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정기열전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S수미르
그림/삽화
S수미르
작품등록일 :
2024.07.26 2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2:20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24,644
추천수 :
839
글자수 :
219,279

작성
24.08.20 12:20
조회
655
추천
21
글자
12쪽

20. 본격적으로 만들어 볼까나.

DUMMY

제20화 (본격적으로 만들어 볼까나.)



절도사부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이 공자가 미쳤다며?”


“글쎄다. 황도에 다녀온 뒤로 괴이한 짓을 한다더라.”


“안 그래도 뒤뜰에 냄새가 진동한다.”


“돈이 솔찬히 들었을 텐데.”


“몰라. 평장사 대인이 보증 서고, 재무총감실에서 천 냥이나 빌렸다는 말도 있어.”


“에구, 그 쓰지도 못하는 월표동전으로 뭐하게?”


“아냐. 철전이 아니라 은전이라더라.”


“에고, 은전 천 냥이면 철전 만 냥 아냐? 그걸 다 어떻게 갚으려고.”


“하여튼 희한해. 그런 돈을 낼름 내어준 평장사 어른도 야시꼬리 하지.”


“뒷감당을 어찌 할지, 걱정이네.”


“번진에서 빌린 돈 아닌가? 결국 평장사 어른이 갚겠지.”


“정신 차려. 여태곤 나리, 외성에 있는 집 가봐라. 당장 무너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무슨 돈이 있을까나?”


“그런데 도대체 뭐하는 짓이지? 아궁이를 백 개나 만들었어. 그 위에 산더미 같은 항아리를 올려놓고. 또 한쪽에는 요상한 웅덩이가 들어간 창고도 지었다니깐.”


“문제는 그 항아리에 끓이고 있는 게 오줌이라는 거야. 몰랐지?”


“오줌? 우리가 매일 측간에 뿌리는 그 거 말이야?”


“응. 우리 측간 뿐 아니라 병영 측간의 오줌까지 몽땅 퍼 간다더라. 그걸 펄펄 끓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뒤 채 근처에서 냄새가 진동하는 거구나.”


“사실 둘째 공자 숙소를 거기로 정한 건··· 조금 심했지.”


“쉿! 안 그래도 대 부인 마님 심기가 안 좋아. 괜히 아는 척 했다가 치도곤 당할라. 입조심 해.”


아니나 다를까.


뒷채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네. 큰 어머니. 보시다시피 오줌을 끓이고 있습니다.”


“다들 너를 보고 미쳤다고 수근거린다. 알고 있느냐?”


“네. 소자도 귀가 있기에 들었습니다.”


“정녕 그러하냐?”


“큰 어머니, 소자가 뭘 만들려고 합니다. 조금 지켜봐 주십시오.”


“네까짓 게 뭘 한다고. 재무총실에서 천 냥이나 빌렸다고 들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야?”


“네. 연리 삼 할 이자를 납부하기로 했고, 여섯 달 기한에 갚으려 합니다.”


“저 오줌을 끓여서 말이더냐? 여태곤 대인은 아버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평장사 신분이시다. 그런 분을 어떻게 꼬셨기에 덜렁 보증을 섰는지 모르겠다만, 어차피 못 갚을 돈 아니냐?”


“못 갚다뇨? 소자는 여섯 달이 도래하기 전에 이자까지 쳐서 다 갚을 것입니다. 약속하지요.”


“또박또박 말대꾸 하는 건 꼭 네 어미를 닮았구나. 지겹다. 지겨워.”


“소자, 비록 어미의 얼굴도 보지 못했고, 따뜻한 젖 한 번 먹어보지 못했지만 닮았다 하시니 고마울 다름입니다. 큰 어머니.”


“에잉, 천한 건 어쩔 수 없어. 당장 저 뒷켠에 지어진 창고와 항아리, 그리고 부뚜막을 당장 치우거라.”


“큰 어머니, 천 냥이 들어갔습니다. 그 돈을 물어주실 게 아니라면 간섭하지 마십시오.”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려? 마구니 같은 놈! 네가 못 한다면 내가 식솔들 시켜 다 뜯어낼 테니 그리 알거라!”


하아. 엉뚱한 곳에서 칼이 들어오네. 생각지 못했던 복병이다.


그 때.


