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들의 인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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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개
작품등록일 :
2024.07.27 22:31
최근연재일 :
2024.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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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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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크루아상

DUMMY

시간과 공간을 빵으로 표현한다면 크루아상이다.


여러 겹의 층으로 이루어진 빵, 크루아상.


‘시간의 층’은 반죽처럼 켜켜이 쌓여, 크루아상 즉 ‘공간’이 된다.


지금 그 크루아상 위에는 개미 한 마리가 있고, 방금 따끈따끈한 벌꿀이 뿌려졌다.


개미는 빵의 겉을 기어다니고, 벌꿀은 빵 속 여러 겹의 층으로 스며든다.


개미는 빵의 겉면이라는 1차원의 시간을 살지만, 벌꿀은 빵 속 여러 겹의 시간의 층을 동시에 사는 것이다. 마치 인간과 신이 그러하듯.


신과 신이 만나면, 인간의 시간과 신의 시간은 동시에 흐르기 시작한다.


하나의 공간, 여러 층의 시간.


현실 속 엘리베이터 CCTV에는 아프로와 타나토스가 말없이 서 있는 짧은 순간만이 담길 테지만, ‘신의 시간’에선 미의 여신과 죽음의 신이 여유 있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아프로님, 또 뵙네요. 여긴 무슨일로.."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인사에 아프로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꼭대기 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르테미스를 만나기로 해서.."

"아르테미스님은 잘 지내시죠?"

“근데 우리 하루에도 수십 번은 만나니 매번 인사할 필요 없어.”

“그죠. 저도 제 자신을 하루에 수십 번은 마주칩니다.”


대한민국에서만 하루 사망자 수는 1천명이 넘는다. 그리고 죽음의 신 타나토스는 세상의 모든 죽음의 수만큼 존재한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들 중 약 1천명에겐 죽음이 임박해 있고, 지금 나를 따라다니는 나만의 타나토스가 있다는 것이다.


아프로가 타나토스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AI시대에 너무 아날로그 아냐? 죽음 앞둔 인간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는 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요.”


“너만 좋으니까 문제지. 다른 신도 아닌 네가 무수히 존재하는 건 미학적인 관점에서 좀···”

“아프로님은 절 무척 싫어하셨죠. 단지 못생겼단 이유로요!!


억울함이 가득한 그의 말에 아프로는 살짝 미안해졌다.

“아 그게, 뭐 암튼 그래도··· 올림포스 시절보단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 눈알이 없이 눈 주위가 검은 구멍으로 푹 파였던 그때의 네 모습은 정말이지···”

“미의 여신이시니 외모에 집착하시는 거 이해합니다.”


아프로가 세 번째 손가락만 펴서 타나토스를 위아래로 가리키며 외쳤다.

“지금 얼마나 좋아? 평범하고. 근데 좀 더 잘생기게 변할 순 없나? 도와줄까?”


타나토스는 소심하게 대꾸했다.

“전 그때의 유니크한 제 모습이 그립다고요.”

“어쩌겠어. 이곳에 적응하고 살아야지. 근데 업무 스타일을 좀 바꿔봐. 일일이 따라다니지 말고, 한 곳에서 영혼들을 접수한다든지. 뭐 그렇게 효율적으로. 아. 그럼 네 즐거움이 사라져서 안 되나?”

“정말 제가 인간들의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즐긴다고 생각하시나요?”


그의 질문에 아프로는 장난기가 사라진 얼굴로 진지하게 답했다.

“그렇지 않다면 임종의 순간 정도는 혼자 있게 배려해 줬겠지. 채권자처럼 그렇게 쫓아다니지 않고.”

“죽음을 모르는 아프로님은 모르시겠지만 인간들에게 마지막 순간의 외로움은 죽음의 공포보다 강합니다.”


아프로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타나토스는 아프로를 따라하듯, 검은 반지를 낀 세 번째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위아래로 가리키며 말했다.

