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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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작품등록일 :
2024.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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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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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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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DUMMY

블레어 성에 잠입하기 직전.

패밀리어 날벌레 2마리는 성의 입구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로건은 멀리에서 성을 전체적으로 다시 살펴보았다.


‘어차피 모든 출입구에는 마법이 걸려있을 거고······.’


2층부터 4층까지 있는 창문들.

첫날부터 지금까지 성의 모든 창문은 닫혀 있다.

바깥쪽은 나무지만, 안쪽은 철판과 철창으로 보강한 창문.

성의 작은 뒷문은 그냥 철 덩어리에 아예 안 쓰는 것 같다.


‘다 별론데 그래도 입구가 가장 나아. 지하실과 가깝고.’


흑마법사에게 까마귀가 죽은 지도 6일이나 되어서, 성의 경계는 다 풀어져 있었다.

처음 조사하는 첫날에는 입구의 문이 닫혀 있더니 3일째부터는 입구 문 한쪽을 항상 열어둔다.


‘문을 왜 안 닫아? 오히려 위험을 알리기에는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만큼 자신 있다고?’


그렇다고 별도의 장치가 있지도 않았다.

로건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도 나름의 생각은 있었다.


육중한 철문.

여닫을 때마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한밤중에 밀면 그 소리가 성 바깥까지 울릴 정도로.


그래서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조금만 열어 놓고, 그 문틈으로 교대하고 밤에 생기는 볼일도 보러 다닌다.

혹시 문제가 생겨도 경비가 문을 힘껏 밀어서 닫으면 그만이었다.

고치면 될 것을, 여태껏 한 번도 문제가 없었으니 그냥 그러고 사는 모양이었다.


위이잉.

날벌레는 성 입구를 맴돌다가, 입구의 열린 문 사이로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았다.

별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야간 교대를 할 경비 2명이 1층 넓은 중앙 홀에 나타났다. 곧 입구 경비병과 만난 것이다.


‘오늘은 지각이네? 은신 마법 몇 분은 잡아먹겠어.’

로건은 속으로 혀를 찼다.


본래 패밀리어는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연결할 수 있지만, 벌레는 거리가 너무나 짧았다.

그래서 늘 성 근처에서 은신 마법을 쓴 채 날벌레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5일이나 조사할 필요가 없고, 이렇게 은신 마법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데.


‘가자.’

신속하게 날아서 성 입구에 도착했다.

경비병 4명은 로건이 코앞에 있음에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간단하게 인사하며 교대하려고 한다.


로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나 같이 눈빛이 악독하다.

돼지를 잡을 때 그 비명이 듣기 좋다나 뭐라나.


‘은신 마법이 남은 시간은······ 15분? 16분?’


로건은 ‘바인드’ 마법을 펼쳐 경비 4명을 동시에 제압 했다.

보통의 바인드는 상대의 몸을 구속하는 마법.


그런데 로건의 바인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째로 상대를 구속하고 말았다.

힘을 더 써서, 아예 그들의 몸 전체를 마법에 담그다시피 한 것이다.

그러자 경비병들은 움직이기는커녕 입도 뻥끗 못 하고 픽 자빠지려고 했다.


로건은 염력으로 경비병들을 공중에 들어 올리며 그들의 목을 꺾고는 조용히 내려놓았다.

이 경비 4명은 오로지 야간 경비만 서는데, 방 하나를 같이 쓴다. 만약을 대비해서 한꺼번에 처리한 것이다.


* * *


로건은 열린 문 앞에서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그의 몸이 서서히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활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긴장감과 비슷했다.


‘10분! 남은 시간은 그냥 10분으로 잡자고!’


그는 아공간에서 잘라 놓은 튼튼한 통나무를 꺼내어 열린 문틈에 끼움과 동시에, 벼락처럼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몸을 틀면서 문틈으로 단숨에 들어간 것이다.


얼마나 빠르게 들어갔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5m 이상을 나아갔다.


로건은 대번에 몸을 돌려 입구로 날아가며, 철문에 스태프를 겨누었다.

예상대로 마법의 기운이 몸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보나 마나 인식 마법.

문에 걸린 마법이 자신을 적으로 인식한다면 철문이 잠겨야 한다.

만약 문이 닫히지 않으면 들키지 않은 거고.


‘반응 없어? 없네. 그래도 1분. 1분은 더 기다려본다. 퇴로는 중요하니까.’


로건은 스태프를 거두고 통나무가 끼인 문으로 다가갔다.


문이 닫히려고 한다면 통나무가 먼저 방해할 것이다.

그때 문을 부수면 되었다.


