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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작품등록일 :
2024.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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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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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DUMMY

일행은 로건이 늪지대를 확인하는 동안 묵묵히 기다렸다.

그런데 웬 까마귀가 날아와서 말을 했다.


-불로 쓸어도 반응이 없군. 늪지대는 아니오. 벌레도 없고.


분명 로건의 마법이다.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까마귀의 새까만 눈동자는 섬뜩하고, 음성은 몹시 귀에 거슬렸다.

카린은 닭살이 돋은 팔을 쓸면서 말했다.

“가죠. 베논 경.”

“예, 공녀님. 테일, 갑시다.”

“그럽시다. 출발!”


-이쪽으로 오시오.

일행은 까마귀의 인도하에 로건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근처에 오크 수십 마리가 있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움직이시오.”

“예.”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로건이 크고 작은 위험을 미리 알려준다.

카린은 방향을 정하여 길을 찾아가고, 기사나 병사들은 주도적으로 전투를 치렀다.

테일과 용병들은 카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만들었다.

또 전투를 적극적으로 보조하고 식사와 잠자리, 야간 불침번을 도맡았다.


그렇게 닷새를 더 이동하여 내일부터는 트롤의 서식지에 초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일행의 표정은 밝았다.

한 명의 부상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는 부산을 떨면서도 조용하게 야영 준비를 했다.


타닥.

타다닥.

숲은 이른 밤임에도 한밤중처럼 어둑했고, 모닥불은 그 열기를 조용히 퍼뜨렸다.

불 앞의 두 사람.

카린은 마법 주머니에서 몬스터 지도를 꺼내어 로건에게 내밀었다.

“몬스터 지도에요. 미리 드릴게요.”

“트롤과 오우거를 잡은 뒤 보여 주기로 하였잖소? 먼저 주는 이유가 뭐요?”

카린은 빙긋 웃었다.

“전 제 눈을 믿어요.”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병든 남작에게는 오직 딸만 2명 있다.

한 명은 자신이고, 다른 한 명은 새로 얻은 남작 부인의 딸.

그래서 작위를 잇고 영지를 다스릴 남자가 없기에, 두 딸 중 한 사람이 영주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얘기.


모두 패밀리어로 파악한 내용이었다.

‘그 얘기는 모두가 다 알잖아. 그런 얘기를 하려면 자신의 세력은 어느 정도 되는지. 유리한지, 불리한지. 그런 걸 얘기해야지. ······초면에 다 털어놓기는 그렇겠다만.’


카린은 로건의 표정에 별 변화가 없자 말을 더했다.

속사정을 얘기하면 혹시 로건이 도와줄까.

그런 한 가닥의 희망 속에서 말이다.


“기사와 병사 대부분은 제 편이에요. 돌아가신 제 어머니가 그들에게 정말 잘해드렸거든요. 저도 노력해서 그들과의 관계가 좋아요. 영지민도 저를 좋아하고요.”

“상황이 괜찮군. 민심은 공녀에게 있는 거 아니오?”


“네. 남작 부인은 행정관 쪽의 문관 가신들과 친해요. 아버지는 관여 안 하세요. 아프셔서 올해를 넘기기 힘들거든요.”

“아버지의 일은 유감이오. 그런데 뭐가 걱정이오? 유리한 상황에서 말이오.”


카린은 자신의 팔을 쓰다듬었다.

“저주에 걸렸잖아요. 그리고 전 가난해요. 남작 부인은 기사와 병사를 끊임없이 회유하고 있답니다. 돈으로요.”

“그 여자는 돈이 어디서 나서?”

“시집올 때 많은 돈을 들고 왔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중부에서 큰 상단을 해요.”

“흠.”

가난하다?

그건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있다.

물론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겠지만.


“그렇군. ······그런데 그런 얘기가 지도를 보여 주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소?”

카린은 피식 웃었다.

