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너는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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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x
작품등록일 :
2024.07.2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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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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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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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재판 (1)

DUMMY

테시데리우스는 바깥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잊고 아이의 이름을 꽥꽥 지르면서 바닥과 바닥, 벽과 벽 사이 자기가 아직 짚어보지 못한 부분을 찾아서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에릴돈나의 얼굴은 또 무슨 낮으로 본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 서늘한 땅굴 속에서도 인간의 몸은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서늘한 공기가 흐르는 곳으로 이끌리다가 어느새 먼 옛날 이 석굴의 주인들이 사용하던 숨겨진 통로 안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직 땅굴 속이 번성하고 사람과 가축이 드나들던 시절에 이 석굴은 어느 잘 나가는 토호의 예배당으로 쓰던 곳이었다. 그 사람들이 이곳에서 누구에게 무엇으로 제물을 바쳤는가는 이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테시데리우스는 들어설 때부터 어쩐지 오싹하고 을씨년한 기운이 등어리에 바짝 끼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이가 혹시 이곳으로 들어간 건 아닐까 하고, 절대 그럴리는 없겠지만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데다 쥐구멍 속에라도 들어가 달아나고 싶은 인간의 심성이 맞물려 그런 식의 단편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 바람에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다. 테시데리우스는 바닥에서 일어나 벽을 짚어가면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벽을 짚는 손에 울퉁불퉁하고 이상한 무언가가 잡히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거의 공황상태에 가깝게 입에서는 일그러진 소리를 내면서 걸었다.



갑자기 그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비명을 멈추지 않고 정신없이 어두운 미로속을 뛰어다녔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지점부터 그가 어떤 곳으로 나아가든 통로는 갑자기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어졌고 벽에서 만져지는 것들은 부스러지면서 바닥에 기분나쁜 가루를 뿌리고 그의 옷속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테시데리우스는 호흡의 곤란을 느끼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어떤 존재를 느끼고 그들이 자신에게 단검을 들고 다가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배를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 엎드린 채로 한참을 엉엉 울었다. 그런 그가 석굴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나왔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고, 짐승마냥 날뛰는 가슴을 지닌 채 뛰쳐나왔다. 이 때 에릴돈나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러 횃불을 들고 찾아왔다. 거의 새벽이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맞붙어서 싸우기 시작했다. 에릴돈나가 완전히 작정하고 이건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던 네놈 탓이라며 드잡이질을 하려 하자 테시데리우스도 자기 나름대로 화도 나고 또 완전히 돌아버려서 자기가 책임지고 도망친 아이를 찾아오겠다며 칼을 뽑아들고 고성방가를 했다. 아이를 찾고 싶으면 너도 협력해서 지금 당장 어젯밤 아이가 차꼬를 풀고 도망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이리저리 물어보고 오라면서 억지를 부려댔다. 에릴돈나는 횃불에 어린 사내의 눈동자를 보았는데 완전히 미친놈이 다 되어있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면 설령 그것이 어제 저녁 허벅다리를 물고 도망친 모기새끼라 할지라도 지옥 끝까지 추적해서 숨통을 끊어버릴 만한 광기였다.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튀길까봐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횃불을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본인도 화가 나고 초조하기도 해서 보이는 사람마다 멱살을 잡듯이 잡고 물었다. 그러던 중에 아이를 봤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쥐와 사람이 반쯤 섞인 듯한, 몹시 못생기고 온몸에 두드러기와 버섯 같은 게 피어있는 쥐 인간이었다.



"끼끼끽! 어제 분명 느므딘의 어쌔신들이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는 걸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죠."



쥐 인간들은 밤눈이 밝아 땅굴 속에서도 잘 사는 족속이었다.



"어쌔신? 그 닌자 놀이하는 사이비 쥐새끼들 말이냐?"



돌아와서 테시데리우스에게 그 말을 전했더니 대뜸 놈들을 찾아가겠다며 단검을 빼들고 뛰쳐나가려고 했다. 에릴돈나는 놈들의 악명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이가 바깥으로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엮여서 좋을 것 없다고 말려보지만 헛수고였다. 테시데리우스는 놈들이 마을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이곳에서 수십년 살아온 노인들도 잘 모르는 심연 속에 모여살고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날부터 놈들을 찾아 땅굴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이었다. 바실리쿠스는 가레랑에게 허가를 받아 돼지들을 이끌고 근처의 작은 숲(늑대들이 출몰하던 그곳 말고 다른 곳)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잠시 나무뿌리며 버섯들을 집어먹게 한 뒤 다시 돌아오는 길에 개니쿠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니쿠스는 개였고, 바실리쿠스의 또래다. 그들은 이전에도 몇 번씩 동갑내기끼리 만나서 놀곤 했었다. 그런데 개니쿠스가 이런 말을 했다.



