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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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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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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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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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장례준비 (4)

DUMMY

"그 양반이 뭘 잃었던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요?"




때 마침 영주 부인이 근처를 지나갔다. 대화가 뚝 그쳤다. 부인은 거위, 돼지, 그리고 암말이 하나같이 견사 앞에 모여서 뭘 하고들 있는 건가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허나 예로부터 이 지방 사람들은 동물들이 뭘 하든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다.


부인은 가레랑이 오는 시기에 맞춰서 집사를 찾으러 갔다. 늙은 집사는 근처에서 개밥을 주고 있다가 부인이 오는 걸 보고 일어섰다.


부인은 영주가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서 목욕과 식사를 준비해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하녀들을 한 데 모아 성 안에 기립해 서있도록 시켰다. 집사는 알았다고 한 뒤 물러났다.


가축들은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본인들 꼴이 우스웠는지 다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클리셰가 한숨을 내쉬었다.




"난 무엇보다 하녀 애들이 불쌍해요. 그애들은 테레사를 데리고 한밤중에도 같이 놀곤 했잖아. 영주님은 예전부터 그 꼴을 못 봐서 틈만나면 을러대곤 했었는데. 이번에 그애들이 어떤 벌을 받을지 생각하면 난 오금이 저려와요. 그런 애들은 이런 성에서 비참하게 쫒겨나면 갈 곳이 없고 울면서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법이거든요."


"걔들이 천치 호구도 아니고 지들 살길은 알아서 다 찾아가겠지.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업보라면 다 업보고. 되려 몸 성히 나갈 수 있으면 다행이네. 이번 기회에 가레랑이 그 애들 다리몽둥이를 다 조사놓으려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그게 다 그 애들이 일부분 원인제공을 한 거잖아."


"난 그런 거 잘 모르겠어. 아니, 이번 기회에 모다 쫒겨났으면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어요."


말레이카는 꼬리를 빙빙 흔들며 파리를 쫒아내고 안나도 가려운 데를 부리로 씹었다.


"아니 그건 왜?" 클리셰가 물었다.


"먹을 입이 줄어야 사람들이 고기를 덜 먹을거 아녜요?"


말레이카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영내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테레사가 사라졌던 바로 그날 밤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사흘만에 돌아온 가레랑이 온몸에 흙먼지와 진흙을 뒤집어쓴 채로 성문 앞에 도착했다.


집사는 음식과 목욕을 완벽하게 준비해놓았고, 영주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고 꿀과 향신료를 평소보다 더 많이 쳤다. 목욕물에는 향 나는 약초를 풀어놓고 포도주를 뜨끈하게 데웠다. 평소 가레랑이 좋아하던 것들이지만 오늘만큼은 재산을 낭비한다고 호령을 듣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순전히 영주 부인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시키는 건 그녀가 하고 꾸중은 본인이 먹었는데, 나중에 가서도 사과 한 번 없으니 자연스레 앙심을 품었다.




'너보다 내가 니 남편을 더 잘 아는데 이 여자야 이게 집안이 풍비박산날 일이 아니고 뭐냐?'




가레랑은 비틀거리면서 들어왔다. 가레랑은 이름난 꺽다리였다. 며칠 사이 수염이 꺼칠하고 눈은 쾡해졌다. 그 쾡한 눈이 성안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본 건 집사와 하인들이었다.




"아내는?"




그가 말했다. 집사는 조용히 위층을 가리켰다. 위층은 조용했다. 성안의 사람들은 딸을 찾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뒤에 따라오는 부하들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가레랑은 조용히 옷을 벗고 부하들에게 먼저 먹고 씻으라고 한 뒤 위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가레랑은 침실 문앞에 서서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몇 명의 하녀들이 일렬로 기립한 채 부인의 벌을 받고 있었다. 하녀들은 문을 마주보는 위치에서 가장 먼저 영주를 쳐다보았고, 부인은 등을 보인 채 서있었다.




"마리."


