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들의 인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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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개
작품등록일 :
2024.07.2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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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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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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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번개 놀이

DUMMY

어느 평온한 봄 날, 한강에서 한 남자가 아들과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아내에겐 휴식을 주고, 아이에겐 낚시를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통통한 볼을 가진 6살 아이는 텅 빈 낚시통을 보며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에이. 오늘은 하나도 안 잡히네.”

“기다려 봐.”

“아빠, 고기가 안 잡히니까 심심해.”


“낚시는 인생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야.”

“뭘 배워?”

“살다보면 뭔가 내 인생에도 대박 좋은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게 참 힘든 일이거든. 낚시는 그 기다림을 가르쳐 주지.”


아빠의 말에 아들은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아빠, 엄마 기다려!”


남자는 아내를 떠올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 다들 기다려도 우리 여왕님은 기다리면 안 되지. 특별한 분이니까. 갑시다~”


“치이익.”

그 순간, 몰려드는 먹구름 사이로 순식간에 낙뢰가 떨어졌다.


갑자기 검푸르게 변한 하늘엔 수십 개의 번개가 살벌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놀란 남자는 서둘러 낚시 장비를 정리하며 말했다.

“갑자기 웬 폭풍우람.”


겁에 질린 아이가 외쳤다.

“아빠, 나 무서워.”

“그래, 가자. 가자.”


이때 부자 근처에 있던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고, 순식간에 나무가 불길에 휩싸였다. 거센 불길을 보고 놀란 남자가 서둘러 낚싯대를 걷으려던 바로 그 순간, 낚싯대에 내리꽂힌 번쩍이는 번개의 섬광!!


감전된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꼬꾸라졌다.

“아빠!!”


깜작 놀란 아이가 기절한 아빠에게 달려와 팔을 잡고 흔들자, 아이 역시 감전되고 말았다, 아이는 고통에 몸을 떨다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


30분 후, 벼락을 맞은 아이가 근처 병원의 응급실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향하고 있었다.


의사와 함께 울먹이며 아이를 따라가던 아이 엄마는 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가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수술실 앞 의자에 앉아 하릴 없이 울고 있는 여자. 여자의 뇌리에 의사의 차가운 한 마디가 스쳤다.

“남편 분은.. 병원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을 거두셨습니다.”


잠시 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쓰러질 듯 앉아있던 여자에게 수술실에선 나온 의사가 다가왔다.

“저희도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의학적으론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라서···”


여자는 울먹이며 분노를 쏟아냈다.

“용서 못..해..요.”


당황한 의사가 소리쳤다.

“이건 의료사고도 아니고.. 의학이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자연 현상일 뿐, 저희 과실이 아닙니다.”


여자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마치 하늘에 대고 소리치듯이 울부짖었다.

“용서 안 해! 절대!”


--------------


그로부터 며칠 뒤, 다행히 아이는 생명을 건졌고, 의식을 찾았다.


엄마가 식사를 가지러 간 사이, 아이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시 후 아이는 일어서서 천천히 병실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아이의 얼굴··· 머리카락도 이도 모두 빠지고, 피부는 고무처럼 늘어진 80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겁에 질린 아이는 오늘도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무서워. 이거 나 아니야. 이거 나 아니라고.”


병실의 모든 거울을 없애고, 씻을 때면 화장실의 거울을 절대 보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너무 이상해서 병실 밖 공용 화장실로 가서 처음 자신의 얼굴을 본 순간, 아이는 기절했었다.


자신의 얼굴을 두려워하면서도 아이는 엄마가 자리를 비울 때면 공용 화장실로 와 거울을 보곤 했다.


노인이 된 자신의 얼굴이 그냥 꿈이길 간절히 바라며 보고 또 보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쭈글쭈글한 볼에 새겨진 리히텐베르크 문양*의 흉터가 너무나 징그러워 몸서리쳤다.

* 리히텐베르크 문양 : 낙뢰를 맞고 생긴 번개 모양의 화상 흉터


울퉁불퉁하고 울긋불긋한 번개 모양의 그 흉터는 마치 신의 벌을 받은 자임을 표시하는 낙인 같았다.


