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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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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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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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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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장례준비 (3)

DUMMY

가장 먼저 쿠미누스의 눈에 띈 것은 이 자가 칼을 왼손으로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쿠미누스는 아까 자기가 이 자의 오른손을 세게 콱 쥐었던 것을 떠올리고 이판사판으로 다가오는 칼끝을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반대손으로 주먹을 쥐어 있는 힘껏 상대방의 얼굴을 후려쳤다.




스바로치는 아가리를 얻어맞고 한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경직되어 있다가, 생각보다 그게 너무 아팠는지 한손에 칼을 든 채로 내빼버리고 말았다.




쿠미누스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손은 삽시간에 피로 범벅이 되어버렸다. 그는 자기 옷을 물어찢어서 단단히 묶은 뒤 창고를 빠져나왔다. 사위가 아주 깜깜해져 있었던 것이다. 잠시동안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몰라서 거의 절망스러운 상태에 빠져있던 쿠미누스는 일단 말등에 올랐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말은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쿠미누스는 다친 손으로 말목을 강하게 붙들고 속보로 달려갔다. 저 멀리 가레랑의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올릴 여유가 생긴 쿠미누스는 이 근방 온 교구를 뒤져서라도 스바로치라는 놈이 어떻게 되어먹은 놈이든 반드시 찾아내서 그놈이 어딘가의 영주라거나 심지어 황제의 할애비쯤 된데도 용서치 않고 본인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다시는 이 땅을 향해 오줌조차 쌀 생각이 들지 않도록 철저히 파괴하리라 속으로 다짐 또 다짐했다.




헌데 이상하게도, 오면서 보니 마을은 깊은 어둠속에 침잠한 듯이 보였다. 아무리 밤이라 그래도 이상하다. 어찌됐든 지금은 치료가 급하고 당장의 잠이 급했다. 그는 손에 연고를 바르고 히솝 꽃을 꿀과 함께 우려낸 약물을 마신 뒤에 아귀에 습포를 둘둘 바른 다음 윌코지를 불렀다. 윌코지가 달려왔을 때, 쿠미누스는 침대에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그가 사정을 파악한 건 다음날, 이른 아침 미사를 준비하려고 침대에서 막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그 때 윌코지가 문 앞으로 다가와 그를 불렀고, 그들은 문간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레랑 영주님께서는 이틀째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테레사 아가씨가 실종되었습니다."










"영감님이 불쌍해죽겠어, 정말."




이른 아침에 말레이카는 화가 대빨 나있었다. 그녀는 이따금 뒤를 돌아보면서 침을 튀튀 뱉고, 또 언성을 높히면서 허공에 대고 을러댔다.




"저런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을 가족이랍시고... 참 내, 세상 어이가 없다니까. 아무리 양심을 말아먹고 도리를 삶아 먹었다고 해도 말이지 어찌 지들이 영감님한테 저럴 수가 있느냔 말이야. 영감님 없었으면 시장 바닥에 뒹굴다 굶어 죽었을 것들이."


"그게 다 사람 팔자인 거지, 언니는 왜 면전에선 암말도 못하다가 이제와서 우리한테 대고 흉을 보고 그래요?" 코넬리아는 땅 이쪽저쪽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시끄러우니까 그만 좀 해요. 영감님이 그애 가족이지 우리 가족이야?"




말레이카는 기가 차서 한숨을 팍 내뱉었다.




"난 이년하곤 말도 못 하겠다. 어쩜 이리 하는 말마다 못되고 싹바가지가 없을까 몰라. 너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너, 어디 이것아, 어디 마을에 어른들 앞에 가서도 그런 식으로 말해봐라. 그러면 손녀며느리 된다는 애가 도르헤 영감님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그렇게 심드렁하게 있고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우릴 그렇게 푸대접 하는게 말이나 된다는 거야?"


"그만 해요, 언니. 우리끼리 싸우면 어떡하자는 거야." 중간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클리셰가 작게 말했다. "우리가 클라리 그 사람 본인도 아니고 어찌 이 상황에서 그 속을 훤히 알겠어? 그런 사람들은 보통 남들 앞에서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마음을 콱 닫아버리는 법이야. 그리고 우리가 가고 나면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거지. 그리고 사람들 다 듣겠어. 목소리 좀 낮춰요."




