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들의 인간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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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는개
작품등록일 :
2024.07.27 22:31
최근연재일 :
2024.08.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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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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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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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제8화. 영혼이 어린 아이

DUMMY

“아, 짜증 나.”

“죄송합니다.”


“죄송이란 말이 난 제일 싫더라. 하질 말아야지, 죄송이란 게 그러니까 다 해 놓고 말 한 마디로 퉁 치는 거잖아! 내가 팔뚝 두꺼워 보이는 거 싫다고, 한 백 번 정도 말한 것 같은데?”


초연이 눈을 부라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자, 당황한 스타일리스트가 변명하듯 말했다.

“민소매긴 해도.. 라인이 깊어서 괜찮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오늘 꼭 그 브랜드 협찬으로 입어야 하고.”


“김실장, 코디나 똑바로 해. 협찬 착용하고 안 하고는 나중 문제지. 이게 나한테 어울려?”

“죄송합니다.”


딱 봐도 초연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스타일리스트가 무릎을 꿇다시피 하고, 여기저기 널려진 옷들을 정리하며 연신 사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연은 민소매 상의를 스타일리스트의 얼굴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내가 어깨가 넓은 편인데.. 단점을 가리는 게 아니라 강조를 하고 자빠졌어. 아 나 오늘 촬영 못 해. 이 기분에 촬영은 무슨!”

“제가 금방 다른 옷을···”


그러자 초연이 스타일리스트 쪽으로 몸을 숙이고,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비꼬며 말했다.

“그러니까 금방 구할 수 있는 옷을.. 이 난리를 쳐야 가져온다는 거지? 지금?”


연오와 쌍벽을 이루는 톱여배우 초연과 그녀의 스태프들에겐 이런 일은 일상이었다. 모두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저 女 또 로렐라이네’하는 표정으로 초연을 보았다.


“야, 야, 야!”

이때 소파 위 쌓여있던 드레스 사이로 불쑥 일어나는 아프로.


아프로의 외침에 놀란 초연이 물었다.

“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그리고 너 지금 나한테 반말 한 거니?”

“넌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반말하는데 난 안 돼?”


초연이 아프로가 앉아 있는 소파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넌 현신 드라마에 최근 합류한 그 조연?”


아프로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시끄러워 잠을 못 자잖아.”


초연이 외쳤다.

“네가 왜 여기에? 아니 그보다 너 지금 선배 알기를 개똥으로 아는 거지?”


아프로가 귀여운 얼굴로 말했다.

“야. 개똥은 쓸데라도 있지. 넌 아니거든.”


초연은 너무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다가, 손을 치켜들고 아프로를 때리려 했다. 그러자 아프로는 벌떡 일어서서 초연을 마주보곤 싸늘하게 말했다.


“나 치고 감당할 수 있겠어? 그 대가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혹독할 거야.”


초연은 정색한 아프로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위엄에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녀가 여신의 위압감에 압도당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프로는 다시 귀엽게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나도 싸가지는 없어. 근데 난 모든 사람에게 없다고. 넌 사람의 급을 나누고, 네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만 싸가지 없잖아. 그건 치사하지.”


지켜보던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아프로를 응원하는 미소가 흘렀다.


아프로처럼 모든 사람에게 싸가지 없는 유형보다, 사람의 급을 나누고, 필요 없거나 내려다보이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싸가지 없는 초연 같은 유형이 더 싫은 법이니까.


이때 대기실에 들어온 스태프가 말했다.

“초연님, 준비 다 되셨나요?”


그는 싸우고 있는 아프로와 초연을 보고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초연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초연님, 15분 뒤 촬영 들어갑니다. 특별 출연 감사하다고 오늘 촬영 끝나고 감독님께서 저녁 식사 대접하신다고..”


초연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쪽 드라마 ‘조연’ 때문에 오늘 내가 밥 먹을 기분이 아니라고 전해.”


스태프는 초연의 말에 당황해서 초연과 아프로 번갈아보다가, 아프로에게 말했다.

“아프로씨가 왜 초연 배우 대기실에.. 일단 나가시죠.”


아프로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초연과 여전히 눈싸움 중이었다. 그가 아프로의 팔을 잡아끌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가요. 아프로씨. 대단하시네. 방송 첫 날부터 이렇게 존재감을..”


아프로는 그에게 끌려 나가면서 소리쳤다.

“야, 야, 야! 너, 어깨만 문제가 아니야. 니 단점 다 가리는 옷은 없어. 찰흙 판에 건포도 두 개 얹은 것 같은 가슴. 그게 더 급해. 뽀옹부터~”


벌게진 얼굴의 초연이 저도 모르게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생각했다.

‘서대표 뭐? 내 섹시한 얼굴에 가슴까지 너무 크면 분위기 싼 티 난다고 그렇게 말리더니. 진즉에 가슴 확대 수술했어야 하는 건데.’


스태프는 마치 복화술을 하듯 애써 작게 아프로에게 말했다.

“아프로씨, 제발..그 입 좀. 초연씨 우리 드라마 특별 출연 정말 어렵게 성사시킨 거거든요.”