문이 닫히면, 그 문에서 어떤 마법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미리 망가뜨리는 게 좋다.

아마도 락 마법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멀링가 마법사의 실험실처럼, 수준 높은 락 마법이 생긴다면 단시간에는 철문을 망가뜨릴 방법이 없었다.

미리 부숴놓는 게 맞았다.

2층 창문을 건드려도 되지만, 소란은 똑같고 지하실 와인 창고와 거리도 멀고.


‘만약 철문을 부수고 소란이 일어나면······. 그냥 창고부터 털어. 계획이고 뭐고 은신 마법의 시간을 아껴야 해.’


인식 마법의 반응을 살펴보는 1분의 대기 시간.


그는 이 기다림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아공간에서 통나무를 끊임없이 꺼내어.

열린 문틈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통나무를 빽빽하게 끼워 넣었다.


그러자 1분은 금방 지나갔다.


‘일단 통과? 그럼 창고로!’


로건은 맹렬한 속도로 움직였다.

2, 3분이면 와인 창고를 다 털 자신이 있었다.

그전까지만 철문이 반응하지 않으면 된다.


쉬이이!

로건은 옅은 바람 소리까지 내며 지하 통로가 보이는 곳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콰앙!

로건이 막 통로로 날아서 내려가는 순간.

저 아래 끝 지하 복도에서 두꺼운 석벽이 내려오며 공간을 틀어막았다.

역시 날벌레의 조사만으로는.

이런 건 마법사가 직접 살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


‘입구부터 부숴놓고 석벽을 폭파하면 되지!’


로건은 쏜살처럼 다시 입구로 날아가며 철문에 마법을 펼쳤다.


익스프로전이면 한 방에 되겠지만 필요 이상의 마나 낭비.

그는 다른 마법을 썼다.


‘아이스 볼트!’

투웅, 투투퉁 하는 소리가 대여섯 번 빗발치듯 이어졌다.


로건은 숨도 돌리지 않고 연이어 마법을 쏘았다.

‘파이어 볼!’


화아아아!

파앙!

스태프 헤드에 붉은 빛이 맺힌다 싶더니 무섭게 튀어 나가 열댓 개의 아이스 볼트를 바짝 따라붙었다.


아이스 볼트로 철문과 벽을 연결한 경첩을 집중적으로 두드리고.

뒤이어 열기와 물리력을 동반한 파이어 볼로 문을 후려쳐서 철문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의 마법들은 비스듬히 열린 왼쪽 철문에만 집중되었다.


끼익! 끼이익!

이때는 철문이 통나무를 짓이겨 가며 문을 닫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한두 개가 문틈에 끼였어야지.

도무지 닫히지 않았다.


그렇게 로건의 마법들이 철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갑자기 1층의 넓은 홀에 자욱한 안개가 생겨나며 모든 시야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철문 앞에 3겹의 실드가 나타나며 로건의 마법들을 차단했다.


콰아앙!

화아아아!

아이스 볼트, 파이어 볼이 실드와 부딪히며 큰 소음과 충격파가 일어났고.

실드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사람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바로 흑마법사 그레이였다.


“이제 왔어? 늦었네?”


꽈아아아앙!

앞선 마법들이 실드 1개를 부수었고, 익스플로전이 남은 실드 2개를 부수었다.


로건이 최대의 위력을 발휘했는지라 충격이 대단했다.

익스플로전은 실드들을 부수고도 모자라 폭발의 여파로 철문까지 때렸고.

육중한 철문은 양쪽 문이 크게 흔들거렸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안으로 당겨서 여는 문이라서 바깥으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철문의 마법은 다 파괴되고, 아귀도 틀어져서 큰 틈이 생겼다.


‘이놈. 어린놈 같은데 이 정도라니······.’


그레이는 바로 손을 떨쳐 입구부터 막았다.

땅에서 솟은 두꺼운 석벽이 철문 앞에 나타난 것이다.


로건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짙은 안개를 퍼뜨려 몸을 감춘 후 철문 앞에 나타났다? 바로 석벽을 세우고? 전투 경험 많아. 그리고 익스플로전을 저렇게 쉽게 막는다고? 실력도 나보다 높은 거야. 이러면 무조건 나가야지.’


이 좁은 홀에서는 블링크 마법이 큰 쓸모가 없다.

레비테이션도 그렇고.

단검 던지기, 궁술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서 붙으려면 바깥이어야 했다.


* * *


그레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로건이 있는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겨우 이 정도냐?”

지루한 말투.

그러나 신경은 곤두서있었다.


상대의 은신 마법을 꿰뚫어 볼 수가 없어서 안개를 퍼뜨렸다.

