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첫사랑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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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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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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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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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차세린의 과거

DUMMY

한기호의 전화가 왔을 때는 하도 화가 나서 성질대로 말했다. 그런데 병실을 떠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괜히 성질을 돋운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한기호는 세황가에서도 내놓은 사고뭉치. 이 인간이 열받으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괜히 약 올렸다가 채원의 집에 어떤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됐다.


이 성질머리 고쳐야 하는데···


돈에 관해서는 이렇게 흥분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절대 없었다. 그런데 돈과 관계 없으면 가끔씩 성질을 못 이겨 이런 사고를 치곤 했다.


그래서 김세훈이 성질머리 좀 죽이라고 그렇게 충고를 했었는데···


김희선의 병실에서 나왔을 때 바깥에는 아직도 백경호가 맞은편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는 한결을 보자마자 다시 다가왔다.


“한결 군, 어떻게 말씀은 잘 나누셨습니까.”


한결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직진하려다 고개를 돌렸다.


“최소한 양심이 있으면 직접 와서 무릎 꿇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재진이가 경찰서에 있어서 못 온다면 그 애비라도 와서 무릎을 꿇어야지. 안 그래요?”


자기 삼촌한테 ‘그 애비’? 백경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럼, 아직도 합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돈 받고 세황 일가를 돌보는 게 자기 일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도 딸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만약 자기 딸이 저 모양으로 다쳐서 입원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저씨는 돈 받고 얼씨구나 하면서 합의해 줄 건가요?”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그래도 이걸 해결해야 하는 게 내 일이다. 이런 거 해결하라고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 하는 연봉을 받는 거란 말이다. 백경호는 입을 앙다물었다.


한결이 보기에 백경호는 자기 속마음을 잘 숨기지는 못하는 사람 같았다. 얼굴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여하튼 저라면 가해자의 애비, 즉 한기호 사장한테 가서 직접 무릎 꿇으시라고 조언하겠습니다. 애비가 여기 병실에 와서 석고대죄한다면 피해자의 마음도 어느 정도 풀어지지 않을까요?”


백경호는 난감했다.


“아무리 그래도 작은아버지신데 말씀이 좀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요?”

“괜찮아요. 작은아버지는 조카인 절 ‘이 새끼, 저 새끼’라고 부르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죠.”


백경호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늘 저녁 8시. 딸의 학교에서 졸업 콩쿠르가 있는데 또 못 가게 생겼다. 아까 전화했을 때 딸은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다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아들 잘못 키운 벌 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될 텐데··· 작은아버지도 참 어지간하시네요. 저야 아직 미성년자라 자식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들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하는 게 아빠 아니에요?”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한기호에게 적용되지 않아서 문제인 거지.


“어쨌든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시면 저희 입장을 생각해서 피해자분을 설득하는데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경호는 ‘참을 인(忍)’ 100개를 가슴에 새긴다는 심정으로 참고 또 참으면서 한결에게 말했다.


“저한테는 혹여라도 기대하지 마세요. 전 한재진을 만나면 두들겨 팰 거니까. 원래 ‘눈눈이이’가 제 인생의 모토거든요.”

“눈눈이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할배가 말했던··· 검사 출신이시니 더 잘 아시잖아요?”


**


김희선의 병문안까지 끝나고 나니 시간이 저녁 9시쯤 됐다.


아, 이런 기분에는 맥주 한 잔이 딱인데··· 대한민국에서 미성년자라는 굴레는 ‘천형(天刑)’처럼 느껴졌다.


논알코올 맥주라도 마셔야겠다.


한결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렸다. 오늘 아침부터 계속 바빠 운동을 못했기 때문에 좀 걷기로 했다.


터벅터벅 걷다가 얼마 전 1학년 때 담임 손병호를 만났던 편의점이 눈에 띄었다.


그 편의점 앞 노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11월 치고는 따뜻한 날이 계속된다고 하지만 밤에 노천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는 건 사실 미친 짓이다.


그런데 술 마시던 사람이 눈에 익숙한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다. 손병호였다.


올해 38세인 손병호는 여지껏 짝을 찾지 못하고 편의점 근처 원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이곳이 그의 단골인 모양이었다.