"흑흑, 크윽"


6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인한 형벌이었다.


--------------


최고급 이태리산 하이엔드 가구와 투명한 통유리 바닥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수족관이 ‘어제 돈 벼락 맞았습니다.’라고 소리치는 듯한 어느 졸부의 거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TV를 시청 중이었다.


“아줌마, 해독 주스 빨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여자가 발톱을 깎으면서 소리쳤다.


소파에 삐딱하게 기댄 남자가 여자에게 핀잔을 주었다.

“손톱깎이까지 꼭 2백만 원이 넘는 걸 써야 해?”

“다들 촌스러운 졸부 취급하는데. 작은 것까지 신경 써야지.”

남자는 한심하단 표정으로 비꼬았다.

“너도 참 힘들게 산다.”


잠시 후 복장은 소탈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아함이 흐르는 70대의 가사도우미가 해독 주스가 담긴 컵을 가져와 거실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녀처럼 깨끗하게 늙을 수 있다면 노화도 그리 두렵지 않을 만큼 단아한 모습이었다.


이때 TV에서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저는 지금 사고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어제 일요일 오후 2시경, 기상청 예보에 없던 갑자기 내리친 낙뢰로 인해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다른 한 명은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기상학자들은 어제의 낙뢰가 설명하기 힘든···”


낙뢰에 맞아 숨진 아버지와 노인이 된 아이의 사고가 뉴스에 나오는 중이었다.


발톱을 깎는 것을 멈추고 TV에 집중한 여자가 외쳤다.

“어머머, 또 사람이 번개에 맞아 죽었다니.. 아니 어떻게 한강에서 벼락을 맞아 죽지? 벌써 몇 번째야.”


남자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저건 로또보다 확률이 낮은 거 아니야? 600만 분의 일이라던데. 캬아 부러운데.”

“부럽긴. 얼마나 죄 지은 게 많으면 저리 죽어? 그러게 사람이 죄 짓고 살지 말아야지. 오죽하면 벼락 맞아 죽을까?”

“근데.. 돈 되는 짓이라면 뭐든 하는 네가 그런 소리를 하니 너무 웃긴다.”


남자는 주방 쪽으로 돌아가는 가사도우미를 한 번 힐끗 보곤 여자에게 바짝 다가가 웃으며 속삭였다.

“너 지금 마약 팔아 번 돈으로 돈지랄 하는 거야.”

“나 혼자 팔아? 그리고 벼락 맞아 죽는 것들보단 내가 낫지. 도대체 어떻게 살면 그렇게 천벌을 받아 죽을까?”


그때 주방으로 돌아가던 가사도우미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자, 부부는 짜증과 불안감을 담아 외쳤다.

“뭐요? 왜?”


남자는 생각했다.

‘젠장, 마약 소리 들은 거야?’


가사도우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 내일부터 못 나옵니다.”


화가 난 여자가 외쳤다.

“아줌마, 아니 할머니. 장난해요? 이렇게 갑자기?”

“이번 달 급여는 안 주셔도 되요.”

“그건 당연한 거고.. 당신이 우리한테 위약금을 줘야지.”


가사도우미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앞치마를 벗고 나가려하자, 분노가 극에 달한 여자가 고함을 질렀다.

“잔소리 닥치고 다른 사람 구할 때까진 일해. 이게 좋게 말하니깐.”


말없이 여자를 보는 노파의 표정은 너무나 차가웠다.

“불행히도 당신들은 결코 다른 사람 구하진 못할 겁니다.”


그러면서 가사도우미는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야. 뭐 저딴 게 다 있어?”

남자가 소리치자, 여자가 따라 비아냥댔다.

“그러게. 저렇게 무책임하니 도우미나 하며 밑바닥을 살지.”


가사도우미는 뒤돌아 두 사람을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타인의 죽음을 희화하는, 최소한의 인간미도 없는 이 가정에 돈과 행운.. 그 어떤 좋은 기운도 더 이상 깃들지 않을 거야.”


화가 난 남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게 미쳤나? 내가 누군 줄 알고.”


