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들의 인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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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개
작품등록일 :
2024.07.27 22:31
최근연재일 :
2024.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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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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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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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네온사인 사랑

DUMMY

“우르르쾅”

늦은 밤, 한겨울인데도 마치 수백만 개의 물 풍선이 한꺼번에 터진 듯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도시의 네온사인과 빗줄기가 만든 무대 위에서 천둥과 번개의 공연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거리.


갑자기 쏟아진 비에 우왕좌왕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그들의 온몸은 모두 비에 흠뻑 젖어,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로마의 목욕탕이 된 듯했다.


제우스가 막 번개 하나를 하늘을 향해 던지고, 손을 내렸을 때였다.


“여보, 이제 그만 하고 들어와요.”


쪽방촌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의 맨 끝에 있는 허름한 집, 낡고 부서진 현관 안,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 놓인 평상에 신들의 왕이 앉아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목이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은 그가 신들의 왕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터였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향해 지휘자처럼 두 팔을 휘두르는 제우스에게 헤라가 말했다.

“제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생각이에요?”


올림포스 시절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들의 왕은 현대 사회에 가장 적응하지 못한 최악의 루저였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인 헤라만이 무기력과 뒤틀린 심성만 남은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라니?”

“모두 그럭저럭 이곳에 적응해서 잘 살고 있는데. 신들의 왕인 당신만 왜 적응을 못하고···”


제우스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왕이니까···. 나까지 인간 세상에 물들 순 없으니까.”

“그럼 제발 그 짓만이라도 그만 둬요.”


간청하는 헤라에게 제우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천둥과 번개 놀이는 내 몇 안 남은 즐거움이오. 방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놀이라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제우스가 밤하늘을 향해 다시 팔을 휘두르자, 검은 하늘에는 수십 개의 거대한 번개들이 번쩍였다.


헤라는 다시 외쳤다.

“번개로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짓은 그만둬요. 그 아이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에요.”


그녀의 말에 제우스는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어나선 안 되고, 존재해선 더더욱 안 되는 것들이야.”


--------------


그 시각 대한민국 최고 호텔의 VIP 연회장에선 상류층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창이었다.


완벽한 헤어스타일, 화려한 메이크업, 그리고 다이아몬드 알갱이로 도배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엘리베이터녀가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치장에 들인 5시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평소와 다른 남자들의 무심한 시선에 얼굴을 붉혀야 했다.


도도하게 들어섰다 벌쭘해진 그녀는 서둘러 삼삼오오 모인 무리들 중 하나에 끼어들었다.


엘리베이터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오랜만.”


그런데 평소라면 앞다투어 달려들었을 남자들이 그녀를 힐끗 보곤 다시 자기들끼리 대화를 이어갔다.


당황한 엘리베이터녀가 생각했다.

‘또야? 이 반응? 도대체 뭐가 문제지? 헤어? 메이크업?’


엘리베이터녀는 작정하고, 한 남자에게 바짝 다가서며, 공기 반 소리 반의 섹시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걸었다.

“잘 지내?”


남자는 마치 엘리베이터녀에게 악취가 나는 듯 코에 한 손을 가져다 대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성의 없이 대답했다.

“어어, 근데 잠시만.”


그리고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다른 남자 하나도 엘리베이터녀가 자신 쪽으로 오려 하자, 핸드폰을 꺼내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이때 유학 시절 그녀의 친구였던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왔어? 파리에선 언제 돌아온 거야?”


엘리베이터녀는 하나 둘 자리를 뜨는 남자들을 보며 소심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나 오늘 헤어 이상해? 아님 메이크업이? 아님···”


엘리베이터녀는 멈칫 하더니 더욱 더 작은 소리로 다시 물었다.

“아님 혹시 나한테 냄새 나?”


엘리베이터녀의 그런 소심한 모습은 처음이라 당황한 여자가 말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엘리베이터녀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냐. 달라도 너무 달라. 요즘.”

“뭐가?”

“남자들 반응이···”


여자는 옅은 비난을 담아 말했다.

“모두 네가 찬 애들이잖아. 자존심들 상했나 보지.”

“그런가? 아냐. 분위기가··· 뭐랄까?”


엘리베이터녀는 충격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한테 무관심해. 아니 날 피한다고. 남자들이!!!”


여자는 좌절한 엘리베이텨터를 관찰하는 기쁨을 음미하며 생각했다.

‘흥. 니 곱상한 얼굴 뒤에 썩은 영혼을 이제야 알아봤나 보지.’


--------------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호텔 정문 앞에 화난 얼굴로 서 있는 엘리베이터녀 앞에 은색의 롤스로이스 팬텀이 멈춰 섰다.


그녀의 운전기사는 서둘러 내려 차문을 열어주고, 다시 차에 타 운전대를 잡으며 물었다.


“왜 이리 일찍···”

그러다 그는 서둘러 말을 멈췄다. 뒷좌석에 기댄 엘리베이터녀의 얼굴엔 짜증과 분노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운전기사에게 그녀가 짜증을 내며 외쳤다.


“아 더워. 왜 이렇게 덥게 해 놨어?”

‘한겨울’이란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운전기사는 조용히 히터를 껐다.