"오, 당신."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한 손에 애기 알통 굵기의 회초리를 들고 있었고, 숨을 씨근거리고 있었다. "온 줄 몰랐어요."




가레랑의 노한 눈길이 하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쏘아보았다. 이윽고 그 눈빛은 마리를 향했다. 그는 침실로 다가가서 장갑을 벗어두고 깨끗한 외투를 걸쳤다.




"그만해."


"테레사는요?"




가레랑은 침대맡에 걸터앉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방에 있는 모두가 부인의 숨결이 떨려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불꽃이 튀는 눈으로 하녀들을 쏘아보았다.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 때 아래층에서 집사가 올라왔다.




"영주님, 애들을 좀 데려가야겠습니다."




가레랑은 모두에게서 등을 돌린 채 벽을 바라보며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데려가시오."




집사는 마리의 눈치를 보았다. "부상자들을 치료해야 하는데 약병이 든 위치를 이 애들만 알고 있어서요. 몇 명만이라도..."


"데려가라고. 다 데려가."




하녀들은 짧게 목례하고 문을 닫으면서 나갔다. 이제 단 둘만 있게 되자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가레랑의 입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공격받았소."


"누구한테!"


"모르겠어. 간신히 도망쳐나왔어. 산적일 수도 있고."




마리는 막대기를 내려놓고 그의 옆에 다가와 앉았다.




"그럼 우리 테레사는요?"


"모르겠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어. 그놈은 어디있소? 그날 처음 소식을 알려왔던 그놈 말이오. 놈한테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모두 들어야겠어."


"그 남자는..." 마리는 침을 삼켰다. "도망쳤어요."




가레랑은 차마 입으로는 옮길 수 없는 삿된 욕을 내뱉으며 운명을 저주했다.




"그렇다면 당신을 포함해서, 그간 눈 먼 장님들이 내 성을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군. 내가 분명 그 자식을 제대로 붙들어놓으라 말하지 않았던가? 매번 일을 이딴식으로 처리하면 내가 뭘 믿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겠냔 말이야!"


"난 당신 말을 제대로 따랐어요." 마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움직이기 전에 놈은 이미 사라져 있었어요. 우리를 잠에서 깨우고 난 뒤에 곧장 도망친 거라고요. 난 여기서 명령을 내릴 뿐이고. 그걸 내가 뭐 어떻게 해요?"




가레랑은 잠시 후에 다시 말했다.




"이 영지를 노리는 놈들이 있다면, 테레사를 찾는 데 힘을 허비할 수는 없어. 딸아이가 사라졌다는 걸 알리는 것도 안 돼. 그 애한테는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맡기는 수밖에."


"안 돼요."




가레랑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 땅을 노리는 적이 있다면 놈들에게 약점을 보일 수는 없어. 만약 나의 적들이 내가 딸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들이 먼저 그 애를 손에 넣는다면, 우리는 그 상황을 버틸 수 없을 거야. 애가 불쌍하다 해도 당장은 어쩔 수가 없어. 테레사가 납치된 게 맞다면 놈들은 금전을 요구하러 올 거야. 그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상황을 차례차례 파악해보자구."




가레랑의 수없는 설득에 테레사는 결국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대답을 들은 가레랑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많이 바빠질 거야. 내가 바깥의 일들을 처리하는 동안 당신은 테레사를 찾아봐. 일단은 친척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사방으로 소식을 알려. 하지만 명심해. 이 일이 절대 시장바닥이나 도시의 골목같은 더러운 곳에 싸돌아다녀서는 안 돼. 그런 곳에는 더러운 종자들이 꼬이기 마련이니까."


"내 알아서 할게요."




가레랑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마리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침대에 앉아있었다. 마침내 눈물을 닦고 창밖을 바라보니 말등에 오른 가레랑이 말을 거칠게 몰아 성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며칠 뒤 성벽 위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에게 너무나도 슬픈 소식이 전달되었다. 밤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혹은 적적한 밤에 외로울 때마다 요긴하게 사용했던 임시초소가 머지 않아 해체된다는 소식이었다.