말레이카는 닫았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 코넬리아는 작별인사를 하면서 자기 집으로 건너가버렸다. 클리셰가 싱글싱글 웃음을 흘리면서 분위기를 돋웠다.




"서로 못된 말 안 하니까 얼마나 좋아요. 물론 우리 서로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영감님 돌아가시고 모두가 슬픔에 잠겨있을 이런 시기에 그런 못된 욕을 던지면서 싸워대고 서로 흉을 보는 건 좋지 않을 거라구요. 제 말이 맞죠?" 클리셰는 말하면서 주둥이로 말레이카의 옆구리를 강하게 쑤셔 간지럼을 태웠다. "언니 내 말이 맞지!"


"그래, 니 말이 다 맞아." 말라이카는 간지럼을 못 참고 깔깔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해. 난 옆구리가 약하단 말이야. 진짜 못살겠네, 넌 왜 맨날 내 옆구리를 괴롭히고 그러는 거야?"


"언니가 그런 말 하지 않았으면 나도 간지럽힐 일 없었을 텐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해?"


"너랑은 정말 말싸움 못하겠다."


"그쵸?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싸울 일을 만들지 않으면 돼. 그러면 다 해결이 되잖아."




그들은 말하면서 양계장으로 건너갔다. 저번에 말했듯이 닭장은 중간의 통로를 중심으로 왼쪽 닭장이랑 오른쪽 닭장이 나뉘어져 있었다. 왼쪽 닭장 구석의 대장 자리에서 게레할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잠시 인사를 나눈 후 도르헤 영감이 살던 집에 다녀온 얘기를 했다. 말레이카는 그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화가 다시 치밀어올랐다.




"어르신, 걔 그거 어찌나 표독하고 말을 안 들어먹던지, 나는 처음에 그 애가 귀라도 먹은 줄 알았어요. 우리가 눈물을 찔찔 흘리면서 영감님이 돌아가셨다고 말하니까 뭐라고 했는줄 아세요? "아, 네." 이러더라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당연히, 아니 가족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데 나올 수가 없는 반응이잖아요, 안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래서 한 번 더 말해줬는데 글세 걔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래요. 들었어요." 세상에...."




그렇게 말하는 말레이카의 눈가에는 억울함을 못 이겨서 나오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했죠. '이봐요,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여긴 선생님네 집이니까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 그래서 내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도르헤 영감님이 돌아가셨는데 어찌 반응이 그래요? 슬프지도 않아요?' 영감님은 얘기를 들으니까 그렇지 그 자리에서 직접 들었으면 지금처럼 점잖지는 못했을 거야. 아이고, 참, 나도 성격 이상하네! 죽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야 해? 이리 답답할 줄 알았으면 한바탕 뒤집어 엎고 오는 건데."


"그래. 그랬더니 걔가 뭐라더냐?"


"뭐래긴요. 그냥 흐지부지 끝났지."




게레할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영감한테 이런 소리 하면 미안하겠지만, 그 양반은 이미 그 집에선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거든.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우리가 겨울에 도르헤가 돼지우리를 벗어나서, 어떻게 거길 나갔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얼음 개울에 빠져있던 걸 구해준 적이 있었단다. 도르헤는 그 늙은 몸으로 심하게 떨고 있었지. 어찌나 심하게 떨던지 그대로 돼지 두루치기가 되는 건 아닐까 싶더구나. 그래서 일단 그 집에다 데려다주려고 우리는 눈 언덕을 올라갔다. 거기 갔더니 클라리 그 애가 짜증을 내면서 말하더구나. 왜 정신을 놓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면서 겨울을 나는 데 써야 할 장작을 낭비하게 만드느냐고 말이야."


"그게 정말이라면 난 더 이상 그 여자를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도 없겠어!"


"이 얘긴 아무한테도 하지 말고 너희들끼리만 알고 있어라. 이번 일은 그냥 흘러가는대로 두어야 해. 가족 일은 가족 일로 제쳐두고, 그리고 뭐 장례는 장례대로 단촐하게나마 치뤄드리자고. 꼴을 보니 그쪽에서 뭔가 준비할 생각은 없어보이니까."




