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들의 인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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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개
작품등록일 :
2024.07.27 22:31
최근연재일 :
2024.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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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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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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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4화. 첫 만남

DUMMY

자살 예정자가 객실로 들어온 지 1시간여가 지나서야, 죽음의 신 타나토스는 문을 통과해 호텔 방에 들어섰다.


호텔 객실의 바닥에서 피를 토하며 뒹굴고 있는 남자. 테이블에 놓인 제초제 병은 남자만큼이나 고급스러운 방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타나토스는 죽어가는 남자와 침대를 번갈아 덤덤하게 바라보다가, 폭신한 침대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하루 잠이나 자고 가지.”


남자는 죽어가며 힘겹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타나토스가 그에게 말했다.

“용기 내어 자살하면 이제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어리석게도.”


남자는 점점 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가 토해낸 붉은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것이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일 것이었다.


타나토스가 연민어린 시선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삶에서 죽음으로란 자연의 흐름을 스스로 끊으면···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영원히 지속된다. 일종의 버퍼링처럼. 지금의 그 고통을, 이 상황을 당신 혼자 영원히 겪는 거지.”


남자는 고통으로 손발을 덜덜 떨다가 결국 숨이 넘어가고 말았다.


순간 달라지는 시간의 차원.


객실 바닥이 거울처럼 바뀌며 아득히 떨어져 내렸다.


크루아상 위 개미도 죽음 후엔 다른 시간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저만치 발아래 보이는 현실의 시간에서 죽은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나토스와 함께 있는 신의 시간에서의 그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고 있다. 남자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방울과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핏줄기는 정지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너무나 너무나 천천히 흐르고···


남자는 홀로 영원히 그 순간을 살아야 한다.


그의 죽음을 가장 동정하는 이가 죽음의 신이라는 건 참 서글픈 아이러니였다.


-----------------


한편 엘리베이터 안, 아프로와 다시 둘만 남게 된 엘리베이터녀는 그녀와 거리를 두고 피하며 생각했다.

‘일단 자극하지 말자. 미친x이 무서운 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니까.’


그런데 이때 아프로가 여자에게 바짝 다가와선, 그녀의 눈을 보며 주문을 외우듯 외쳐댔다.

“썩은 영혼의 냄새가 몸 밖으로 새어 나오고, 천박한 성욕은 주체할 수 없이 요동쳐 남자들의 마음과 몸을 구걸하게 될 것이며···”


그 순간, 엘리베이터녀의 이마에는 미의 여신의 저주의 표식인 검은 장미가 새겨졌지만, 여자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프로의 저주 섞인 말에 화간 난 엘리베이터녀가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뭐래?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에요? 저주야? 미치려면 곱게 미쳐.”


아프로는 그녀의 분노를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네가 만나는 남자들은 인성이든 재력이든 외모든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끔찍해질 것이다. 그렇게 인간 이하의 남자들 틈에서 자신을 함부로 굴리다가 결국엔··· ”


그러다 아프로는 갑자기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며 귀엽게 말을 마쳤다.

“아~ 너무 끔찍해서 나머진 말론 못하겠다.”


황당함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아프로를 바라보는 엘리베이터녀.


“띵“, 그때 꼭대기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아프로는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 선 상태로 세 번째 손가락만 편 한 손을 올려 흔들었다. 나름의 작별 인사.


혼자 남겨진 엘리베이터녀는 너무 황당해서 계속 손으로 부채질을 해댔다.

“아 뭐야? 나 저 미친x한테 진짜 쫄았던 거니?”


그녀는 아프로의 저주를 미친 여자의 황당한 뻘짓으로 넘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몸의 혈관 하나하나가 요동치는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


시간이 흩뿌린 석양에, 끝부터 젖어든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호텔 입구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엘리베이터녀. 잠시 후 그녀의 앞에 갈색의 롤스로이스 보트테일이 멈춰 서고,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운전기사가 급히 내려 차 문을 열어주었다.


엘리베이터에서의 사건들로 인해 피곤했던 그녀가 뒷좌석에 몸을 기대며 짧게 말했다.

