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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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최근연재일 :
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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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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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땅 아래에서는 (3)

DUMMY

마음만 있다면 에릴돈나가 이 손을 뿌리치고 소리를 지를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막잡혀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대답을 해, 에릴돈나!"


"....."


"대답해!"






지금 이 순간 정말 짐승같은 자가 누구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들깨를 뿌린 듯, 까무잡잡한 밤이었다. 테시데리우스의 눈은 지금 그녀를 향하고 있으나 진짜로 보고있는 구석은 미래라던가 과거라던가 지금 이곳이 아닌 아주 멀고 닿을 수 없는 지점을 택하고 있는 듯했다. 겁에 질린 눈동자가 애원을 하여도 그들의 소망은 이렇듯 엇갈리고 있었으니 테리데리우스가 에릴돈나의 입을 놔주는 것이 좀 늦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뒤늦게 그녀의 눈빛에서 겁 먹은 기색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뒤이어 본인이 지금 이 공간에서 가장 무서운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무슨 대답을 하란 말이에요?"






에릴돈나는 온몸을 이불로 감싸안고 물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


"숨어있는 건 이제 지쳤어!"






테리데리우스가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많이 쉬어있었다.






"당신이 날 이곳에 가둔 그날부터, 젠장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겠어(작가도 그날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이곳에는 달도 해도 없단 말이야. 나는 항상 그 좁은 토굴 속에 웅크린 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저 찰흙같이 단단한 칠흑의 암흑 속에서 누가 내 숨소리를 듣지는 않았을까 항상 두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어. 그런데도 당신은 하루 두 번 끼니만 겨우 때우는 그릇이나 가져오고 말았지. 그런 때가 아니면 당신은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어."






혼자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이 너무 오래였던 나머지 그의 심장은 에릴돈나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본인을 가두어 놓았으며 이 목적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약올렸다는 식으로 느낌을 왜곡하고 있었다.






"애는?" 에릴돈나가 중간에 말을 낚아챘다. "당신은 애를 보고 있었어야지. 우리 그러기로 했잖아."


"꼬마애는 어차피 제 힘으론 나올 수 없을 거야. 차꼬를 채워놨잖아."






그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이 주위를 흘끔거렸고, 이제보니 히익히익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가 발작적으로 양 어깨를 비벼댈 때마다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땅굴 특유의 어스름에 비쳐서 꺼멓고 퉁퉁 부운 눈시울이 번들거렸다.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거기 숨어있으라고 했잖아요. 지금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나 해? 영주고 부인이고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누구든 범인을 찾으면 살가죽을 벗겨서 아예 씹어먹을 기세로 사람을 찾고 있단 말이야." 에릴돈나가 속삭였다. "녀석들이 얼마나 독기가 올랐는지 일대 반경을 다 수색해도 나오지 않으니 이제는 근처의 땅을 다 헤집어버릴 기세로 날뛰고 있어.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빠져나와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아까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부터 대답해!"


"누구긴, 누구야, 손님이지!"






테시데리우스는 뚝 하고 입을 다물었다. 어찌나 세게 다물었는지 정말로 이빨에서 뚝 소리가 났다. 턱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또 호흡을 심하게 떠는 걸 보니 점점 더 화가 나는 것 같았다.






"손님이라고."


"뭐 그럼 내 남편일까?"


"그러면..."


"...."


"...."


"그러면 뭐?"


"끝까지 일을 치른 건가?"






테시데리우스는 눈썹으로 에릴돈나의 몸을 힐끔 가리켰다. 이제보니 그는 여성과 마주보는 것이 익숙치 않은 보였다. 평소의 에릴돈나라면 이 순간 약점을 파악했을 것이다. 온갖 아양을 부리면서 남자의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저 비참한 어둠속으로 상냥하게 밀고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졸려서 짜증이 치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걸 어떻게 믿지?"


"난 원래 잘 때 옷 다 벗고 자는데 뭐 어떡하라는 거야? 내가 뭐 아까 그 사람 찾아다가 당신한테 진실만을 말하라고 맹세라도 시켜야 해?"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지."






에릴돈나가 머리를 짚으면서 더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나가라고 손을 흔들었지만 테시데리우스는 못 본 척 하면서 서있다가 잠시 후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나가라고. 여기 있다가 남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들키면 어떻게 되는데?"






심하게 따지는 투였다.






"땅속 마을의 존재를 알아차린 사람은 살아서 나갈 수 없으니, 단번에 목이 그이고 말 걸!"






그래도 테시데리우스는 땅바닥에서 엉덩이를 때지 않았다. 에릴돈나는 저 엉덩이를 뻥 차주고 싶었다. 허나 그랬다간 저 미치광이가 단검으로 본인의 엉덩이를 뻥 차줄지 모른다.






"오늘은 여기서 잘래."






에릴돈나는 성질대로 막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왜 당신을 내 방에서 재워야 하는 건데!"


"에릴돈나!" 테리데리우스가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물론 다른 방들까지 들릴 만큼은 아니었다. 지금 이 집에 사는 대부분의 여인들은 모여서 주사위 놀이를 하러 나갔고 나머지는 자고 있어서 서로 조금만 조심하면 말소리를 들키지 않고 대화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더 조심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사람을 죽였어!"






