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최근연재일 :
2024.08.22 20:35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651
추천수 :
26
글자수 :
426,357

작성
24.08.08 22:52
조회
5
추천
0
글자
11쪽

그놈이 여기있어!

DUMMY

잠시후 고개를 든 에레디오스가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악마가 한 짓이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쭈욱 풀리는 느낌이들면서 소름이 끼쳤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악마가 있었던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을 리 없어."



곤봉을 바닥에 내던지고 맨발로 정신없이 산을 내려갔다. 울창한 나뭇가지를 헤치면서 얼굴에는 생채기가 생기고 머리에는 낙엽이 달라붙었다.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는 산림을 돌고돌아 사라지지 않고, 구천의 도깨비불처럼 벌레울음이 들려오는 계곡을 떠돌았다. "내 몸 속에 사악한 악마가 있었다. 악마가 나를 홀려서 형을 죽이려고 했어. 거기에 깜빡 속아넘어가고 만 거지. 생각해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형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해왔었어. 그렇다면 이놈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죄악을 저지르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나를 부추기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않고서 내가, 어찌 내가 형을 죽일 생각을 감히 품을 수나 있었겠어? 어찌 아버지를 죽일 생각을, 어머니를 죽일 생각을, 그래, 헨나프리데를 범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을 수나 있었겠어?" 산 아래까지 내려온다음 에레디오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동굴의 입구는 나무의 윤곽에 소리없이 묻혀있었다.



갑자기 악마에게 몸을 빼았겼었다는 그 한 가지만이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진흙땅을 네 발로 짚고 짐승처럼 꺽꺽 울기 시작했다.


"악마다! 악마다!"


"살려줘! 여기 악마가 있어! 나를 쫒아오고 있어!"



별안간 영감이 떠오른 듯이 에레디오스는 몸에 들러붙은 악마를 떼어놓으려고 미친 샤먼처럼 두 팔로 온몸을 비비적거리며 들판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악마라는 것이 무엇인가? 지옥에서 기어나오는 붉은 털 달린 괴물, 짐승의 얼굴, 인간과 천사를 타락시키는 죄악의 장본인, 모든 해악의 원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에레디오스의 악행에도 악마가 관여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그러니 에레디오스와 악마를 분리시킬 수만 있다면 그의 죄악도 사라지는 것이다. 에레디오스는 마치 동족의 언어를 잊은 사람처럼 "악마야! 악마!" 이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서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이, 그는 친형이 있는 산으로부터 달아나 수도원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날, 맨발로 거친 땅을 뛰어다니면서 생긴 흉터를 그는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 앞에서 처음 꺼내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날 이후 악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왔죠." 에레디오스는 이제 모든 이야기를 끝마쳤다고 얘기하고 한결 후련해진 기분으로 그동안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수사에게 물었다. "헨나프리데의 행동을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런 남편에게는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두려워하거나 증오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랑은?"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있었던 수사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게 뭐죠?"


"그건 악마가 한 일이 아니었다는 거야. 모두 자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던 거지. 악마가 자네같은 양아치 건달을 타락시켜서 뭐하겠나? 악마에 대한 자네의 이론은 흥미로운 데가 있어.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었지! 악마는 질문으로 오지 않는다네, 그건 사실이 아니야. 에레디오스, 악마는 인간의 형태로 오는 거야."


"저는 수사님의 학식과 명성을 믿고 신성한 고해를 부탁드렸습니다." 그가 화나서 씩씩거렸다. "지금 수사님은 저를 모욕하고 계십니다."


"이보게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저한테 아주 악마같은 놈이라고 하셨잖아요!" 에레디오스는 수도원 전체에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를 내질렀다. 그의 할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았던 수사는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수사님이야말로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까? 당신이야말로 악마의 하수인이라 봐도 무방하겠어요. 그런 알량한 이론으로 제 경험을 짖누를수는 없어요! 인정하십시오! 인정해요!"


"뭘 인정하라는 겐가." 단단히 멱살을 잡힌 채로 수사가 보았는데 사람의 눈이 돌아도 단단히 돌았다. 이 미친놈이 갑자기 자기를 때리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수사는 겁을 집어먹고 가만히 있었다.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에레디오스는 폭력을 근거로 협박하듯이 그 앞에 얼굴을 단단히 들이밀었다. "나는 그날 분명히 악마를 직접 보고 경험했어.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왜 너는 노망이 나서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 거지? 응? 너도 악마의 하수인이냐?"



이것으로 수사가 에레디오스의 이야기를 들어준 실마리가 잡히는 셈이었다. 들판에서 악마를 보았다던 그날 이후 에레디오스는 악마의 존재를 확고히 믿으면서 그 존재를 추적하는데 인생을 바쳤다. 악마가 자신의 삶에 계속해서 영향을 부린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묽은 콩죽을 먹고 남은 질그릇에서, 구석탱이 나무통에서, 동료들이 사용하는 세숫대야에서 악마를 보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무작정 사람을 몰아세우고는 네놈 악마가 분명하다고 을러대기에 이르렀다. 좀 전에도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하인 꼬마 하나를 붙잡았다.



"너 이 새끼 악마지! 나를 타락시키러 온 거지. 나를 쳐다본 그 눈빛은 네 안의 악의를 증명하고 있다! 바른대로 말해!"