마리는 남편이 시킨대로 눈앞에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갔다. 날이 깜깜하게 저물고 밤새가 또록또록 울도록 그녀는 책상 앞을 떠나지 않고 양초를 켰다. 돼지기름 냄새에 머리가 아파올 즈음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문밖에서 하녀가 대답했다.




"접니다, 마님. 들어가도 될까요?"


"뭔데 이 밤에 자지 않고 문 밖에서 그러고 섰어?"




잠시 후에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마리는 대답하지 않고 근처에 있던 시녀들에게 손짓했다. 그들은 튀어나가서 곧장 힘있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 앞에 서있는 마리에뜨 (8화에서 개랙탱한테 얻어맞은 바실리쿠스를 치료해주다가 간을 때려서 주저앉힌 그 사람) 를 거의 밀치면서 나와 문을 닫았다.




헤르프리카는 잠옷 차림이었다. 그녀는 고개 숙인 것들을 차갑게 노려보면서 시선을 위아래로 번갈았다.




"이것들이 이젠 미쳐서 위아래도 없나. 니들이 할 말 있으면 마님 안전에 이리 떼로 몰려와도 되는 거냐?"


"마님은 지금 피곤하셔. 용건만 간단히 말해. 그럼 우리가 전할 테니까." 엘프리데가 좀 더 유하지만 마찬가지로 엄하게 말했다. "이런 일로 시간낭비하지 말자구."


"죄송해요, 아씨." 마리에뜨가 말했다. "그게...."


"그래. 얼른 말해."




하녀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헤르프리카가 성질을 냈다.




"마님께선 지금 너희 꼴을 보기만 해도 다 뒤집어 엎고 싶을 걸. 갑자기 벙어리가 된 게 아니라면 나도 얼른 자고 싶은데?"


"저희는...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흰, 저흰, 정말 몰랐습니다. 그저 아가씨가 지루해 하시는게 맘아파서...."


"이런 얘기는 더 들을 것도 없겠다." 엘프리데가 말했다. "안 들어도 뻔한 얘기만 해봤자 서로만 피곤할 뿐이잖아. 그럴바엔 내일 아침에 다시 오는 게 어때? 그때쯤이면 사라진 아가씨가 다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잖아. 마님 기분도 조금은 나아지겠지. 물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그녀의 시선은 천천히 하녀복을 입은 여인들을 지나 가장 뒤쪽에 숨은 존재를 향했다. 성의 시녀는 헤르프리카 엘프리데 율리돈나 총 세 명이 있었다. 율리돈나는 혼나는 쪽이었다. 그녀는 가장 깊은 구석에 숨어서 떨고 있었다.




헤르프리카가 끌끌 혀를 찼다.




"이 애들은 항상 게으름 피울 궁리만 하다가 때마침 테레사 아가씨를 좋게 이용한 것 뿐이야. 그러다가 사고가 났으니 마님 치맛자락이나 붙잡으러 온 거겠지. 안봐도 뻔해. 이 참에 모두 헐벗겨서 내쫒버려야 하는데."


"저희는 그저..." 하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 일로 인해 마님이 저희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뻔뻔하네." 헤르프리카가 혀를 찼다. "이런 애들은 천성이 그런건지 아님 아예 막돼먹은 건지 찬물 더운물도 구분을 못하는 걸까? 쟤들은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말이지, 율리돈나, 너는 정말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사람도 가려서 만날 줄 모르니까 그런 말썽을 피우게 되는 거야. 너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 애면 아가씨를 더 부추기지 말고 호되게 꾸짖어서라도 바른 길로 이끌었어야 맞지 않아? 니들 단체로 악마가 씌였구나?"


"마님께 직접 얘기를 드리면 안될까요." 마리에뜨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애원했다. "부탁드려요, 아씨,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요."


"오, 그래?" 헤르프리카가 눈을 크게 떴다. "너한텐 볼일 없으니까 꺼지라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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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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