“홍대.”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던 기사가 뒤돌아보며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근데 혹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얼굴이···”


아버지뻘의 기사에게 그녀는 평소처럼 일갈을 날렸다.

“아이씨. 오늘 무슨 날이야? 내 신경 긁는 인간들 집합하는? 내가 뭐랬어? 말 걸지 말랬지. 걱정도 급이 맞아야 하는 거지. 급이 다르면 ‘오지랄’이야. ‘오지랄’.”


무안해진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인성과 돈이 비례하지 않는 건 다행이다. 비례했다면 돈이 인간의 급을 나눌 때, 대들기 더 어려웠을 테니까.


----------------


다음날 아침, 경기도의 어느 세트장에선 갑자기 촬영 준비를 하던 여성 스태프들이 건물 현관문에 몰려들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세트장을 찾은 현신을 보기 위해서였다.


연예인이라면 질리게 보기도 했고, 또 그들의 실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며, 보통 스태프들은 연예인들에 시들해지기 마련이지만, 현신만은 예외였다. 그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질릴 수 없는 남자였다.


“웬일이야? 현신이 1시간 전에 촬영장에 다 나타나고.”

“그러게. 어어.. 근데 봤어?”

“뭘? 지금 우리한테 목례하고 지나간 거 맞아?”

막내 스태프 하나가 눈을 비비며 동료에게 말했다.

“응.”


막내 스태프는 멍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인성걸레 탑스타가 상큼한 막내 스태프에게 빠져.. 이런 뻔한 소재는 일어날 확률도 높겠지?”

“훗, 너 요즘 로코 너무 찍었다.”


막내 스태프는 무언가 생각난 듯 외쳤다.

“하긴.. 어제 광고 촬영장에서 초연이 길길이 뛰었대. 현신한테 개무시 당해서.”

“상대 배우한테 매번 작업 거는 초연도 별로지만, 현신도 너무 매너 없는 거 아니야?”

“매너는 원래 없었지. 데뷔 때부터.”

“하긴. 인성 걸레여도 얼굴 한 번 보면 전 국민이 팬이 되는 저 얼굴. 저게 매너지.”


음료 광고 촬영장에서 현신과 초연 사이에 있었던 일이 벌써 모두에게 퍼진 것이다.


----------------


어제 현신은 여배우 초연과 한강에서 청량음료 광고를 촬영했었다.


광고 촬영이 끝난 후 현신이 보트에서 먼저 내리자, 함께 광고를 찍었던 여배우 초연이 현신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청했었다. 청량한 유혹이 담긴 필살기 미소를 날리며.


현신이 그런 초연을 향해 손을 내밀자, 그녀의 얼굴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그런데 그 순간, 현신이 갑자기 초연의 손을 ‘툭’ 치며, 초연이 밟고 선 발판에 놓인 자신의 가방을 집어 들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던 것이다.


민망함과 분노가 교차한 얼굴로 한참을 서 있던 초연.


사람들은 모두 그러려니 여겼다. ‘에로스는 개이름’이란 아이디를 쓰는 ‘인성 걸레’ 현신이었으니까.


그러나 찍는 드라마나 광고마다 상대 남배우와 스캔들이 났던, 그리고 원하는 남자는 반드시 손에 넣기로 유명한 섹시 스타 초연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초연은 그 순간 결심했다.

‘너 반드시 갖는다.’


그녀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


“일찍 오셨네요?”

다정한 목소리에 현신의 발걸음이 멈췄다. 세트장의 복도에서 연오와 딱 마주친 현신. 그녀의 환한 미소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 그가 대답이 없자 무안해진 연오는 가벼운 목례 후 지나가려 했다.

“저..”

현신의 부름에 연오가 물었다.

“네?”

“시간 좀 남았는데.. 커피라도..”

“정말 감사해요. 근데 전 대본 좀 더 봐야 해서요.”


현신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다. 연오는 왠지 미안해져서 상냥하게 말했다.

“촬영 끝나고 커피 같이 드실래요? 아.. 근데 저보다 오늘 먼저 끝나시니 어렵..”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황급히 말했다.