안개와 감각을 공유하여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는 중이었다.


또 마법 철문을 뭔가가 너무나 빨리 통과하여, 날짐승인가 긴가민가 시간을 낭비했다.

지하 통로의 석벽이 반응하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놓칠 뻔한 것이다.

철문에 통나무를 끼워놓은 것도 재치가 돋보인다. 철 같은 걸 끼워놨다면 마나가 금속으로도 퍼져서 알았을 건데.


‘이놈. 대단한 놈이야.’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 마법이라······ 밴든이군. 마녀들이 밴든은 1명만 남았다고 했는데 2명이었어. 뭐, 어차피 모두 재료가 될 테지만 요즘 후배들은 참 대단하구나.”


로건은 그레이를 노려보았다.

또 자신을 밴든이라고 오해하는 마법사가 나왔다.

그런데 밴든이 2명?

그렇다면 자신을 빼면 밴든 학파는 1명뿐이란 뜻. 밴든에 무슨 일이 생겼음이 틀림없었다.


‘무슨 생각해? 집중.’

이 흑마법사는 계속 자신 쪽을 보고 있으나 눈에 초점이 정확하지 않다.

은신 마법을 뚫어보지 못했다는 뜻.

과연 시스템의 아이템이었다.


‘은신 마법은 6, 7분 정도 남았어. 그전에 상황을 바꿔놔야지!’


로건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먼저 입구 철문은 석벽에 마법사가 버티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두꺼운 철벽이 몇 개나 내려와서 막혔다. 부수겠다고 설치다가 뒷덜미를 잡히면 극히 위험하다.


그리고 지하 통로는 석벽으로 막혔고.

설령 뚫고 내려가도 지하실에는 출구가 없다. 아예 선택지에 넣을 수 없는 것이다.


로건은 인상을 구겼다.


‘히키코모리야 뭐야? 블레어 성을 아주 그냥 철통으로 만들어놨네. 바깥을 꽤 많이 조사해 놨는데 아까워. 음, 그것도 써먹을 때가 있을 거야. ······아, 몰라. 이렇게 되면 계획이고 뭐고 방법은 한가지 뿐이야.’


흑마법사는 절대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

귀하디귀한 마법 재료이니까.

사로잡힌다면, 안에서 성을 무너뜨린다.

그 마지막 계획을 떠올린 것이다.


‘그래도 간은 봐야 계산이 쉽겠지? 입구 뚫어!’


로건은 망설임 없이 마법을 펼쳤다.


콰아아아!

윈드 스크라이크가 그레이에게 쏘아졌다.

주변의 공기를 쫙 밀어내면서.

그러자 로건의 근처를 맴돌던 안개까지 밀려났고, 그레이는 순간적으로 적의 위치를 놓쳤다.


콰아아아!

윈드 스트라이크는 그레이의 실드를 한참이나 갉아먹다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파이어 볼, 워터 볼, 아이스 볼트가 쉴 사이 없이 실드에 쏟아졌다.

또 ‘파이어 핸드’가 나타나 그레이의 실드를 정신없이 두들겼다.


덕분에 그레이는 몇 번째 실드를 새로 만드는지 몰랐다.

마법이 비처럼 쏟아져서 말할 틈도 없고.


‘정말 보통 놈이 아니라니까!’


그레이는 내심 감탄하면서 철문 입구를 계속 지켰다.

은신 마법으로 적이 보이지 않으니 정확하게 마법을 쓸 수 없어서 일단 입구만 막는 것이다.

은신은 마나 소모가 심한 마법, 언제까지 저러고 날뛸 순 없었다.


‘비켜!’

로건은 더욱 맹렬하게 공격했다.

다시 마법 세례가 쏟아지고, 그만큼 마나 소모도 극심해졌다.


그러나 그레이는 돌덩어리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꽈아아앙!

또다시 익스플로전이 터지고.

3개의 실드가 부서지고, 4개의 실드가 다시 나타났다.


로건은 마법을 중단했다.

‘쯧, 소용없어. 마나 낭비야.’


입구의 석벽을 약간만 무너뜨려도 바깥의 시야를 확보하여 홀을 벗어날 수 있는데.

실력도 있으면서 지키고만 있었다.


‘잡힐 때 잡히더라도 절대 쉽게는 안 되지!’


로건은 은신 마법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마법을 펼쳤다.

“포그!”

홀 전체에 짙은 물안개가 나타났다.


그레이는 모습을 드러낸 로건을 보면서 바람을 일으켜 안개를 한쪽으로 밀쳐버렸다.

“클클······. 이젠 네가 안개를 쓰느냐?”