에릴돈나는 숨을 헉 들이켰다. 당장에 대꾸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 자신을 도망자로 만들었어. 내 영혼은 당신 하나로 더럽혀졌단 말이야. 후회하지는 않아. 죽어도 싼 놈이니까. 하지만 합당한 대가가 필요해! 솔직하게 말하지. 내가 원한 건 당신이었어. 내 아끼는 칼이 깁요슨의 모가지를 뚫고 살과 뼈를 긁어댔던 그 순간에도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서 그 일을 하고 있었어. 그런데 당신은 자꾸만 나를 멀리 처박아놓으려고 하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나는 당신한테 죽이라고 한 적 없어."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되는 상황에 저항하지 않았어! 내 손을 잡은 건 당신이야. 처음부터 나를 이렇게 박대할 생각으로 나를 데려온 거야? 말이라도 해주면 좋았을 걸! ...말이라도 해줬다면, 그 불쌍한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 줬겠지. 그리고 이 고장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지금 이 꼴들을 보니 차라리 그러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네."






에릴돈나는 테시데리우스가 제멋대로 하고싶은 말들만 골라서 던져대는 것을 보고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조용히 시켜야 했고, 고분고분하게 이 방에서 나가도록 만들어야 했으며, 눈과 심장에 쌓인 독도 풀어줘야 할 것 같았다. 테시데리우스는 에릴돈나가 제대로 듣는 것 같지 않으니 위에 두고 온 부모님들과 친구들(그는 제대로 된 친구가 없다)의 예를 들면서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렸다며 그 대가를 암시하는 말들을 그녀에게 해댔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낼 것 같아서 무섭네.'






그녀가 어찌하여 테시데리우스를 결국에 진정시켰는지는 여기에서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후 산 사람이라면 으레 잠들어야 할 시간이 왔으며, 밤은 조용해졌고, 도르헤 영감의 장례식을 끝내고 간 사람들이나 수상쩍은 쥐들의 안내를 받고 그들의 아지트로 향한 테레사나 소득없이 수색을 마치고 말탄 채 집으로 돌아오는 가레랑이나 마침내 바실리쿠스와 술자리를 갖고 화해하는 그로가네나 모두 피곤했다는 사실이다. 며칠 있으면 매음굴은 다시 손님들로 북적이게 될 것이다. 에릴돈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아이가 사라진 것을 가장 먼저 안 건 테시데리우스였다. 그는 에릴돈나의 방에서 나간 뒤 그녀가 자신에게 살도록 마련해준 토굴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테레사를 가두어놓은 석굴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보아도 아이의 모습은 커녕 누군가가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석굴 입구에 서서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본인의 이름을 듣고 겁먹어 헉 지르는 소리는 커녕 곤히 잠자는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기에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테시데리우스는 아가씨, 아가씨 소리를 내면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쏟아진 죽이 뚝뚝 흐르는 목그릇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건 아닐까?'






본인 역시 깜깜한 어둠 속에서 홀로 숨죽인 채 쭈그려 있어보았으니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나이이지 않은가.






테시데리우스는 몹시 긴장한 채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발끝에 채인 차꼬를 발견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아주 멀끔한 솜씨로 풀려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마치 어둠 속을 휘잡으려는 사람처럼 어두운 방안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애가 도망갔잖아!'








분명히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당시에는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에릴돈나가 아이를 보러 왔다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돌아갈 때 한손에 들고 있었던 횃불 빛에 이끌려서 자기도 모르게 따라갔었다. 이건 에릴돈나의 잘못도 있는데, 아이만 보고 바로 근처에 있는 자신에게는 눈짓 한 번 없이 서둘러 돌아갔던 것이다. 이에 화가 났던 테시데리우스가 집앞에 이르러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돌아가려다가 에릴돈나의 방에 남자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그만 눈이 돌아가버린 것이다. 집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허둥지둥 하다가 점점 의혹이 의심으로 바뀌어가고 그녀에게 기만과 이용을 당했다는 생각이 점점 꼬리를 들면서 마치 광인처럼 창턱을 기어 올라갔던 것이다.






그 사이에 아이가 빠져나갔다면 지금쯤은 성벽 안의 계단을 올라 지상에 이르고 성 안의 사람들에게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도 따듯한 식사와 목욕을 마친 다음 이불 속에서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렇다면 영주의 병사들은 납치범들의 골육을 분쇄하러 숨겨진 성벽의 문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결론에 이르자 테시데리우스의 머리속은 본인이 죽기엔 너무 젊다는 생각으로 가득찼으며, 뒤늦게 천국과 지옥, 그리고 남들에게 죄를 짓지 않는 건전한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성찰하기 시작했다. 고작 한 여자 때문에 사람을 무참하게 죽여버렸고 더럽혀진 영혼은 아마 평생 씻어내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 기도해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안 돼, 안 돼! 죽기 싫어,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






그는 호흡에 곤란을 느끼며 쿵쿵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벽에서 벽으로 손을 짚어가며 아직까지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아이를 찾아 석굴을 열 두 바퀴나 돌았다. 물론 본인은 그것이 몇 바퀴였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자신이 어디를 돌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서리에 이르자 미친 사람처럼 반대편 모서리로 펄쩍 뛰어나갔고 이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손으로 짚을 수 없는 벽 사이 빈 공간을 수색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바닥의 죽그릇을 밟거나 자기 옷을 밟고 넘어지기도 했다.






'없어,"없어!"






뒤늦게 바닥에 귀를 바짝 대보았지만 발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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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4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5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7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5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6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3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1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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