“후계자 싸움하면서 얼마나 많은 눈치를 본 줄 알아요? 그러면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저절로 생겼죠. 몬스터 지도요? 로건님에게는 지금 주나 나중에 주나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그렇소?”

카린은 눈을 반짝였다.

“로건님은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 주면 제 신용이 올라가죠. 신뢰도 쌓이고요.”


유능한 공녀.

머리가 좋은데 성격까지 솔직하고, 담백한 것 같았다.


“추켜세워주니까 기분은 좋군.”

“어때요? 점수 좀 땄나요?”


로건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좀 땄소. 그러면 이 몬스터 지도는 마음 편하게 받지. 내일 아침에 돌려 드려도 되겠소?”

“네.”


로건은 지도를 챙기고는 잠시 카린을 바라보았다.

오린 영지와 유일하게 붙어 있는 영지가 슬라이고.

남의 일에 간섭할 건 없다.

하지만 카린이 슬라이고를 다스리는 게 남작 부인 쪽보다 천 배는 낫다.

저주나 쓰는 여자와 이웃으로 살면 항상 뒤가 찜찜할 것이었다.


카린은 차를 홀짝거리다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하실 말씀이 계세요?”

“공녀. 영주가 되면 다른 영지와 영지전을 하실 거요? 공녀도 북부인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 아니오. 올라오면서 보니까 한 절반의 영지는 싸움을 하더군.”


카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모닥불을 뒤적거렸다.

“전 싸움 싫어해요. 어쩔 수 없어서 싸우는 거죠.”

“어쩔 수 없다?”

“하루 이틀 싸웠나요? 못해도 수십 년씩 싸웠어요. 후후, 전 사실 뭣 때문에 싸우는지도 몰라요. 쳐들어오니까 안 당하려고 싸우는 것일 뿐.”


로건은 마법에 집중하고 싶어서 이웃 영지와의 평화를 원했다.

또 오린은 척박하고 땅도 어느 정도는 넓다. 최소한 마음 놓고 개발할 시간은 필요한 것이었다.


“싸움을 싫어한다? 그렇군. 그렇다면······ 내가 저주를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오린 영지에 관심을 끊을 수 있겠소? 훗날 영주가 되어도 말이오.”


카린은 재빨리 생각했다.

저주를 벗어날 기회.

그녀는 로건이 오린 영지를 원하고, 자신을 이용하여 오린이 평화롭기를 원한다는 것까지 눈치챘다.

영주 자리에 교활한 남작 부인보다는 자신이 더 적합한 것이다.

슬라이고의 영주.

로건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그 꿈과 딱 들어맞았다.


카린은 강한 어조로 쐐기를 박았다.

“슬라이고는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요. 영지 사정이 정말 열악하거든요. 오히려 주위 영지에서 관심을 안 가져줬으면 하죠. 도움을 주시면 적어도 제가 있는 동안에는 관심을 끊을게요.”


“공녀 평생에는 오린 영지와 싸움을 안 하겠다는 말이군. 오린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소?”

“그럼요.”


로건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신이 없는 미래까지 평화롭게 지내겠다고 어떻게 약속할 수 있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스트랜드의 신전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돈을 빌려드리겠소. 얼마가 되었든 말이오.”

“아!”

“영주가 되고 나서 차차 갚으시오. 저주를 방어할 수 있는 성물도 하나 사시오. 성물이란 게 효과가 없지는 않다던데? 어떻소?”

“고, 고마워요.”


로건은 몬스터 지도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당장은 해줄 말이 없소. 차차 알게 될 거요.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얘기합시다.”

“아, 저는 뭘 해드리면 되나요? 대가가 없잖아요.”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군. 천천히 생각해 보겠소. 공녀도 한번 고민해 보시오.”


* * *


로건은 천막으로 돌아왔다.

‘카린이 남작 부인을 제거하면 좋지. 귀찮게 나설 일도 없고. 카린을 영주에 앉혀야겠어. 오린과 마주한 영지는 슬라이고뿐이니까.’