로건은 왼손에 잡은 스태프를 마법사에게 겨누고, 오른손 위에 파이어 볼을 올려놓았다.

텅!

텅!

그러자 그레이의 실드에서 뭔가가 튕기는 소리가 났다.

로건이 펼친 바인드 마법, 그리고 염력이 막히는 소리였다.


화아아아!

파이어 볼이 날아가 그레이에게 달려들었다.


‘벤다!’

로건은 날아가는 파이어 볼을 뒤따라 달리며 오른손으로 하라신의 단검을 뽑았다.


콰앙!

‘하! 속임수?’

크기를 줄이고 위력을 늘인 로건의 파이어 볼.

그 때문에 실드 2개가 깨져나가며 맨몸뚱이가 되었다.


‘이놈! 파이어 실드!’


그레이는 즉시 실드를 다시 만들면서, 마법 주머니에서 수정구를 꺼내었다.


‘익스플로전!’


꽈아아앙!

로건은 계속 달려 나가며 스태프를 겨누고는 폭발 마법을 썼다.

홀의 바닥까지 터져나가는 강렬한 충격파.

그레이의 주위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 정신 차릴 틈을 주지 마!’


순간 스태프가 환하게 빛나면서 온갖 마법들이 그레이를 뒤덮어 버렸다.


윈드 스트라이크.

파이어 볼.

파이어 핸드.

워터 볼, 아이스 볼트까지.


그가 가진 모든 마법이 한꺼번에 튀어나오고, 더불어 마나 보유량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마법의 폭탄 세례.

사실 이 자잘한 마법들이 수정구로 강화된 그레이의 파이어 실드를 어쩌긴 어려웠다.

로건도 익스플로전이 낫다는 걸 알았지만 그 마법을 펼칠 마나가 모자랐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그레이의 손발이 순간적으로 어지러워지고.

로건이 무엇을 하는지 잠깐 주의를 놓친 것이다.


파앙.

로건은 발을 굴러 허공에 떴다.

그 후 염력으로 몸을 아래로 팍 끌어내리면서 소름 끼치는 속도로 떨어졌다.

그리고 하라신의 단검을 무섭게 휘둘렀다.


스태프는 이미 버렸다.

상대보다 실력도 부족하고, 어떤 마법을 가졌는지 모르는 데 시간을 끌 필요가.

육탄전은 유리.

그래서 이 한 번에 모든 걸 건 것이다.


“죽어!”


쌔애액!

카아아아앙!

몇 배로 강화 된 그레이의 실드.

새파란 마나를 잔뜩 머금은 하라신의 마법 단검.

실드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출렁거리고, 로건은 기를 쓰며 온 힘을 쏟아부었다.

팔뚝, 손목, 손등.

그 전부에서 힘줄이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이야아아아!”


찌이이익!

급기야 실드가 찢어지며 단검이 파고들었고.

검 끝이 당장이라도 그레이의 머리를 쪼갤 것만 같았다.


툭.

투우욱······.

눈의 실핏줄이 일어났다.

로건은 찢어질 듯 크게 눈을 떴다.


“죽어.”

검붉은 파이어 실드의 불꽃이 그를 휘감고 정신없이 흔들렸다.

로건의 옷과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마나가 바닥을 쳐서, 패시브 스킬 베리어가 작동하고 있음에도 몸이 불에 타들어 가는 것이다.


“이, 이노옴!”

폭풍 같은 로건의 공격.

그레이는 거의 죽을 때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고.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가 평생 즐겨 쓰는 독창적인 마법 ‘마나 핸드’였다.

그레이는 저주 마법에 특화되어서 원소 마법은 별로 볼 것이 없다.

있다면 파이어 실드, 파이어 볼 정도.


그러나 마나 핸드 만으로도 상대를 잡지 못한 적이 없었다.

염력과 비슷하나 위력은 몇 배로 강하고.

상대의 마나까지 빨아당기는 지독한 마법이니까.


“커어억!”

로건은 당장 숨이 콱 막혀 허공에 쳐들렸다.

급격히 빨리는 마나에 베리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불에 그슬린 맨몸뚱이만 남았다.


로건은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며 그레이를 치려고 했다.

숨이 막혀 현기증이 나고, 몸에 힘이 빠지는 와중에도 악착같이 하라신의 단검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 이 지독한 놈!”


그레이는 왼손에 수정구를 올려놓고, 오른손은 허공을 움켜쥐고 있었다.


“끄으으······.”

곧 로건의 끊어지는 듯한 신음이 흘렀고.

수정구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나 핸드으로 흡수한 마나를 수정구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레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토록 순도 높은 마나라니.

