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인 딸이 집착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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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섬
작품등록일 :
2024.07.28 22:03
최근연재일 :
2024.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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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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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죽음

DUMMY

사랑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무한한 것,

서로를 향한 연인의 달콤한 것,

연인이 아닌 누군가를 향한 일방적인 것,

때때로 연인이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이미 서로를 연결짓고있는 것 등.


그 모든 것에도 종류가 있다.

애정

집착

애증


아마 그 외에도 수많은 형태가 있겠지.


그렇다면 물어보자.




이건 어느 형태의 사랑일까.






----------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소용돌이쳤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의문을 해소할 시간은 없어보였다.

휘청거리며 걸어오던 소녀가 어느새 소년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던 것 이다.


“왜..”


소녀가 고개를 들자 금빛의 머리칼 사이로 보석처럼 아름다운 두 눈이 드러났다.


겹쳐지는 두 사람의 시선.


“나를 내버려둘 수 없다고 했잖아?”


싸늘하다.

이미 소녀의 눈은 정상인의 그것이라곤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무서워.

빛 한 점 안보여.


“그 말은 무슨 의미였던 거야? 어째서 나에게 친절했던 거야? 어째서..”


분노,광기,집착

그 모든 감정들이 소녀의 공허한 말투와 표정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식은땀이 피부를 타고 흘러내린다.


“어째서 또 다시, 내가 다른 사람을 의지하게 만든 거야?”


소녀의 무거운 질문에 그간 소년이 해왔던 일들이 책임감이라는 형태로 소년의 마음을 조여왔다.


소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에 아랑곳 않고 소녀가 질문을 계속해 나갔다.


“혹시..질려버린 거야?”


결정적인 질문.

혹시나 자신이 생각한 최악의 대답이 나올까 고개를 숙이고 맨땅을 응시하는 소녀.


찰나의 정적이 이어졌다.


“알았어.. 너의 뜻”


정적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쓸쓸히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그녀.


그 힘없는 발걸음이 눈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아..”



소년의 짧은 한 마디에 발걸음을 멈춰서는 소녀.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은 말은 더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과 감정들을 그녀에게 들켜서는 안 되기에, 그저 함축적으로 짧은 한 마디만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다행이다.”


안심한 듯 미소지어오는 그녀.


그 따스한 얼굴에 소년 또한 어색한 미소로 답해내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피하는 거야?”



소녀의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공허한 눈빛을 보내오는 그녀.


이게 당근과 채찍이라는 걸까?

실시간으로 분위기가 바뀌니 그 대비가 너무나도 무섭다.


“너도..”


“!?”


눈치를 살피고 있던 순간이었다.

소녀의 뺨이 살짝 적셔졌다


“너도.. 나를 떠날 거야?”


울려버리고 말았다.


아아 빌어먹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아마 틀림없이 그녀는,

카샤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있을 것 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녀를 향한 나의 마음을 의심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형태’와 나의 ‘형태‘는 다르다.

맞물리지가 않는다고 할까 이루어질 수 없다.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 딸 이니까.






『용사인 딸이 집착해온다:Pethanea 』


EP00






붉은 바람이 불어온다.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하는 전장.


비린내의 정체는 명확했다.

전장을 가득 채운 셀 수 없이 나열된 괴물들의 주검


그 전장의 한 가운데서 금발의 소녀 카샤는 싸우고 있었다.

그녀와 맞서고 있는 이의 이름은 '젠'

카샤를 길러낸 아버지이자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세계의 적 ‘마왕‘이다.


“어째서야!! 무슨 말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


검과 검이 부딪힌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눈으로 좇기조차 어려울 수준의 광속.

한 순간의 방심이 양날의 검이 되어 자신에게로 돌아올 지도 모를 팽팽한 싸움.


그럼에도 카샤는 검뿐만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그에게 부딪혀내고 있었다.


그가.

소중한 사람이 다시 돌아올 거라 믿으며.


“...”


하지만 소녀의 마음이 무색하게도 남자는 묵묵부답 이었다.


그저 ‘그 시절‘과는 다른-

차가운 시선으로 검을 휘둘러올 뿐 이다.


남자의 멈추지 않는 공세.

그 거친 공세속에서 한 순간 마주친 남자의 눈빛으로부터 소녀는 깨닳았다.


‘아 역시 무리인가.’


마지막 남은 그녀의 소망이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채앵-!


“!!”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남자의 검이 소녀의 검에 쳐내져 날아가 바닥에 꽂혔다.


시종일관 냉소적이었던 남자의 눈이 일그러졌다.


“여태껏 봐주면서 싸운 걸 몰랐던 거야? 당신..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잖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남자의 행색은 엉망진창 이었다.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무수하게 나 있었으며 오른눈은 실명된 상태다.

그저 흐릿하게 보이는 왼눈과 비명을 지르는 몸뚱이에 의지하며 제한적으로 검을 휘두를 뿐 이었던 것 이다.

마법을 사용했다면 전투의 양상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마법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마나’또한 이미 바닥을 친 상태.

처음부터 승패는 정해져 있었다.


“이제 곧 ‘연합’이 도착할거야. 당신네들의 몬스터 군대도 전부 토벌되었어.”


남자의 목에 드리워진 검.


그 태도가 암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항복하라고

목숨을 빌라고


그리고 살으라고


하지만-



“죽여라.”


냉소적인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소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더 이상 소녀가 바라는 미래는 이루어질 수 없다.

