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이정기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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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수미르
그림/삽화
S수미르
작품등록일 :
2024.07.26 21:26
최근연재일 :
2024.09.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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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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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3. 황제의 속셈.

DUMMY

제23화 (황제의 속셈.)



“우선 계약금으로 받은 겁니다.”


“허어, 번개불에 콩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눈이 뒤집힙니다. 이 공자.”


“묵 총감님. 뭘 그정도 가지고 그리 놀라십니까?”


“세상에. 만금전장의 전표 백만 냥이 별 거 아니라고요? 도대체 얼마나 되어야 공자의 배에 찬단 말입니까?”


“우리 번진의 일 년 예산이 얼마죠?”


“이백만 냥 정도 입니다만.”


“은자?”


“네. 그러하오.”


“그럼 절반은 채웠네요?”


“나머지 절반은 백성들의 세금으로 충당 가능합니다. 덕분에 한 숨 돌렸습니다.”


“마 총감님, 돈, 더 쓸 방안을 세우세요.”


“에. 네. 예?”


“제가 이천 만 냥 이상 벌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돈 아끼지 말고 팍팍 쓰세요. 군사 모집하는 거, 이제 망설이지 마십시오.”


“이, 이, 이천 만 냥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그조차 최소한으로 잡은 겁니다.”


재무총감 마동성은 기가 질린 모양이다. 살짝 눈동자가 풀려 있었다.


번진의 일 년 예산이 이백 만 냥이다. 그 열 배를 주겠단다. 그것도 최소한이란다.


“예산이란 게 그리 뚝딱 세워지지 않습니다. 우리 재무총실에서 머리를 쥐어 짠 뒤 결정된 것이올시다. 그걸 하루 아침에 갈아엎고 다시 짜란 말이오?”


“지금부터 재무총실 관리들 퇴청시키지 마십시오. 제가 개개인별로 보약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열 배로 늘어난 예산에 맞춰 백지 상태에서 다시 수립하세요.”


기가 막힌다.


어느 조직이나 예산은 빡빡하게 세운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추가로 찔끔찔끔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완전히 거꾸로 되었다. 마 총감은 열 배로 확충된 자금에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그, 이천 만 냥에 대한 근거는 있습니까?”


“믿으세요. 제가 된다면 됩니다.”


“그래도······.”


“지금 등주 자사에게 파발이 출발했습니다. 그곳에 세 개의 독립 지역이 설치될 겁니다.”


“등주?”


“네. 발해관, 신라관, 왜관. 여기는 모두 삼국 인원들이 상주 할 곳입니다. 무역을 하려면 무조건 여기를 통하지 않으면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합니다.”


“주군께서 태평전에서 뵐 때도 별 말씀이 없었는데······.”


“곧 공표될 일입니다. 그리고 삼국으로 파견할 특사단이 꾸려지고 있습니다.”


“특사단...이 뭡니까?”


이 버릇,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현대에서 쓰던 용어가 간간이 튀어 나온다.


“절도사님의 특별 명령을 수행하는 사신단이라 생각하십시오.”


“네. 아까 이천 만 냥의 근거를 여쭸습니다만.”


“석류황(성냥) 유통으로 일천 만 냥 이상이 들어올 걸로 예상됩니다. 물론 이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겁니다.”


“이, 일처, 일천 만 냥!”


“다음 신라와 왜국, 마지막으로 발해와의 교역을 통해 또 일천 만 냥 이상이 들어옵니다. 뭉뚱그려 설명드렸지만, 충분히 가능한 수치죠.”


“아!”


재무총감도 인재다. 이런 자리에 아무나 임명되는 것이 아니다. 겨우 나이 사십이다. 눈치 빠른 재무총감은 바로 감을 잡았다.


“여기에 소금 유통에서 얼마가 들어올 지 가늠조차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예산 수립된 것을 몽땅 뒤엎으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재무총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겠습니다. 이 공자. 오늘부터 우리 재무총실 관리들은 퇴청시키지 않겠습니다. 뼈를 갈아 넣어서 새 판을 짜지요.”


“인원을 대폭 늘리세요. 그리고 녹봉도 지금보다 더 후하게 쳐 주세요. 가족들이 좋아하겠군요. 어차피 자신들은 그 돈 쓸 시간이 없을 테니까.”


“그러합지요. 뼈만 남을 정도로 굴리겠소이다.”


이로서 열 명의 희생자가 나오게 생겼다. 당분간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도 집에 가기 힘들 걸?


‘반쯤 죽을 그대들, 삼가 위로를 전하는 바이오.’


***


이때만 해도 성벽은 흙으로 쌓았다. 벽돌 성곽조차 없던 시기다.