그가 아프로를 끌고 분장실을 나가자, 초연이 허탈한 표정으로 외쳤다.

“저거 상 또라이 아니야?”


초연은 주변의 공감을 얻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침묵의 비난’만이 되돌아왔다. 그 누구도 아프로에 대한 험담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이다.


뻘쭘해진 초연은 의자에 앉으며 생각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날 망신 줬다 이거지? 내가 언젠가 반드시 갚아준다. 너 사람 잘 못 건드렸어!’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잘못 건드린 사람은 아프로가 아닌 자신이라는 걸.


다른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찌르는 갑질은 '영혼이 어린 아이'의 습관이다. 그리고 ‘영혼이 어린 아이’는 잠재적 살인마다. 언제든 타인의 영혼을 뭉갤 수 있는.


‘영혼이 어린 아이’ 초연은 여신을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그땐 미처 몰랐다.


----------------


‘아폴론 성형외과’는 이미 10년간의 예약이 꽉 차 있다.


전 세계의 상위 1%의 재벌들로만 이루어진 고객 명단. 우주여행에 버금가는 천문학전인 수술비를 그들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의술의 신 아폴론의 성형수술은 어떠한 부작용도, 어떠한 오차도 없다. 누에고치가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듯, 그의 병원을 다녀간 모든 이는 눈부신 나비가 된다.


“죄송합니다. 저희 성형외과는 이미 10년간의 예약이 차 있습니다.”


간호사의 말에 엘리베이터녀가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알죠. 나도 여기서 코 했는데. 근데 내가 급해서요. 얼마가 들든.. 돈은 상관없다고..”

“액수가 상관없는 건 저희 병원 고객 모두가 마찬가지세요.”


“지난번에 괜히 코만 해서. 선생님이 코만 하라고 해서 그런 거니, 좀 예약 잡아주세요. 이번엔 한꺼번에 다 해버리게.”

“정말 죄송합니다. 이러시면 곤란해요.”


남자들에게 갑자기 차이고 까이는 것이, 아프로의 저주 때문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엘리베이터녀는 급히 성형외과부터 찾았던 것이다.


이때 병원에 들어선 아프로가 엘리베이터녀를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

“어머, 오랜만이네.”


엘리베이터녀는 아프로를 알아보고 기겁해서 외쳤다.

“당신? 또 나 따라온 거야?”


아프로가 싱그러운 미소를 날리며 대답했다.

“에이 설마,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여? 아니면 니가 그렇게 귀중한 사람이라 생각?”


이때 간호사가 아프로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오셨어요.?”


아프로가 간호사에게 친숙하게 물었다.

“네. 있죠?”

“네. 진료중이세요.”


아프로는 엘리베이터녀 위아래로 한 번 보고, 진료실 쪽으로 걸어갔다.


아프로가 진료실 쪽으로 걸어가자 엘리베이터녀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저 여잔 뭔데 바로 진료실로 가요? 지금 고객 차별해요? 슈퍼패스 뭐 그런 거? 얼마 더 내면 되는 거예요?”


당황한 간호사가 서둘러 대답했다.

“저 분은 진료 받으러 온 게 아니세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진료실로 가던 아프로가 다시 데스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지난번처럼 엘리베이터녀의 어깨에 뒤에서 얼굴을 불쑥 얹으며 말했다.


“훗. 설마 내 얼굴에 손 볼 데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무튼 앞으로 잘 지내. 그러기 어렵겠지만.”


그러면서 아프로는 엘리베이터녀의 이마에 새겨진 검은 장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


진료실의 문 벌컥 열리고 아프로 들어오자, 무표정하게 환자의 얼굴을 살피던 아폴론의 얼굴에 웃음이 만개했다.


하얀 얼굴, 하얀 가운, 안경을 쓴 아폴론의 모습은 의술의 신답게 이지적이었고, 태양의 신답게 빛났다.


아폴론이 전혀 죄송하지 않은 표정으로 환자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내일 다시 오시죠.”


환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외쳤다.

“뭐라고요? 저 8년 기다렸다가 오늘 드디어 진료 온 건데요?”


아폴론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환불해 드릴 테니 다른 병원으로···”


환자는 화들짝 놀라 아폴론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내일 다시 오죠. 내일이든 모레든 선생님 시간 되실 땐 언제든.”

그리고는 도망치듯 병실을 나갔다. 아쉬운 놈이 약자인 법이니.


아프로가 도도한 표정으로 환자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상위 1%의 재벌들은 이미 나비인데, 너의 의술을 재벌을 위해서만 쓰다니 신이 너무 돈렬해”

“잠깐, 잊은 거 같은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지?”


모공 하나 없는 하얀 얼굴에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아폴론은, 한 번도 밟은 적 없는 눈처럼 깨끗하고 고결해 보였다.


또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귀티와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의 완벽한 얼굴에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되어 빛나고 있었다.


아프로가 아폴론에게 다가와 그의 무릎에 덥석 앉으며 말했다.


