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첫사랑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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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3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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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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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여우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렀나

DUMMY

시간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호파 두목 박대호는 들뜬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표정관리에 여념 없었다. 일생일대의 기회가 갑자기 굴러올 줄이야.


조직의 중추를 맡고 있던 최대열이 생활을 늘어지겠다고 통보했을 때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죽도록 팬 후 아킬레스건이라도 끊어 병신을 만들어야 했다. 주변에서 만류만 없었어도 그대로 실행했다.


최대열이 마지막 인사를 위해 찾아왔을 때 박대호는 이 같은 분노를 억누르고 짐짓 대인배처럼 행세했다.


[그래, 보내줄게. 대신 빠따 20대로 너랑 인연 시마이치자.]


최대열은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빠따 20대를 맞은 후 절룩거리며 떠났다.


그런데 강남 갔던 제비가 박씨를 물어오듯 엄청난 소식을 가지고 왔다.


대부업체를 맡겨놓았던 손양철로부터 최대열 근황을 전해들은 것은 물론 엄청난 제안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조직을 떠난 후 자기 엄마가 운영하던 닭강정 가게를 물려받은 최대열. 그런 그가 어떻게 세황그룹의 넷째 아들 한기호와 연이 닿아 있었을까.


그리고 그와의 만남을 주선하다니. 그때 아킬레스건을 끊지 않고 고작 ‘빠따 20대’로 보내줬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


박대호는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테이블 위에 기본 세팅으로 놓여있는 생수병을 하나 따서 병나발을 불었다.


“지금 몇 시냐?”

“7시3분입니다요.”

“이 양반들이 왜 이렇게 늦어? 재벌이면 시간 늦어도 되는 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열리며 한기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기호의 뒤에는 언제나 그를 따르는 충견 김홍재가 있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한기호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을 몰랐더라도 그의 옷차림과 뭔가 도도하고 싸가지를 밥말아 먹은 듯한 모습만 보더라도 충분히 한기호라고 유추할 수 있었다.


박대호는 스프링처럼 튀어 일어나 곧바로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쉬셨··· 아니, 안녕하십니까. 박대호입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조폭 인사가 나올 뻔했다.


완벽한 깍두기 머리에 꽉 끼는 정장차림.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깡패의 모습에 한기호는 만족스러운 듯 손을 쭉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한기홉니다.”


**


한기호와 헤어진 후 박대호는 자신의 오른팔 정호동, 손양철과 함께 술을 더 마셨다.


“천하장사, 넌 어떻게 생각하냐?”


‘천하장사’는 정호동의 별명.


“제가 볼 때는 예, 오까네 냄새는 확실히 풍깁니더.”


박대호는 손양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막대기는 어떠냐? 네가 주선했으니 네 생각을 말해 봐.”


‘막대기’ 손양철은 머리를 긁적였다.


“형님, 제가 사업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저야 형님이 결정하는 대로···”

“야이 X쌔야.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하니까 발전이 없는 거야. 발전이. 어깨 위 그 물건은 장식이냐?”


박대호의 호통에 손양철은 흠칫 놀라며 다시 애꿎은 머리만 긁어댔다.


“행님, 흥분하지 마시고예. 함 해보입시더. 예전에 이쪽 일을 했던 친구 있는데 한 번 맡겨 보면 대충 세팅되지 않겠습니꺼.”

“그렇지. 아무래도 지금 인원 가지고는 한기호가 요구한 거는 못 하겠지?”

“하모예. 솔직히 지금 대호엔터가 회삽니꺼. 텐프로 가시나들 모아 가꼬 보도방 돌리는 거지예.”


박대호는 몇 년 전 불법도박, 매춘 등을 통해 모은 돈으로 합법적인 사업을 벌이겠다며 야심차게 연예기획사를 인수해 대호엔터로 이름을 바꿨다.


한창 K-POP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할 무렵이라 연예기획사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고 박대호도 부나방처럼 그 흐름에 편승했다.


연예인 지망생에다 매니저만 갖추면 금세 스타 하나 뚝뚝 만들어서 떼돈을 벌 수 있으리란 꿈에 부풀었다.


현실은 참담했다.


연예계는 의욕만 가지고 뛰어들어서는 절대 안 되는 곳이었다는 걸 곧 깨달았다.


조폭식 운영방식도 문제였다.


