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인 딸이 집착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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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섬
작품등록일 :
2024.07.2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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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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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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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3:본모습

DUMMY


“젠.”


이름을 불린 남자가 대답해왔다.


“대답해라. 죽은 나의 영혼을 여기로 불러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저 애송이를 나의 앞에 보이는 이유까지 말이다.”


“...”


어째서였을까.

아리아에서 가장 위험한 손가락에 위협당하면서도 소녀는 남자가 원하는 대답을 꺼낼 생각이 없어보였다.

대답은커녕 그저 슬픈 눈으로 남자를 바라볼 뿐.


그 눈빛이 불쾌해서였을까.

아니면 의미가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눈치 챈 것이었을까.

소녀를 향해오던 손가락이 내려갔다.


“하긴 진짜 여신이라면.. 이런 건 의미 없는 행동이겠지.”


그 말 대로였다.

그녀는 하나의 세계를 관장하는 여신이었다.

아무리 세계를 손에 넣을 뻔한 그였다고 해도 상대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비로소 남자가 경계의 기색을 지우고 나서야 소녀는 입을 때어냈다.


“제가 당신을 이 장소로 불러낸 의미.. 당신 또한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을 겁니다.”


“...”


여신의 말에 남자는 침묵했다.

그녀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을 굳이 부활시킬 이유는 단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진정 너희를 도울 거라고 생각하나? 마왕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겠지?”


마왕.

아리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인들과 그들이 조종하는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반세계연합조직 ‘군단’의 수령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그가 이끌었던 군단의 진정한 목표는 세계의 지배.

그리고 그를 넘어 현세를 지배한 뒤 여신마저도 집어삼켜 진정한 세계의 지배권을 손에 넣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군단의 목적이자 마왕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여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설령 죽었다고 해도 나는 너와 인류의 적이다. 그런 내가 어째서 너희들을 위해서 싸울 거라고 확신하는 거지?”


여신의 사정은 인간인 그로써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은 자의 영혼을 이 경계에 묶어두는 일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적어도 세계의 절대적인 법칙, 인과에 거스르는 일임은 분명할 터.

그럼에도 세계의 절대적인 법칙을 무시하고서라도 자신의 영혼을 이 곳에 소환했다는 것은 젠이 여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이제 그만..”


소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소녀의 눈에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 카난. 당신은 충분히 잘 해주었어요.”


소녀의 말에 차갑기만 했던 남자의 얼굴이 굳었다.

처음으로 당황의 기색을 보이는 젠.


카난.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불려지는 것은.


“저는 여신입니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측하고 관리하는 존재죠. 당연히 당신이 여태 걸어왔던 길 또한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관측해왔습니다. 그런 제가 당신의 진의를 모를까요?”

“지금 무슨 말을..”


당황의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소녀의 말에 딴지를 걸어오는 남자.

그에 개의치 않고 소녀가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과거 마왕을 쓰러뜨리고 정체를 감추고 은거하였던 것, 딸을 위해서 마왕의 힘을 이어받고 소중한 이들을 위해 군단의 수령이 된 것. 연합이 패배하지 않도록 군단을 내부에서부터 제어하고 있었던 것까지.. 저는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애원이었다.

그와 동시에 위로였다.

더 이상 자신을 숨길 필요는 없다는, 모든 것을 희생한 젠의 삶을 적어도 여신인 자신은 전부 지켜보았고 이해하고 있다는 작은 위로.


그 직후였다.


남자의 분위기가 뒤바뀐 것은.


“후우..”


그 한숨소리와 동시였다.

남자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음산한 기운이 물러나고 심연의 어둠만이 가득했던 눈동자에는 따스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표정은 한층 풀어져 인간미가 보이기 시작했고 한숨을 쉬는 목소리에는 감정이 들어 있었다.


어느새 세계에서 가장 차갑고 잔혹한 악마 같았던 남자가 한명의 사람으로써 변해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였다.

입고 있는 옷의 위엄과 격식에 맞지 않게 남자가 유리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하긴 진짜 여신님이라면 굳이 연기할 필요도 없겠지. 미안했어 여신님. 쉽사리 경계를 풀 수는 없었어.”

“아니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라고 침착하게 대답하면서도 라이라는 당황했다.

갑작스레 돌변해버린 남자의 태도때문이었다.


라이라는 여신이다.

당연히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가능하다.

그 말은 즉 여태까지 연기를 하고 있던 젠의 마음 또한 전부 알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라이라는 알고 있었다.

그가 쉽사리 경계를 풀지 않고 연기를 해왔던 이유.

그리고 그런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눈앞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의 연기는 신기함을 넘어 기괴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망토를 벗어내고 있었다.

역시나 불편했던 걸까..?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야? 공부를 싫어하던 딸이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는 모습을 목격한 얼굴인데?”


“표현이 묘하게 현실적인 건 넘어가고.. 당신의 연기 때문입니다. 신기함을 넘어서 기괴스럽기까지 해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거잖아요?”

“나는 연기를 못하니까. 메소드 연기라고 했나? 실제로 그런 거라고 억지로 과몰입하는 것밖엔 답이 없었어.”


그리고 그 다급히 준비했던 메소드 연기는 기가 막히게 통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자신의 딸까지도 남자의 진심을 눈치채지는 못했으니까.

마지막이 불완전했던 건 차치하고서라도


“원래는 옛날의 제레온처럼 연기하고 싶었어. 왜 그거 있잖아. ‘심연이.. 나를 잠식한다..!!‘ 이러는 거.”


오른손으로 왼눈을 가리며 누군가의 흑역사를 흉내내오는 마왕.

