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들의 인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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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개
작품등록일 :
2024.07.27 22:31
최근연재일 :
2024.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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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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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제6화. 키스플러스_2

DUMMY

“어이! 거기!”

다시 들리는 커다란 소리에 주위를 살피던 현신은 마침내 멀찍이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가냘픈 형체를 발견했다.


바다에서 상반신을 드러내고, 길고 풍성한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풍만한 하얀 가슴이 살짝 엿보이는 그녀는 분명 인어였다.


그녀가 외쳤다.

“야!”


현신이 놀라서 되물었다.

“나?”


그녀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밤에 여기 왜 와서 사람 귀찮게 하냐고...”


소리치던 그녀는 멈칫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어멋, 내가 지금 사람이라고 했잖아. 훗, 나 인간 다 됐네.”


현신은 황당해서 중얼거렸다.

“저 여자 뭐야? 이 밤에 여기서 수영하는 거야? 요즘 미친x이 글로벌하게 출몰하는군.”


그러면서 현신은 얼마 전 레스토랑에서 다짜고짜 다가와 “찾았다! 내꺼!”라고 외치며 자신의 볼을 움켜쥔 미친x을 떠올렸다.


물속의 인어인지 여자인지 모를 존재가 명령조로 소리쳤다.

“거기 옷 좀 가져 와!”


현신은 해변가에 벗어둔 그녀의 옷 발견하곤 말했다.

“!!? 내가? 왜?”

“가져다 주기 싫으면 그냥 꺼지시든지.”


무례한 그녀의 말에 현신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이 해변이 당신 거야? 뭔데 꺼지라 마라야?”

“굳이 따지자면 내꺼지. 내가 태어난 곳이니까.”


현신은 아프로디테의 탄생 바위를 한 번 힐끗 보곤, 그녀가 미친x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썩소를 날리며 비아냥거렸다.

“아, 그러니까 당신..이 그 유명한 아프로디테시구나.”


아프로가 외쳤다.

“옷! 아님 그냥 나간다. 나 나체야.”


현신이 받아쳤다.

“지금 협박 하는 거야?”


현신은 그녀가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아프로임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속에서 상반신만 보이던 아프로가 말했다.

“진짜 그냥 나간다. 그럼 오늘밤 날 감당해야 할 거야. 무지 뜨겁게.”


현신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젠장, 사랑의 여신에게 연오와의 사랑을 염원하는 순간에 난데없이 미친 여자의 출몰이라니.”


소머즈급 청력을 가진 미의 여신이 현신의 중얼거림을 듣고 말했다.

“사랑의 염원이라! 어이! 주손 제대로 찾았네. 옷 가져오면 생각해 볼게.”


현신은 생각했다.

‘들은 거야? 내 말을? 저 멀리서. 에이 아니겠지.’


아프로는 현신이 자신의 옷을 계속 가져다주지 않자, 결국 참지 못하고 그냥 나체로 나오려 일어섰다.


하얀 달빛에 드러나는 상아처럼 매끄럽고 눈보다 하얀 아프로의 살결!


순간 현신의 두 눈동자는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한곳에 고정되었다.


깊은 곳에서 끊어 오르는 뜨거움에 현신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인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여신을 바라보는 현신.


남자로서의 모든 것이 끊어 올라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그의 본능이 거친 파도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시각, 나체로 일어서서 거침없이 바닷물 밖으로 걸어 나오려는 아프로!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현신이 외쳤다.

“어어, 잠깐만!”


그는 서둘러 달려가 아프로의 옷을 집어 들고 그녀에게 던졌다. 아프로는 받아든 옷을 물속에서 대충 걸치고, 물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착 달라붙은 젖은 옷은 그녀의 환장적인 몸매를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넋 놓고 자신을 보는 현신의 코앞에 다가선 아프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반했어?”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 커진 현신이 외쳤다.

“넌? 그 레스토랑 미친녀?”


그는 반한 게 아니라 놀란 것이었다.


아프로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특유의 섹시하고도 싸가지 없는 미소를 날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너였어? 사냥감이 제 발로 찾아왔네. 훗.”


현신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너 설마 여기까지 날 쫓아온 거냐? 너 스토커야?”


또다시 미친 사생 팬이 붙은 건 아닌지 겁이 난 현신의 질문에 아프로가 쿨하게 답했다.

“따라온 건 아니지만 이 상황은 땡큐지.”


그녀는 앉아있는 현신을 향해 몸을 숙이며, 한 손으로 현신의 턱을 당기고는, 현신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현신에게 달콤한 키스를 시작한 아프로.


물컹하고 달콤한 그녀의 입술을 느낀 현신이 아프로를 밀쳐냈다.


