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첫사랑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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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3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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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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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형님 편하게 보내드리자

DUMMY

류승오의 입이 바짝바짝 말라 타들어 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가는 푸른 하늘보다 더 푸른색으로 도배돼 있었다. 아니 KOSPI나 코스닥 지수는 오랜만의 활황이었다. 류승오가 가진 주식만 푸른색이었다.


엄마를 닦달한 끝에 겨우 증거금을 넣어 계좌가 깡통이 되진 않았지만 피해규모만 더 키웠다. 차라리 그때 파산하는 게 나을 뻔했다.


정호동에게 부탁해 서윤진을 형 집에서 쫓아내긴 했지만 그게 당장 돈이 되진 않는다. 그 집을 당장 팔아 현금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보, 서율이 크리스마스 학예회 때 입을 옷 사야 해. 돈 좀 줘.”


이다현이 류승오의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콜록, 콜록. 아, 집 안에서는 좀 담배 피지 마. 애들도 있는데···”


또 잔소리.


“문 닫아. 내가 지금 돈이 어딨어? 남는 돈 있으면 벌써 주식에 다 꼬라박았지. 말 나온 김에 장모님한테 돈 좀 융통해 봐.”


장모님이 소환되자 이다현의 눈꼬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엄마한테 어떻게 또 손을 벌리냐? 넌 양심도 없냐?”


류승오는 피우던 담배를 꽁초가 수북이 쌓여있는 컵라면 용기에다 신경질적으로 비벼 끈 뒤 가래침을 뱉었다. 그런데 가래침이 조준이 잘 안돼 키보드에 뚝 떨어졌다.


“에이 X팔··· 아침부터 재수 없게 암탉이 울고 지랄하더니··· 니가 몸이라도 팔아서 돈 좀 마련해 봐, 썅···”


류승오는 다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담뱃갑을 들었지만 텅 비어있었다. 의자에 걸려있는 국방색 파카를 주섬주섬 걸친 후 담배를 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


철저하게 무능력하고 골빈 여자인 줄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13년 전 tvM이라는 채널에 PD로 합격한 게 인생이 꼬이게 된 첫 단추였다.


입사한 첫날 인사과에서 이다현을 보자마자 류승오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류승오는 당시 취업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일단 살부터 뺐다.


중학교 때 이미 100kg이 넘었던 몸무게를 이를 악물고 90kg까지 줄였다. 키는 189cm. 미남은 아니지만 훈남 스타일. 승산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이다현은 이미 사내에서 유명한 퀸카였다. PD고 행정직이고 할 것 없이 미혼 남자들이면 모두 이다현을 사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웃긴 건 정작 대시하는 남자는 별로 없었다.


연예인급 미모에 은행장 출신 아버지를 둔 금수저라는 소문은 남자들이 선뜻 다가설 수 없는 선을 그어 놓은 듯했다. 게다가 쌀쌀맞다고 느낄 정도로 너무 도도한 모습에 남자들은 일찌감치 자기 주제를 알고 포기해 버렸다.


류승오는 ‘단순 무식’ 전략으로 이다현에게 접근했다. 매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이다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고 별일 없어도 항상 인사과를 들락거렸다.


결국 이다현으로부터 데이트 허락을 받아냈고, 결혼까지 1년 만에 후딱 해치웠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다현에 관한 소문이 많이 부풀려졌다는 걸 깨달았다. 장인은 은행장이 아니라 퇴직한 은행 지점장이었다. 재산이라고는 분당에 있는 20억 대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다.


그렇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여인이었기에 이런 정도는 흠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다현은 결혼과 동시에 퇴직을 선언하면서 류승오에게 두 번째 충격을 안겼다.


케이블TV PD 월급으로 두 명은 건사할 수 있지만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생활이 쪼들리는 건 불가피했다.