일정 높이까지 흙을 쌓은 다음 사람이 올라가 발로 다진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흙을 부어 또 다지고. 이런 식이다.


그래선지 해마다 무너지는 곳이 생긴다. 장마철을 거치면서 지반에 액상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토성의 한계다.


이것부터 해결해 보자.


이건 아무도 모방하지 못하도록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단순히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시멘트.


현대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건설 자재다. 이 것만 있으면, 번진의 모든 성은 난공불락으로 바뀐다. 어떤 놈도 기어오를 수 없고, 무너지지 않으며, 파괴되지 않는다. 반 영구적이다.


성곽에 우선 사용하겠지만, 그뿐일까.


시멘트가 접합제라면, 거기에 모래와 자갈을 섞어 혼합한 완성물이 콘크리트다.


그래서 현대 문명을 콘크리트 문명이라고 한다. 곧 시멘트 문명이다. 아파트도, 고층 빌딩도, 상가도, 도로에도, 시멘트는 필수적으로 쓰인다.


“왕 행수가 서운하겠지만, 이건 안 돼. 우리 번진에서만 사용할 거야. 천 년 왕국이 무너지면 안 되지.”


이사도는 다시 종이를 꺼내 들었다.


“보자보자, 어디 있더라?”


평로치청 번진의 영역.


처음 청주를 먹었을 때 이정기가 장악한 주는 10개 주였다.


연주, 체주, 재주, 치주, 청주, 해주, 등주, 래주, 기주, 밀주.


모두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탓에 비옥한 토지다. 씨만 뿌려도 벼와 밀이 풍년을 이루는 곳이다. 거기다 체주와 등주에서는 구리가 나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래주, 기주, 치주, 밀주는 양질의 명주(비단)가 넘치도록 나온다.


소금은 말할 것도 없다. 전 대륙의 소금 중 절반이 평로치청의 해안에서 만들어진다.


군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철, 군사가 아무리 많아도 이들을 무장시킬 병장기는 필수다. 마침 연주에서는 대량의 철도 나온다.


평로치청 번진은 그런 요충지를 다 깔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가히 축복 받은 땅이다.


그러나 시멘트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료. 석회석. 이게 어디 묻혀 있는 지 도통 알 수 없었기에 이사도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잘 생각해 보자. 석회석, 석회암이 어떤 지질에서 만들어 지더라?”


***


이사도가 고민에 잠겨 있는 그 시각, 황도 장안성에서 황제는 성 태감과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다행히 양세법이 자리를 잡아 간다고?”


“네. 폐하. 그러하옵니다. 백성들도 일 년에 두 번 나누어 세금을 바치게 되니 반기고 있사옵니다.”


“좋아, 재정이 든든해지겠군. 그럼 서서히 계획을 실행하는 게 어떻겠느냐?”


“황제폐하, 한 해는 지나고 하시는 게 어떠실지요?”


“왜, 더 기다려야 하느냐?”


“선황께옵서 너무 큰 변고를 겪지 않았사옵니까? 천하의 역적 안록산과 사조의가 벌린 난을 다행히 극복했사오나, 그에 따른 병폐 또한 수습이 힘들 정도로 커졌나이다.”


“그래서?”


“폐하, 급히 먹다보면, 물도 체하는 법이옵니다. 밥을 지을 때는 뜸을 들이기 마련, 성급하게 솥 뚜껑을 열어버리면 쌀이 설익어 먹기 힘드옵니다.”


“에잉, 그대는 너무 신중하다. 먼저 허약한 고리, 그러니까 혼맥으로 얽힌 절도사들 말고 독자적인 번진, 또 황실 입장에서 가장 거슬리는 번진을 하나 골라라. 그걸 일벌백계로 삼아 복속시키면 되지 않을까 싶노라.”


“······.”


황제는 선대 황제 대종이 환란을 극복하느라 지방 군벌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 원인이라 생각했다.


그 덕분에 작금에 이르러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절도사들의 힘이 커져 버렸다. 황제의 령이 먹히지 않았고, 세금도 내지 않았으며, 관리 임용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


이름만 번진이지 거의 독자적인 왕국과 마찮가지다.


아무리 황제 직할 지역이 더 많다 해도 이건 턱 밑의 칼과 같다. 언제든 살을 찢고 들어올 것이다.


황제는 이걸 혁파하고 싶었다. 다시 한번 세계제국 당나라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야심이 가득 했다.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절도사들의 권한을 축소하든가 아예 절도사들을 쳐서 그 권한을 뺏어오는 길 밖에 없지 않나.


결국 황제의 최종 목표는 독립 절도사의 해체였다.


“세가 가장 큰 번진이 어디냐?”