모르는 척 지나치려 할 때 멀리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결! 또 보네? 반갑다.”


손병호가 한 손을 들고 흔들고 있었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결은 손병호 쪽으로 얼른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


“어, 집에 가는 길이면 여기 앉아. 앉아서 내 말동무나 좀 해다오.”


아··· 류지오도 설마 다른 사람 눈에는 저렇게 비춰지지 않았을까. 갑자기 현타가 몰려왔다.


남자가 혼기를 놓쳐 혼자 살면 저렇게 안쓰럽고 비참해 보이는구나. 다시 본체로 돌아간다면 절대 혼자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한결이었다.


“쌤, 술 너무 자주 드시는 거 아니에요?”


담배도 입에 물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엄마 등골브레이커 노릇을 하는 30대 백수였다.


“얀마, 노총각인 내가 무슨 인생의 낙이 있겠니. 이렇게 저녁마다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는 게 유일한 낙이다.”


손병호는 자기 주머니에서 신용카드 한 장을 꺼내 한결에게 건넸다.


“들어가서 너 먹을 거 좀 사 와라. 지난번 마셨던 논알코올 맥주 괜찮던데? 너 그거 마시면 되잖아.”


본격적인 대작이 시작됐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최근 뉴스가 됐던 천태우 사건까지 안주에 올랐다.


“너, 차세린이 알지?”


갑자기 손병호 입에서 세린이 이야기가 왜 나와?


“잘 모르는데···”


일단 발뺌을 하고. 저 기억상실이라니까요, 쌤. 그걸 기억하세요.


“참, 너 기억 잃었댔지.”

“넵.”


손병호는 새우깡을 한 움큼 집어서 입에다 털어 넣었다.


“차세린이라고 예쁘게 생긴 여학생이야. 너랑 중학교 동창이고, 내가 걔 담임이야.”


아니 이런 우연이? 그래, 세린이도 같은 학교 친구였지.


교복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고등학생 신분이란 걸 잠깐 깜빡했다.


“근데 이번에 뉴스에 난 증권사 부사장 있지. 그자가 자기 오피스텔에다가 잡아뒀던 여학생이 차세린이었어.”


한결은 짐짓 놀라는 척했다.


“그랬군요. 쌤도 걱정 많으셨겠어요.”


손병호는 담뱃갑을 들어 새로 담뱃불을 붙였다.


참 맛있게도 피운다. 미성년자 학생 앞에서···


“참, 걔 인생도 파란만장해. 보고 있으면 안쓰러워 죽겠어.”


예상외로 손병호가 세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잘됐다. 그렇잖아도 세린에 대해 궁금한 게 좀 있었는데.


“어떻게 파란만장한데요?”

“걔 집이 좀 문제가 있어. ··· ··· 아차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참내.”


아니 말을 시작했으면 끝을 보던가, 안 하려면 궁금하게 만들지 말았어야지.


“하긴 이건 네가 기억을 잃어서 모르는 거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거긴 해. 그래도 내가 말하는 거 어디 가서 옮기지는 마.”


그런데 술 취한 손병호는 그다지 입이 무거운 스타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절대 비밀 이야기는 이 아저씨한테 안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걔가 고1때 친오빠한테 몹쓸짓을 당했어. 그걸 1학년 담임이 알게 돼 교육청에 신고하고 학교가 난리가 났었지. 걔 친오빠는 그때 우리 학교 3학년이었어.”


한결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잠시 멍했다. 몹쓸짓이라면 정황상 성폭행을 말하는 것 같은데. 친오빠한테 성폭행이라니.


“친오빠가 여동생을··· 그게 사람입니까?”


손병호는 담배 연기를 한 번 ‘후’ 하면서 크게 내뱉었다.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나라에 친족간 성폭행 사건이 엄청나게 많아. 특히 친오빠가 여동생을 그러는 경우가···”


갑자기 소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야, 아니야.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훠이 훠이.


“여튼 그때 교육청에서 진상조사 나오고 난리 났었는데 결국 유야무야됐어. 사실상 가족이 세린이한테서 등을 돌렸어.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고. 모두 오빠 편을 들었던 거지.”


갑자기 세린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발랄함 뒤에는 이런 슬픈 사연이 있었구나.