임신 준비를 위해 퇴직한다고 했을 때 차마 말리지 못했다. 어쨌든 얼마 지나지 않아 큰아들 범석이 태어났다. 안동의 조부모로부터 온갖 치하의 말을 듣자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런 기쁨도 둘째 딸 서율이 태어나면서 끝났다. 처음 태어났을 때 딸 얼굴을 보고 아기가 바뀌었다고 생각해 병원에 따졌을 정도였다.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다. 류승오가 자기 얼굴을 여자에 대입하더라도 절대 저 얼굴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들 범석의 얼굴이 못생겼을 때만 해도 아들이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이라고 기뻐하는 조부모 앞에서 얼굴 생김새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딸은 다르지 않은가. 예쁘면 3시(試) 합격이라는 말이 있듯··· 얼굴로만 보면 이다현은 3시가 아니라 5시도 합격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딸의 얼굴은 3시는커녕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미친 듯이 술을 퍼붓던 어느 날 딸 외모의 비밀을 알게 됐다. 딸을 안고 있던 장모가 자기도 모르게 ‘아이고 다현이 어릴 때랑 빼다 박았네’라는 말을 실수로 해버렸다.


갑자기 결혼식 때 기억이 소환되면서 모든 미스터리가 한 번에 풀렸다. 당시 신부측 하객은 전부 사회생활에서 만난 친구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당시에는 그냥 고등학교 친구들과 친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과거가 들통날까봐 일부러 안 부른 거였다.


괜한 분란 일으키기 싫어서 처가에 갔을 때 조심스럽게 옛날 앨범을 찾기 시작했다.


[자기야, 근데 자기 어릴 때 사진은 왜 하나도 안 보여?]

[5년 전이던가··· 집에 불이 나면서 다 태워 먹었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이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방은 정말 예전 사진뿐 아니라 예전 추억을 소환할 만한 어떠한 것도 없었다.


소문 안 나게 이다현의 뒤를 파보기로 했다. 당시 ‘프로듀스 111’을 기획하느라 정신없이 바쁠 때였다. 이런 일 전문가를 알 만 한 중학교 동창에게 연락했다.


[호동이가?]

[니, 승오가? 우와 이기 몇 년 만이고. 잘 지내나?]

[내사 마 그렇지.]


오랜만에 중학교 친구랑 통화를 하자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호동이 니는 어떻노? 들리는 말이 생활한다 카던데···]

[우예 알았노. 내 고등학교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삤다. 촌에 있어바야 거서 거고. 성공할라믄 서울 아이겠나.]

[글나. 고생 마이 했겠네.]

[아이고, 말도 마라. 고생한 거 소설로 쓰믄 대하소설이다.]


서로 별로 궁금하지 않은 근황토크를 잠시 이어간 뒤 류승오는 본론을 꺼냈다.


[딴기 아이고 니 흥신소 아는데 있나?]

[흥신소? 그거 만다꼬. 누구 센타깔 일 있나?]


오랜만에 연락한 동창한테 말하기 민망한 내용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조직 생활하는 정호동이 어디 가서 떠벌릴 정도로 입이 싼 친구도 아니었고.


의뢰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정호동으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류승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메일에는 간단한 메시지와 함께 JPG 파일 하나가 첨부돼 있었다.


[친구야,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지 감이 왔다. 이제 놀랄 준비만 하면 된다.


첨부된 JPG 파일을 조심스럽게 더블클릭하자 웬 여고 졸업앨범의 한 부분을 스캔한 이미지가 화면을 채웠다.


여학생 10여 명의 증명사진들이 쭉 펼쳐져 있었고 그중 ‘이다현’이라는 이름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체크돼 있었다.


거기에는 찢어진 눈에 낮은 코, 툭 튀어나온 입··· 같은 페이지의 10여 명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못생긴 얼굴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 두 눈으로 확인하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왜 여자들이 ‘의느님, 의느님’ 하는지 알게 됐다. 정말 우리나라 성형업계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였다. 프로그램 기획이 바쁘다는 핑계로 외박이 잦아졌다.


어쨌든 일에 몰두한 덕분에 프로그램은 대박이 났다. 프로그램 성공을 기반으로 펀딩을 받아 따로 회사를 차렸다.


사회적 성공과 달리 부부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다.


부부관계가 틀어지면서 류승오는 점점 빗나가기 시작했다. 수중에 돈이 좀 생기자 딴생각도 하게 됐다.


여윳돈을 운용한다는 핑계로 주식에 손을 댔고, 같이 골프를 치는 지인들의 소개로 정선카지노까지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회사 대표가 주식, 도박에 빠져 있으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했다. 회사는 금세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파산했다.


