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인 딸이 집착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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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섬
작품등록일 :
2024.07.2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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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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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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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그가 없는 봄

DUMMY



“이제 계좌번호를 입력한 뒤 이 화살표 버튼을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죠?”


고상한 분위기를 풍겨오는 여인의 친절한 설명에 소년이 조심스레 답해왔다.


“네.. 이해됐어요. 감사합니다.”


소년의 조심스런 감사표시에 여인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냈다.


“아닙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나 멀리서 오신 분들께서 기계의 사용법을 몰라 곤란해 하시는 경우는 흔하니까요. 이 또한 저희의 불찰이니 조금 더 직관적으로 보실 수 있도록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똑부러진 말투와 완벽한 대응.

역시 서린이가 맞다.

12년만의 만남에 소년이 얼떨떨해하던 순간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영업용 웃음을 지어내며 여전한 아름다운 뒷모습과 함께 건물 내부로 사라져가는 서린.

그 뒷모습을 장소에 있던 전원이 가만히 응시하고있던 순간이었다.


“으.. 은행장님!!”


안내역인 나나가 서린을 따라 은행내부로 사라져갔다.


그제서 였다.

은행 건물에 도사리고있던 긴장의 기색이 풀려난 것은.



“역시 용사파티의 일원인가? 분위기가 달라”

“아름다우셔라..”

“저런 어린아이한테도 성심성의 껏 친절하게.. 저 서린님이..”

“나이가 차셨는데도 미혼이라지? 저렇게 능력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어느새 뒤에서 불만을 터뜨려오던 사람들의 이야기의 주체가 달라졌다.

앞에서 기계의 사용법을 몰라 허둥지둥대던 소년에 대한 불만은 사라지고 한 순간 장소를 휩쓸고 사라진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만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웅성거리는 인파속에서 오직 한 소년만이 입을 꾹 다문 체 굳어버린 표정으로 다급히 ATM기를 조작해내고 있었다.

그 심상치않은 모습에 라라가 물어왔다.


“왜 그래 카렌?”


소녀의 질문에 소년이 흠칫- 어깨를 들썩이더니 답해왔다.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라라.”


라는 말과 동시에 좀 전까지 기계의 사용법을 몰라 꾸물거리던 소년이 단숨에 복잡한 출금절차를 끝냈다.

위기상황이 불어 닥친 탓에 일시적으로 발휘된 생존본능이었다.



---------



그렇게 돈이 들어있는 보릿자루를 받아 모험가 창고에서 나오는 내내 뻣뻣한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숨기는 사람처럼 수상한 행세를 해온 소년.

은행을 빠져나와 조금 떨어진 길거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소년이 안도의 한숨을 쉬어냈다.


“카렌. 왜 그렇게 긴장한 거야?”


라라의 질문에 소년이 답했다.


“아까 만났던 그 녀석 때문이야.”

“그 녀석?”

“하늘색 여자 말이야.”

“그 사람이 왜? 예쁜 사람이던데.”


짐작조차 가지않는 듯 한 라라의 물음에 소년이 힌트를 줬다.


“너. 2틀 전에 진서윤이랑 헤어질 때 자리에 있었지?”

“응. 보트 뒤편에 숨어서 전부 보고 있었어.”

“그 때 서윤이 헤어지면서 했던 말 기억나?”


소년의 결정적인 힌트에 한 순간 그 날의 장면이 라라의 머릿속을 스쳤다.


“아앗! 그럼 저 사람이!!”

“그래. 진서윤의 언니 진서린... 12년전 내가 마왕을 쓰러뜨렸던 때에 도움을 줬던 동료중 한명이야.”


이제야 눈치를 챈 라라가 소리쳤다.


“아하! 그래서 저렇게 엄청난 분위기였구나! 뭔가 엄청 인텔리한 느낌이었는데!”

“옛날에도 그랬어.”


라라의 말을 덧 붙히며 미소를 지어내는 소년.

그 미소에 담긴 감정은 기쁨과 반가움. 그리고 그리움이었다.


‘서린인가..’


진서윤때도 놀라웠지만 서린이도 놀라울 정도의 성장이었다.

어렸던 탓에 귀엽게만 보였던 날카로운 눈매도 어느새 성숙해져 시크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으며 자라난 이목구비와 콧대는 전형적인 동양미인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그때 보다도 더욱 더 지적이고 도도한 인상의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 세월이 무섭다 라는 감회에 젖은 체, 소년이 은행이 있는 방향으로 소년이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라라가 질문해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있었던 거야?”


라라의 질문에 소년이 멋쩍은 웃음을 지어내며 답했다.


“말할 것도 없이 무서워서 그랬어.”

“뭐가?”

“그건.. 정체를 들키는 게”

“그래?”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라라가 본 인상 그대로 서린은 두뇌회전이 빠르고 눈치도 보통이 아니다.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다소 뜬금없는 상황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녀가 작정하고 관찰을 해온다면..


' 내가 카난이라는 사실을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겠지. 틀림없어'


그런 확신을 바깥으로 꺼낼 용기는 소년에게 없었기에 소년은 그저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흘렸다.


“어쨌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당분간 지낼 숙소부터 찾아보자! 겸사겸사 저녘도 먹고.”

“저녘? 그래 좋아!”


하여튼 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이다.

뭐 곤란할 때 말을 돌리는 수단으로써는 제격이지만


그렇게 저녘 메뉴에 대한 토론을 나누며 북적거리는 초저녘의 인파들 사이로 두 사람은 사라져갔다.



---------



초봄의 따사로운 햇살이 저물어가는 초저녘.


헤르네스의 모험가 은행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은행장실.