가사도우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시궁창의 말라 비틀어져가는 쥐 두 마리처럼 서로 그렇게 평생 물어뜯으며 냄새 나게 늙어갈 것이다.”


화가 난 남자는 가사도우미에게 뛰어가 주먹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 입 닥치게 해 줄게.”


그런데 가사도우미가 그를 노려보자, 주먹질하려던 남자의 팔목이 ‘탁’하고 ㄱ자로 꺾였다. 너무 놀란 남자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잠시 후 노파의 모습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신들의 여왕 헤라.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생명을 잃고, 젊음을 잃고.. 그런 가여운 사람들이란다. 너희들이 조롱할 사람들이 아니야.”


헤라의 눈짓 한 번에 꺾인 남자의 손목을 보고, 두려움에 질린 여자가 외쳤다.

“뭔 소리야? 대체 왜 이래요?”


헤라는 다시 말했다.

“제우스가 차라리 너희 같은 짐승들을 벌했다면 난 이해했을 거야.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당할 이유가 없어.”


여자가 벌벌 떨며 물었다.

“제우스요? 그리스 로마 신화?”


꺾인 손목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며 남자가 외쳤다.

“당신 대체.. 누구야?”


살벌하게 변한 눈빛의 헤라가 답했다.

“내 정체보단 내가 이러는 이유를 궁금해 했어야지.”


여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살려주세요. 제발.”


헤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 신도 그렇지. 내가 수천 년을 살며 깨달은 한 가지야.”


그 순간, 순식간에 꺾이는 남녀의 목. 목뼈가 피부를 뚫고 나와 피가 빗물처럼 쏟아졌다.


헤라는 나뒹구는 시체 두 구를 보며, 어제 오후 제우스와의 언쟁을 떠올렸다.


“제발, 일주일 사이 벌써 다섯 번째에요. 이제 살인을 즐기기라도 하는 건가요?”


헤라의 말에 제우스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그렇게 질색하니 더 이상 아이들은 죽이진 않잖아? 그것으로 충분히 당신 의견을 존중한 거라 생각하오. 그러니 이제 더는 내 일에 상관하지 말았으면 좋겠소.”

“어린 아이가 노인이 되어 곧 죽음을 맞이하는 건... 죽음보다 잔인한 일이에요.”


“그럼 다시 당장 죽일까?”

제우스의 물음에 헤라는 어두운 얼굴로 읊조렸다.

“단지 할 수 있다고 해서,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당신. 당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인간과 다른 것이 무엇이죠?”


제우스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푸른 하늘에 마지막 번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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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3화. 슬픈 신남 24.08.20 5 0 9쪽
22 제22화. 분쟁의 여신 에리스 24.08.19 8 0 9쪽
21 제21화. 산타클로스의 선물 24.08.17 1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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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19화. 무인도에 둘만? 24.08.14 19 0 10쪽
18 제18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4.08.13 18 0 11쪽
17 제17화. 프시케_2 24.08.12 19 1 9쪽
16 제16화. 프시케 24.08.11 21 3 10쪽
15 제15화. 인간 사냥꾼 24.08.09 21 3 11쪽
14 제14화. 낭만 살인자 24.08.07 17 3 10쪽
13 제13화. 마음의 방 24.08.04 22 3 11쪽
12 제12화. 공처가 하데스 24.08.03 28 3 11쪽
11 제11화. 첫 참사 24.08.03 24 3 10쪽
» 제10화. 번개 놀이 24.08.02 25 3 11쪽
9 제9화. 네온사인 사랑 24.08.01 25 3 10쪽
8 제8화. 영혼이 어린 아이 24.07.31 34 3 13쪽
7 제7화. 美친 민폐 24.07.30 37 4 10쪽
6 제6화. 키스플러스_2 24.07.29 35 3 13쪽
5 제5화. 키스플러스 24.07.28 41 4 12쪽
4 제4화. 첫 만남 24.07.28 45 4 11쪽
3 제3화. 크루아상 24.07.27 48 5 10쪽
2 제2화. 美친 여신 24.07.27 54 6 12쪽
1 제1화. 人神상열지사 24.07.27 9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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