그때부터였다. 류승오는 어릴 때부터 자기의 밥이었던 형에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직접 말이 통하지 않으면 엄마를 통해 압박을 넣었다.


지오에게서 받은 돈만 잘 굴렸어도 지금과 같은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진 않았다. 그런데 받는 족족 주식과 도박에 돈을 꼬라박았다.


그런데 그 돈줄이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래서 돈이 융통 안 되고 있다.


**


형은 미혼으로 자식이 없다. 이대로 사망한다면 그 재산은 오롯이 부모에게 상속이 되고 그건 곧 류승오의 돈이란 말과 동의어였다.


‘의사라는 것들이 혼수상태가 6개월이나 이어지는데 잠자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류승오는 존엄사와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봤으나 여기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 점점 마음속 악마가 커지면서 류승오에게 달콤한 유혹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죽이면 돼. 표 안 나게 사고사로 위장하는 방법도 많을 거야. 뭘 망설이는 거야.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너희는 거리에 나앉게 돼.]


지금까지는 그냥 형이 이대로 눈을 감았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수동적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빚더미에 짓눌려 숨이 막히기 시작하자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었다.


사람 목숨만큼 질긴 게 없다더니···


새로 산 담뱃갑을 뜯어 한 개비 입에 물었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정호동이었다.


[내다.]

“어, 일 잘 처리됐다카대. 고맙데이.”

[고맙기는··· 근데 언제까지 거기서 죽치고 있어야 되노. 24시간 2교대로 뺑뺑이 돌릴라면 인건비 꽤 든데이.]


이 새끼, 이제 일 시작했는데 벌써 돈 이야기라니.


“내가 말했지만 이번 일은 끝나야 돈을 한꺼번에 줄 수 있다카이. 계약금 중도금 뭐 이런 걸 줄 상황이 아인기라.”


정호동은 잠시 말이 없었다.


“듣고 있나?”

[오야, 듣고 있다. 내사마 니 사정 잘 알지만 거 나가있는 아들은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한다이가. 오까네 쫌 있어야 할낀데.]


그렇잖아도 주식이니 코인이니 다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제 너마저 돈 달라고 징징대냐. 조금만 기다리면 준다고 하잖아.


“쫌만 더 기다리도. 내가 얼마 안 되더라도 쫌 마련해 보께.”

[음··· 이건 오해하지 말고 들으래이.]

“말해바라.”

[너그 행님이 지금 6개월 넘게 혼수상태라매.]

“어, 그러치.”

[행님이 돈이 억수로 많은데 처자식은 엄꼬.]

“하모, 내가 얘기했자나.”

[결국 너그 행님이 돌아가시야 니한테 돈이 떨어진다는 얘긴데··· 그거 말고 니한테서 돈 나올 구멍은 엄따이가.]

“···”

[카믄, 행님이 자연스럽게 돌아가시면 만사 해결되는 거 아이가. 6개월 넘게 누워계신 행님 입장에서도 얼매나 힘드시겠노. 저렇게 오래 누워 있으면 대부분 그냥 죽는다카대.]

“그건 그렇제.”

[근데, 저렇게 10년, 20년 더 누워계시면 니가 먼저 굶어 죽을 거 같은데, 맞나?]

“그랄꺼 같다. 내 지금 상황으로는 10년은 고사하고 1년 버티기도 힘들다.”

[그라믄 행님을 편하게 보내드릴 방법을 우리 한 번 연구해 보는 게 어떻노. 행님도 누워서 더 고생 안 하시도 대고 니는 니대로 큰 재산 생기는 기고, 내는 우리 아그들 인건비 받을 수 있고. 일석삼조 아이겠나.]

“니 말은···”


정호동이 급히 류승오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허, 입 밖에다가 내지는 말고. 우리 편하게 보내 드릴 방법 연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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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 1라운드 KO패 +1 24.09.03 170 12 12쪽
59 59. 명불허전(名不虛傳) 김충헌 +1 24.09.02 162 13 12쪽
58 58. 폭행교사(暴行敎唆) +1 24.09.02 176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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