‘그런 친구에게 내가 무슨 짓을 시킨 거지?’


한결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공부를 잘했던 세린이 오빠는 우리 학교 개교 이래 처음으로 의대를 갔어. 비록 지방대긴 하지만 요즘 의대 하면 다 알아주잖아? 작년에 플래카드가 교문에 떡하니 걸려있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세상이 원래 그래. 세린이 부모는 잘난 아들을 위해 너무 쉽게 딸을 버렸어. 공부 잘하는 아들은 자기들의 트로피인 반면 평범한 딸은 언제든 오빠를 위해 희생되는 존재 정도로 생각했던 거지.”


한결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세린의 오빠가 누군지 눈앞에 있다면 온 몸의 뼈를 살과 분리시켜 버릴 것 같았다.


“이런 일을 겪었으니 세린이가 빗나가지 않는 게 이상한 거야. 난 걔가 제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그런데 이번에 그런 일을 또 겪었으니.”


한결은 다시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런 과거를 알았다면 결코 세린이를 미끼로 쓰지 않았을 터였다.


그냥 엇나가는 청소년이라고 치부하면서 그런 위험에 노출되는 걸 가볍게 여겼다. 또 5,000만원을 줬으니 그만큼 보상도 해줬다고 생각했다.


“어제 세린이 만나봤는데 겉으로는 씩씩하더라. 앞으로 경찰 조사도 계속 받아야 하고 힘들 텐데, 정작 담임이라는 난 전혀 도움이 안 되네.”


그 생각을 못 했다. 피해자이긴 하지만 어쨌든 천태우의 범죄를 소명하기 위해서는 세린의 진술, 증언 등이 필요하다. 계속 경찰과 만난다는 건 일반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당장 변호사를 붙여줘야 한다.


개똥도 약에 쓸 데가 있다더니. 손병호를 우연히 만난 게 정말 다행이었다.


“권규진 같은 쓰레기가 세린이에게 들러붙어서 떨어지지도 않는 것도 참.”


손병호는 세린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안쓰러운 제자라 그런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듯했다.


“이제 그만하자. 아이고 너무 세린이 얘기만 많이 했네. 세린이 때문에 너무 속상해서 혼술하던 거였어.”


그랬군요. 전 쌤이 원래 혼술 좋아하는 노총각인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근데 쌤은 장가 안 가세요?”

“이생망. 이 키에, 이 몸매에, 이 얼굴에··· 심지어 타이밍도 놓쳐버려 이젠 포기했다.”


타이밍? 그럼 예전에 누군가를 놓쳤단 얘긴가. 한 번도 연애 못 했을 거 같은데···


“너 이 새끼, 지금 그 표정 뭐냐. 너 같은 호빗 종족이 무슨 연애? 뭐 이런 생각 하는 거 같은데?”


속마음을 들킨 한결은 격하게 손사래 쳤다.


“제가 어떻게 스승님께 그런 불충한 생각을··· 쌤 같은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를 찬 여성은 지금쯤 얼마나 후회하며 땅을 치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맘대로 놀려라. 예전에 방송에서 어떤 여대생이 나와서 남자 키 180이 안 되면 ‘루저’라고 당당히 말하던데···”


손병호는 고개를 들어 한결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넌 좋겠다. 살 빠지고 키도 커지고, 얼굴은··· 지금 보니까 너, 어머님 정말 많이 닮았네. 게다가 부잣집 아들에다··· 넌, 남들한테는 있는 허들이 몇 개가 없는지 알고는 있냐?”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다. 빙의 전 삶에서는 남들보다 허들을 최소 한두 개는 더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결의 인생은 남들이 보기에 허들 몇 개가 치워져 있는 부러운 삶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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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 1라운드 KO패 +1 24.09.03 170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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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 폭행교사(暴行敎唆) +1 24.09.02 176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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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 김충헌의 귀국 +1 24.08.31 191 11 12쪽
55 55. 한기호, 너 크게 실수한거야 +1 24.08.30 178 12 12쪽
» 54. 차세린의 과거 +1 24.08.30 188 12 12쪽
53 53. 한기호 너랑은 그냥 악연이야 +1 24.08.29 197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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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1. 서울숲 느와르 +1 24.08.28 220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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