뒷골이 쭈뼛 서도록 뛰어난 마법 재능이었다.


‘저, 정말 죽을 뻔했구나. 이 무서운 놈······. 이놈이 정말 밴든 학파의 마법사가 맞아?’


루덴 유일의 공간 학파라서 이름이 있는 거지, 별 힘은 없는 학파이다.

그런데 이런 마법 재능과 실력이면 대 마탑의 후계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안 돼!’

로건은 곧 정신이 끊어지려고 하자 닥치는 대로 허공에 팔다리를 휘둘렀다.

그때 그레이의 염력이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파앙.

로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움찔, 움찔.

몇 번 떨다가 벽에 걸린 젖은 옷처럼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레이는 환하게 웃으며 로건을 땅에 내려놓았다.


“드디어 잡았군. 조심······. 후, 정말 힘든 놈이야. 그래도 이놈이라면 6개월은 연구 시간을 단축······ 컥!”


그레이는 로건이 품에서 꺼내어 던진 2개의 단검에 가슴을 찔렸다.

극히 적은 양이지만 마나까지 담긴 단검에.

로건은 아직도 한 가닥 정신을 붙들고 쓰러지지 않은 것이다.


축복받은 체력 주문서로 체력 회복 속도 20% 영구 증가.

축복받은 마나 주문서로 마나 회복 속도 20% 영구 증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죽어!”

로건은 하라신의 단검을 쥐고서 엉덩방아를 찧는 그레이에게 달려들었다.


파아앙.

그레이의 손끝에서 뻗어나간 염력이 그의 어깨를 때렸다. 심장을 쏘려고 했지만 넘어지면서 그 각도가 어긋난 것이다.


로건은 어깨가 탈골되는 것을 느끼면서도, 몸을 틀면서 그대로 쏟아졌다.


“으, 으허억!”


콰악!

하라신의 단검이 그레이의 어깨를 내리찍었다.


“으, 으악!”

가슴에 단검 2개, 어깨에는 하라신의 단검.

그레이는 통증조차 잊어먹고는, 온몸에서 마나를 폭발시켰다.

마법사면서도 너무나 놀라 기사처럼 마나를 쓴 것이다.


파아앙!

코앞에서 일어난 강한 충격파.

그것이 이제야말로 기절 직전인 로건을 때렸다.


“!”

로건은 하라신의 단검을 놓치고 양팔까지 뒤로 후딱 젖혀졌고, 머리카락까지 모조리 뒤로 넘어갔다.


“이! 이!”

로건은 찢어질 듯 눈을 뜨고 목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벌렸다.

그레이를 물어뜯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충격파로 몸이 뒤로 넘어가고 있었고.

도저히 앞으로 숙일 힘이 없었다.

로건은 눈을 부릅떴다.

“이! 이!”


그레이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비웃었다.

“하하······. 될 것 같으냐! 어디서 감히······ 으, 으악!”


로건이 뱅글의 마법을 펼쳐 그레이 앞으로 이동한 후, 기어이 그의 목을 물어뜯어 버린 것이었다.

로건은 아쉬움을 느꼈다. 정말 조금만 힘이 더 남아있었어도 명줄을 끊어 놓는 건데.

‘하······ 할만하네?’


“으악! 비켜! 비켜! 오지 마!”

그레이는 정신없이 로건을 밀쳐냈다.

그리고 침묵에 잠겼다.


“······.”

등에는 식은땀이 가득하고 얼굴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렀다.

그레이는 피가 철철 흐르는 목을 손으로 누른 채 로건을 쳐다보았다.


로건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달고서, 죽은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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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화 +15 24.09.07 17,486 441 13쪽
41 41화 +23 24.09.06 17,506 419 12쪽
40 40화 +11 24.09.05 18,023 447 13쪽
39 39화 +21 24.09.04 18,481 491 13쪽
38 38화 +13 24.09.03 18,730 488 13쪽
37 37화 +15 24.09.02 18,388 474 14쪽
36 36화 +16 24.09.01 18,544 438 13쪽
35 35화 +5 24.08.31 18,995 438 13쪽
34 34화 +13 24.08.30 19,124 428 12쪽
33 33화 +10 24.08.29 19,105 428 12쪽
32 32화 +13 24.08.28 19,044 445 12쪽
31 31화 +9 24.08.27 19,117 432 12쪽
30 30화 +11 24.08.26 19,131 463 12쪽
29 29화 +4 24.08.25 19,110 428 12쪽
28 28화 +8 24.08.25 19,360 468 12쪽
27 27화 +13 24.08.24 19,689 468 12쪽
26 26화 +9 24.08.23 19,536 49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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