엘리베이터녀는 차 창문을 내리고, 손바닥으로 거칠게 부채질을 하다가 소리쳤다.

“안 되겠어. 나 좀 걸을 테니 이따 전화하면 그리로 와.”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 운전기사가 서둘러 우산을 들고 따라 내리며 외쳤다.

“우산이라도···”


엘리베이터는 그의 말을 무시하곤 중얼거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도 아니고 웬 비람. 아 됐어. 열 받는데 이참에 샤워하는 셈 치지 뭐.”


운전기사는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진짜 혼자 보내도 되나?”


하지만 그녀의 분노조절장애를 너무 잘 아는 그는 그녀를 따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불타는 도시의 번화가, 엘리베이터녀는 아까 겪은 굴욕으로 인해 겨울의 살을 에는 추위조차 느끼지 못하고 걷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녀는 생각했다.

‘요즘 왜 이러지? 남자들한테 차이고 까이느라 정신없잖아. 혹시 지난 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여자··· 아니 나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니? 그 저주 믿는 거야. 나?’


미친 여자의 저주를 믿는 자신이 문득 한심해진 그녀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때 딴 생각에 빠져있던 엘리베이터녀가 앞에 오던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외쳤다.

“아이씨. 씨x”


깜짝 놀란 엘리베이터녀는 남자의 무례함에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았다. 모자가 벗겨진 남자의 얼굴이 불빛 아래 서서히 드러났다. 바로 도로의 묻지마 살인범!


엘리베이터녀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자, 거리의 알록달록한 네온사인이 남자의 험상궂은 얼굴 위에서 아주 천천히, 몽환적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얼굴에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빛나는 듯...


엘리베이터녀의 얼굴이 솜사탕처럼 부드러워지고··· 그녀는 영락없이 첫사랑에 빠진 수줍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이마 위에서 반짝이는 검은 장미의 표식...


살인범은 엘리베이터녀가 도주 중인 자신을 알아볼까 봐 서둘러 떨어진 모자를 집어 쓰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데 이때 엘리베이터녀가 가려는 남자의 팔을 잡고 유혹하는 눈빛을 던지며 속삭였다.

“저기···”


살인범이 그녀를 뿌리치고 걸어가자, 그녀는 돌아서서 남자를 따라가 다시 팔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원래 첫눈에 반하고 그런 여자 아닌데요. 이런 느낌 처음이라···”


‘쿵쿵’

엘리베이터녀는 난생 처음 자신의 심장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아 그녀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제발, 잠시만요~”


가던 길 가려던 살인범은 집요하게 추근대는 그녀에게 구미가 당겼다. 그는 멈춰 서서 여자를 돌아보며 재미있단 얼굴로 말했다.

“아. 그렇게 원한다면 놀아드려야지.”


엘리베이터녀의 발그레한 볼이 네온사인에 아름답게 빛났다.


살인범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마음에 들어 미소 지었다. 남자의 미소 사이로 보이는 누렇게 썩은 치아들!!!


“어린 아가씨가 참···”

그리고 그는 여자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x, 참 맛 있 겠 다.”


엘리베이터녀는 이리 오라는 남자의 손짓에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갔다. 그리고 다정하게 살인범의 팔짱을 끼더니 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화려한 도심 거리를 걷다가 잠시 후 어두운 뒷골목으로 들어선 두 사람.


입맛 다시는 남자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


골목길을 걷던 두 사람의 뒷모습은 점차 깊은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부의 차이가 만든 투명한 벽으로 인해 이 사회에서 절대 마주칠 일 없던 남녀가 그렇게 만났다.


그래. 이 정도로 벌 받을 짓은 아니었다.


여잔 엘리베이터에서 그저 한 순간 짜증을 부린 것 뿐이니까.


신의 벌이 인간의 벌보다 무서운 건... 신에겐 적정한 형량이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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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3화. 슬픈 신남 24.08.20 5 0 9쪽
22 제22화. 분쟁의 여신 에리스 24.08.19 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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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7화. 프시케_2 24.08.12 20 1 9쪽
16 제16화. 프시케 24.08.11 22 3 10쪽
15 제15화. 인간 사냥꾼 24.08.09 21 3 11쪽
14 제14화. 낭만 살인자 24.08.07 18 3 10쪽
13 제13화. 마음의 방 24.08.04 23 3 11쪽
12 제12화. 공처가 하데스 24.08.03 28 3 11쪽
11 제11화. 첫 참사 24.08.03 25 3 10쪽
10 제10화. 번개 놀이 24.08.02 25 3 11쪽
» 제9화. 네온사인 사랑 24.08.01 26 3 10쪽
8 제8화. 영혼이 어린 아이 24.07.31 34 3 13쪽
7 제7화. 美친 민폐 24.07.30 38 4 10쪽
6 제6화. 키스플러스_2 24.07.29 36 3 13쪽
5 제5화. 키스플러스 24.07.28 42 4 12쪽
4 제4화. 첫 만남 24.07.28 46 4 11쪽
3 제3화. 크루아상 24.07.27 48 5 10쪽
2 제2화. 美친 여신 24.07.27 54 6 12쪽
1 제1화. 人神상열지사 24.07.27 9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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