"그러고보니 아까 민토네 아주머니가 말레이카를 찾더라. 너가 돼지들 끌고 나갔으니 아마 거기 같이 갔을 거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네."



바실리쿠스는 그 말을 듣고 불안해졌다.



"걔는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하지 않고 이리저리 쏘다니는 애도 아닌데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서둘러 돼지들을 우리에 갖다놓고 사매를 찾으러 나갔다. 그런데 문간을 나서자마자 근처에 모여서 궁싯거리고들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어나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들은 바실리쿠스가 돼지들을 끌고 오기 전부터 그곳에 앉아있었고, 바실리쿠스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라 의심어린 눈초리로 짐짓 무시하는 채만 했었는데, 도리어 그쪽에서 말을 걸어오자 심히 긴장해서 대꾸했다.



"내가 바실리쿠스 맞는데, 왜요."


"당신이 바실리쿠스 맞다고? 돼지치기인 바실리쿠스 비스콘티?"


"맞으니까 맞다고 하죠. 무슨 일이십니까?"


"이 마을에 당신말고 다른 바실리쿠스가 있는 건 아니지?"


"있으면 저도 한 번 보고 싶네요."



바실리쿠스는 찾아온 남자들의 옷 입음새를 보고 대번에 수도원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두 명이고 모두 사내들이었다. 사내들은 바실리쿠스를 내버려두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다시 돌아와서 대뜸 뭐가 적혀있는 종이를 보여주었다.



"소환장이다. 지금부터 너는 우리 수도원 법정에 가야 한다. 얼마 전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증언해야 해. 나머지는 가면서 설명해주마. 따라와라. 지금부터 너의 행동에 따라 불리하게 적용될 수도 있으니 현명하게 행동하는 게 좋아."


"제가 뭔 짓을 했다고 생전 처음보는 당신네들을 따라가야 합니까?"


"네가 한 게 아니다. 돼지가 했지."



한 명은 그래도 참을성있게 설명해주려고 했지만 다른 한 명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놈아, 갈 길이 멀다. 가서 설명해주겠다고 했으니 그런 줄 알고 따라오면 될 걸 뭐하러 사람의 입과 다리 모두 아프게 하려고 드느냐?



딱 그 말을 듣고 바실리쿠스는 놈들을 모다 밀치고 그냥 갈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쿠미누스가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뭔 일로 오셨습니까?" 사제는 걸어오면서 손님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자네들의 얼굴이 기억나는구만. 셀레미즈 수도원에서 일 하는 친구들이 아닌가? 형제들이여, 우리 영주님의 충실한 돼지치기 바실리쿠스가 무슨 일을 저질렀다고 그렇게 남의 땅에서 위협조로 구는가?"



그 말대로 이 사람들은 수사가 아니라 수도원에 의탁하는 심부름꾼이었기에 사제를 보자마자 양 손이 공손해졌다. "쿠미누스 사제님, 안녕하셨습니까. 여기 저희 수도원장께서 발행하신 소환장을 보십시오."



쿠미누스는 심부름꾼이 수도원장이라고 힘있게 발음하는 걸 듣고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래서 대충 내민 종이를 붙잡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필체가 원장의 필체가 아니었다. 분명 도장만 많이 찍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잡일꾼들이 내용만 써붙여서 쓰고 다니는 문서가 분명했다. 도장을 찍는 것도 본인이 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원장의 권위가 실종되는 건 아니기에 뭐라 콕 집어낼 껀덕지가 없었다.



"이건 얼마전에 저희 영주님의 법정에서 제대로 처리했을 텐데요. 아이도 죽고 그 어머니도 죽고 주변 친지는 남아있지도 않은데 뭘 또 재판을 하겠다는 겁니까?"