“혼자이기보다는 ‘이렇게 못생긴’ 죽음의 신이라도 곁에 있기 원할 만큼이요.”


아프로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타나토스의 말처럼 죽음을 모르는 신들이 어찌 죽음의 외로움을 알겠느냔 말이다.


아프로가 해맑게 물었다.

“근데 둘 중에 누구야?”


타나토스는 검은 반지를 낀 손으로, 저만치 발아래 ‘현재의 시간’에서 여자와 실랑이하는 40대의 남자를 가리켰다.

“한 달 가량 따라다녔죠. 참 망설이더니. 저 여자 때문에 오늘은 결단하겠네요.”


젊은 여자의 무시와 경멸이 인생의 달리기에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남자를 자살이란 선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진한 삶의 고통이 베어 나오는 중년 남자의 서글픈 눈동자는 아프로를 더욱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저 여자, 겨우 가방 하나 때문에 죽고 싶은 놈 등 떠밀었다 이거지?”


“저 남자, 한평생 막노동을 전전하며 작가의 꿈을 근근이 이어왔죠. 그런데 공모전에 응모했던 작품이 떨어지고, 최근엔 표절까지 당했어요. 유명작가가 아이디어와 설정만 교묘하게 따다 써서 대히트 쳤죠.”

“억울은 하겠지만 ··· 그게 죽을 일이야?”

“죽을 일인지 아닌지 그 누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찰랑찰랑하던 컵이 운명이 떨어뜨린 마지막 한 방울로 넘치는 게 인생일 뿐.”


“이유가 결과를 정당화하진 못하지. 자살은 가장 가끼운 사람을 죽이는 가장 잔인한 살인이야.”

아프로의 말에 타나토스는 진지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살 후 일어날 일을 미리 안다면... 인간들은 다른 선택을 할까요?”


아프로는 타나토스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차가운 얼굴로 혼자 중얼거렸다.

“같은 사람을 아래로 여기는 자, 자신은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질 것이다.”


타나토스가 그런 아프로를 신기한 듯 보며 말했다.

“아프로님. 지금 저 남자가 불쌍해서 저 여자에게 저주를 내리시는 겁니까? 무척 인간적이 되셨네요.”

“인간적은 개뿔. 난 어떻게 해도 인간적이 될 수 없는 얼굴이야.”


“그럼 왜 저 여자에게 저주를···”

“올림포스 시절엔 그냥 심심해도 저주를 내렸지만, 이젠 최소한의 명분은 있어야 내린다고. 인간세상에서 셋방살이하다보니 주인 눈치를 좀 본달까? 그래서 요즘 난 인간쓰레기에게 항상 감사하며 살지. 명분이 되어주니까.”


“저주를 내리면 아프로님께도 타격이 있는데 왜 굳이···”

“개가 똥을 끊지. 신이 저주를 끊나? 저주라도 내려야 내가 신이라는 걸 잊지 않을 것 같거든.”


타나토스는 아프로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인간의 운명을 건드리는 신들이 치러야 할 대가를 절대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아프로는 눈썹을 찡긋하며 시크하게 대답했다.

“어쩌겠어? 난 심심한 건 못 참는데.”


대화를 끝낸 두 신은 현실의 차원으로 돌아왔고, 타나토스는 40대의 남자를 따라 14층에서 함께 내렸다.


-----------------



40대의 남자는 익숙하지 않은 걸음으로 6성급 호텔의 화려한 복도를 걸었다. 그의 뒤를 따라 걷는 죽음의 신.


‘1444호’


남자는 객실 앞에서 잠시 멈춰서 있다가, 카드키를 대고 들어갔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는 그가 들어간 객실 앞에서 채권자처럼 죽음을 재촉하지 말라는 아프로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마지막 순간 정도는 방해하지 않는 것이 예의일지도···”


타나토스는 호텔 복도의 창문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창 밖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태양이 흘리는 피로 붉게 물든 거리.