연예기획사 초창기 때야 조폭 자금이 유입됐고, 구타와 폭력이 난무하는 야생의 세계였다. 그렇지만 회사 가치가 수조 원대에 이르는 연예기획사가 탄생하는 등 이곳도 어느 정도 정상적인 비즈니스 세계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박대호는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했다. 매니저들을 폭행하고 연예인 후보생들을 불러 술을 마시는 것도 모자라 잠자리까지 강요했다.


이런 소문이 금세 업계에 퍼졌다. 유망한 연예인 지망생들은 대호엔터 쪽으로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


“그런데 멀쩡한 백화점 나뚜고 와 연예계 쪽을 기웃거리는 걸까예?”

“오늘 만나기 전에 한기호라는 인물에 대해 좀 알아봤지. 근데 그 인간은 한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사장 소리 듣는거여.”

“그기 무신···”

“한 마디로 술, 여자, 도박 좋아하는 양아치 한량이다 이 말이야. 그런데 근엄하게 백화점 사장 자리 앉혀 놓으니 얼마나 좀이 쑤시겠냐.”

“아하.”

“연예기획사 투자한다는 게 바로 자기 적성 찾는 거 아니겠냐. 여기 투자해서 연예인을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거겠지.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박대호는 기분이 좋은 듯 술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 번 해보자.”

“그랍시다. 행님. 막대기, 니도 들어라. 같이 묵자.”

“네, 형님.”


셋은 폭탄주를 건배한 후 단숨에 들이켰다.


“크어, 그래서 말인데 아까 말한 니 친구.”

“네, 행님.”

“연예계 쪽에서 좀 알아주는 놈이냐?”

“그렇십니더.”

“근데 지금은 왜 연예계를 떠나 있다는 거냐?”


정호동은 난감한 듯 솥뚜껑 같은 손으로 얼굴을 마른세수하듯 쓸었다.


“글마가 능력은 꽤 개안은데 그런 거 있잖습니까?”

“뭐?”

“사람이 너무 재주가 많아도 고생한다는 거. 팔방미인이 성공하기 어렵다카던가, 뭐 그런거 있다입니꺼.”

“그럴 수 있지.”

“글마가 딱 그런 스타일인기라예. 덩치도 크고 해서 중학교 때 저랑 같이 씨름도 했던 친군데.”

“몸 쓰는 놈이었어? 우린 머리 쓰는 놈이 필요하잖아.”


박대호가 자꾸 끼어들자 정호동은 솥뚜껑 같은 손을 휘휘 저었다. 허공을 가르는 저 손에 한 방 맞으면 웬만한 성인 남성도 기절할 것 같았다.


“재주가 많다니까예.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지는 않았지만서도 어쨌든 어영부영 지방대 공대를 갔심더. 어디 공장이나 취직할 줄 알았는데 일마가 또 공부를 해가꼬 방송사 PD가 됐어예.”


“어디 PD? KBS? MBC?”


정호동은 형님만 아니었으면 귀찮게 자꾸 끼어드는 박대호의 면상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케이블TV요.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우쨌든 가요프로가 대박나면서 지가 연예기획사를 하나 차려서 나갔씁니다.”

“가요프로 뭐?”

“그, 머라카더라··· 프로듀스 머라카던데···”

“프로듀스 111.”


지금껏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손양철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래. 그거. 프로듀스 111. 그게 대박이 터졌다임니꺼. 그래가꼬 자신감 붙은 김에 회사 하난 차린 기지예.”


박대호는 정호동의 입에서 튀기는 침을 피하면서 폰을 열어 ‘프로듀스 111’을 검색했다. 정호동의 말대로 7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가요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실력이면 회사도 잘 됐겠구먼.”


정호동은 손양철이 말아 준 폭탄주를 한 잔 시원하게 걸친 후 남들 엄지 같은 두께의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기 바로 인생의 부조리 아입니꺼. 일마가 그만 주식하고 코인에 푹 빠져가꼬 회사도 날리고 인생도···”


주식, 코인 부분에서 박대호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신성한 사업을 논하는데 주식하다 인생 말아먹은 놈을 데리고 오자고?”

“지가 감시해야지예. 글마가 지는 쫌 무서버 하거든예. 중학교 때 제가 통, 가가 부통 아니었겠습니꺼.”


박대호는 탐탁지는 않았지만 정호동이 저렇게 자신 하니 일단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도 연락하냐?”