그 우스운 꼴에 라이라는 웃음보가 터질 뻔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안도했다


....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젠과의 대화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소녀는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 또한 그렇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 일까.

남자는 숨김없이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왔다.



참 신기했다.

엄밀히 말하면 초면의 남녀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죽이 잘 맞았다.

간만에 만난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는 상대였기에 그랬던 것 일까.

두 사람의 즐겁디 즐거운 대화는 시간을 잊어버린 듯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 대화가 계속되던 와중이었다.


이상함을 눈치챈 건 젠쪽이었다.


“이런.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뜨려버리고 말았잖아.”


젠의 말에 라이라 또한 뒤늦게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어머 그렇내요. 대화가 즐거워서 본론을 잊어버렸어요.”


소녀의 대답에 남자가 변명했다.


“최근 1년 동안은 단답형으로 간단한 말만 일방적으로 하고 다녔으니까 말이야. 이런 주고받는 대화는 오랜만이어서 열중해버렸어.”

“저도 비슷하답니다. 매일 세계의 종말이니, 서쪽에서 희망의 씨앗이 태어날 것이니, 별이 떨어지는 방향에서 구세주가 태어날거니 뭐니.. 영겁의 세월간 그런 재미없는 말만 해온 탓에 이런 평범한 대화는 신선했어요.”


라이라의 그 말에 남자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방금 말한 그것들 전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전들이잖아? 지금은 역사의 페이지들에 전설로만 전해지는 이야기들인데 그런 취급해도 되는 거야?”

“그야.. 제가 내렸던 계시들이니 제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지 않을까요?”

“여신파워 굉장해!”


세상 사람들.

특히나 전설을 동경하는 아이들이나 여신을 우상화 하는 교회의 사람들이 알았을 때엔 난리가 날 법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라이라.



그 가관스러운 모습에 젠이 눈물을 쏫을 정도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이미 죽었기에 눈에 뵈는 것이 없어 그런 것 일까.

어떤 말을 들어도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 직후였다.


“크큭! 잘 알았어. 역시 진짜 여신 맞구나 당신.”

“그럼 여태까지 안 믿은 건가요?”


여신의 장난스런 반응에 미소지어오는 남자.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웃음을 멈춘 남자가 물어왔다.


“그래서. 이제 슬슬 장난은 끝내고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죽은 나를 불러들인 이유. 그리고 그 세계의 위험이라는 놈에 대해서”


갑작스러운 남자의 진지한 어투에 라이라는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렇군요. 알고 계시겠지만 당신에게 드릴 부탁 또한 먼저 떠난 현우님과 같습니다. 부디 다시 한 번 죽음으로부터 돌아와 아리아를 구해주십시오.“

“뭔지도 모를 위협으로부터?”


남자의 질문에 라이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젠.”


이름을 불린 남자를 바라보며 소녀가 말을 이어갔다.


“젠. 당신은 연합의 중심이자 4영웅의 일원, 용사 카난으로써 마왕을 쓰러뜨림으로 한 번, 카샤의 아버지로써 그녀를 용사로 성장시킴과 동시에 본인이 마왕의 자리에 앉아 연합이 군단에게서 승리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또 한 번. 자그마치 두 번이나 세계를 구해내셨습니다. 어느 시대의 어떤 영웅을 찾아보아도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올 인물은 없겠지요.”

“그래서?”

“이번 시대의 세 번째 또한 당신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소녀의 대답에 남자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두번째도 했으니 세 번째도 해라.. 라는 거야?”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되겠지요.”


여신의 대답에 남자가 손가락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곧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하는 젠.


키179CM의 건장한 청년이 할 법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이는 현재의 그가 사악하고 차가운 마왕이 아닌 어린 시절의 철없는 버릇조차 고치지 못한, 따스하고 상냥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였기에 라이라는 현우와 더불어 젠까지 두 사람분의 영혼을 경계에 묶어둔다는 초강수를 둘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여전히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동료.

믿음직한 정의의 사도이자 용사이다.

곧 이 남자는 자신의 부탁을 수락하고 현세로 내려가 다시 한 번 세계를 구해줄 것 이다.


그런 확신을 하고있던 때였다.

결론이 나온 듯 남자가 씹고 있던 손톱을 입에서 때어내며 답했다.




“미안. 거절할게.”



“예?”



예상치 못한 젠의 대답에 여신이 경악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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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P17:의외의 얼굴 24.07.28 9 0 16쪽
16 EP16:그가 없는 봄 24.07.28 8 0 10쪽
15 EP15:헤르네스 입성 24.07.28 8 0 14쪽
14 EP14:아카데미 24.07.28 11 0 15쪽
13 EP13:정상이 아닌 두 사람 24.07.28 6 0 11쪽
12 EP12:이름 24.07.28 8 0 12쪽
11 EP11:구사일생 24.07.28 6 0 10쪽
10 EP10:결국 24.07.28 8 0 10쪽
9 EP09:오래된 맹세 24.07.28 8 0 10쪽
8 EP08:탈출 24.07.28 13 0 15쪽
7 EP07:수상한 첫 만남 24.07.28 13 0 14쪽
6 EP06:드디어 세계로 24.07.28 15 0 13쪽
5 EP05:본론 24.07.28 18 0 13쪽
4 EP04:너무 많이 아는 남자 24.07.28 21 0 13쪽
» EP03:본모습 24.07.28 21 0 11쪽
2 EP02:평범한 고등학생 24.07.28 28 0 16쪽
1 EP01:죽음 24.07.28 5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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