석양 아래 인도를 걷는 한 남자가 보였다. 10년이 넘은 낡은 양복과 안경을 쓴 그의 뒤를 따라 걷는 한 고등학생. 그 고등학생의 손에서 타나토스의 것과 같은 검은 반지가 반짝였다.


내일 동창회에 입고 갈 옷이 없다고 걱정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한 여자. 그녀는 오늘 죽기 때문에 내일의 동창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녀의 뒤에 보이는 30대의 한 회사원. 그의 손에도 타나토스의 검은 반지가 있다.


학생, 회사원 등 평범한 모습으로 오늘 죽을 누군가를 따라다니는 타나토스들. 그들이 인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세 번째 손가락에 끼여진, 후회처럼 크고 죽음처럼 검은 반지 하나 뿐.


타나토스들은 서로 스쳐 지나가며 무표정한 눈짓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의 신의 모습은,,, 그렇게 누구나 겪는 흔한 죽음처럼 평범...했다.


-----------------


호텔 객실에 들어선 40대의 남자는 주눅 든 모습으로 럭셔리한 객실을 둘러보았다.


그는 깨끗하게 정돈된 하얀 침대로 다가가, 손으로 천천히 이불을 쓰다듬더니, 감히 눕지 못하고, 침대 한 구석에 어색하게 앉아본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가서 욕조의 수전을 틀고, 쏟아지는 따뜻한 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투박한 남자의 거친 손과 처연하게 대비되는 황금빛 수전.


잠시 후 욕실에서 나온 남자가 거실의 창문 앞에 섰다.


석양이 물드는 도시의 따뜻한 풍경. 그리고 남자의 시린 뒷모습.


이때 벨 소리가 울리자, 깜짝 놀란 남자가 뒤돌아보았다. 남자가 천천히 다가가 객실 문을 열자... 문 밖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


문을 연 남자를 기다리는 건 타나토스가 아닌 룸서비스를 가져온 호텔 직원이었다.


직원은 거대한 테이블에 음식들을 내려놓고, 너무나 정중하게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타인의 정중함이 그의 코끝을 아리게 했다.


랍스터, 스테이크 등 비싸다는 음식들만 골라 시킨 남자. 그는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자신의 전 재산 404만원을 현금으로 바꿔,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썼다.


그런데 그렇게 제 값을 다 지불한 것들을 그는 편안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 누려본 적 없었기에. 가난이 야비한 이유다.


잘 차려진 음식들을 한참을 바라만 보다가, 고급 접시들을 거친 손으로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만져보던 남자. 그는 스테이크를 조금 잘라 한 입 먹다가 울컥하며 소리쳤다.


“침대가 폭신해서 억울해. 스테이크가 맛있어서 억울해. 모든 게 난 다 억울해.”


인생이 억울한 사람들이 제일 억울한 건 운명을 고발할 경찰서도 법원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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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7화. 프시케_2 24.08.12 20 1 9쪽
16 제16화. 프시케 24.08.11 22 3 10쪽
15 제15화. 인간 사냥꾼 24.08.09 21 3 11쪽
14 제14화. 낭만 살인자 24.08.07 18 3 10쪽
13 제13화. 마음의 방 24.08.04 23 3 11쪽
12 제12화. 공처가 하데스 24.08.03 28 3 11쪽
11 제11화. 첫 참사 24.08.03 25 3 10쪽
10 제10화. 번개 놀이 24.08.02 25 3 11쪽
9 제9화. 네온사인 사랑 24.08.01 26 3 10쪽
8 제8화. 영혼이 어린 아이 24.07.31 34 3 13쪽
7 제7화. 美친 민폐 24.07.30 38 4 10쪽
6 제6화. 키스플러스_2 24.07.29 36 3 13쪽
5 제5화. 키스플러스 24.07.28 42 4 12쪽
4 제4화. 첫 만남 24.07.28 46 4 11쪽
» 제3화. 크루아상 24.07.27 49 5 10쪽
2 제2화. 美친 여신 24.07.27 54 6 12쪽
1 제1화. 人神상열지사 24.07.27 9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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