“알지, 알지, 너랑 디오니가 버는 돈으로 올림포스의 신들이 최소한의 신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산다는 것. 니들 둘이라도 이 피 튀기는 현대 사회에 이렇게 깔끔하게 적응하지 못했다면..”


그녀가 자신의 노란 에르메스 백을 보며 말했다.

“끔찍해, 난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아폴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라도 기억났다니 다행이군.”


그녀를 보면 언제나 온몸이 엔돌핀으로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은 행복감을 느끼는 자신이 어이없어 아폴론은 웃었다.


태양의 신이 오직 그녀 앞에서만 보여주는 햇살 같은 미소.


그런데 갑자기 아프로가 돌변해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외쳤다.

“근데 자꾸 나 닮게 성형수술해서 찍어내면 어쩌자는 거야? 이러다 내 독보적인 얼굴이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흔한 얼굴이 되겠어.”


아폴론은 화내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의술의 신인 나지만, 만년을 아니 영원을 수련해도 이렇게 신비롭게 아름다운 얼굴은 못 만들어. 괜한 걱정이야.”


아프로는 입술을 삐쭉거리며 그의 말에 싫지 않단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작은 메모 하나를 그의 탁자에 놓으며 말했다.


“아 됐고. 잘 부탁해. 내가 잘 가는 베이커리 직원 연락처야.”

“나한테 부탁할 필요 없이 예전 올림포스 시절처럼 네가 아름다움의 축복을 내리면 되잖아.”

“그게 쉽지가 않아, 아무리 미의 기운을 불어넣어도 원판을 갈아엎는 시대엔 한계가 있더라.”


재벌이 아니면서도 아폴론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슈퍼패스. 그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내리는 축복이었다.


아프로가 명로조로 말했다.

“그녀를 완벽한 미인으로 만들어. 20대도 퐁당 빠질 만큼. 사랑의 고통을 맛봤으니, 사랑의 쾌락도 맛보게 해 줘야지.”


사십년 모태솔로에서 겨우 벗어나 처음 남자를 경험한 여자. 운명의 사랑을 만났다는 환희에 젖어있던 그녀 앞에 펼쳐진 현실은 가혹했다.


그놈에게 돈과 영혼을 탈탈 털린 그녀는 사랑을 저주하다 아파트 옥상, 삶의 끝에서 미의 여신을 우연히 만났던 것이다.


전화번호만을 전달하고 나가려는 아프로에게 아폴론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벌써 가게?”

“응, 나 바빠.”

“뭐하느라?”

“에로스랑 내기 하나 해서”

“또 둘이 이상한 짓 벌였겠지. 철없는 엄마에 철부지 아들. 에로스는 아직도 고등학생?”

“응. 그렇지 뭐.”


“에로스한테 그냥 이제 성인으로 등록하고, 결혼정보회사 하나 차리라고 해. 큐피트의 화살을 가진 결혼정보회사. 대박 아니겠어?”

“올림포스 시절 넌.. 돈 버는 것과는 가장 관련이 없는 순수한 영혼이었는데..”


“그러지 말고, 저녁 먹고 가.”

굳이 에로스 얘기를 꺼낸 건 그녀와의 시간을 단 1초라도 연장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기에 그는 결국 조금 더 있다 가라는 참았던 말을 꺼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그녀의 거절 뿐.

“미안, 다음에,”


그녀가 방을 나가자마자, 그의 마음의 방엔 ‘탁’하고 불빛이 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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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3화. 슬픈 신남 24.08.20 5 0 9쪽
22 제22화. 분쟁의 여신 에리스 24.08.19 8 0 9쪽
21 제21화. 산타클로스의 선물 24.08.17 10 0 10쪽
20 제20화. 무인도에 둘만?_2 24.08.16 15 0 10쪽
19 제19화. 무인도에 둘만? 24.08.14 19 0 10쪽
18 제18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4.08.13 17 0 11쪽
17 제17화. 프시케_2 24.08.12 19 1 9쪽
16 제16화. 프시케 24.08.11 21 3 10쪽
15 제15화. 인간 사냥꾼 24.08.09 21 3 11쪽
14 제14화. 낭만 살인자 24.08.07 17 3 10쪽
13 제13화. 마음의 방 24.08.04 22 3 11쪽
12 제12화. 공처가 하데스 24.08.03 28 3 11쪽
11 제11화. 첫 참사 24.08.03 24 3 10쪽
10 제10화. 번개 놀이 24.08.02 24 3 11쪽
9 제9화. 네온사인 사랑 24.08.01 25 3 10쪽
» 제8화. 영혼이 어린 아이 24.07.31 34 3 13쪽
7 제7화. 美친 민폐 24.07.30 37 4 10쪽
6 제6화. 키스플러스_2 24.07.29 35 3 13쪽
5 제5화. 키스플러스 24.07.28 41 4 12쪽
4 제4화. 첫 만남 24.07.28 45 4 11쪽
3 제3화. 크루아상 24.07.27 48 5 10쪽
2 제2화. 美친 여신 24.07.27 53 6 12쪽
1 제1화. 人神상열지사 24.07.27 9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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