몸을 떨었다. "이미 만났습니다. 만났죠. 제가 그럴 사람도 없는 쑥맥은 아니잖아요."


"그래? 누굴?" 헨나프리데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에레디오스는 뒤늦게 지금 성에 여자가 열댓 명 남짓이라 건너건너 묻다보면 금세 거짓말이 들키리란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욕을 씹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니?"


"네. 알죠. 아니요, 모릅니다! 알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관계를 저것들한테, 저 밖의 철없고 더러운 욕정에 몸 맡기고 사는 그런 잡것들이 알도록 내버려둘 것 같나요? 명예롭지 못한 짓입니다!"


헨나프리데는 에레디오스의 가시돋친 말은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만나러 가!"


"만나러 가라고요?" 에레디오스는 그녀가 아주 이상한 말을 했다는 듯이 멍하게 바라보았다. 이내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층분히 했습니다. 그 사람도 만족할걸요. 지금 어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자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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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5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6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5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6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6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6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6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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