달뜬 그의 목소리!

“기다..기다릴게요.”

“네, 그럼.”

긍정의 대답을 남기고 자리를 뜨는 연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현신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때 현신에게 다가온 매니저 상혁이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상혁이 너 뭐하냐?”

“카메라 찾아. 형 카메라 없을 때 웃는 일 없잖아.”

“닥치고 이 근처에서 제일 분위기 좋은 카페나 섭외 좀.. 그 카페 다 비워. 아니 내가 한다.”


----------------


요즘 최고 핫플인 카페 ‘나방과 달’.


거대한 창문으로 밀려드는 석양으로 인해 로맨틱한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 카페에는 어찌된 일인지 가장 붐벼야 할 시간임에도 한 테이블을 제외하곤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나방과 달'의 사장이 현신의 팬클럽 회장이 아니었다면 황금 시간대에 카페를 통째로 빌리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테이블에 얼굴을 묻고 있는 현신에게 상혁이 물었다.

“형, 죽은 거 아니지?”


현신이 얼굴을 들며 소리쳤다.

“이제 촬영의 2/3가 지났다. 더 이상 시간이 없어. 드라마 끝나면 만날 구실도 없는데.”


상혁이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형, 그건 걱정하지 마. 드라마 끝나고도, 상대 여배우들이 형한테 작업 거는 수법들을 내가 다 적어 놨지. 쓸 데 있을 것 같아서.”


현신은 한 손을 휘저으며 귀찮으니 꺼지라는 몸짓을 했지만, 상혁은 계속 주절거렸다.

“연오씨와의 커피 한 잔을 위해 형이 처음으로 직접 카페를 예약하고, 카페 전체를 비웠는데··· 속상할 만은 하지.”


카페를 예약하고, 메뉴를 고르는 동안 현신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보였었기에 상혁은 현신에게 마음이 쓰였다.


실망한 현신을 위로하며 상혁이 말했다.

“연오씨 진짜 갑자기 일정이 잡혀 못 오는 거래. 연오씨 매니저한테 전화 왔었어.”

현신은 심란한 표정을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형 피하는 거 아니라니까.”

상혁의 말에 애절한 표정으로 현신이 외쳤다.

“정말 그런 거겠지? 혹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때문에 내가 부담스러워서 피하는 건 아니겠지?”


절망에 빠진 현신의 얼굴을 보며, 상혁이 소리쳤다.

“형 작작해. 현신이 이러니까 이제 내가 화가 다 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 쏜살같이 다가와 현신의 두 볼을 감싸며 소리쳤다.


“찾았다.”


순식간에 아기처럼 구겨진 현신의 얼굴.


여배우보다 아름답다는 현신의 얼굴을 한 순간에 오징어로 만드는, 저세상 미모를 지닌 그녀가 다시 외쳤다.


“내꺼!”


아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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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제16화. 프시케 24.08.11 22 3 10쪽
15 제15화. 인간 사냥꾼 24.08.09 21 3 11쪽
14 제14화. 낭만 살인자 24.08.07 17 3 10쪽
13 제13화. 마음의 방 24.08.04 23 3 11쪽
12 제12화. 공처가 하데스 24.08.03 28 3 11쪽
11 제11화. 첫 참사 24.08.03 24 3 10쪽
10 제10화. 번개 놀이 24.08.02 25 3 11쪽
9 제9화. 네온사인 사랑 24.08.01 25 3 10쪽
8 제8화. 영혼이 어린 아이 24.07.31 34 3 13쪽
7 제7화. 美친 민폐 24.07.30 38 4 10쪽
6 제6화. 키스플러스_2 24.07.29 35 3 13쪽
5 제5화. 키스플러스 24.07.28 41 4 12쪽
» 제4화. 첫 만남 24.07.28 46 4 11쪽
3 제3화. 크루아상 24.07.27 48 5 10쪽
2 제2화. 美친 여신 24.07.27 54 6 12쪽
1 제1화. 人神상열지사 24.07.27 9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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