“어머니. 그만 하세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


뒷켠 문이 활짝 열리며 들어서는 이사고가 빽 고함을 질렀다.


“사고야. 이놈이 미쳤다. 결국 나중에 그 화는 모두 우리 집안에게 닥칠 거다. 하는 짓이 그 여우와 똑같지 않느냐?”


“어머니, 제발! 숙명 작은 어머니 모욕하지 마세요. 저는 그분의 품에서 자랐습니다. 정작 어머니에게 안겨 본 기억이 없어요. 왜 그리 돌아가신 분을 아직도 미워하십니까? 어머니이!”


이사고가 소리를 한결 높이자 대부인이 추춤 물러섰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미래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철칙이다.


“사, 사고야. 당시 이 엄마는 외가에 가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


“도대체, 할아버지와 관계가 조금 틀어진 틈을 타 외가에서 호출한다고 쪼르르 달려가 몇 년 간 저를 버려둔 건 어머니세요.”


이사고의 어머니는 활호 절도사 영호충의 막내 딸이다. 역시 번진들 간의 정략 결혼으로 이납에게 시집와 이사고를 낳은 것이다.


“사, 사고야. 내 아들.”


“그만 돌아가세요. 그리고 여기 뒤켠에 얼씬도 마십시오. 만약, 사고가 천 냥 빚을 갚지 못한다면, 소자가 책임질 겁니다.”


“네, 네가 왜?”


“저는 형입니다. 형제란 피를 나눈 사이 아닙니까? 당연히 소자가 책임져야죠.”


뭉클한데?


진심이다. 이사도는 큰 어머니와 형 이사고의 대화를 들으면서 진한 감동을 맛보았다.


왜 형이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려고 하는 지도 알았다.


‘어머니. 편히 계시는 거죠?’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여실히 드러난다. 어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얼마 전 외가에서 만난 외할아버지 이보신 절도사와 외할머니의 인자한 얼굴도 떠올랐다. 외숙부와 사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피라는 걸 바로 느낄 정도로 다가왔었다. 그게 본능적인 피끌림이다.


그런데 지금 이사고가 사도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나오자 감동이 밀려온 것이다.


다행이 큰 어머니는 한숨과 함께 쫓기듯 뒤채에서 나가고 말았다. 이사고의 승리다.


“형님. 천 냥 있어?”


“없지. 내가 그런 큰 돈이 어디 있겠냐?”


“아까 형이 책임 진다며?”


“그래.”


“무슨 돈으로?”


“몰라. 어찌 되겠지. 정 안 되면 장가가지 뭐. 그럼 어떤 번진 아가씨인지 한 보따리 지참금을 싸오지 않겠냐?”


“돌겠네, 그게 해결책입니까?”


“야. 이 새끼야.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일을 벌리고 지랄이냐고? 오줌을 끓이면 금덩어리로 변하냐?”


큰소리에 걱정이 가득 묻어있다. 그래서 형이다.


“형, 마음이 가상해서 지분 좀 나눠줄께.”


“지분이 뭔데?”


아차, 또 깜빡했다.


“나중에 생기는 이익에서 한 몫 떼어 주겠다 이 말이야.”


“저 오줌이 돈이 된다고?”


“그래, 두고 봐. 소금 못지 않게 큰 돈이 될 테니까.”


이 와중에도 오줌을 채운 항아리는 펄펄 끓고 있었다. 냄새가 뒤채를 넘어 절도사부를 가득 채웠다.


***


“평장사 대인.”


“예. 간의대부 대인.”


“노망 들린 건 아닐 테고, 홀린 게요?”


“무슨 말이오? 아무리 언관(言官)이라도 막말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소이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외다.”


“걱정? 무슨 걱정?”


“그렇소. 평장사 대인이나 저나 옷을 벗는 순간 작은 밭떼기에 채소라도 심어야 먹고 살 입장 아니오.”


“예. 그렇죠. 모아둔 녹봉은 다 딸과 손녀 시집 보내면서 지참금으로 털어주고 남은 것이래봐야 무너지는 집따까리 하나 밖에 없으니 도리 있겠소?”


“그런데 덜렁 천 냥 빚 보증을 섰으니, 암담한 일이외다.”


“아! 그거.”


“맞소. 그거.”