마왕의 힘을 멋대로 휘두른,

아니 세계를 위협하던 군단의 두목이자 2대 마왕 그 자체가 되어버린 젠의 사형은 이미 확정적이다.


“어째서야..?”


소녀가 검을 떨궜다.


“난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그토록 다정했던 당신이 나를 배신하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건 도대체 뭐였던 거야!?”


소녀의 많은 것이 담긴 질문.

흘러내리는 눈물에 소녀의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금 힘들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이야기해서, 마음을 부딪혀 내서, 그의 진심을 이끌어낸다면-


“할 말은 없다 죽여라."


변함없는 남자의 대답에 소녀의 내면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소녀가 천천히 남자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현실을 받아들인 듯 소녀가 담담한 얼굴로 검을 집어 들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용사가 된 이유는-”


하늘높이 들려지는 검.


“당신 때문이었는데..!”


내려쳐진 검격에 남자의 의식이 끊어졌다.

마지막 흔들리던 목소리와 함께.



...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문득 떠올랐다.


8년전 그 날.


그녀를.

카샤를 처음 만난 날.


‘무지’의 공포에 빠진 얼굴.


처음 보는 나를 경계하던 얼굴.


함께 식사를 하며 조금씩 느슨해져가던 얼굴.


그날로부터 조금씩 가까워져 언젠가 부터는 나를 향해 밝게 웃어주던 얼굴까지.


잊을 수 없다.

잃을 수 없다.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그렇게 맹세했다.


하지만 끝내... 지키지 못했다.


카샤.


만약 내가 모든 진실을 너에게 말하고 용서를 구해온다면..

너는 나를 용서-


아니.

다시 한 번 아버지라고 불러줄 수 있겠니?



...



투둑-


비가 내렸다.


마치 소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무거운 빗줄기가 카샤의 등과 남자를 세차게 두들기며 흘러내렸다.

그 흘러내리는 빗줄기에 남자의 피가 섞여 바닥을 적셔낸다.


빗줄기가 바닥을 두드려내는 소리.


세찬 바람에 해진 깃발이 펄럭이는 소리.


그 소리와 광경들이 싫어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샤..”


한 순간.


떨어지는 빗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카..샤..”


부르고 있다.

틀림없이 소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무려 1년 만에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나온 소녀의 이름.


카샤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었다.


“뭔데..”


자비를 구하기엔 늦었을 터다.

남자의 주위로 퍼져가는 피웅덩이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제 와서-!!”


남자에게 다가선 순간이었다.


물줄기가 보였다.

떨어지는 빗물 속에서-

상처에서 새어나온 핏줄기 속에서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서 조금씩 흘러내리는 눈물.


그는 말했다.


카샤는 그의 숙적이라고.


카샤는 그저 이용가치가 있는 소품에 불과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도대체 어째서-



이미 남자의 눈에는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은.

표정은 틀림없는 ‘그 시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본능이 말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이쪽을 향해오는 소녀가 보인다.


아...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버리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철저히 ‘적’이 되어버리자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그녀가 아무런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도록 하자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역시 마무리가 좋지 않은 것이 나의 큰 단점이다.


‘하고 싶은 게 뭐야!? 이제 와서...’


그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이제는 흐릿하게나마 보이던 시야도 완전히 캄캄해졌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감각마저 사라져갔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그녀의, 카샤의 품에 안겨있다.

손과 손이 맞닿고 있음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이러면 미련이 남아버리잖아.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사랑하는 이의 품에서 죽는다는 건 나에게는 과분한 최후일 터.

일말의 행복마저 느껴진다.


그렇다면-

반드시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부터 전하고 싶었던 진정한 진심.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입술을 움직여냈다.


“카샤.. 나는”


다 죽어가는 나비처럼 아슬아슬하게 겨우 움직여내는 입술.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반응해 카샤가 남자의 눈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남자의 눈빛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




“뭐야? 도대체 뭐야..? 이런 건 이상하잖아! 무언가.. 무언가가 잘못됐어..!”


끈임 없이 몰아쳐오는 의문.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의문에 답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아빠... 난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소녀의 울부짖는 소리가 고요한 전장을 가득 매워갔다.

슬픔과 고통이 섞인 울먹임과 비명사이의 어딘가.


그러나 그 통곡을 멈춰줄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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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P17:의외의 얼굴 24.07.28 9 0 16쪽
16 EP16:그가 없는 봄 24.07.28 8 0 10쪽
15 EP15:헤르네스 입성 24.07.28 8 0 14쪽
14 EP14:아카데미 24.07.28 10 0 15쪽
13 EP13:정상이 아닌 두 사람 24.07.28 6 0 11쪽
12 EP12:이름 24.07.28 8 0 12쪽
11 EP11:구사일생 24.07.28 6 0 10쪽
10 EP10:결국 24.07.28 7 0 10쪽
9 EP09:오래된 맹세 24.07.28 8 0 10쪽
8 EP08:탈출 24.07.28 12 0 15쪽
7 EP07:수상한 첫 만남 24.07.28 13 0 14쪽
6 EP06:드디어 세계로 24.07.28 15 0 13쪽
5 EP05:본론 24.07.28 18 0 13쪽
4 EP04:너무 많이 아는 남자 24.07.28 20 0 13쪽
3 EP03:본모습 24.07.28 20 0 11쪽
2 EP02:평범한 고등학생 24.07.28 27 0 16쪽
» EP01:죽음 24.07.28 5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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