“물론입니다, 행님. 전화하면 바로 튀어나올낍니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바로 나오냐? 내일쯤 보자고 전해라.”

“네, 행님.”


**


정호동은 술을 마시다 바깥으로 나와 류승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호동이가?]


평소 류승오는 서울말을 쓰지만 중학교 동창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온다.


[하이고 마, 이기 몇 년 만이고. 승오야. 반갑데이.]

[그래 5년 전에 한 번 만난 뒤로 한 번도 못봤네. 근데 우짠 일이고?]

[딴기 아이고. 근데 니 요즘 바쁘나?]

[당근 바쁘지. 주식도 하고 사업구상도 하고···]


허세 가득한 말이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정호동의 귀에는 백수라고 들렸다.


[그래, 놀고 있다는 거네. 잘됐다.]

[놀기는 무슨··· 사업구상 중이라니까 뭐라카노.]

[오야, 오야. 사업구상은 쫌만 뒤에 하고, 일단 내 있는 청담동으로 건너와바라.]

[청담동?]

[청담동 와가 대호엔터 찾아온나.]

[다짜고짜 먼 일인데. 니가 오라카면 내는 가야대나. 내가 니 씨다바리가?]


류승오는 어울리지도 않는 영화 <친구>의 장동건 대사를 흉내 냈다.


[니 원래 내 씨다바리였자나. 클클클]

[씨다바리는 아이지. 니가 통이고 내가 부통이었지.]

[그걸 씨다바리라 카는기다. 내가 모시는 행님 볼거니까 가다마이만 하나 걸치고 온나.]


**


당시 류승오는 아무리 막나간다지만 조폭과 직접적으로 연루되긴 싫었다.


연예기획사를 맡아서 한 번 키워달라는 박대호의 부탁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생각대로 키워도 내 것이 아니고, 키우지 못 한다면 어떤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다.


그 전에 와이프 뒷조사 일로 잠시 정호동에게 신세진 게 있긴 했지만 같이 사업을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때 마음이 많이 상한 걸로 아는데, 이걸 부탁해도 될는지. 류승오는 고민 끝에 정호동의 번호를 눌렀다.


**


“호동아, 내다 승오.”


류승오는 최한성과의 미팅을 서둘러 끝내고 밖으로 나오면서 바로 정호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야, 오랜만이네.]


다행히 2년 전 일은 잊었나 보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밝아 보였다.


“물어볼끼 있어서 전화했는데.”

[물어바라.]

“너그 조직에서 철거나 유치권 행사 이런 거도 하재?”

[그거도 주요 수입 중 하나지. 엥간한 건달들이 하는 건 다 한다고 보믄 댄다.]

“유치권 행사 이런 거 전문으로 하는 선수들 좀 쓸 수 있겠나?”

[와, 먼 일 있나?]


류승오는 급한 대로 정호동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행님이 안댔네··· 눈뜨라고 비는 사람은 음꼬 돈 뜯어갈라는 연놈들뿌이네.]

“행님도 아이다. 그리 돈 많으믄서 동생 힘들다카는데 도와주지를 않는기라.”

[내라도 주식하는 동생한테 돈 안 준다. 니가 인마 똑바로 살아쓰야지 행님도 니를 믿고 돈을 주지 않았겠나.]


정호동 입에서 입바른 소리만 나오자 류승오는 짜증이 버럭 났다.


“아, X발. 내가 조폭새끼한테 지금 인생강의 들어야겠나. 아들 빌려줄 수 있는지만 말해도.”

[뭐, 조폭새끼? 이 새끼가 미친나. 니 디지고 싶나?]


쫙 깔린 정호동의 목소리에 류승오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세월이 지나 잊고 살았지만 정호동은 웃으면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잔인하기로는 울산 ‘넘버 원’이었다.


“아, 아니, 호동아. 내 말뜻은 그기 아이고.”

[대따. 니 먼 말하는지는 내도 알겠고. 내 밑에 있는 아들 중에 똘똘한 놈 두 놈 니한테 보내주께.]

“어, 고맙데이.”

[고맙기는 머가 고맙노. 이기 다 비즈니스 아이가. 아들 담뱃값이나 잘 챙기주고 나중에 일 끝나면 정산 확실하게 하자.]


류승오의 귀에 ‘일 끝나면 정산 확실하게 하자’라는 말이 확 꽂혔다.


이거 여우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인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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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53. 한기호 너랑은 그냥 악연이야 +1 24.08.29 212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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