“황공하옵게도 위박 번진이옵니다.”


“위박, 그 위박?”


“네이. 폐하, 위박절도사(魏博節度使) 전승사(田承嗣) 이옵니다.”


“지랄이도다. 하필이면 그란 말인가.”


황제가 이맛쌀을 찌푸렸다.


위박절도사 전승사는 원래 희대의 역적, 안록산 휘하의 장수였다. 그는 안록산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사조의까지 목이 잘린 뒤에도 끝까지 버텼다. 기진맥진한 선대 황제 대종이 벼슬을 내리며 달래자 마지못해 항복한 인물이다.


깡은 발군이다.


그 당시 전승사와 맞붙었던 당나라군은 연전연패했다. 그래서 전승사 주둔 지역을 우회하여 안록산과 사조의의 본진을 바로 칠 정도였다.


그런 깡 덕분에 전승사는 위주, 박주, 덕주를 기본으로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는 절도사가 되었다.


그 뒤 조금씩 세를 넓힌 전승사는 주변의 작은 번진 몇 개를 집어 먹더니 지금은 14개 주를 깔고 앉아 대륙에서 제일 강력한 절도사로 군림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전승사는 선대 황제 대종의 딸 영락공주를 며느리로 들였다. 반 강제적인 정략결혼이었다. 그만큼 선대 대종황제는 유약한 인물이었다.


“내 누이가 팔려간 곳이다. 치욕스럽게 말이다.”


“네. 폐하. 전승사의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사옵니다. 얼마 전에는 폐하의 명을 받들고 내려간 사신을 발가벗겨 놓고 매질해서 반신불수로 만들었나이다.”


“흠, 토벌할 수 있을까?”


“명분이야 만들면 되지만, 아무리 늙었다하나 전승사의 깡다구와 군세가 만만치 않사옵니다.”


“이십 만 중앙군을 총 동원하면?”


“폐하, 괜히 쥐를 잡기 위해 모두 나섰다가 본채가 털릴 수 있사옵니다.”


“음. 그렇다. 회홀도 그렇고, 발해도, 토번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와중에 방추병을 빼낼 수 없는 노릇이지.”


방추병(防秋兵)은 장안의 서쪽을 지키는 변방 부대로 회홀(위구르)과 토번(티베트)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편성된 십만 대군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는 붙박이 군이기도 하다.


“폐하, 제게 좋은 생각이 있사옵니다.”


“오! 그래, 속히 고하라.”


“독은 독으로 치료하는 법이옵니다.”


“이독제독(以毒制毒)!”


“네이. 안 그래도 폐하께서 껄끄럽게 생각하는 곳, 있지 않사옵니까? 그들에게 대신 피를 흘리도록 명을 내리면 어떠할지요?”


“그, 그, 괘씸한 놈. 전갈처럼 독을 뿜어 대던 놈, 감히 천자인 나를 협박한 놈··· 그렇구나. 평로치청 번진에게 명을 내리면 되겠네.”


“네. 폐하. 이정기도 사나운 장수고, 전승사는 비록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독기가 흐르는 맹장, 호랑이 둘이 붙으면 한쪽은 괴멸되지 않겠사옵니까?”


“옳커니. 이긴 쪽도 그 피해가 만만치 않을 터, 일거양득이로다.”


“네이, 폐하. 그럼 이정기에게 사신을 보내겠나이다.”


“허(許)한다. 조속히 추진하라. 단, 그대가 가라.”


“······.”


“그 교활한 놈이 뱀의 혓바닥으로 어떤 말을 쏟아낼 지 걱정이도다. 그 놈을 잘 아는 그대가 가야 그나마 휘말리지 않을 거 아닌가.”


황제만 이사도를 찝찝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성 태감도 첫 만남에서 호되게 당했다.


‘망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그 독사 같은 놈을 또 보게 생겼어. 에구.’


***


“사신?”


“네. 이 공자. 그러하오이다.”


“무슨 일로 온답니까?”


“소관은 모르지요. 황제의 칙명을 들고 온답니다. 주군께서 이 공자를 부르라 하신 연유가 거기 있지 않겠소이까?”


“정치판에는 끼고 싶지 않은데···.”


“사신단을 이끄는 이, 이 공자가 익히 아는 인물이라오.”


“엥? 제가요?”


“그렇소이다.”


“저, 그렇게 발이 넓지 않은데?”


“고추!”


이사도는 평장사 여태곤의 말을 바로 알아 들었다.


“아! 그 고추··· 그렇다면 제가 가야죠.”


서서히 평로치청에 전쟁의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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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전쟁의 서막. +4 24.08.24 638 18 14쪽
» 23. 황제의 속셈. +4 24.08.23 623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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