말레이카와 클리셰는 양계장을 빠져나와서 이번에는 개들이 모여사는 견사 앞으로 갔다. 사냥개들이 사나운 우리 속에 갖혀있었다. 개들은 호기심에 단체로 벌떡 일어나 철창 사이사이로 마른 코를 쑥 내밀었다. 그때 마침 저쪽에서 안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클리셰가 말했다.




"저기 저거 안나가 걸어오고 있네. 저렇게 뒤뚱뒤뚱 걸어오는 폼을 보니 우리한테 할 말이 잔뜩 있는 게 분명해. 이런 이야기에서 보면 저런 사람들은 보통 한참 동안이나 우리를 붙잡고 너스레를 떨어대기 마련인데."






"지난 겨울은 정말로 무섭고 혹독하기 그지없었어요. 사람들이 고기를 어찌나 먹어대던지!"




안나가 말했다.


늦가을은 도축의 계절이다. 그녀는 아직도 그 시절의 끔찍한 광경들이 눈앞에 떠오르기만 하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괜스레 다른 사람들도 떠올리기 싫어하는 일들을 마구 말해대고는 하였다. 그래서 조금은 미움을 받았다. 지금 그녀가 이 둘을 보고 활짝 웃으면서 달려온 건, 그녀를 무시하지 않는 얼마 안되는 사람중 둘이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식구를 넷이나 잃었단 말이야. 난 그날의 일이 똑똑히 기억나. 우리 거위집 바로 문밖에 커다란 나무둥치가 있어요. 사람들이 내 목을 콱 잡아서 그리로 데려가면 손으로 몸을 누르고 한 발로 머리를 밟아서 고정시킨 다음 도끼로 목을 끊어버리는 거야. 나는 운 좋게 여태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


"그럴수록 힘을 내야지." 클리셰가 말했다. "어찌 됐든 먹을 입이 많아진다는 건 가레랑 영주님의 위세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뜻 아니겠어. 우리한테 꼭 나쁜 일만 되는 건 아니지. 가끔식 사과나 당근을 더 먹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건 확실히 좋은 일이잖아."




안나는 코웃음쳤다.




"사과랑 식구들 목숨을 비교하다니 무슨 계산이 그래? 언니는 잘 모르나본데, 거위는 사과를 먹지도, 당근을 먹지도 않아요. 우리가 좋아하는 건 추수가 끝나고 사람들이 거위를 살찌우기 위해 밭에다 풀어주는 일이지. 그때만큼 우리가 살이 통통하고 기름이 바짝 오르는 때가 없어. 그런데 가레랑이 위세가 높든 아니든 우리같은 거위들이 먹는 게 나아질 것 같지는 않은데? 언니처럼 금이야 옥이야 마굿간에서 바실리쿠스 같은 사람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말들은 다르겠네. 그래, 그래 보여요, 이쁨을 받다보니 아예 가레랑 편이 되어버렸나봐요."




클리셰는 얼굴이 산딸기처럼 빨개진 채 얼굴을 숙였다.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하니."


"하지만 이렇게 보면 너도 제대로 된 애는 아니구나." 말레이카가 말했다. "자기 딸을 잃어가지고 미친 사람마냥 들판을 돌아다니는 그 사람을 어찌 흉 볼 수가 있단 말이야? 얘 엄마도 지금 거기 끌려 다니느라 지금 이틀째 집에도 못 돌아오고 생사도 모르는 상황인데 그건 말이 너무 심한 거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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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1 Harald
    작성일
    24.08.07 23:17
    No. 1

    재밌게 읽었습니다. 어릴 적 많이 읽었던 분도출판사 동화들이 생각나는 구수한 문체라 특히 정감이 가더군요. 다만 따라가기가 힘들어 저는 여기서 잠시 멈출까 합니다.
    완결까지 작가님의 건필을 빕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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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6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4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5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7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8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37 돼지재판 (1) 24.08.05 7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7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6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6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7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6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2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6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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