순간 균형을 잃은 아프로는 휘청하며 바닥으로 쓰러졌고, 현신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탁”

바로 그 순간, 누군가의 거대한 손이 현신이 뻗은 손을 거칠게 밀쳐버렸다.


-------------------


오늘 오전, 디오니는 와인 공급망 확장을 위해 트로이도스 산맥 근처의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사실 아프로는 디오니의 출장을 따라 사이프러스(키프로스)에 왔던 것이다.


넓고 넓은 포도밭 한가운에 자리한, 거대하고 고급스러운 와이너리의 회의실에서 디오니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코만다리아는 무려 4,000년의 역사를 가진 와인으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아프로디테를 유혹하던 술이라고 하죠.”

직원의 설명에 디오니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훗, 나도 모르는 그런 일화가? 인간들은 참 지어내는 걸 잘 해.’


디오니는 아프로를 떠올리며 직원에게 말했다.

“네, 그렇다면 신화의 완성을 위해 오늘이라도 꼭 성공하겠습니다. 그 유혹!”


디오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직원의 의아한 표정에 그는 와인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매력적인 와인이란 뜻입니다.”


직원이 와인 잔을 보며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트로이더스 산맥의 포도로 만든 술을 2년 이상 숙성한 겁니다.”


디오니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왕들의 와인’이라는 코만다리아를 이제 제가 ‘신들의 와인’으로 만들 겁니다. 독점 계약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와인 공급 협상을 마무리 짓고, 아프로를 만나러 파포스로 돌아오는 길, 흔들리는 차 뒷좌석에서 디오니는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앉아있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와이너리의 녹색 초원과 대비되는, 석양으로 불타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문득 처음 와인 사업을 시작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


“대체 왜 이러지?”

조약돌을 움켜쥔 디오니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황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네 능력은 이제 정말 완전히 사라진 것 같네. 일단 다른 신들에겐 비밀로 하자.”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18세기 중반, 숲이나 들 같은 공유지의 소유권조차 명확하게 하려는 인클로저 운동이 확산되자, 올림포스 신들은 더 이상 인간 사회에서 익명의 존재로 숨어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수많은 신들이 신분을 사서 인간 사회의 제대로 된 구성원이 되는데 가장 필요한 건 바로 돈이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시기에 디오니가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드는 미다스의 능력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술의 신은 곧 다른 방법을 찾았다. 비록 황금을 만드는 능력은 잃었지만, 그에게는 아직 최고급 술을 만드는 능력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런데 19세기 중반 와인의 서열을 매기는 등급분류 <그랑 크뤼>가 도입되면서, 오래되고 이름 없는 수도원을 사들여 와인을 만들어 팔던 디오니의 와인 사업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와인의 맛만으론 지갑을 열지 않았다. 그들에겐 와인의 이름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에서 만국박람회를 축하하는 파티가 한창인 가운데, 디오니는 미의 여신 아프로를 한껏 꾸며, 함께 왕실의 파티에 참석했다.


그들이 가진 초대장은 당연히 가짜였다. 그러나 아프로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덕분에 디오니와 아프로는 누가 보더라도 파티의 주역으로 보였고, 그들이 파티장에 들어가는 데는 어떠한 어려움도 없었다.


파티가 무르익자, 나폴레옹3세가 외쳤다.

“오늘의 와인은 <그랑 퀴르> 1등급인 보르도 메독 샤토 라피트입니다. 다들 와인의 풍미를 즐겨주시지요.”


이때 갑자기 디오니가 연회장의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술의 신으로서의 퇴폐미와 우아함이 교차하는 그의 잘생긴 얼굴은 한 번에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황제 폐하, 좋은 와인 나쁜 와인이 따로 있을까요? 모든 예술에는 취향만 있을 뿐 등급은 없습니다.”


디오니의 돌발 행동에 주변인들은 황제의 안색을 살폈다.


황제가 말했다.

“예술에 등급이 없다는 건 최고가 될 수 없는 자들의 변명일 뿐 아닌가?”

“전 낡은 수도원의 와이너리에서 만든 제 와인이 황제 폐하의 오늘의 와인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하하, 예술의 평가는 예술가 본인이 아니라 그를 즐기는 자들의 몫이어야지.”

“파티의 재미를 위해 내기를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기라?”

“저 1등급 보르도 와인과 제가 가져온 이 와인을 여기 계신 분들께 대접하고, 평가를 받도록 하시지요.”


황제가 디오니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술을 놓고 펼쳐지는 인간과 술의 신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대결의 방식은 연회장의 사람들이 1등급 와인과 디오니의 와인을 각각 시음하고,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와인의 투표함에 표를 넣는 것이었다.


황제가 물었다.

“그대의 와인의 이름은 무엇인가? 투표함에 적어야 하니까.”