“흘흘흘, 간의대부(諫議大夫)는 아직 모를 거요. 그건 축복이오.”


“무슨 객소릴.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딱하오. 도대체 이 공자는 그 큰 돈을 어디 쓴다고 합디까?”


그럼에도 평장사 여태곤은 함박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둘째 공자가 왜 돈이 필요한 지 나는 묻지도 않았다오. 그냥 보증을 서라기에 섰을 뿐이외다.”


그 말을 들은 간의대부 황광복이 입을 떡 벌렸다.


“내용도 모른 채 보증을 섰다고? 진짜 노망든 거 맞네. 말 년에 어찌 감당할 지 큰 일이오. 쯧쯧쯧!”


여태곤은 그런 황광복을 향해 천천히, 한 자 한자, 끊어 말했다.


“내.기. 하.렵.니.까? 그 천 냥이 얼마로 돌아올 지?”


“미쳤군. 진짜 미쳤어.”


“나도 모르지만, 나는 그 천 냥 덕분에 말 년에 호강할 것이외다. 장담하지요.”


***


“도련님. 대충 된 거 같은뎁쇼?”


“응. 내가 봐도 되었다. 장작을 꺼내라 지시해.”


“넵.”


각 아궁이마다 두 명씩 총 이백 명의 일꾼들이 판석이가 손을 들자 일제히 장작에 재를 끼얹었다.


“그대로 건드리지 마. 몇 시간 두면 아래쪽에 반짝거리며 빛을 발하는 게 보일 거야. 그게 바로 적린(赤燐)이다. 모두 수거해라.”


“적린이 뭡니까요?”


“음. 사람이 죽은 뒤 시간이 지나면 뼈만 남지?”


“예. 그럽지요.”


“그 뼈에서 반짝거리는 물질이 있어. 알고 있냐?”


“그럼요. 옛적 어른들은 그걸 도깨비 불이라 부르지 않았습니까요? 산소 근방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거.”


“그래. 그게 바로 인이다. 저것도 똑같아. 다만, 인은 그 자체가 굉장히 위험해. 그래서 250도 이상으로 끓여 인에 깃들어 있는 독성을 없앤 거다.”


이사도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1980년대 원진 레이온이라는 합성 섬유 공장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직원 8명이 숨지고, 687명이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의 대형사건이었다.


모두 적린이 되기 전의 황린(黃燐), 이게 탈 때 나오는 독극물과 성분이 유사하다.


원래 성냥은 단순 유황을 바른 제품에서 시작되었다.


거기서 조금씩 발전하여 백린(白燐)으로 만든 소위 딱 성냥이 최초 제품이었다. 서부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폼잡고 아무 곳에나 그으면, ‘딱’ 소리와 함께 불이 붙는 성냥, 그게 백린 성냥이다.


이건 공기 중 산소나 다른 물질과 접촉하면 자체적으로 불이 붙는 성질이 있다. 손가락으로 살살 비벼도 불이 붙는다. 그래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옷을 홀라당 태우곤 했다.


그 다음 조금 더 안전성이 보강된 황린 성냥이 나왔다. 이때부터 별도의 사포 같은 마찰면에 성냥 대가리를 긁어야 불이 붙도록 고안되었다. 비로소 안전 성냥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치명적인 부분이 있었으니.


황린, 그 자체에 독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절대 신체와 접촉하면 안 된다. 혹시 미량을 먹거나 흡입하면 극히 위험하다. 황린은 원진 레이온 사태를 부른 이황화 탄소와 구조가 흡사하다.


반면, 적린은 독성이 아예 없다. 34도가 발화점이라 만들기 쉬운 황린을 굳이 260도까지 더 끓여 적린으로 가공하는 이유다.


“좀 제조 비용이 비싸도 어쩔 수 없어. 안전이 제일이야. 암.”


이사도가 하는 말 중 못 알아 먹는 게 태반인 판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도련님이 시키니까 하는 것이지 왜 하는 지도 몰랐다.


“나무를 잘게 쪼개는 작업은 잘 되고 있느냐?”


“네. 두 채 작업장 중 하나가 온통 목수들 천지입니다요. 임금도 많이 나가는데 그 조그만 나무 조각을 어디 쓰려고 그러는지 당최 모르겠습니다. 도련님.”