카린은 오린에 관심을 끊겠다고 했다.

그러면 슬라이고 영지는 거대한 방패가 되는 셈이다.

다른 영지가 오린을 공격하려고 해도, 슬라이고를 먼저 쳐야 하니까.


“저주 쓰는 남작 부인? 아웃.”

로건은 카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후, 두툼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아레스의 마법서 680권 마법서를 모두 정리한 것이다.

그는 드디어 이 마법의 정체를 파악했고, 그러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알아낸 마법을 익혔다.


마법의 정체는 ‘기억 조작 마법’으로 총 3단계가 있었다.


첫째는 기억 읽기.

상대의 기억을 모든 비밀을 파헤친다.

정보를 얻기에는 최고의 마법이었다.


둘째는 기억 삭제.

그 어떤 기억도 삭제가 가능했다.

아레스는 불행한 기억, 잊고 싶은 기억을 삭제하여 정신병을 고칠 수 있는 마법이라고 소개했다.

그레이는 이 2단계 마법을 사람을 미치광이를 만드는 마법으로 바꾸려고 했었다.


셋째는 기억 복원.

심연의 기억, 무의식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신비한 단계였다.


로건은 한참 중이 뭉치를 뒤적거리다가 눈을 뗐다.

“2단계에서 실험 재료가 필요하다고 했지?”


1단계 메모리 리딩 마법은 마법 실험 재료가 필요 없다.

그래서 로건은 이미 1단계 마법을 벌써 8할까지나 배운 상태.


그러나 2단계는 트롤의 피, 마메이드의 눈, 하피의 향낭. 이 3가지 마법 재료가 필요했다.

재료 없이 마법을 연마하려면 몇 배는 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니까.


‘마법으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잖아. 에스칼린에 오래 있지 않아도 되겠어.’


까마귀의 시야를 통해 이동 마법이 가능해졌다.

즉 한 번에 수십 킬로미터를 움직일 수 있고, 여러 번 마법을 쓰면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도 이동이 가능하다.

거리에 대한 제약을 거의 벗은 것이었다.


‘몬스터 지도가 시간을 엄청나게 줄여 주겠네. ······내가 너무 헐값에 얻은 셈이지. 오린에서 살면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닌데 이 값을 이번 거래에서 가치대로 쳐줘야겠군.’

로건은 다른 종이를 꺼내어 카린이 준 지도를 꼼꼼하게 옮겨 적었다.


2단계 마법 재료를 모으면서 틈틈이 오우거 가죽을 모으고.

그러면서 기억 마법과 밴든의 마법들을 계속 배워나가면 될 것 같았다.


* * *


다음날 일행은 트롤의 서식지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중형 몬스터가 자주 나타나서 일행은 이전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쪽.”

로건은 이미 지도를 보았기에 까마귀와 시야를 공유하면서 직접 안내했다.

오후까지 묵묵하게 걷던 일행은 로건의 수신호에 이동을 멈추었다.

카린도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며 손을 들었다.

“정지. 여기가 트롤이 나오는 장소예요.”


이끼 긴 바위가 많고, 땅은 축축하다.

트롤이 흙 목욕을 하는 곳.

해가 지기 전이니까 틀림없이 올 것이었다.


파티원들은 카린과 용병 대장의 지휘 아래 똘똘 뭉쳐서는 육포를 씹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트롤은 후각이 뛰어나서 몸을 숨겨도 소용없었다.


로건은 까마귀를 통해 주변을 감시하다가, 손가락 2개를 흔들었다.

성체 트롤 2마리가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크르르······.

트롤들은 흙 목욕을 하러 오다가 독특한 땀 냄새와 철 냄새에 거친 야성을 드러냈다.

우지끈.

트롤은 굵은 나무를 꺾어 들고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테일과 기사 베논이 앞으로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좌우로!”