아마도 이 은행에 존재하는 의자들 중 가장 질이 좋고 푹신한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여인의 이름은 진서린.

헤르네스 은행의 전반적인 관리와 운영을 맡고있는 여인으로 그 별 것 아닌 질 좋은 의자가 서린의 신분을 증명해냈다.

그 외에도 사무실에 즐비해있는 수많은 공적과 그를 통해 수여받은 표창장이나 상장들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 어떤 휘황찬란한 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은 오직 작은 눈꽃 한 송이.

얼려진 작은 눈꽃모형이었다.

그런 작고 초라한 모형을 어째서인지 서린은 아무런 말도 없이 따듯한 ,그리고 어딘가 슬퍼 보이는 눈빛으로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때때로 서린은 그랬다.

그녀가 소유하고 있을 권력이나 재산, 표창장이나 보물들에 비해 일말의 가치도 없을 작은 조형물에 불과한 그것을

서린은 때때로 사랑스러운, 한편으론 슬픈 눈빛을 보내고는 한다.

이 작은 눈꽃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만이 그녀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삶과 희망을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별 것 아닌 눈꽃을 보고 있으면 떠오른다.

이제는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그.

눈꽃...아니 새하얀 눈과 같은 머리색을 했던 그와 함께 거닐며 보았던 눈꽃이 가득 핀 설산에서의 기억이.

서린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행복의 기억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멈출 수 없는 기억의 파도였다.

함께 위협으로부터 싸워왔던 것, 서로를 위해 강해지리라 약속했던 것, 언제까지나 그의 등을 지탱해주리라 맹세했던 것.

그리고 12년 전의 그 날.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괴물을 향해 홀로 나아가던 그의 모습과 떠나기 전 초라하고 궁상맞은 얼음눈꽃하나만을 남기고 간 것 까지



그 후로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녀가 살아온 25년 세월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서린은 인지하고 있었다.


서린은 그가,카난이 증오스러웠다.

무언가를 남기고 간 것이 증오스러웠다.

고작 이런 이물따위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신물이 나 버려버릴 결심도 몇번이고 했다.


하지만 끝내는 그럴 수 없었다.

그에게서 받은 이 눈꽃이 마치 그의 마음 같이 느껴졌기에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 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고가지 않았다면 편했을 것을.

그가 이런 물건을 남기고간 탓에 서린의 마음이 나약해지는 것이라고 그녀는 그리 되내이고는 했다.



...



“은행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감겨있던 여인의 두눈이 뜨였다.


“죄송합니다. 나나.”

“정말... 또 그거 보시다가 잠드셨어요? 낡아 보이는데.. 제가 하나 사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서린이 한숨을 쉰 순간이었다.


“내일 부터는 아카데미도 맡기로 하셨죠? 학생들이나 선생님들 앞에서는 그러면 안돼요! 은행장님. 엄청 똑부러진 이미지 시니까.”

“선처하겠습니다.”


쉽사리 구경할 수 없는 그 진서린의 흐트러진 모습.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나나가 묘한 기쁨을 느끼던 때였다.

저물어가는 노을과 함께 때지어 이동하는 철새무리가 창문 너머로 보여 왔다.


“이제 완전히 봄이내요. 날씨가 완전히 풀렸어요. 그쵸?”

“...그렇군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시간의 흐름을 자각한 서린이 손에 쥐어진 눈꽃을 소중히 어루만졌다.


봄.

봄이다.

12년 전의 겨울.

그가 사라진 뒤 12번째로 맞이하는 봄.


이미 인생의 반절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서린의 눈에 비치는 계절은 여전히 차갑고 외로운 겨울이다.


...


카난.


눈꽃의 꽃말을 알고 있나요?


물론 당신이 그런 걸 생각하고 저에게 이 꽃을 주지는 않았을 테지요.

하지만 늘 갑자기 왔다가 멋대로 떠나버리는 당신이니 저도 마음대로 생각토록 할게요.



눈꽃의 꽃말은 희망과 위안...

차가운 겨울을 버텨내면 언젠가 따스한 봄이 올 거라는 희망과 위안이 담겨있는 꽃이랍니다.


한겨울의 칼바람과 차디찬 한기를 견뎌내며 봄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눈꽃의 모습이 당신과 썩 닮아있었기에 저는 이 눈꽃을 보며 당신을 떠올렸어요.

...

카난.

저에게도 다시..

언젠가 봄이 찾아올 거라고 희망을 가져도 되겠지요?


그런 작은 위안과 함께 창밖의 저물어 가는 노을을 보며 서린은 생각했다.

그가 없는 12번째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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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P17:의외의 얼굴 24.07.28 10 0 16쪽
» EP16:그가 없는 봄 24.07.28 9 0 10쪽
15 EP15:헤르네스 입성 24.07.28 8 0 14쪽
14 EP14:아카데미 24.07.28 11 0 15쪽
13 EP13:정상이 아닌 두 사람 24.07.28 6 0 11쪽
12 EP12:이름 24.07.28 8 0 12쪽
11 EP11:구사일생 24.07.28 7 0 10쪽
10 EP10:결국 24.07.28 8 0 10쪽
9 EP09:오래된 맹세 24.07.28 8 0 10쪽
8 EP08:탈출 24.07.28 13 0 15쪽
7 EP07:수상한 첫 만남 24.07.28 14 0 14쪽
6 EP06:드디어 세계로 24.07.28 16 0 13쪽
5 EP05:본론 24.07.28 18 0 13쪽
4 EP04:너무 많이 아는 남자 24.07.28 21 0 13쪽
3 EP03:본모습 24.07.28 21 0 11쪽
2 EP02:평범한 고등학생 24.07.28 28 0 16쪽
1 EP01:죽음 24.07.28 5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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