“나중에 다 알게 된다. 지금 얼마나 만들었더냐?”


‘몇 달 잘게 쪼갠 송곳 같은 나무조각이 산더미처럼 쌓였습죠. 창고에 한 가득입니다요.”


“흠, 유황은?”


“유황이야 군기시(軍器寺)에서 많이 얻어 놨습죠.”


“그냥 주던?”


“아니고, 턱도 없습니다요. 원래 유황은 군에서 사용하는 특수물품이라 안 주려고 버티는데 평장사 어른이 뭐든지 내주라고. 어른이 보증하겠다고. 그래서 받아왔습죠.”


“허어. 그 분이 몰빵을 하시네.”


“네? 몰빵은 또 뭡니까요?”


“그런 게 있다. 판석이 자네는 저기 모래랑 송진 굽는 작업조에게 더 속도를 내라고 일러라. 저기가 너무 늦다.”


“예. 알겠습니다요.”


역시 충직하다. 아직 누구도 이사도가 뭘 만들려고 하는지 전말을 아는 이는 없었다. 특히 바로 옆에서 이사도의 명을 전달하고 현장을 지휘하는 판석이조차 모른다.


그럼에도 불평하나 없이 따른다. 그게 믿음이다. 모시는 사람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


그 것이면 된 거지.


이사도는 난리가 난 뒤켠의 작업장들을 흐뭇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히히히. 이게 다 얼마냐? 곧 부자 되겠다.”





-----------

당나라의 한국인 황제


각주 1 : 군기시(軍器寺)는 군의 병기나 갑옷, 기타 군수품을 제조 관리하던 기관입니다.


각주 2 : 지금은 사라진 경북 의성 성광성냥 공업사 (‘향로 성냥’ 제조사)의 전 공장장님께 자문을 구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웅 이정기열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안내. +2 24.09.10 87 0 -
공지 제목 변경 안내 24.08.26 60 0 -
공지 글을 시작하면서. 24.07.28 849 0 -
34 34. 찾았다, 시멘트 +6 24.09.03 442 22 14쪽
33 33. 멍멍 해봐! +3 24.09.02 452 18 16쪽
32 32. 나, 이정기외다! +3 24.09.01 499 19 14쪽
31 31. 전장의 반전, 뒤켠의 암습. +3 24.08.31 520 19 15쪽
30 30. 전쟁의 서막. +3 24.08.30 539 17 14쪽
29 29. 제발 한 놈만 더 걸려라! +4 24.08.29 542 20 13쪽
28 28. 전승사의 선택 +5 24.08.28 557 21 14쪽
27 27. 천기누설이라니깐? +4 24.08.27 572 19 14쪽
26 26. 내부 정리부터 하고 가자. +4 24.08.26 598 18 13쪽
25 25. 선물은 많을 수록 좋다. +6 24.08.25 615 21 13쪽
24 24. 전쟁의 서막. +4 24.08.24 638 18 14쪽
23 23. 황제의 속셈. +4 24.08.23 622 18 13쪽
22 22. 협상의 묘, 이런 거 본 적 있나? +2 24.08.22 646 23 16쪽
21 21. 저요, 저요! +6 24.08.21 655 22 14쪽
» 20. 본격적으로 만들어 볼까나. +7 24.08.20 656 21 12쪽
19 19. 성냥. +4 24.08.19 679 24 13쪽
18 18. 라이터 +4 24.08.18 727 23 12쪽
17 17. 활선당 꼴통들. +6 24.08.17 712 24 13쪽
16 16. 네가 사도냐? +3 24.08.16 717 30 13쪽
15 15.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4 24.08.15 750 25 13쪽
14 14. 안녕... 나의 히어로. +4 24.08.14 754 28 13쪽
13 13. 이사도의 고민. +4 24.08.13 787 26 14쪽
12 12. 덕종과 이사도 2. +2 24.08.12 779 27 15쪽
11 11. 덕종과 이사도 1. +7 24.08.11 805 26 15쪽
10 10. 소금을 장악하라. +8 24.08.10 837 29 17쪽
9 9.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이사도. +5 24.08.09 844 28 16쪽
8 8. 쿠데타로 추대 된 절도사 3. +3 24.08.08 840 3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