“넓게 흩어져서 포위해!”


로건은 스태프를 겨누고 바로 마나를 뿜었다.

그는 트롤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빨리 처리하고 오우거의 사냥터로 가고 싶을 뿐이다.

바인드 마법.

트롤들은 달려오다가 다리가 묶여 우당탕 넘어졌다. 다리가 통나무처럼 굶었음에도 여지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무 몽둥이로 테일을 후려쳤고.

테일은 나가떨어졌으나 잽싸게 일어나서 다시 달려들었다.

기사 베논은 트롤의 몽둥이를 피하고 몬스터의 옆구리를 길게 베었다.

그러자 트롤의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었다.


그때부터였다.

마나를 다루는 자들은 넘어져 있는 트롤을 직접 공격.

궁사와 마나가 없는 자들은 뒤에서 그들을 보조했다.


‘게임의 마법을 쓰면 편한데. 시전 속도도 좀 더 빠르고 마나 소모도 상대적으로 적고. 사람 때문에 치여서 원······. 계약대로 오우거를 잡고 나면 바로 헤어져야지.’

로건은 그저 3, 4초를 주기로 바인드 마법을 펼쳐 계속 다리를 묶으며 트롤을 넘어뜨렸다.

트롤은 금방 죽었다.

로건의 마법 때문에 일어나지를 못하고, 주변으로 사람들이 잔뜩 있기에.

“빨리!”

테일의 지시에 용병들은 트롤의 피를 서둘러 뽑았다.


로건은 그들이 작업하는 걸 보다가 카린을 따로 불러냈다.

“이틀거리에 오우거 영역이 있지. 오우거를 잡으면 계약은 끝나오. 그전에 얘기를 해야지 않겠소?”

“생각해 봤는데요.”

“말씀하시오.”

“저주를 풀 돈을 빌려주시는 대가로 철광산은 어떠세요?”

“음?”

“슬라이고에 철광산이 하나 있는데 아직 개발하지 않았어요. 제가 영주가 되고 나면 로건님과 함께 광산을 개발하는 건 어때요? 그 이익 비율로 대가를 치르고, 빚이 남았으면 빚도 갚고요.”


“철광산? 그 돈덩어리를 왜 아직도 개발하지······ 설마 개발할 돈도 없었다는 얘기요? 아무리 그래도 한 영지를 다스리는 가문인데? 설마?”

“뭐, 그렇죠.”


로건은 한숨이 다 나왔다.

카린이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영지 자체가 찢어지게 가난한 것이었다.


카린은 어색하게 웃다가 말했다.

“주변 영지와 하도 싸워서 돈이 줄줄 새요. 아, 오린과도 싸우는데 심하지는 않아요. 그냥 살짝 안 좋달까요?”

로건은 고개를 저었다.

“역시 북부는 북부야. 알 수 없는 북부.”

“슬라이고는 땅이 넓지만 경작지는 별로 없어요. 북부는 척박하니까요. 로건님, 로건님이 광산 개발을 도와주시면 비율을 후하게 드릴게요. 어떠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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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화 +17 24.09.15 12,640 330 12쪽
49 49화 +25 24.09.14 13,443 34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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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23 24.09.06 17,571 420 12쪽
40 40화 +11 24.09.05 18,089 448 13쪽
39 39화 +21 24.09.04 18,549 493 13쪽
38 38화 +13 24.09.03 18,799 489 13쪽
37 37화 +15 24.09.02 18,446 475 14쪽
36 36화 +16 24.09.01 18,604 439 13쪽
35 35화 +5 24.08.31 19,063 43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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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11 24.08.26 19,195 463 12쪽
29 29화 +4 24.08.25 19,171 428 12쪽
28 28화 +8 24.08.25 19,420 468 12쪽
27 27화 +14 24.08.24 19,747 468 12쪽
26 26화 +9 24.08.23 19,596 49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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