"나리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이거 좀 놓고 얘기하시죠. 갑자기 무슨 소리를..."


"그럼 악마의 하수인이지! 나를 감시하고 있었지? 궤변 늘어봐야 소용없어. 네놈을 이단심문관에게 넘겨버리겠다. 그 백정들이 악마의 몸에서 인간의 가죽을 어떻게 벗겨내는지 아나? 진실이 드러날거야. 네놈이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진실이! 아니, 갈랑드 수사? 뭘 쳐다봅니까! 당신도 악마의 하수인이죠!"



그 현장을 노수사 갈랑드가 발견하고 진정시킨 뒤 한쪽으로 끌고 가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애초에 말도 꺼내지 말고 그냥 무시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리 너라도 이런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 할걸!" 갑자기 에레디오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공중에 대고 외쳤다. 실성한 것이다. "악마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악마는 존재해! 악마는 존재한다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쯤되면 독자 여러분도 짐작했으리라 믿는다. 원장이 이토록 게랙탱의 고발 사건에 집착하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미쳐서 그렇다는 걸)



'그 놈이 여기 있어! 그 놈이 여기 있어!'



게랙탱을 추궁하다말고 원장은 방안의 이곳저곳을 희떠보았다. 그는 횃불과 사람으로 어지러운 방안에서 뱀처럼 벽과 천장 바닥 사이를 기어다니는 악마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여전히 내 주위를 맴돌고 있어!'



"저 녀석은 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으면서 허구언 날 나만 찾는단 말이지." 근처에 앉아있던 악마가 중얼거렸다.



"게랙탱! 말하라고!" 답답했던 롤마르가 허리를 꼬집었다. "겁쟁이가 될 셈이냐?"


"....맞습니다."


게랙탱이 말했을 때 원장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가 뒤늦게 쏘아보았다. "저 자식, 저 자식 방금 뭐라고 했어." 원장은 주위에서 불꽃이 이글거리는 횃대 하나를 빼앗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제대로 들리게 똑바로 말해."


"제가 법정에 대고 말했던 모든 말들은 사실입니다." 게랙탱은 눈앞에 들이밀어진 불꽃을 피해 뒷걸음질쳤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예... 예, 사실입니다. 사실입니다." 그가 말을 더듬었다. "원장님... 죄송합니다. 뜨겁습니다."


"지옥의 불꽃이 얼마나 뜨거운지는 알고 있어?" 원장은 횃대를 뒤로 빼면서 속삭였다. "그 말이 거짓일 경우 네가 떨어지게 될 장소에 대해서 알고는 있니?" 잠시 후 그가 소리쳤다. "말장난은 용서하지 않아! 처음부터 한 자 한 자 똑똑히 발음하란 말이야. 네가 법정에서 말한 것 중 정확하게 어느 부분에서 어느 부분까지가 진실이지?"


"전부..."


"전부!"


원장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바실리쿠스 비스콘티가 악마숭배자라는 것도?"


게랙탱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한 자 한 자 발음하는 것도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악마사냥꾼 에레디오스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이번에야말로 놈을 잡겠네! 그가 게랙탱의 손을 잡고 외쳤다. "가자!"



어딜 가자고 하는지도 모르면서 게랙탱은 알겠습니다 하고 방을 뛰쳐나갔다. 원장이 그를 데려간 곳은 본인의 소박한 집무실이었다. 잠시 후 롤마르도 수사들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밀랍 촛불이 작게 켜진 책상에서 게랙탱이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진술 조서를 작성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명멸하는 빛 주위로 원장의 후덕한 얼굴과 겁 먹은 게랙탱의 얼굴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원을 그리고 있었다. 게랙탱이 말을 하면 원장이 그것을 작성했다. 이따금 원장이 직접 질문을 했고,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지금 그 말이 사실이면 너는 나에게 거짓말을 했던 거야. 지금 진술의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신선한 바람을 맡게 했다. 여름의 후덕한 기운에 밤꽃 냄새가 진하게 엮여있어 가슴이 푸근해지는 달밤이었다.



원장은 아무래도 지금 너의 기억력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그 원인으로 수면부족을 주장하고는 정신을 차리게 해주겠다며 게랙탱을 우물가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게랙탱의 상의를 벗기고 등어리에 냅다 찬물을 부어버렸다.



원장이 열심히 두레박을 올리면서 말했다.



"어때, 정신이 번쩍 들지? 성 큐브릭께서도 속세의 유혹으로 괴로울 때마다 이렇게 차가운 등목을 하셨었다네! 머리까지 부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봐! 이제 너의 기억도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원장은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흘리는 게랙탱의 눈앞에서 웃옷을 훌렁 벗고 하마같은 덩치를 드러냈다. 풍족한 생활로 살집은 두툼하나 아직까지도 기골의 장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원장은 그에게 물동이를 넘기고 자기한테도 좀 뿌려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돌아와서 조서작성을 이어나갔다.





한 편 그때 감방의 모포 속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던 바실리쿠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정말 괴이하고 이상한 소리였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났는지 씨익 웃으면서 소리를 죽인 채 엉금엉금 기어가 철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보았는데, 그곳에서 구유통에 담긴 잔반을 우걱우걱 씹어먹고있던 말레이카와 눈을 딱 마주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