“전 이름 따윈 중요하다 생가가지 않아서. 그냥 디오니소스로 하지요.”


똑같은 패턴의 파티에 질린 황제는 장난 겸 유흥 겸 디오니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그가 이길 리 없다고 생각했기에 웃음을 터뜨렸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라. 너무 거창한 이름은 때론 치욕이 되는 법인데.”


3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투표함의 용지 수가 집계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의 와인 재배지에 대재앙이 닥쳤다.


“나보고 찌질하다더니..”

아폴론이 디오니에게 말했다.


올림포스 시절, 인간 마르시아스가 아폴론에게 음악 대결을 신청했었다.


아폴론은 내기에 이기려 피리를 거꾸로 연주하곤, 마르시아스에게도 자기처럼 거꾸로 연주하라고 명령했다.


신이 아닌 인간이 취구 외의 부분으로 피리를 불어봤자 소리가 날 리 없었다. 그가 피리 소리를 내지 못하자, 아폴론은 그대로 마르시아스를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죽여버렸다.


이 사건을 두고 디오니는 아폴론을 맹비난했었다. 공정하지 못한 내기, 비겁한 신이라고.


“나보고 찌질하다더니, 너야말로 인간과의 내기에 졌다고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아폴론의 비난에 디오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중해 연안 와이너리에 갑자기 포도나무를 말려 죽이는 필록세라 바스타릭스라는 진딧물이 퍼진 것이다. 이 해충 때문에 전 유럽의 거의 모든 포도나무가 죽었고, 이는 와인 사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난 너와 달라.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들의 바닥난 공동 기금을 채우려던 것뿐이야.”

디오니가 해충의 피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의 와이너리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나 디오니는 생각했다.

‘포도주의 신이 그 많은 포도나무를 말려 죽이다니! 정말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걸까?’

그는 인정해야 했다. 돈보다는 오히려 치욕을 갚으려는 복수심이었다는 것을.


나폴레옹3세의 파티에서 펼쳐진 내기의 결과는 술의 신의 참패였다.


인간의 1등급 와인이 아무리 훌륭해봤자, 술의 신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담아 직접 빚은 와인을 능가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티장의 사람들은 자신의 혀가 아니라 자신의 눈을 믿었다.


그들에겐 이름 모를 디오니의 와인보단 <그랑 크뤼>에서 1등을 한 보르도 와인이 훨씬 더 고급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인간에겐 이름이 중요하단 걸 간과한 술의 신은 그렇게 생애 처음 치욕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를 언짢게 만든 건 내기에서 졌다는 사실보다 무고한 포도나무들을 죽이면서까지 복수했던 자신의 치졸함이었다.


원인이야 어찌됐든, 와인 공급 독점으로 디오니가 쓸어 담은 막대한 현금 덕분에 올림포스 신들은 산업혁명이란 역동의 시대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과거의 기억에 생각을 담궜던 디오니는 어느 덧 깜깜해진 차창 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아프로, 또 황당한 사고치고 있는 거 아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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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들의 인간놀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제23화. 슬픈 신남 24.08.20 5 0 9쪽
22 제22화. 분쟁의 여신 에리스 24.08.19 8 0 9쪽
21 제21화. 산타클로스의 선물 24.08.17 11 0 10쪽
20 제20화. 무인도에 둘만?_2 24.08.16 16 0 10쪽
19 제19화. 무인도에 둘만? 24.08.14 19 0 10쪽
18 제18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4.08.13 18 0 11쪽
17 제17화. 프시케_2 24.08.12 20 1 9쪽
16 제16화. 프시케 24.08.11 22 3 10쪽
15 제15화. 인간 사냥꾼 24.08.09 21 3 11쪽
14 제14화. 낭만 살인자 24.08.07 17 3 10쪽
13 제13화. 마음의 방 24.08.04 23 3 11쪽
12 제12화. 공처가 하데스 24.08.03 28 3 11쪽
11 제11화. 첫 참사 24.08.03 24 3 10쪽
10 제10화. 번개 놀이 24.08.02 25 3 11쪽
9 제9화. 네온사인 사랑 24.08.01 25 3 10쪽
8 제8화. 영혼이 어린 아이 24.07.31 34 3 13쪽
7 제7화. 美친 민폐 24.07.30 38 4 10쪽
» 제6화. 키스플러스_2 24.07.29 36 3 13쪽
5 제5화. 키스플러스 24.07.28 41 4 12쪽
4 제4화. 첫 만남 24.07.28 46 4 11쪽
3 제3화. 크루아상 24.07.27 48 5 10쪽
2 제2화. 美친 여신 24.07.27 54 6 12쪽
1 제1화. 人神상열지사 24.07.27 9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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