바실리쿠스는 그 말을 듣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천천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야산을 돌아다니던 맷돼지가 아이의 신체를 뜯어먹고 도망친 일이 있었는데 아이 아버지는 죽은 지 꽤 되었고 어머니는 목을 매달았다고 한다. 그레코르 (13화에서 아이를 죽인 맷돼지를 추적하겠다며 여행을 떠난 그 사람. 지금 그는 가마욱스 땅을 벗어나 질기고 질긴 숲과 산만한 협곡을 지나쳐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삼림을 헤매고 있다) 가 얘기했다던 바로 그 사건이다. 그렇다면 바실리쿠스를 찾아온 것도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돼지가 일으킨 사건이고 범인을 찾지 못했으니 돼지치기라도 일단 불러서 말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돼지에게 재판을 해야죠. 가레랑 영주님께선 처벌할 사람이 없다는 데까지만 결론을 내고 저희 수도원 법정에 사건을 위임하셨습니다. 저희 원장님께선 이런 사소한 일도 가벼히 여기시는 법이 없죠."


"영주님께선 신경쓸 일이 많으십니다."


쿠미누스가 날카롭게 대꾸했지만 일꾼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 일은 저희도 들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일꾼들은 양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영주님께서 바쁘시다면 그분이 해야 할 일을 저희가 좀 도와주는 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본인께서 직접 허락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건에 관련되어 있지도 않은 '저희 돼지치기'를 데려가겠다는 겁니까?"


쿠미누스는 마지막 부분을 힘주어 말하고 말없이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런 사소한 사건을 핑계로 영지에 대한 수도원의 영향력을 뻗치려고 하는 수작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영주님께서는 원활한 재판을 위해서 이곳의 돼지까지 한 마리 념겨주셨습니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쿠미누스가 삿대질까지 해가면서 언성을 높혔다. "이사람들아 뭐 하러 사제에게 그런 거짓말을 해? 그대들은 주님의 화가 두렵지 않은 게 분명해. 가레랑이 자신의 돼지와 돼지치기를 당신네들한테 몽땅 넘겨주는 일을 허락했을 리 없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영주 대리이긴 하지만요."


"영주 대리!" 영주 대리는 아내인 마리를 뜻하는 것이다. 이를 사소한 안건으로 치부하고 놈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홀랑 넘겨준 게 분명했다. 타인에게 념겨줄 때에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정말 마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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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자가 있어! 24.08.09 6 0 11쪽
50 그놈이 여기있어! 24.08.08 6 0 11쪽
49 에레디오스의 악마 (6) 24.08.08 7 0 13쪽
48 에레디오스의 악마 (5) 24.08.08 7 0 13쪽
47 에레디오스의 악마 (4) 24.08.08 8 0 12쪽
46 에레디오스의 악마 (3) 24.08.07 8 0 11쪽
45 에레디오스의 악마 (2) 24.08.07 7 0 12쪽
44 에레디오스의 악마 (1) 24.08.06 5 0 11쪽
43 한밤의 늑대소동 24.08.06 7 0 11쪽
42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2) 24.08.06 8 0 11쪽
41 원장의 지저분한 속내 (1) 24.08.06 7 0 12쪽
40 돼지재판 (4) 24.08.06 6 0 11쪽
39 돼지재판(3) 24.08.05 9 0 12쪽
38 돼지재판 (2) 24.08.05 7 0 11쪽
» 돼지재판 (1) 24.08.05 8 0 11쪽
36 지금, 땅 아래에서는 (3) 24.08.05 7 0 11쪽
35 지금, 땅 아래에서는 (2) 24.08.04 8 0 11쪽
34 지금, 땅 아래에서는 (1) 24.08.04 7 0 11쪽
33 늑대한테 뼈다귀를 줘놓고 24.08.04 7 0 11쪽
32 누굴 탓합니까 24.08.03 7 0 12쪽
31 쟤가 오늘 왜 저러지? 24.08.03 8 0 12쪽
30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24.08.02 7 0 11쪽
29 콧물이 묻어서 소매로 닦아냈다 24.08.02 9 0 12쪽
28 늙은이 장례준비 (6) 24.08.02 10 0 12쪽
27 늙은이 장례준비 (5) 24.08.01 7 0 11쪽
26 늙은이 장례준비 (4) 24.08.01 4 0 12쪽
25 늙은이 장례준비 (3) +1 24.08.01 12 1 11쪽
24 늙은이 장례준비 (2) 24.08.01 8 1 12쪽
23 늙은이 장례준비 (1) 24.08.01 8 1 11쪽
22 매춘하는 개 인간 (5) 24.07.3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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